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전파의 제한이 따르는 나라 중국
중국은 외국인의 선교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나라이다.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사실상 종교의 자유가 제한받고 있으며, 외국인은 선교사의 신분으로 중국에 들어올 수 없다.
따라서 선교사는 그 신분에서부터 ‘위장’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나라의 종교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국 선교사가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사역하는 거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의 법을 어기는 행위이므로 옳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부활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대 제사장, 사두개인 등 당시 권력을 가진 세력들은 전도를 금지하여 이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 때 두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거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행 4:19~20) 예수님도 우리 모두에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지상명령을 주셨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 세상 권세, 법보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한다고 해서 중국의 법을 무시하는 태도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물론 민주적 사회질서에 관한 한 중국이 매우 낙후되어 있고 부조리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예수님도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죄악이 만연한 이 땅에서 살아가시면서 많은 고난과 수모를 당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이 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원칙과 법을 따르셨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은 것만은 철저히 배격하셨다. 우리 역시 성경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이 나라의 법을 존중하며 지켜야 할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12:2) 라는 말씀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필자가 지금까지 중국에서 생활하고 사역하면서 경험한 몇 가지 예를 들어 이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인내하고 두드리라
중국과 한국의 국교수림 후 가족을 동반하고 처음 거주한 도시가 O시이다. 당시 외국인은 호텔이나 대학 내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에서만 거주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방 한 칸에 부엌도 없는 기숙사에서 세 식구가 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1년 동안 불편함을 참고 살다가, 결국 O시 공안국 외사처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한 가족이 좁은 기숙사에서 사는 것은 자녀교육 문제 등 매우 불편하고 공부도 하기 힘들다. 한·주우교가 되었으니 앞으로 가족과 함께 공부하러 중국에 오는 한국인들이 많은 텐데, 숙소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찬란한 중국 문화와 역사를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겠는가? 공안에는 치안문제를 거론하면서 학교 밖 거주를 반대하는데, 이 나라에는 그렇게 모두 다 위험하고 나쁜 사람만 있는가?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더라. ···” 등등 학교 밖 거주를 허락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얼마 후 담당 공안원이 찾아왔다. 중국 법을 지키려고 하는 나의 태도가 고맙다며 아직 법이 없어서 허가증은 줄 수 없지만 묵인해줄 테니 나가서 살라고 하였다. 그 후 유학생 신분으로 아파트에서 살도록 정식 허가를 받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그 때까지 날마다 기도하며 “주님, 공안국 담당자를 감동시켜 주셔서 꼭 허가도장을 찍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국교수립 전 한국 외무부에 비자를 신청하고 기다릴 때도 동일하게 기도했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O시에서 가족을 동반한 외국인 육학생의 학교 밖 거주가 완전히 자유화되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도저도 안 해보고 먼저 법을 어긴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법을 어기지 않고도 기도하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교육사역을 하는 필자가 중국에 학원을 세우기까지의 과정에서도 여러 갈등이 있었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 아니므로 주님께서 나의 목표와 계획을 선히 여기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어떠한 상황이 닥친다 할지라도 오직 주님만 신뢰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사역 초반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편84:11)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살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이후부터 어려움을 주는 상황을 만날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인내로 싸워나갔다.
