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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4.20  통권 63호  필자 : 「중국교회」 제11호  |  조회 : 2477   프린트   이메일 
[중국교회를 찾아서]
산시(陝西)성 교회의 분투

척박한 토양 위의 비옥한 교회성장
산시(陝西)성은 거친 기후와 척박한 토양을 지닌 내륙지방이다. 그러나 최근 15년 동안 이 지역에서 교회의 성장은 비옥하기 그지없었다. 1949년 이전에는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교회를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교회가 생겨나고 있다.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성도들이 매우 가난하여 교회 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 교회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늘어나는 교회, 신도들
최근 몇 년간 많은 교회들이 농촌 지역에 세워졌다. 상당수의 성도들은 병의 치유를 통해서, 혹은 기독교인 친구들이나 이웃의 증거를 통해 기독교인이 되었다. 현재 산시성에는 약 35만명의 기독교인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 성을 통틀어 45명의 목사들이 있고, 170여명의 전도사들이 아직도 안수를 받지 못하고 있어, 세례를 받은 교인들의 비율은 극히 저조한 편이다. 600여 개 소의 교회당과 처소들이 산간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많은 성도들이 가장 가까운 교회나 처소에서 최소한 30km 이상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산간지역에서 30km는 주일예배만 참석하러 오는 데 하루 종일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 출석률은 주기적으로 변화가 있다. 농한기에는 대부분의 신도들이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지만, 파종기나 수확기에는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 하루를 바칠 수 있는 신도가 그리 많지 않다.

궁핍한 교회 재정과 목회자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교회 재정도 매우 궁핍하다. 교회 건물은 아주 단순하며, 황토고원으로 이루어진 성 북부지역에서는 동굴 속에 처소교회를 세우고 있다. 반면 여러 도시 교회들의 경우 교회 재산이 아직 환수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대다수 교회들이 재정적으로 목회자를 초빙할만한 형편이 되지 않으며, 평신도 사역자들은 성경 이외에는 어떠한 목회자료도 갖고 있지 않다. 기독교 서적은 너무 비싸고 그나마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일부 사역자들과 평신도들은 해외로부터 들려오는 복음방송을 통해 영적 훈련과 교육을 받고 있기도 하다.

훈련된 사역자의 부족과 이단의 확산
교회의 빠른 성장은 한편으로 훈련된 사역자의 부족과 이단의 확산이라는 큰 문제를 초래하였다. 안캉(安康)현과 한중(漢中)현에는 교회와 처소가 몇 되지 않으며, 그나마 다른 지역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한편 지역 기독교협회와 연관되지 않은 엄청난 수의 기독교인들이 농촌지역에 존재한다. 안캉현 종교국장은 이들이 모두 정부에 의해 ‘먼투후이(門徒會: 제자회)’라는 이단으로 분류된 불법단체이기 때문에 종교국 관할이 아니라 공안국 관할 사항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현지 사역자들은 이들 그룹이 골수 이단이라기보다는 성경의 부족과 목양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단순한 결과일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들 성도들은 자신을 새 그리스도라고 선언한 리산바오(李三保) 같은 이단 지도자들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는 것이 사역자들의 지적이다. 각 지역 평신도 사역자를 훈련하고 양성하기 위한 훈련반이 더욱 필요한 것이 현실이지만 지금까지 몇 차례 열리지 못하였다.

동굴 속의 헌신
황색 중국∙∙∙. 최근 산시성 북부 황토고원을 방문한 이후로 나는 그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를 마침내 알게 되었다. 2월의 쓸쓸한 아침,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누런빛을 띤 잿빛이었다. 침식작용으로 깊은 계곡을 낸 불모의 언덕들, 초록빛 풀 한 포기 없는 헐벗은 계단식 밭, 황토로 지은 집들, 가파른 언덕을 자른 동굴들은 집을 마련할 수 없는 이들에게 생활의 공간을 제공한다. 오후의 부드러운 햇살 아래 만물은 깊고 따뜻한 황색으로 빛을 낸다. 그러나 잿빛 하늘 아래의 경치는 그저 건조하고 사나워 보일 뿐, 협곡에서 불어오는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는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는다.
주일 아침, 우리는 농촌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자 잉왕(英旺) 지역으로 왔다.

