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필자가 접하고 있는 몇몇 지역교회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에 모든 지역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역 교회마다 그 상황은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필자 주-
중국 동북지역 교회들은 화남, 화중 지역에 비해 낙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정교회의 경우는 역사가 오래된 교회들이 침체해 가는 반면 5~6년 사이에 새로이 형성된 교회들은 부흥에 부흥을 더해가고 있다. 이 부흥의 배후에는, 영혼 구원의 열정으로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수많은 성도들이 있다. 그러나 가정교회들의 영적 흐름은 지역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보안을 고려 하다 보니 각 교회들이 쉽게 하나될 수 없는 약점을 노출하고 있기도 하다. 각 지역 중심교회의 역할이 매우 크고 중요한데, 활발한 중심교회¹들 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지역과 민족을 넘어선 선교의 영역까지 확대를 꾀하는가 하면, 침체에 빠진 지역교회들은 현상 유지조차 힘겨워하며 처소교회 수와 성도 수가 감소하는 등 침체의 모습을 보인다. 특히 농촌 삼자교회의 중심교회²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필자가 섬기고 있는 지역의 교회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것은 대게 지도자의 영적 성숙도와 비례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목회자 부족 현상
중국 교회 내 목회자의 부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상황이지만, 이 현상들은 보기보다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동북지역 교회에서도 보편적이다. 삼자교회 조차 목회자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농촌 삼자교회에서는 거의 목회자를 찾아볼 수 없고, 장로들이 중심교회를 이끄는 모습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시 단위의 교회에서나 겨우 한 두 명 목회자를 찾아볼 수 있다. 도시 교회에서도 한 두 명의 목회자들이 수천 명의 성도들을 담당하고 있어 목양이라는 말은 사실상 실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 교회의 수많은 성도들, 그러나 그들을 돌볼 목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삼자교회가 이러니 가정교회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평신도 사역자들이 성령의 역사만을 의지해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영적으로 성숙한 목회자(지도자)는 하루 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신학교육의 부재와 목회자 부재의 커다란 공백들 속에서 이 지역 교회들의 문제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교육 받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형성되어진 그들의 사고 가운데 교육의 역할을 부인하는 모습 또한 기독교 역사의 한 현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장기적인 안목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문제시되고 있다. 1개월 또는 6개월의 단기교육에 길들여져 있는 이들은 3,4년의 장기적 교육을 불필요하게 여기는가 하면 심지어는 시간 낭비로 생각하기도 하다. 단기간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더욱 답답한 것은 선한 목자의 심정을 가진 목회자로 양성되어지기보다는 명설교자로서의 양성을 중요시하는 현상이다.
경제적인 부담 또한 그들의 교육에 대한 열망을 막는 원인이다. 대부분의 농촌교회들이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사역자들의 생활고는 교육뿐만 아니라 사역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농촌에서의 기독교의 위치가 매우 낮고 핍박받는 위치이다 보니, 가족들에게 핍박을 받는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경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없어 일과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역에도 온전히 전념할 수 없으므로 3~4년의 교육기간은 길게 느껴지고 실제로도 어려운 현실이라 하겠다.
신학 교육 부재로 인한 문제점들
신학적인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평신도 사역 자들의 목양활동 가운데 가장 쉽게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 비서경적인 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 역시 성경적으로 활동하기를 원하고 가르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성경적인지를 알지 못한다. 많은 문제들이 닥쳐올 때마다 이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고 또 해결해 가지만, 성경에 근거하지 못할 때가 많아 교회들 상호 간에 이 문제로 인해 서로 분열하고 비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성경의 해석이나 적용에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경향이 강하고, 서로의 주장이 다를 때에는 서로 교제하기를 꺼리고 심하게는 이단으로 몰기까지 한다.
완전하지 못한 신학적인 체계에서 성경을 해석하다 보니 성경해석들이 뒤죽박죽인 경우도 많다. 일부 신학적 주장만을 받아들여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많은 이단들이 횡행하고 있지만, 이들은 무엇이 이단인지조차 구별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단사설에 미혹³되는 교회와 성도들이 많다. 이렇게 건전한 신학의 부재는 교회의 건강한 성장과 교회의 일치에 많은 장애를 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이들을 가르칠 교육기관, 시설들의 부족과 더불어 이들을 교육할 신실하고 복음적인 교수진의 부족, 그리고 이들의 학습을 도울 건전하고 복음적인 신학서적 및 신앙서적의 부족에 기인하기도 한다. 필자가 사역하는 지역에는 삼자에서 운영하는 2곳의 신학기관이 있다. 그러나 3년마다 한 차례 모집하고 있고 교육환경⁴이 불충분하며, 그나마 이곳에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추천받기도 쉽지 않다. 더불어 이들이 부담해야 할 학비 등 많은 경비는 경제적인 부담으로 지워져 농촌의 지원자들이 지원하고자 하지만 결국은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도 상황
도시와 농촌교회, 그리고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흐름이 다르게 나타난다. 지정된 장소 외에 서의 종교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삼자 소속의 도시교회 성도들의 증가는, 가정교회를 통해 전도되어진 성도들로 이루어진 교회들을 회유를 통해 삼자교회에 가입케 하는 경우와 도시민 스스로 사회의 격변 속에서 심적, 영적인 갈급함 속에서 교회를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도시교회 안에서의 가정교회의 역할은 아주 미미하다. 도시 안에서의 핍박은 농촌지역에 비해 직접적이라 할 수 있고 대단위의 모임을 가지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들 가운데 형성된 작은 모임들이 늘어가고 있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들이 점차 생겨나면서 학원 선교의 가능성도 보여지고 있다.
