필자는 1990년부터 중국선교에 참여해 오고 있다. 10년 가까이 중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각각 다른 형태를 띠고 있는 지역 교회들을 보게 되었다. 도시, 농촌, 산지, 연해, 고원, 부유한 곳, 가난한 곳 등∙∙∙. 경제 상황과 문화수준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 변함 없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들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서로 간에 막힌 담을 허신 예수님으로 인해 이런 관계가 가능하다. 비록 사람마다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 서로가 주님께로만 향해 있다면 결국은 주님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과 명령일 뿐 아니라 약속이다.
올해를 맞으면서 중국교회의 여러 가지 필요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그 중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교회 지도자 후계자 양성과 훈련에 대한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많은 해외 교회들이 이 방면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와 경제 개방 정도의 차이, 그리고 거리적인 요인 등으로 인하여 중국은 각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의 교회가 형성되었다. 각 교회의 운영과 지도방식, 특히 지도자를 양성하는 사역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접촉한 몇 몇 교회들을 중심으로, 후계자 양성 사역의 다양한 형태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도시형 교회
도시형 교회는 개혁개방 후 비교적 우세적인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 특히 대학 캠퍼스를 대상으로 한 복음전파 사역의 기회가 많아졌다. 주님을 믿은 대학생들은 선교사 혹은 해외에 거주하는 목자들에 의해 양육, 훈련되었고, 이들을 위한 정기 집회도 시작되었다. 이들은 보다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하였으며, 선교의 개념을 서로 나눔으로써 복음 전파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¹
이들 중에는 스스로 자원하여 멀리 떨어진 가난한 지역에 가서 가르치고 복음전하는 이들도 있다. 모 교회에 남아있는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동역자 그룹을 조성하여 복음 전파와 소그룹 목회사역을 시작했고, 다른 지역으로 파견한 선교 동역자를 지원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몇몇 연장자들을 통하여 다른 지역의 제자훈련 과정을 소개받아 적극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그 지역의 목양 구조에 속한 것은 아니다. 또다른 목자들의 추천을 통하여 적합한 외부의 목자를 초청해 함께 나누기도 했다.
도시형 교회의 책임 동역자 그룹의 평균 연령은 30세 전후이다. 이들은 자기의 목양 방식과 보급 루트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과거를 회고해보면 이들이 때때로 휘청거리며 자기 스스로의 길을 모색해 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일하셨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방식은 모두 달랐다. 그들 앞에는 아직도 직면해야 할 많은 어려움이 남아있다. 신앙을 삶 가운데 적용하고 실천하는 문제, 결혼과 배우자 선택, 이혼, 직업, 자녀교육 등 현재 그들은 인생에서 직면하는 현실적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다. 영적인 선배와 스승의 가르침이 없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해외의 도움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중국과 해외의 상황이 달라서, 이론만 있고 실천하기도 어려운 가르침도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숱한 어려움이 있지만, 동시에 그에 따르는 은혜도 풍성하다. 이들은 어려움 가운데서 점차 자신들에게 적합한 길을 모색하면서 기쁨을 누리고 있다.
보수형 교회
이들은 외부와 접촉이 잦고 자문을 받기 쉬운 지역적 조건을 갖고 있지만, 교회들은 보수적이고 엄격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보수적인 교회 환경에서 성장한 청년들은 윤리, 도덕을 주시하고 규율을 지킨다. 그들은 대개 3, 4대 기독교인으로, 성경과 생활에 관하여 아버지 세대들의 가르침을 계승하였고, 아울러 문화혁명 시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경험하였기에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청년들에 대한 연장자들의 훈련방식은 비교적 주관적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강조하지만, 성경 내용의 배경과 그 구절이 쓰여졌던 당시의 의미에 대해서는 경시한다. 예를 들어 “술 취하지 말라”라는 말씀에 대해, 그들은 청년들에게 절대 술을 마실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렇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들 선배들이 굳게 지켜온 아름다운 믿음의 간증이 청년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년들은 때로는 선배들을 따라 농촌에 가서 학습을 하기도 한다. 청년들이 섬기기를 원한다면 언제든지 섬길 기회를 준다.
정치 압박을 받을 때, 청년들이 영향을 받지 않고 공부와 사역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선배 동역자들은 스스로 책임을 떠맡곤 했다. 그러나 경제 개방의 충격으로 청년들은 더 고된 신앙의 시험에 맞닥뜨리고 있다. 과거에는 ‘반드시 주를 위해 고난받는다’.는 가르침으로 외부의 핍박에 굳건히 맞설 수 있었고, 이단의 침입도 그들의 믿음을 흔들지 못하였다. 뱀처럼 지혜로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 풍요로운 생활이 도리어 그들의 믿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중국교회의 일반 현상이다.
내가 만났던 교회 연장자들은 주님 앞에서 간절히 청년들을 위해 기도했고, 주님은 이 기도에 응답하사 해외의 목자들을 예비하여 청년사역자들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도록 하셨다. 원래의 든든한 기초 위에서 함께 교제하고 스스로 경험을 쌓으면서 이들은 점점 강인해졌다. 현재는 30세 전후의 청년 동역자들이 목양 사역을 책임지고 있다. 이들은 일주일에 적어도 5~8번의 집회를 인도한다. 청년들이 이렇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도, 또 농촌에 내려가 농촌교회를 도울 수 있게 된 것도, 교회가 청년사역자들을 훈련에 참가하도록 하여 여러 교육과정을 완성시켰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개척형 교회
이 교회는 교회 개척에 사명 있는 형제자매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한 마음으로 모여 복음을 전파하며, 비전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타향살이도 감수한다. 그리고 10년 이상 오랜 시간의 노력으로 결국 그 열매를 볼 수 있었다. 개척형 교회가 강조하는 것은 지상명령의 완성이다.