잉왕은 이촨(宜川)현에 있는 촌으로 황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계곡 아래에는 지방정부, 학교, 진료소, 상점 등 소수의 석조건물이 있다. 대부분의 잉왕 사람들은 정부청사 뒷편의 가파른 계곡 안 동굴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정부건물 입구에서 차에서 내려 걸음마다 피어나는 노란 먼지 구름과 함께 가파른 언덕을 올라갔다. 우리의 접근은 곧 알려지게 되었고, 곧 한 무리의 마을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였다. 뒤이어 검은색 모직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쓴 한 남자가 언덕을 달려 내려왔다. 그가 바로 한창(韓倉)으로 그 아내 천치우쥐(陳秋菊)와 함께 잉왕 처소교회 관리를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동굴 입구 위의 커다란 붉은 십자가가 이곳이 우리의 목적지임을 알려주었다. 이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앞의 큰 마당과 함께 네 줄로 이어진 동굴 교회는 이 지역의 다른 집들과 별로 다르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밖에 버려져 이미 말라빠지고 헐벗은, 그러나 아직 화려한 종이장미가 달려있는 작은 성탄목도 역시 이 지역에서 낯익은 풍경은 아니다.

아직 10시도 채 안되었고 예배는 12시 전에는 시작하지 않을텐데도 이미 성도들이 모여있었다. 이 동굴은 불과 몇 달 전에 구입하였기 때문에, 아직 내부수리에 많은 손이 필요하였다. 오직 예배실 동굴만이 제대로 정리되었다. 놀랍게도 널찍한 예배당에는 원통형의 천장과 높이 세운 강대상 위로 백열등이 매달려 있고, 바닥에는 등받이가 없는 좁고 긴 목재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작은 난로는 이미 불이 붙어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우리는 그 옆의 다른 동굴들로 안내되었다. 거기에는 탁자와 장의자들이 있었고 흙 화로와 약간의 주방기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간은 방석으로 덮인 거대한 온돌이 차지하고 있었다. 동굴 안에서 적어도 20명은 너끈히 잠잘 수 있어 보였다. 한창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가끔씩 하루 종일 걸릴 때가 있습니다. 많은 신도들이 밤에 먼 길을 달려 집에 가야 하기 때문에 아예 침구를 가져와 여기서 잠을 잡니다.”
잉왕 처소는 새로이 형성되었다. “우리는 4년 전에 20명의 여성들로 시작했습니다.” 천치우쥐가 말했다. “1년 후 회중은 70명으로 불어났고 지금은 약 180명입니다.’

잉왕은 너무나 가난한 지역이어서 주민들이 생계를 꾸려가기도 힘든 곳이다. 동굴을 사기 위해 780위안(元) 모금을 시작했을 때 그 자체로도 이미 거대한 계획이었고 1년 이상 걸려야 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현금 수입이 적었으므로 자신들이 기르는 염소를 교회에 기부했다. 몇 년 간 염소 털과 분뇨에서 생긴 수익은 교회로 돌아갈 것이다. 염소를 도살하게 되면 그 고기와 가죽을 판 수익금은 교회로 헌금될 것이다.
우리가 뜨거운 찻잔으로 언 손을 녹여가며 얘기하는 동안 회중들은 계속하여 모여들고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의 남녀가 삼삼오오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중에는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붉은 뺨의 어린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 지역에서 예배는 대개 정오에 시작합니다.” 천치우뒤가 설명하다. “많은 이들이 먼 길을 걸어 이곳에 오기 때문이지요 어떤 이들은 15km 내지 20km 떨어진 곳에서 온답니다.” 인구가 희박한 산시성 북부에 기독교인들은 널리 흩어져있다. 이촨현 대부분의 마을마다 기독교인이 있는 반면, 처소는 13개 촌에 하나 꼴로 있다.

