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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20  통권 66호  필자 : 안정숙  |  조회 : 3745   프린트   이메일 
[중국선교사 행전]
존 네비우스 (Jone Nevius 1829~1893)
자립적인 중국 교회를 추구한

자립적인 교회 설립을 위한 선교 원리
존 네비우스는 1829년 3월 4일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오비드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16세 때 유니온 칼리지에 입학했으며, 그 후 장로교 모가가 되기 위해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853년 장로교 해외선교부에 지원한 그를, 선교부에서는 중국저장(浙江)성 닝보(寧疲) 주재 선교사로 임명하였다. 1854년 봄, 닝보에서 사역을 시작한 네비우스는 7년 뒤인 1861년에 산둥(山東)성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여기서 네비우스는 자신의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든 선교원리를 처음으로 소개했으나, 예전의 방법에 익숙해 있던 동료 선교사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비우스는 이 선교원리에 따라 사역을 시작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결과적으로 현저한 차이를 가져왔다. 그러자 비로소 다른 지역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네비우스가 산둥에서 이룬 사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의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네비우스는 말하기를 “중국의 선교사역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옛 방법’과 ‘새 방법’이라 부를 것이다. 그러나 둘 다 궁극적으로는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며 적극적인 현지 교회의 설립을 추구한다.”고 하였다. 목표는 동일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 서로 다르다는 것으로, 이러한 방법상의 차이가 선교에 있어 현저한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옛 방법’

옛 방법은 복음 전파와 함께 성도와 교회를 관리할 현지인을 유급 사역자로 고용하는 것이다. 교회 설립의 초기 단계에서는 현지 교회의 성장을 북돋우고 자극하기 위해 외국에서 지원을 받지만, 점차 외국으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받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당시 중국은 인구가 많고 생존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황 아래 놓여 있었다. 따라서 ‘돈이 많은 외국인(중국인의 눈에 비친 선교사)’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이른바 ‘쌀 신자(Rice Christian)'가 많았다. 즉 경제적으로 이익이 있을 때는 신자로서 행동하고, 그렇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는 기회주의적인 신자들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옛 방법은 이런 상황과 맞물려 여러 가지 문제들을 파생시켰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시 네비우스와 가깝게 지내던 중국인 네가정이 있었다. 그들은 신실한 신앙의 소유자들로, 자신이 속한 곳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이웃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현지 교회의 유급사역자로 고용된 후부터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을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기대한 만큼 사역도 유능하게 수행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관심과 대화의 주제는 지위나 보수로 바뀌며, 고용된 사람들은 보다 나은 자리로 옮기기를 시도한다. 한편 고용되지 못한 사람들은 고용된 사람들을 시기하고, 그들에 대한 불만을 갖기 시작한다.

 
또한 새신자를 사역자로 고용할 경우 그들은 여전히 옛 습관과 성숙하지 못한 성품이 남아있기 때문에 쉽게 교만해져서 이웃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 본래의 직업에 종사할 때는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던 일들을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태도로 수행하기도 한다. 유급 사역자들의 대다수가 사역을 할 때는 영적 도덕을 지키지만, 그 자리를 잃고 나면 곧 타락하여 교회를 떠나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네비우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위를 가졌을 때 그 지불되는 돈에 매달리는지 모른다. 내가 일한 지역에서 데리고 있던, 현명하고 모든 면에서 성실하다고 여겨진 많은 중국인들이 자신이 고용되지 않고 보수를 받을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세례도 받기 전에 등을 돌리고 떠나버렸다.”

 
초신자들은 유급 사역자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사람은 설교하고 보수를 받는데 왜 나는 받지 못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복음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돌보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사역을 사역자로 고용된 특정인들만이 하는 일로 여기게 된다. 한편, 현지인 신자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불신자들은 그가 돈을 바라는 동기 때문에 외국종교를 선전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선교사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지지자를 포섭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나아가 중국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사람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많은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 방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방법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단체와 교회는 선교사가 즉각적인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지만, 선교사는 언어문제로 인하여 당장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보수를 주고 현지인 사역자를 고용하면 곧바로 사역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본국의 교회나 선교단체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고, 선교사는 칭찬과 더불어 더 많은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당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옛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네비우스 역시 사역 초기 몇 년 간은 옛 방법의 바탕 위에서 일하였다.


