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 ‘조선족 타운’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1동. 흔히 ‘조선족 타운’으로 불리는 이곳에 가면 중국어로 말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500여 미터 도로를 따라 식당, 식품점, 노래방 등 중국어로 쓰여진 간판들이 눈에 띤다. 주로 이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업소들이다. 수년 전부터 산업연수생 등으로 한국에 온 중국동포들이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모여들면서 이곳은 중국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되었다. 공단 특수가 시들해진 요즘은 다양한 직업을 갖고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의 ‘생활 문화 중심지’로 바뀌었다. 가리봉동의 조선족 타운은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많은 중국동포들에게 ‘제2의 옌볜(延边)'인 셈이다.
구로구 일대에 중국동포 등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모여 살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90년대 이후 한국인들이 ‘3D(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업종’을 기피하면서, 중국동포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런 일들을 대신하게 되었다. 주로 구로공단과 가리봉 일대의 중소기업이 이들의 근로 현장이다. 또한 이 지역에는 소위 ‘벌집’이라고 하는 방세가 싼 다가구 연립주택들이 밀집해있다. 중국인들이 많이 살다보니 이들을 위한 음식점, 다방 등도 하나 둘씩 생겼고, 이러한 생활의 편리함 때문에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역시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모여있는 안산, 성남과 비교적 왕래가 편리한 교통의 요지라는 점 등이 이 지역에 중국동포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한국에 온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중국동포들은 낯선 땅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때로는 임금체불이나 산업재해 등에 고통받기도 한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2000년 1월 1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외국인 노동자의 집/ 중국동포의 집>, <중국동포교회>가 설립되었다. <외국인노동자의 집>은 ‘모든 사람은 인종과 언어와 국가를 초월하여 존엄성을 갖는다’는 설립이념을 바탕으로 노동, 의료, 생활상담 등 각종 상담과 쉼터 운영, 교육 및 지원, 나아가 법적 ∙ 제도적 개선을 위한 투쟁에 이르기까지 국내 외국인 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한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 소장이며 중국동포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김해성 목사는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부’로 불린다. 김 목사는 1986년 성남에서 ‘희망의 전화’ 노동상담소를 개설하여 국내 노동자들의 인권보호에 앞장서다가, 90년대 초부터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노동운동의 경험을 살려 실제적으로 이들이 당하고 있는 임금체불, 인권유린, 산업재해 등을 해결해주기 위해 발벗고 나서다보니, ‘김해성 목사한테 가면 다 된다더라’는 소문이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퍼지게 되어 너도나도 김 목사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중국동포들의 현주소
김해성 목사를 만나기 위해 가리봉 5거리에 위치한 중국동포교회를 찾아간 오전의 조선족 타운은 한산했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한창 일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교회로 들어서자 열 명 남짓한 중국인들이 교회 1층 벽을 빼곡이 메운 구인광고판 앞에 삼삼오오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교회 옆 상담소에는 대 여섯 명 되는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업무를 하고 있었고, 이들의 책상 위에는 외국인 근로자 관계서류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오늘도 이곳 저곳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동포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목회 사역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김해성 목사는 현재 국내에 들어온 중국동포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약 30만 명 정도이며, 그 중 중국동포는 15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중국의 1년 치에 해당하는 월급을 1~2개월에 벌 수 있다는 ‘코리언 드림’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동포는 우리나라의 재외동포법(在外同胞法)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들어오는 길이 거의 막혀있다. 이들이 한국에 오려면 관광(15일), 친척방문, 산업연수생, 공무(출장)의 자격으로만 가능하다. 그나마 친척방문 초대장, 연수생 선발 등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중간 브로커에게 거액의 알선료를 줘야 한다. 사실 한국에 와있는 중국동포의 상황은 브로커를 빼고는 설명이 안 된다. 입국과 체류, 출국 과정에서 몇 차례 브로커들의 손을 거치는데, 그 비용은 대개 1인당 5~7만 위안(元)이다. 우리 돈으로 8백만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의 거액을 마련하기 위해 동포들은 대부분 빚을 지는데, 이 돈은 중국에서 평생 월급을 모아도 갚을까 말까한 엄청난 액수이다. 그런 가운데 브로커에 의한 사기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브로커에게 거액을 주고 밀입국을 시도한 어떤 동포는, 밤새 배를 타고 이튿날 한국에 도착했다고 해서 내려보니 결국은 어딘지도 모르는 중국의 낯선 땅이었다고 한다.
위의 송출비리와 맞물려 있는 불법체류 문제는 한국 땅에 온 중국동포들이 겪는 갖가지 어려움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합법적으로 한국에 들어온다 해도 대다수의 중국동포들은 불법체류자가 된다. 대개 2~3년 이상 뼈빠지게 이해야 겨우 빚을 갚을 수 있고, 최소 4년 이상은 되어야 어느 정도의 목돈을 거머쥘 수 있기 때문에 자연히 장기간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재중동포들의 70% 이상이 불법체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또다시 임금체불과 산업재해로까지 확산되어 여러 가지 문제들을 낳고 있다. 기업주가 월급을 체불하거나, 산업재해를 당하여 빚 갚을 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추방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빚을 갚지 못한 채 추방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빚을 갚지 못해 자살하거나 정신병자, 유랑자가 되는 등 더욱 비참한 상황으로 전락하는 동포들도 많다.
