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6개월의 정착생활과 언어훈련
5년 전 가족과 함께 처음 중국 땅에 도착했을 때, 고국을 떠나 낯선 이곳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이 가득하였다. 우선은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오기 전에 중국어를 배워본 적은 있었지만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 있을만큼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 가정에게 지역을 안내해 주고 집을 구해준다거나, 심지어 물건을 사는 등 사소한 일에 도움을 줄 만한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아는 분의 소개로 미션 홈에 짐을 풀고, 약 3주에 걸쳐 셋집을 얻기 위해 아내와 함께 온 동네를 누비며 다니다가 결국 집을 구하였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6층 아파트의 꼭대기였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좋은 안식처로 여겨졌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정착할 집이 마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가 구한 그 집이 일반 셋집 중에 제일 비싼 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석회와 진흙이 섞인 수돗물을 그냥 마실 수 없었기에 매일 아침 무거운 식수를 양손에 한 통씩 사서 들고 6층까지 올라오는 일, 또 한여름 햇빛에 달궈진 옥상과 맞닿은 천장에서 내뿜는 찜통 같은 열기 등은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환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세 살이었던 둘째 아이는 실내온도가 10℃밖에 되지 않는 3,4개월의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페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영하 25~30℃를 오르내리는 혹한은 지나갔지만 난방이 되지 않는 봄철의 차가운 날씨 역시 만만치 않은 복병이었기 때문이다. 선배 선교사들의 말대로 정착을 위한 학습비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이처럼 고된 첫 6개월을 보낸 후, 우리는 값도 저렴하고 위치가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도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진행되는 언어연수 과정에 들어가 중국어를 공부하였다. 또 점심식사 후에는 현지인 가정교사를 통해 2시간 이상 언어학습에 전념하였다. 개인공부까지 포함해서 하루 평균 최소한 8시간 이상을 언어훈련에 투자하는 강행군 끝에 한 학기를 마친 후 내린 결론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중국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어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주셨다는 것이다. 비록 유창하지는 않지만 나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고, 계속 노력하면 중국인들에게 설교도 할 수 있는 그 날이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때가 되자 중국어로 성경공부를 진행하게 하셨고, 또 그렇게도 갈망하던 중국어 설교를 경험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다.
은혜 속에 시작된 말씀 사역
처음에는 언어를 배우는 2년 동안은 언어훈련 자체가 사역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날 즈음 말씀 사역에 대한 갈증이 생겼는데, 마침 한 조선족 교회로부터 성경공부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이겨내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언어훈련에 지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지겨운 언어훈련을 조금 쉬어가며 공부할 수 있고, 본래의 목적인 말씀사역을 할 수 있다는 핑계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결국 남은 1년을 참지 못하고, 이 유혹과 기회의 갈림길에서 나는 기회를 선택하였다. 매주 하루 두 시간씩 버스를 타고 그 교회에 가서 3시간 동안 제자훈련 교재를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었다.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선교사요 목사라는 신분을 드러낼 수 없었고, 학교에서는 늘 나이 많은 학생으로, 그리고 중국 교회에서는 평신도처럼 지내다가 1년 만에 모처럼 말씀을 전할 수 있다니 너무나 감격적이었다. 더욱이 감사한 일은 중국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말씀으로 맺어진 그 조선족 교회 지도자 중 몇 사람은 너무나 순수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마음이 완전히 열려 있는 헌신된 귀한 일꾼들이었다.
그 가운데 한 형제는 어머니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자신은 절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텼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불치의 피부병이 성도들의 기도로 한 순간에 낫는 것을 직접 체험한 후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했다. 그 형제와 만나서 교제할 때마다 나는 그가 나보다 더욱 큰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아주 사소한 일들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까지 온통 하나님 중심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 말씀을 학문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외에는 그 형제를 위해서 나는 별로 한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설교하시는 동안 기도하겠습니다”
중국어를 배운지 2년쯤 되었을 때 한 달에 세 차례정도 C지역의 한족교회를 방문했다. C지역은 비교적 멀어서 아침 일찍 출발하면 오후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곳에 가면 하루 종일 중국 사람과 얘기하며 같이 지낼 수 있는 것이 좋았고, 또 한 가지는 그 교회 성가대원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성가대원들은 물론 반주자도 오선악보를 읽을 줄 몰랐기 때문에(중국인들은 숫자로 기록된 악보를 사용함 – 편집자 주), 독보 시창을 할 수 있도록 기초를 가르쳐 주는 일이 우선 시급했다. 예전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던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중창단 활동을 했고, 기타를 치며 찬양인도를 한 경력도 있을만큼 음악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 교회에 갈 때마다 기타를 챙겼고, 그들을 만나 기초적인 음악 이론과 중국어 찬양을 가르쳐 줄 때는 말씀사역과는 다른 새로운 은혜를 누릴 수 있었다.