 ‘새 방법’ - 네비우스 선교 원리

네비우스 선교원리는 외국의 돈으로 보수를 지급하는 현지인 사역자의 수를 최소화하는 대신, 처음부터 독립과 자기 의존의 원리를 교회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며 적극적인 현지인 교회의 설립이 가장 빨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네비우스가 항상 2명의 조사만 두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당시 동료 선교사였던 코벳목사는 22명의 조사와 20명의 교사를 두었다.- 네비우스가 고안한 선교원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새로운 지역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계획을 철저히 세워 각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순회하면서 호기심을 보이는 군중에게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빛을 찾는 구도자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공개적인 설교보다는 개인적인 대화에 초점을 맞추되, 선교사역이 어느 정도의 단계에 이르면 노방설교, 야외설교, 대규모 문서배포 등의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좋다.


 둘째,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고전 7:21)는 말씀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자는 원래대로 자신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대가를 바라지 말고 친구와 이웃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도록 가르친다. 그들의 증언은 이웃과 친구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종교인이 되기 위해 세상을 떠나 은거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최선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이와 동시에 계속해서 양육과 훈련을 받도록 해야 한다. 때가 되면 그들 가운데 자연스럽게 교회가 바라는 지도자가 나오게 될 것이다.

 
셋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가르치는 자인 동시에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자전(自傳)의 원리로서, 모든 신자들이 성경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며,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순회전도, 노방전도, 문서배부, 부흥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전파에 힘써야 함을 의미한다. 교회 안의 평신도 가운데서 선택된 한 사람이나 그 이상의 ‘영수(領袖)’-오늘날의 장로역할을 했던 교회의 지도자로, 조사를 도와 교회를 섬긴 사람- 들은 담당 선교사의 감독 하에 자발적으로 주일예배를 인도하고, 성도들의 영적성장을 위해 일해야 한다. 교회의 영수나 순회 사역자들에 대한 사례는 교회가 지불해야 하며, 외국에서 들어온 돈으로 보수를 받는 사역자를 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네비우스는 말하기를 “적은 교회가 회집되었을 때, 토착교회에서 적당한 인물을 찾아 목회자의 직책을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한 현지 그리스도인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생기도록 선교사들은 항상 기억하고 실천해야 한다. ···(중략)···교회가 독자적으로 설립되기 위해서 선교사는 특별히 자급하는 사역자들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선교사들의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현지인 신도들을 잘 가르치고 훈련하여, 그들이 외국선교사들보다 더 많이 일하며, 자신들의 사역을 책임 있게 발전시켜 나아가게 하는 일이 다.”라고 하였다.
 
넷째, 자립운영 즉 자급(自給)의 원리이다. 예배 장소나 교회 건물은 현지 신도의 자체적인 헌금으로 마련되어야 하며, 교회가 사역자와 순회 조사의 사례비를 책임져야 한다. 만약 교회에서 사례비를 지불할 능력이 안 될 경우에는 영수가 보수를 받지 않고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부유한 신도는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다섯째, 교인들을 가르칠 때는 성경해독(문맹퇴치), 성경암송, 정규적인 성경읽기, 자녀들에게 성경이야기 들려주기, 본문의 의미를 배우고 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기 등을 사용한다. 모든 가르침은 성경 본문 자체에 큰 역점을 두어야 하며,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성령에 의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여섯째, 모든 사역의 토대는 성경이다. 그러므로 각 교회에서 항상 진행되는 교육 외에 각 교회의 영수들을 수시로 선교기지에 모아 집중적인 성경공부를 실시하여 교인들을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할 것이다. 이들이 공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자비로 지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가난한 교인들을 위해서는 비용의 일부를 보조하는 것도 좋다.

