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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0  통권 72호  필자 : 김중하  |  조회 : 3171   프린트   이메일 
[소수민족을 알자]
뿌이(布依)족

인구
약 260만 명(1995년 통계)

분포
주로 꾸이저우(贵州)성에 90%정도가 살고 있다. 구체적인 지역으로는 치엔난뿌이족미아오족자치주(黔南布依族苗族自治州), 치엔시난뿌이족미아오족자치주(黔西南布依族苗族自治州)와 안순(安顺)지역, 쩐닝뿌이족미아오족자치현(镇宁布依族苗族自治县), 관링뿌이족미아오족자치현(关岭布依族苗族自治县), 쯔윈미아오족뿌이족자치현(紫云苗族布依族自治县)과 윈난(云南)성과 쓰촨(四川)성, 광시좡족자치구(广西壮族自治区)의 일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뿌이족은 원래 꾸이저우성의 토착 민족으로 윈난성과 쓰촨성, 그리고 광시 등지의 뿌이족은 모두 꾸이저우성으로부터 이주하였다.

뿌이족 분포의 특징은 한 곳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다른 민족들과 이웃해서 살면서도 주로 자기들끼리 마을을 형성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각 마을은 대부분 혈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뿌이족이 주로 분포하는 지역은 해발 400m~1,100m지역에 속하고 북위 24˚~27˚에 해당하는 곳이기 때문에 연평균 온도 16~19℃인 비교적 따뜻한 기후를 갖고 있다. 뿌이족은 산이 있고 물이 있는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데, 이들이 주거하는 경내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황과수(黄果树) 폭포(넓이 81.2m, 높이 66.8m)가 있다.

민족명의 유래
‘뿌이’는 자기들 스스로가 부르던 이름으로 한어 음역이다. 지역에 따라 ‘뿌야이(不雅伊)’ , ‘뿌종(佈仲)’ , ‘뿌라오(佈饶)’ , ‘뿌만(佈曼)’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한족을 포함한 다른 민족이 이들을 부르던 이름으로는 ‘쫑지아(仲家)’ , ‘수이후(水户)’ , ‘투볜(土边)’ , ‘투런(土人)’ 등이 있다. 그 중 ‘투볜’ , ‘투런’은 본토인이라는 의미이다. 뿌이족은 이 지역에 사는 한족들을 ‘커자(客家)’ , ‘커볜(客边)’ 등으로 불렀는데, 그 의미는 손님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으로 볼 때 뿌이족은 이 지역의 토착민족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1953년 꾸이저우성 민족사무위원회는 민족 대표와의 회의를 거쳐서 ‘뿌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하기로 결정했다.

언어와 문자
뿌이족은 인구가 많은 민족에 속하지만, 방언이 크게 차이나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 살아도 의사소통에 별 문제가 없다. 뿌이어는 인근에 사는 민족의 언어와 비슷한 부분도 있으나 자기만의 어음(语音)계통과 문법이 갖추어진 발전된 언어이다. 뿌이족은 인근의 한족이나 다른 민족과 교통할 때 한어(汉语)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자신들끼리 대화할 때는 대부분 뿌이어만 사용한다. 뿌이어는 지역에 따라 제일[치엔난: 黔南], 제이[치엔중: 黔中], 제삼[치엔시: 黔西]의 토속어로 나눈다.

뿌이족에겐 본래 민족 문자가 없었고, 한자를 빌어 뿌이어 발음으로 읽는 뿌이문자(布依字)를 만들어 사용했었다. 그러나 이 뿌이문자가 표현의 한계가 있어서 1956년 11월 정부는 ‘제일’ 토속어를 중심으로 라틴어 자모로 된 표음문자를 만들었다.

경제
농업이 주요 경제수단이며 주로 벼농사이다. 뿌이족이 살고 있는 지역은 기후가 좋아 벼농사가 끝나면 유채나 콩 등을 심어 소득을 올리고 있다. 강을 끼고 사는 사람들도 많아 어업도 생업의 주요부분이고, 산도 경제원의 일원이 된다. 예를 들어 약재, 버섯 등을 채집하고 사냥도 이들의 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뿌이족은 일에 있어서 분업화의 형태를 갖는다. 바쁘고 필요할 때에는 모든 일을 함께 돕지만 힘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은 남자가 주로 하고, 여자들은 힘이 적어도 할 수 있는 일과 손 기술이 필요한 일들을 주로 하는 분업형태를 한다.