이 교회의 지도자인 W집사는 내가 빨리 중국어를 배워서 한족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나에게 설교를 요청했다. 사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는데, 이제 서너 살 된 어린아이의 언어실력으로 설교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다음에 하겠다고 하면서 여러 차례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되던 끝에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느 날 저녁집회에 참석했는데, 예배 시작 전에 W집사가 오늘 설교는 내가 할 것이라고 광고를 했다.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통역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당황하고 있는데, 그 지도자가 강대상 위에서 나를 보며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동안 우리 성도들 모두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라고 격려하는 것이 아닌가! 성도들이 기도하겠다는데 그래도 못하겠다고 하면 너무 믿음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설교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한글성경 한 권 달랑 들고 강대상으로 올라갔다.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캄캄했고, 어느새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정신을 차린 후에 기초적인 내 언어 수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풀어서(?) 전한 후에 시간을 보니 설교시간이 2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최소한 한 시간은 설교한 것 같았는데 말이다. 예배를 마친 후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성도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 날의 설교는 뜬구름 잡는 것 같이 내용이 뒤죽박죽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성도들이 한결같이 나를 격려하며 용기를 주었고, 가능성이 있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선교사가 언어훈련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동시에 성경공부를 인도하거나 설교를 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선교사 후보생들, 그리고 언어훈련을 받고 있는 선교사들이여! 용기를 가지고 현장에서 부딪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내가 살던 지역에서 X지역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험했고, 가는 데만 2박 3일이 걸렸다. 11월인데 이미 눈이 많이 쌓였고, 어느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버스가 눈 속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을 때 승객들이 모두 내려서 힘을 모아 버스를 끌어내 겨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내 평생 버스 안에서 그렇게 무서운 추위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난방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완전히 닫히지 않는 창문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매서운 바람은 온 몸을 얼어붙게 했으며, 특히 발은 심한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연착된 버스로 인해 도착하기로 예정했던 시간이 지난 터라 성도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집회가 끝나고 모두 일어서려던 참이었다. 타지에서 온 낯선 손님을 반갑게 맞아준 그들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30여 명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작은 거실에 뜨겁게 달구어진 석탄 난로는 여독에 지치고 얼어붙었던 내 몸과 마음을 완전히 녹여주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곳은 교회가 없는 지역이었다. 나와 동역하는 S집사와 네 사람의 전도인이 자기 집을 떠나 이미 여러 달 동안 복음을 전하고 불신자들을 인도하여 예배를 드려온 결과, 그 지역에서 세 군데의 예배 모임이 시작되었고 이제는 그 수가 1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신앙 경력이 가장 오래된 사람은 2년 전 그곳을 지나던 어떤 목사님에게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세례를 받은 한 나이 많은 자매가 전부였다. 대부분 1년 안팎의 새내기 신자들이었다. 하지만 이 교회는 말 그대로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교회요 믿음의 요새였다. 한국 교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열정적인 찬양과 기도, 말씀이 있었다. 찬양을 돕는 피아노나 오르간 같은 악기는 없지만, 목소리로만 불려지는 그들의 찬양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로 드리는 기쁨의 노래였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자신들의 마음을 찢는 회개와,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 지역의 불신자들을 구원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사용해달라는 중보자의 간구였다.
석 달 후 나는 다시 그 지역을 방문하였다. 예수 믿은 지 일 년 이상 된 스물 세 명의 형제 자매들에게 기초적인 세례문답 교육을 한 후에 세례를 베풀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나와 같이 연약한 사람에게 그 순수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례를 거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세례를 통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감격 때문에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던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 곳에 온 목적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이 교회를 두 차례 방문하여 여러 날을 보냈지만 한 번도 그 교회 일꾼들에게 값비싼 선물을 준다거나 식사대접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식사비를 좀 내려고 하면 난색을 표명한다. 전도인들을 보내어 교회를 일으키고, 또 지금도 전도와 말씀사역을 할 수 있는데 자신들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항상 성의껏 좋은 것으로 대접하려고 하는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은 나를 감동케 하였다. 그렇다. 지금까지 그들을 위해 내가 한 일은 고작 몇 사람을 선택하여 이 곳으로 오게 하고, 전도인들에게 교통비와 생활비를 지원하고,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게 한 것이 전부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전도인들의 마음을 감동하여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게 하셨고, 또 그들이 전하는 복음으로 인하여 믿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하셨으며 지금도 그들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경제적인 큰 도움이나 예배당을 세워 주는 그런 일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일꾼들을 양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부흥시켜나가도록 돕고 기도하는 것이리라.
두고 온 중국 땅을 그리워하며
이제 한국에서 지내는 안식년 중 절반 이상이 지나갔다. 중국에서는 한국을 그리워했었는데, 지금 나와 가족들은 귀국한지 며칠 안되어서부터 오늘까지 내내 중국에 대한 그리움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족에게 그 땅을 마음에 품도록 요청하셨고, 또 우리를 감동하셔서 부족하나마 순종하게 하셨다. 어쩌면 그 순종은 자발적인 마음에서가 아니라 당위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변화시켜 주셨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땅에서 겪은 여러 가지 시련과 갈등, 때로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유혹들이 기억에 생생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가족들에게 주셨던 은혜와 축복, 그리고 감사의 조건들은 넘칠만큼 풍성하였다. 한국에 있음으로 인해 누릴 수 있는 혜택과 유익한 점들이 많이 있고, 또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유혹들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셔서 중국 땅에서 만나게 하신 사람들과 사역들, 그리고 어려운 순간 속에서도 능히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생생하기에 오늘도 저 광활한 땅을 바라본다.
“주님! 21세기 세계선교를 감당할 저 중국 땅에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혜가 너무 크고 족합니다. 나를 다시 보내 주소서!”
한요셉/ 중국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