 
일곱째, 교회의 대사명은 현지인들을 복음화 한 다음, 스스로 자신들의 문명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는데 있으므로 학교의 운영이 투자되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열매가 적기 때문에 선교사에게 복음만 전파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여덟째,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의 복음 전파자였던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사역을 보면 병자를 치료하고 죽은 자를 살리며 환난 당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가운데 복음이 선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행동 원리는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것이므로 의료 선교사와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아홉째, 선교사의 임무는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교회를 세우고, 현지인에 의한 목회를 육성하는 데 있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 외에 현지 교회에서 장기간 목회하는 것은 선교사 본연의 일이 아니다. 모든 신자들의 모임 및 교회 운영은 장차 현지 교회의 목사가 될, 무보수로 일하는 사역자의 지도하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치(自治)의 원리이다.

 
열째, 어떤 선교방법이든 유일하고도 강력한 힘은 그리스도의 임재와 성령의 역사를 끊임  없이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방법만 신뢰하고 그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바르고 성경적인 방법이라 할지라도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고 네비우스는 말하였다.

 
열한째, 선교사는 현지인의 영적 상태뿐만 아니라 현세적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네비우스는 자신의 사역지인 산둥성에서 중국인들의 경재발전을 위해 그 어느 선교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그는 가난한 중국인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외국에서 종자와 곡물, 나무, 곡식수확 기계 등을 가져와 과수재배를 시작하였다.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자 몇몇 중국인 친구들에게 과수원을 맡겨 경작하게 하고, 그것을 언제든지 매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을 단 한 푼도 챙기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그 과수원마저 중국인 동료에게 주었다.

한국 선교에 적용된 네비우스 원리

네비우스는 산둥에서 신학교 설립을 주장한 최초의 선교사이기도 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가르치는 자가 됨과 동시에 배우는 자가 됨으로써, 모든 교회로 하여금 공부하게 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1880년에 사용 가능한 모든 자료를 가지고 신학수업을 시작한 네비우스는, 1885년부터 1893년 사망하기까지 선교회소속의 유일한 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또한 문서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는, 선교방법과 중국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책들을 저술하였다. 1885년 상하이에서 발행되는 「The Christian Recorrder」에 자신의 선교원리와 방법에 관한 글을 최초로 발표하였으며, 1886년에는 「선교사역 방법」이라는 소책자로 재판하였다. 이 책은 1889년 「선교지 교회의 개척과 발전(Planting and development of missionary churches)」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소속 선교부에서 재판하였다. 네비우스의 선교이론과 방법에 관한 글들이 나오자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 및 선교지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네비우스의 문서사역은 이전까지 교회개척, 교육, 의료 등에만 국한되어 있던 선교사역 가운데 선교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를 포함시켰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존 네비우스의 선교원리는 한국에 온 서구선교사들의 사역과 초기 한국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60년 6월 네비우스 선교사 부부는 한국에서 갓 사역을 시작한 선교사들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젊은 선교사들과 2주 동안 함께 지내면서, 25년 중국선교 사역의 풍요로운 체험에 입각하여 선교사들의 문제를 연구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비우스가 강의한 선교 원리의 정신은 한국 선교사들에게 계승되었고, 1893년 〈장로교 정체체제를 채택하는 선교공의회〉에서 그의 선교방법을 채택함으로써, 한국교회는 네비우스 선교 방법의 터 위에서 자립, 자치, 자전하는 교회로 성장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찰스 클락(C. Clark)박사의 지적대로 한국교회가 선교 110년 만에 1천만 성도라는 기적의 성장을 한 데는 한국 교회 초기부터 따랐던 네비우스 선교 방법이 가장 핵심적인 이유일 것이다.


선교 원리의 뿌리를 성경에서 찾은 네비우스

네비우스는 항상 사람들에게 “나의 방법과 결과는 모두 하나님의 것이며 따라서 모든 영광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견해가 언제나 성경적이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선교에 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설명하는 자신의 방법이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의 글에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선교방법의 지침을 찾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한 흔적들이 깊이 배어 있었다.
 선교사로 헌신한 사람들은 네비우스 선교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속에서 진지하게 사역의 방향과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공급이 결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참고문헌>
『네비우스 선교방법』, 김남식 편, 성광문화사.
『한국교회와 선교』, 전호진 편비, 정음출판사.
『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선교정책』, 곽안련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정리/ 안정숙.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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