건축
예부터 뿌이족은 산과 물이 있는 곳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런 지역의 지형이 건축과 관계가 있게 되었다. 뿌이족의 건축양식은 깐란식(干栏式), 띠아오지아오러우(吊脚楼), 핑팡(平房) 세 종류가 있다.

∙ 깐란식: 2층으로 집을 짓는데, 1층은 짐승을 키우거나 창고로 쓰고, 2층에 사람이 거주한다. 이런 구조로 짓는 이유는 이 지역이 습기가 많기 때문이고, 또한 들짐승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기 위해서이다.

∙ 띠아오지아오러우: 앞에서 볼 때는 이층이나 삼층으로 보이는데, 뒤에서는 일층으나 이층으로만 보이는 건축양식이다. 이런 모양이 되는 것은 비탈진 곳에서 산을 등지고 집을 짓기 때문이다.

∙ 핑팡: 이 건축 양식은 대부분이 목조건물인데, 내부구조는 깐란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
쌀과 옥수수가 주식이고, 찹쌀로 만든 떡이나 밥도 절기 때마다 즐겨 먹는다. 중국의 일부 소수민족들은 개고기는 먹는 것뿐만 아니라 때리는 것도 금하고 있는데, 뿌이족의 음식문화에 있어서 개고기는 매우 중요한 요리이다. 뿌이족들은 개고기를 즐겨 먹고 그 요리도 다양하며 특색이 있다. 그리고 시고 매운 음식과 술을 즐긴다.

복장
복장은 오랫동안 내려오면서 변화가 많았다. 각 시대마다 옷의 모양과 색의 변화가 있었는데, 특별히 여성들의 복장은 변화가 더욱 크다. 지금도 각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결혼 전과 결혼 후, 아이를 낳기 전과 아이를 낳은 후의 복장과 머리 모양이 각기 다르다. 남자는 지역이나 시대에 따른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일반적으로 앞부분이 정면에서 포개지는 짧은 저고리에 긴 바지(지역에 따라 통의 넓이가 다른 곳도 있다)를 입으며, 머리에는 검은색, 흰색, 남색 등의 두건을 쓴다.

결혼
일부일처제이다. 일찍부터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대부분 자기 민족 내에서 결혼한다. 동성(同姓)일 경우와 항렬(行列)이 같지 않으면 결혼이 허락되지 않았다. 항렬이 같지 않을 경우에 결혼을 하면 서로 부르는 호칭에서 문제가 야기되며, 서로의 항렬이 뒤죽박죽이 되어 가계에 질서가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혼을 금했던 것이다. 이런 습관은 뿌이족이 같은 민족끼리만 집거하며, 또 대부분 씨족사회를 형성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금은 다소 개방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거의 적용되고 있는 습관이다.

뿌이족의 결혼은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

1) 이친(议亲):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 알게 된 남녀가 중매인을 통해 결혼을 이야기하기 전에 팔자와 궁합을 따져서 문제가 없으면 양쪽 부모가 서로 만난다. 양쪽 부모가 서로 만나서 인사를 하고 나야 비로소 결혼을 말할 수 있다.