96년부터 중국 정부에 학원설립 허가신청을 했는데, 대리인을 내세우지 않고 거의 모든 과정에 직접 발로 뛰었다. 그러나 관공서를 찾아가 관리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늘 같은 태도로 일관했다. 허가해 줄 규정이 없다는 한마디로 무조건 나의 요구를 무시해버리는 그들의 속마음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각 기관마다 서로 책임을 미루고, 필요한 행정 처리는 해주지 않고 불법이니 벌금을 내야 한다고만 해다. 또 다른 기관을 소개받아 신천을 하면, 된다 안 된다 분명한 답을 주지 않았다. 마냥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는 과정에서 유혹도 많았다. “당신처럼 중국에서 오래 살았고 이곳 상황도 잘 아는 사람이 언제까지 그렇게 기다리기만 하겠는가? 사람 만나 식사라도 하면서 이곳의 방법대로 하면 쉽게 해결될 텐데···”라는 주위의 말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러나 계속 기다리고 준비하면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만약 뇌물을 주고 일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쉽고 빠르게 얻을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기도의 특권은 결코 누릴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원칙대로 살며 믿음의 기도를 통해 얻는 기쁨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이를 통해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로 하여금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4년 만에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개인학원 법인허가를 얻을 수 있었고, 지금은 비자도 해결되었다. 중국 정부와 일을 할 경우 시작할 때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만약‘뒷문’으로 거래를 하기 시작하면 끝가지 이 올무에 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와 같이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통해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간증을 할 수 있을까? 복음을 전한다는 미명하에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방법으로 하는 것을 당연시하면 안 될 것이다.
중국에서도 하나님의 원칙은 통한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몇 년 전 중국의 박물관이나 관광지에서 외국인의 입장료 가격은 중국인 가격보다 몇 배나 비쌌다. 열차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중국인이라고 속이고 들어가다가 발각되어 다시 표를 사거나 벌금을 내는 적도 많았고, 운 좋게(?)걸리지 않고 들어간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중국인은 다 도둑놈’이라고 욕하는 경우를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의 원칙은 부정직한 방법이 아닌 합법적이면서도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즉 중국인들과 직접 교섭하여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겪은 일을 나누고자 한다.
한국에서 온 팀을 인솔할 때의 일이다. 열차를 타고 오후 2시쯤 X역에 도착했다. 이튿날 오후 2시 열차로 다른 지역에 가야 하는데,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 표를 구할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한 번 나의 믿음을 점검하고 도전해 보기로 해다. 창구에 가서 내일 열차표 잉워(硬臥): 딱딱한 침대)로 16장을 달라고 하니, 5장 밖에 없으니 나머지는 잉쭈오(硬座:딱딱한 좌석)로 사라는 것이었다. 일단 표를 5장만 사고 열차에 올라가서 표를 살까도 생각했지만 불가능할 것 같아 다시 공손히 요청을 했더니 내일 아침 10시에 14번 창구로 와서 사라고 했다.
호텔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 근거도 없이 오라는데 과연 표를 구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호텔 여행사에 가봤지만 역시 표는 없었다. 어쨌거나 14번 창구밖에 는 믿을 곳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그 매표원의 말을 믿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이튿날 10시에 14번 창구에 갔더니 표가 없다며 30분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아차! 웃돈을 좀 얹어줄 걸···’ 마음속으로 후회도 되고 여러 가지 갈등이 생겼다. 그 때 다시 한 번 14번 창구 매표원을 신뢰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30분 후에 줄을 서서 창구 앞에 갔다. 몇 장이 필요하냐고 묻기에 16장이라고 했더니 다주는 것이 아닌가! 너무 고마워 돈을 조금 더 줄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포기하고 나오면서 약속을 지킨 그 매표원이 정말 아름다웠고 중국인 모두가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중국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어쩌면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가능한 일도 처음부터 어렵다고 생각하여 불법적인 행동을 먼저 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중국이 원래 그렇기 때문에 정직한 방법으로는 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정직한 자에게 분명히 길을 열어 주신다는 믿음으로 좀 더 인내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어떤 때는 불편한 거도 감당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야 한다. 내 계획을 포기할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죄인들에게 가까이 가시기 위해 죄인들과 같이 되셨지만, 예수님은 결코 범죄하지 않으셨다. 여기에 우리가 배울 사역의 원칙이 있다. 선교사는 한 사람의 사역자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의 순간마다 공의로운 하나님의 방법대로 정직하게 살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연약하여 때로는 실패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주님을 신뢰하고 최선을 다할 때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선하게 인도하실 것이다.
박화목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