처소에 거의 사람들이 모이자 찬송이 시작되었다. 고원지대에서 찬송가는 그리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기존의 찬송가에 없는 회중 사이에서 구전되는 복음성가를 더 좋아한다. 새 복음성가를 연습하는 동안 더 많은 신도들이 처소에 모여들었다. 정오가 되자 동굴은 120여 명의 신도들로 가득 차 알맞게 따뜻해졌다. 늦게 온 이들은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고, 동굴 밖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격자무늬 창을 통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엄마의 팔에 안긴 어린 아기들을 제외한 어린이들은 밖의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노는 소리가 커질 때마다 누군가 조용히 하라고 타이른다. 동굴 안에서는 신도들이 열중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자신들의 성경을 가져왔으나 성경을 따라 읽기에는 시력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평신도 설교자 시에진화
잉왕 처소의 설교자는 젊은 농민여성 시에진화(謝鍗花)이다. 검게 그을린 피부 때문에 그녀는 실제 나이인 33세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인다. 그녀의 설교 ‘신앙 안에서 성장하자’는 매우 잘 구상되고 구체적이며 재치 넘치는 철저히 성경적인 설교였다. 나는 그 풍부한 신학적 통찰에 놀랐다. 특별히 교회 지도자들이 종종 농촌 신도들의 ‘낮은 신앙 자질’에 관해 불만스러워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예배 후 나는 동굴 옆의 매우 따뜻한 온돌에 앉아 그녀의 얘기를 들었다. 시엔진화는 겨우 3년 전에 기독교인이 되었다. “이곳의 많은 성도들은 병이 고침 받은 이후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런 동기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재촉하였습니다. 그래서 믿기 시작했고 서서히 저의 신앙은 자랐습니다.” 시에는 마침내 1996년에 세례를 받았다.

얼마 후 그녀에게 놀라운 일이 생겼는데, 그것은 이곳에서 몇 시간 거리에 있는 통촨(銅川)현에서 열린 평신도 훈련반에 보낼 참가자를 선택할 때 회중들이 그녀를 추천한 것이다. “아무도 갈 사람이 없었어요.”라며 시에는 그 때 상황을 설명한다. “지식이 적고 신앙이 깊지도 않고 또 가정을 잘 꾸리지도 못하지만 결국에는 제가 가게 되었지요. 그 이유는 제가 이 교회를 사랑하고 또 우리들은 훈련된 일꾼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에요.” 시에는 밭 일 때문에 도중에 집에 돌아와야 했고, 결국 전 과정을 마치지는 못했다. 전부 합쳐 그녀는 가까스로 50일의 훈련을 마쳤다. 그녀는 돌아온 후 공식적으로 교회의 설교자로 임명되었다.

시에진화의 삶은 결코 한가하지 않다. 세 명의 아이들, 연로하신 시부모 등 여섯 명의 식구가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농사는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조금 수확하기 위해서도 많은 씨를 뿌려야 하죠!” 그녀는 처소 부근에 살지 않는다. 처소에 오려면 자전거로 1시간의 산길을 달리고 또 15km를 걸어야 한다. 파종 때나 추수 때가 되면 겨우 15명에서 20명 안팎의 교인이 교회에 나오지만, 시에는 설교자로서 이런 장거리 여행을 매주일 해야 한다. 이러한 사역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떤 월급이나 보상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시에는 이런 처소일수록 훈련된 목회자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안다. “우리 교회가 그동안 양적으로는 많이 성장했지만, 많은 이들이 신앙적인 지식과 이해가 부족합니다. 그 중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도 있는데, 성경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말씀 듣는 일에 의존하죠. 저의 설교를 통해 말씀 듣는 일에 아주 열심이고 또 대단히 기뻐합니다.”

시에는 그녀의 화제에 열기를 더해갔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다음 훈련 과정에 참석하여 더 이상 그녀만이 설교자가 아닐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그녀가 내게 부탁했다. “우리는 아직 매우 연약하답니다. 우리에겐 주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이야기하는 동안 불 위에서 음식이 준비되고 있었다. 우리는 둘러앉아 간단한 그러나 그들의 정성이 들어가 풍성한 잔치처럼 보이는 식사를 했다. 그들 대다수는 일년 중 겨우 몇 번 고기와 달걀을 먹을 수 있다. 그들의 겨울 음식은 국수와 찐빵, 무와 염장채소 뿐이다.

우리는 이제 떠나야 한다.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함께 내려가는 많은 신도들로 인한 먼지구름에 둘러싸여 계곡을 내려간다. 우리의 짧은 방문이 아마도 그들에겐 큰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헌신과 희생정신 앞에서 초라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들의 이해와 지식은 크지 않을지언정, 그들의 사랑은 그 황량한 땅을 따뜻하게 환히 밝혀주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었다.


※ 이 글에 나오는 교회 관련 통계는 공인 삼자교회의 통계임을 밝힙니다. –편집자 주-


출처 | 「중국교회」 제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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