2) 슈오친(说亲): 뿌이족에게는 ‘하늘에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고, 땅에서는 중매인이 없으면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결혼 과정에서 이 중매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중매인은 덕망이 있고 존경받는 사람을 선택한다. 남자측 중매인은 ‘저우모(走媒)’, 여자측 중매인은 ‘쭈오모(坐媒)’라고 부르는데, 이는 남자측이 여자측을 찾아가서 결혼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남자측이 저우모에게 중매를 부탁하면 저우모는 여자의 집을 찾아가서 결혼을 말하는데, 처음 갈 때는 아무 선물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 여자의 집에 가서 결혼을 이야기할 때는 쭈오모와 함께 간다. 일반적으로 여자측에서는 첫 번 만남에서 쉽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 저우모가 쭈오모를 두 번, 세 번 방문해서 남자와 여자를 모두 칭찬할 때, 여자측에서 마음에 들면 쭈오모를 통해 동의를 표한다. 그러면 저우모는 이를 남자측에 전하고 다음에 갈 때는 술 한 병과 붉은 설탕 한 주머니를 선물로 가져간다. 이때 여자측에서는 저우모를 환대하고 가져온 술과 함께 밥을 지어 대접한다. 이렇게 하면 결혼이 성사된다. 그렇지만 여자측에서 저우모가 가져온 선물을 받지 않으면 결혼은 성사되지 않는다. 이렇게 양측의 부모가 모두 동의를 한 후에도 쭈오모는 가계(家系)의 어른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외삼촌 등을 찾아가서 의견을 듣고 최후의 결정을 내린다. 최후의 결정이 내려지면 남자측에서 길일을 선택해 저우모와 쭈오모를 모두 대동하여 선물을 들고 여자의 집을 찾아가 인사를 한다. 이때 선물은 여자측의 모든 가족에게 하고, 여자측의 모든 가족들은 한번씩 남자측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한다. 이런 과정을 끝낸 후에야 중매인들은 중매가 완전히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선포한다.3) 띵친(订亲): 띵친은 신랑측에서 날짜를 정해 신부측에 통보하여 준비하도록 한다. 날이 이르면 신랑측에서 20여 명이 붉은 종이로 마개를 감싼 술과 약간의 붉은 설탕을 들고 신부의 집을 찾아가는데, 이는 신부가족과 친척들에게 선물로 줄 것이다. 신랑측 사람들이 신부의 집에 이르면 먼저 한 청년에게 선물을 들고 문을 들어서게 한다. 그러면 신부측에서는 탁자를 문 앞에 놓아 길을 막는데, 이는 손님이 먼저 ‘커이먼거(开门歌: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하는 노래)’를 부르라는 것이다. 손님 중에 연장자가 카이먼거를 부른 후에 젊은이가 가져온 술로 노래를 부른 사람에게 한 잔을 따르고, 뒤이어 모든 손님들이 술을 한 잔씩 돌려 마시고 나면 주인은 앞에 놓아두었던 탁자를 치운다. 신부측은 신랑측 손님들을 맞아들여 예식을 진행한다. 먼저 조상들에게 제례를 하고 사회자가 “오늘부터 신부 ○○는 출가하여 △△집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고 선포한다. 그런 뒤에야 신랑측에서 가져온 선물을 건네고 신부측에서는 친척들이 돌아가면서 초대해 접대를 한다. 이틀동안 이렇게 진행하고 신랑측이 돌아갈 때 신부측에서는 예물을 준비해서 보낸다.

장례
뿌이족의 장례는 인근 민족의 영향 또는 지리적인 조건으로 인하여 각기 다른 모습들을 보이지만 대부분 토장(土葬)과 화장(火葬)을 행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지붕 위에 높게 장대를 세우고 흰 종이를 달아 초상이 났음을 알린다. 자녀들은 흰색의 상복을 입고 머리에도 흰 두건을 쓴다. 어떤 지역에서는 흰 종이에 ‘큰일(상)을 당했다(当大事)’라고 써서 문에 붙여 초상을 알리기도 한다. 시신은 더운 물로 씻시도 옷을 갈아 입힌다. 이때 남자의 경우는 면도도 시키고, 여자의 경우는 화장(化妆)도 시킨다. 그 이유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늘로 가라는 것이다. 옷을 갈아 입힌 후에 시신을 방 중앙에 놓고 흰 천으로 덮어놓는다. 집 안에 시신을 두는 동안 사자(死者)를 위한 제사를 드리고 3일 만에 발인을 한다. 앞에서 횃불을 들고, 폭죽을 터뜨리고, 지전(纸钱: 가짜 종이돈)을 뿌리며 나간다. 하관을 하고 봉을 만든 후에는 봉 위에 지전 등을 꽂아 놓고 자녀들이 절을 한다. 모든 순서가 끝나면 관을 들거나 봉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손을 깨끗하게 씻고 술로 행군 후에, 장작으로 모닥불을 피워 모든 사람들이 그 불을 뛰어 넘는다. 이렇게 하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과 모든 관계를 씻어내기 위한 것이다.