18세 전후의 많은 청년들이 부르심을 받은 뒤, 책임 사역자에서 기독교의 진리와 제자훈련 등 약 3개월 과정의 훈련과 수업을 이수한다. 그리고 2인 1조로 조직하여 오지 또는 복음의 필요가 있는 곳으로 파송된다. 이들은 약간의 여비만을 가지고 가며 오직 믿음으로 사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여행 중에 사람들로부터 숙식을 제공받기도 한다. 그들은 각지 교회를 방문하고, 교회와 교회 간의 연계작업을 한다. 파견된 동역자들은 대부분 젊은이들로, 주로 현지 교회의 어린이∙청소년 사역 등을 지원한다. 일정 기간의 사역이 끝나면 모 교회로 돌아와서 사역보고를 한다. 만약 사역 중에 기타 동역자들의 지원이 더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현지 교회의 초청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다시 사역을 배치한다.
이들 청년사역자들의 특징은 고된 일을 참고 이겨내며,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강한 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늘 “아니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10:37)”의 말씀을 강조한다. 그들은 교회의 필요를 우선 고려한다. 부부가 같은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라 할지라도, 어떤 때는 각기 다른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반년 이상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때 자녀들이 있다면 가족이나 다른 자매에게 맡겨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 사실 이런 모습은 해외 교회들의 성도들이나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은 교회 전체를 이렇게 사역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봉사의 열매가 풍성한 것을 볼 때, 부부와 자녀관계 등 가정의 도리에 대해 권면하려는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할 말이 없게 한다. 단지 그들의 열정적인 헌신에 감동하여, 하나님께서 이들의 사역을 친히 인도하시고 보살피길 원할 뿐이다.
내가 만났던 청년사역자들은 십 년 동안 수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를 건축하였고, 파견된 지역 교회의 훈련센터 건립과 목회 시스템의 구성을 도왔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현지교회 지도자의 권위에 순종한다. 몇 명은 산골마을에 들어가 기독교인을 찾은 뒤, 그들을 도와 교회를 세우고, 사역단체를 조직하며 훈련하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한다. 이와 같이 해서 3, 4년이면 기독교인 수는 천 단위로 증가한다. 그들의 흘리는 땀과 발자취가 가져온 생명의 증거는 현지교회를 격려하기 충분했다. 이 청년들은 마치 초대교회의 사도들처럼 도처에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고 있다.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28:19).”
중국을 사랑하는 마음
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에 이는 수많은 감동들을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근 십 년 동안 나는 그들과 함께 생명의 성장과 섬김의 기쁨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주님께서 각 지역에서 얼마나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보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있음을 느낀다. 하나님께 부름받은 자들이 주님을 섬기고,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봉사케 하는 기쁨도 맛보았다. 한 편의 찬송가가 내 귓가에 들려온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중국을 사랑하는 하나의 마음으로 응결되었고, 마음 마음을 합하여 복음 전파에 힘을 쏟는다. 중국을 사랑하시고,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곳 저곳에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복음 전파의 불길이 마음속에서 타오른다. 밤이 맞도록 복음을 전파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저 어두운 초가집에 불 하나를 밝히고, 56개 민족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자. 진실한 중국인의 마음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동포를 사랑하며,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사랑하자.”
이 찬양 가사는, 미래 중국교회의 후계자들이 굳센 의지와 능력으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비록 그들이 인간적인 지식과 학식 면에서는 해외 교회를 따라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미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성실히 준행하였다. 그래서 인간의 지식과 학식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경험과 성과를 눈 앞에 보고 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1:17) 주님께서는 인간적인 지식의 양보다 그 내면의 영적 생명의 헌신과 완전한 순종을 더욱 중히 여기신다. 사역자들의 영성은 지식보다 훨씬 중요하며, 사역자들이 주님의 마음에 합할 때 그 사역의 효과는 가늠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중국 교회에 커다란 능력과 힘을 베푸사, 새로운 시대에 주를 위해 빛을 발하고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이 젊은 후계자들이 주님의 뜻에 합한 자로 자신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께 순종함으로 주님의 꼭 필요한 종이 되길 기도한다.
주:
1. 92년 여름 필자는 그들의 기도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10여 명이 작은 방에 모여 함께 무릎을 꿇었다. 찬양으로 주님을 경배하며 말씀을 나눈 후, 모든 사람이 각자의 기도제목을 내놓고 기도하였다. 또 이들은 중국과 해외 교회, 국제 정세를 위해서 기도했다. 2시간 반의 기도회가 끝난 후에도 형제 자매들은 여전히 남아서 함께 교제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장면은 필자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오늘날 그들의 봉사의 열매와 성장을 보면서, 비로소 교회의 부흥이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느꼈다.
니엔탕 | 중국사역자
출처 | “事奉中的傳承 ”,「展望中華」3기, 福音證主協會
번역 | 김혜경∙자원봉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