악덕 기업주를 만나 수개월 치 임금을 떼이기도 하고,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사전지식 없이 작업하다가 손이 잘리는 등 재해를 당하는 일도 많다. 그러나 그때 밀린 임금이나 보상을 요구하면 불법체류를 미끼 삼아 오히려 추방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감히 말을 꺼내기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이밖에도 감기나 맹장염 같은 가벼운 병에 걸려도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기 때문에 비싼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병원조차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취재 중간에도 병색이 완연한 한 중국인이 중국동포교회에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 있기도 힘들어하던 그는 얼마 전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를 중국의 가족들에게로 돌려보내야 할지 몰라 김 목사도 방법을 찾고자 애쓰고 있다고 했다.
복음만이 진정한 도움이다
십여 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 인권 개선을 위해 투쟁과 시위도 마다하지 않았던 김 목사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런 방법의 외국인 노동자 선교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발이 부르트도록 이곳 저곳 뛰어다니며 밀린 임금을 받아주었더니, 이 돈을 갖고 본국에 돌아간 이들이 한국에서 자신들을 괴롭혔던 악덕기업주와 똑같이 현지 노동자들을 착취하기도 하고, 술이나 마약 등에 손을 대는 것도 보았다. 정당한 노동으로 돈을 벌기보다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유흥업소를 차리는 등 한탕주의로 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한국에서 돈을 벌고 귀국한 사람들의 50% 이상이 이혼을 하는 등 가정이 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중국동포 및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진정한 거듭남이 없다면 위와 같은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김 목사는 교회를 세워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최우선적인 사명이라 여기고 있다. 한 예로, 한국에 있는 동안 예수님을 영접한 중국동포 L씨는 작업 중 사고로 한쪽 팔을 잃었으나 치료는 고사하고 밀린 임금도 받지 못한 채 본국으로 강제추방 되었다. 이런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아마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모든 상황을 원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임금도 지불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불법체류자로 신고한 한국인 사장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한다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불과 얼마 전까지도 가리봉 조선족 타운은 살인, 강도, 폭행 등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는 어두운 지역이었다. 사건의 대부분은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 동포들에 의한 것이었다. 많은 빚을 지고 한국에 들어왔으나 돈 벌 기회가 자꾸 줄어들게 되자 빚 청산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또 범행 후에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잡힐 염려가 별로 없고, 붙잡힌다 해도 초범으로 분류돼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강제출국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한탕하고 돌아가겠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것이다. 죄의식도 별로 느끼지 않는 이들로 인해 한 때 이 지역에 사는 중국동포들은 두려움에 떨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에 중국동포교회가 세워진 후부터 범죄 사건은 많이 줄어들었다. 진심으로 그들의 억울하고 어려운 사정에 귀 기울이고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돕는 손길들이 중국동포들에게 이 낯선 땅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힘을 주었다. 교회가 관심과 사랑으로 이들을 한 형제로 받아들였을 때 이들의 닫혔던 마음이 열린 것이다.
중국동포교회에서는 주일이면 중국인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다양한 사역들이 진행된다. 한국어로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몽골어로도 예배를 드리고 있고, 예배 후에는 중국동포와 한족을 위한 성경공부가 한국어와 중국어로 진행되고 있다. 오후에는 환자들을 위해 치과, 양방, 한방 등 무료 진료가 이뤄지며, 그 밖에 이 ∙ 미용 봉사와 한글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올해 3월에 시작된 <외중신학대학>을 통해 외국인, 중국인 근로자들을 현지 교회 지도자로 양육하고 있다. 교육은 모두 3년 과정으로 입학금과 등록금은 전액 면제이고, 기숙사 운영,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가리봉의 중국 사람들
어느덧 거리에 어둠이 내리자 가리봉동 거리에는 일터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눈에 띠기 시작했다. 식품점에서 반찬거리를 사는 사람들,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사람들로 한산했던 거리는 금새 활기를 띠었다. 깔끔하고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난 한 식당을 찾았다. 좁은 평수지만 깨끗한 실내에 6~7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고,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 대 여섯 명의 동포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쪽에선 술잔을 주고받으며 조용히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메뉴는 모두 중국어로 쓰여 있다.
한국인 아저씨와 결혼한 조선족 주인 아주머니는 한국에 온 지 올해로 11년째라고 한다. 주인 외에 다른 두 명의 아주머니가 일하고 있는데, 한 명은 헤이룽장(黑龙江)성에서 온 조선족으로 친척의 초청을 받아 한국에 오게 되었고, 현재 남편과 식당 근처에 방을 얻어 살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 두고 온 자녀들은 다 커서 결혼했지만 무척 그립다고 했다. 앞으로 3년정도 더 일해 돈을 많이 벌어 갈 계획이란다. 또 한 명은 한족(汉族)이었는데 한국에 온 지 석 달 밖에 안 되어 아직 한국어와 문화 등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다.
“타국인들을 자기같이 사랑하라”
선교란 무엇인가? 꼭 밖으로 나가야만 선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지 않아도 그들이 스스로 우리에게 오고 있다. 아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에 와 있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한국 교회는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냉랭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취재를 마치고 늦은 저녁 가리봉 거리를 떠나며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갔다.
단지 그들의 육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그들의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옆에 그들을 보내주신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대로 행해야 할 것이다.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레 19: 34)
중국동포들을 위한 사랑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중국동포교회>
서울 Tel. 02)863-6622
성남 Tel. 031)756-2143
www.migrantwork.org
www.freechal.com/mwkcchurch
우체국 013078-02-127374 (예금주: 김혜성)
취재, 글/ 변문희 ∙ 본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