절기
일반적으로 중국 내의 민족들이 보편적으로 지키는 춘제(春节), 위엔샤오제(元宵节) 등의 절기를 동일하게 지키며, 다음과 같은 독특한 민족 절기들이 있다.

1) 랴오니엔제(了年节): 음력 1월 마지막 날에 지키는데, 성대하게 지냈던 춘제를 보내고 새로운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를 맞게 된다는 의미에서 갖는 절기이다. 이 절기 때는 일반적으로 닭을 잡고 제사를 지내며, 가족들이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보낸다.

2) 산웨산(三月三): 음력으로 3월 3일에 지키는 절기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칭밍제(清明节)와 함께 지킨다. 3일 간 쉬면서 각종 색을 넣어 만든 찹쌀밥을 먹으며 제사를 지내는데, 원난의 루오핑(罗平)에서는 마을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마을 우물을 깨끗하게 청소한 후 마을 사람들이 우물 옆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마을일과 자녀양육 문제 등을 의논한다. 어린이들은 물가에 함께 모여서 놀고, 젊은이들은 수영시합을 하거나 뚜이거(对歌)를 통해서 이성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정을 나눈다.

3) 쓰웨빠(四月八): 음력 4월 8일에 지키는 절기로서 어떤 지역에서는 ‘니우왕제(牛王节)’ , ‘무통제(牧童节)’ , ‘카이양제(开秧节)’라 부르기도 한다. 이날은 소를 쉬게 하며 검은 찹쌀로 밥을 지어 소에게 주기도 한다. 특별히 소를 목욕시켜 주며 소의 수고를 인정하고 고마움의 표시를 하는 날이다.

4) 리우웨리우(六月六): 음력 6월 6일에 지내며, 뿌이족이 지내는 절기 중 춘제 다음으로 가장 큰 절기로 민족 전통절기 중에서는 가장 큰 절기이다. 각 지역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부르는 이름도 ‘티엔왕제(天王节)’ , ‘롱왕제(龙王节)’ , ‘총왕제(虫王节)’ , ‘거제(歌节)’ 등 다양하다. 이 절기는 씨를 뿌리고 심고 하는 농사를 끝내고 잠시 쉬는 사이에 지내는 절기로서, 모든 곡식이 병충해 없이 잘 자라고 많은 수확이 있을 수 있도록 제사를 지낸다.

5) 창신제(尝新节): 첫 수확이 있은 뒤에 지내는데, 각 지역마다 기후 차이로 수확의 시기가 다르므로 절기를 지키는 시간도 다르다. 뿌이족의 창신제는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절기이다.

이밖에도 ‘차바이창(查白场)’ , ‘깐깐똥(赶干洞)’ 등의 절기가 있는데, 뿌이족은 거의 매달 절기가 있는 편이고 그 절기들을 즐기는 민족이다.

종교
만물에 흔히 있다고 믿으며 조상숭배, 다신(多神)숭배, 자연숭배 사상을 갖고 있다. 조상숭배는 뿌이족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모든 가정이 방안에 조상의 위패를 두고 있고, 이미 죽은 부모의 영패(灵牌)도 함께 두기도 한다. 도교와 불교 신자들도 있으며 매우 적은 수지만 천주교인, 기독교인들도 있다.

1875년 프랑스의 가톨릭 신부가 쩐닝(镇宁)에 교회를 세우고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안롱(安龙), 처헝(册亨), 왕모(望谟) 일대에도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지역에도 일찍부터 프랑스 신부가 들어와서 활동했고, 1907년에 처헝에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시작, 활발하게 전도활동을 전개하여 1943년에는 이 지역에만 8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가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
성경은 부분적으로 번역되어 있고, 소수의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라고는 하나 이 민족은 아직도 미전도 민족으로 남아 있다.

기도제목
∙ 뿌이족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단의 세력들이 성령의 역사로 무너지고 복음을 향한 문이 활짝 열리도록.
∙ 뿌이족을 입양하여 부모의 심정으로 날마다 이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며 섬길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이 일어나도록.
∙ 인근에 살고 있는 먀오족 교회가 비교적 부흥되고 있는데, 이 먀오족 교회가 뿌이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도록.


김중하/중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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