농촌의 삼자교회들은 도시지역 교회의 모습과 별다르지 안다. 전도에 소극적이다 보니 점차 교회들이 침체해가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정교회들을 삼자교회에 가입하도록 회유와 핍박 등의 수단을 동원해 강요하고 있다. 이에 비해 가정교회들은 주님의 재림의 소망 가운데 열심 있는 전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회가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 전도팀을 파송하고 전도하는 일에 목숨을 다하는 전도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열차 안에서, 화장터에서, 길거리에서 생명을 걸고 전도하는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 지역의 중심교회에서는 긴 겨울철의 농한기(11월~3월)가 되면 전도팀을 구성해 전도를 하는데 보통 한차례의 전도 여행으로 약 2,000~3,000명의 열매를 결실한다고 한다. 이들은 중심교회에서 차를 타고 5~10시간의 위치한 지역까지 전도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농한기에 농촌의 가정교회들은 한편으로는 전도에 힘을 쓰고, 한편으로는 사역자들의 훈련에 힘쓴다. 자체 또는 외부에서 교사들을 초청하여 길게는 1주 내지 2주간의 교육을 통해 사역자들을 훈련하고, 사역자들의 고충과 사역지의 문제들을 토론하고 함께 기도하며 해결하기도 한다. 중심교회를 통해서 영적인 부분들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부분과 신앙서적 등을 공급받는데, 중심교회의 재정 자립도는 극히 미약하여 농번기 등의 노동을 할 수 있는 시기에는 사역자들이 나가 노동을 하고 그 대가들을 기꺼이 중심교회에 헌금하여 교회의 재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전도로 형성되어진 교회들이 중심교회의 지원을 받아 성장하는가 하면, 사역자의 부족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사역자들이 관리할 수 없는 교회(처소)들은 자연스럽게 소멸되기도 하고 이단들의 침투로 인해 이단화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글을 마치면서
중국 교회의 역사는 한국 교회에 비해 길다. 중국 교회는 엄청난 고난과 희생 속에서 자라나는 야생화와 같다. 한국 교회의 중국 선교는 공산화 이후 단절되었다가 중국의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한중수교 이후 최근 10여 년 사이에 열풍처럼 불어 닥쳤다. 그러나 한국인선교사에 의한 중국 선교는 이제 겨우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 교회는 많은 일꾼들을 부르고 있는데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일꾼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특별히 중국 농촌의 가정교회와 협력하여 사역자들을 양육하는 사역의 중요성은 더 이상 말할 나위 없다.
전도의 열정 속에서 급속하게 양적 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 교회들, 그러나 신학적인 입장이 정리되지 못한 많은 교회들이 극단화의 위험 속에 있고, 실제로 일부는 극단화 하고 있으며 심각하게는 이단화하고 있다. 엄청난 고난과 핍박,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자라난 교회들이 성경적이고 복음적으로 성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건전하고 성숙한 목회자들을 배양하여 이들로 하여금 교회를 이끌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와의 협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중국에서 서양의 선교사들이 인종적, 문화적 이질성으로 인해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인종적 동질성과 함께 복음적인 신앙과 신학을 갖추고 있는 한국의 교회와 선교사들이 이룰 수 있다. 한국인선교사들이 언어적 장애를 극복하게 되면 많은 사역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 중국 교회는 한국 교회를 향해 오라고 손짓한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
※ 주(註)
1. 열심히 복음선교 활동: 삼자교회는 현재로서는 주로 도시에만 있기 때문에 시골에는 자연히 가정 교회가 형성된다.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받은 젊은 지도자들이 스스로 가정교회를 목양하고 있다. 현재 5,000~8,000만의 신자로 비공식 집계되고 있다.
순회전도 활동: 수많은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각지를 순회하면서 약간은 비밀리에 그리고 자유롭게 전도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효과는 대단히 높다.
2. 정부의 공식통계발표(1995): 목사 1,050명/ 교인 약 2천 5백만 명/ 교회당 6,000개/ 신학교 13개
3. 이단들의 침투: 삼자교회는 정부관리 하에 있으므로 오히려 이단 침투가 적어졌다. 그러나 가정교회는 심령이 갈급하고 분별력이 부족하므로 쉽게 이단에 빠져들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4. 신학교육시설의 부족과 낙후성: 부족한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현재 1년, 2년, 4년의 신학교 21개가 개설되었다. 그러나 배우려는 사람은 많으나 여러가지 제한과 시설부족, 교수의 부족 등으로 인해 극히 일부분의 학생들만 공부하고 있다. 신학교 교수와 학생들의 참고서적이란 지극히 미미하여 4년간 교재만 베껴쓰다 졸업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신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각 지역에서 지도자로 열심히 활약하는 것을 볼 때 희망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의 감시와 통제로 인해 외부와의 접촉을 약간 꺼려한다.
주사랑 | 중국 동북지역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