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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8.20  통권 71호  필자 : 김중하  |  조회 : 4222   프린트   이메일 
[중국 소수민족을 알자]
야오(瑶)족

인구
2,134,013명(1990년 통계)

분포
중국의 야오족은 광시(广西-1,325,118명), 후난(湖南-460,667명), 윈난(云南-173,115명), 광둥(广东-130,000여명), 꾸이저우(贵州-31,240명)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야오족은 비교적 넓은 분포도를 갖고 있으며, 작은 그룹을 이루어 사는 특징을 갖고 있다. 미주와 유럽에 사는 야오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열대. 또는 열대 지역에 살고 있고, 해발 200~1,300m의 지역에 거주한다.

언어
야오족은 그 분포가 넓은 만큼 언어도 복잡하게 나뉘어 있다. 그렇지만 서로 차이점이 많지 않은 부분도 있고, 또 서로가 통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크게 3가지 방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방언은 차산야오(茶山瑶)지파가 사용하는 언어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의 그룹으로 묶고, 두 번째는 화란야오(花篮瑶)지파가 사용하는 언어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의 그룹으로 묶고, 세 번째는 산쯔야오(山子瑶)가 사용하는 언어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나눌 수 있다.

차산야오 방언은 동족(侗族)과 좡족(壮族)의 언어와 비슷한 부분이 많고, 화란야오 방언은 먀오(苗)족 언어와 비슷하며, 산쯔야오 방언은 나머지 두 개의 지파가 사용하는 언어와 비슷하다. 전체적으로도 서로 다른 방언을 사용하지만 많은 부분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이다.

문자
야오족은 원나라 이전부터 문자를 사용했다. 야오족이 사용하던 문자는 한자(汉字)를 이용한 것이었다. 한자를 중심으로 하여 야오문의 몇 가지를 추가하거나 변형하여 사용한 문자를 ‘팡콰이야오원’[(方块瑶文)이라고 부른다. 이 팡콰이야오원은 세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는 음과 뜻을 모두 한자에서 가져온 것이고, 두 번째는 한자에서 음만 발려오고 뜻은 야오족 말의 뜻을 사용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뜻은 한자에서 가져오고 음은 야오어를 따라 발음하는 것이다. 이 문자는 여러 가지 표현에 있어서 제한성이 많기 때문에 정부에서 라틴자모를 사용하여 새로운 야오문을 만들ㅇ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문자를 보급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고, 야오족이 이미 오래된 문자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민족 이름의 유래
‘야오’는 다른 민족이 이 민족을 부르던 이름인데, 야오족의 이름은 약사서에 일찍부터 등장한다(산해경, 대황동경 등). 야오족이 스스로를 부르던 이름은 ‘여우’(尤)였는데, 현재의 야오족이 고대 요우의 한 지파였다고 보며, 어떤 지역에서는 요우라는 이름을 아직까지 사용하기도 한다. 민족 이름을 ‘야오’로 통일한 것은 중화민국 시대인 1934년에 광시성 정부가 성내에 있는 야오족의 이름을 ‘야오’라고 부르면서 시작되었고, ‘야오’라는 이름으로 민족의 이름을 확정지었다.

민족의 역사
야오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6가지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그 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야기는 야오족은 먀오족과 함께 원래 후난성에 살고 있었던 ‘츠요우’(蚩尤)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이다. 츠요우는 살 곳을 찾아 북쪽으로 향해 영토를 넓혀가다가 자주 일어나는 전쟁에서 ‘츠’와 ‘요우’가 나뉘었는데, ‘츠’는 먀오족의 조상이 되었고, ‘요우’는 야오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계속되는 전쟁에서 패한 ‘츠’와 ‘요우’는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계속 이동하는 과정을 거쳐서 먀오족과 야오족이 오늘날 살고 있는 지역까지 왔다고 한다.

야오족의 지파
야오족은 크게 5개의 지파로 나누고 각 지파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한데, 여기서는 학술적으로 분류된 이름만 취급하기도 한다.

1) 차산야오: ‘차산’은 따야오산(大瑶山)의 북부에 이전에 있었던 한 지명이다. 차산야오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그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지역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2) 화란야오: 화란야오는 이름은 부녀들의 복장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화란야오의 부녀들은 수놓은 무늬가 있는 옷을 입는다. 화란야오의 란(蓝)은 단순히 푸르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색이 찬란하게 보인다는 의미이다.
3) 아오야오(拗瑶): 기록에 의하면 청나라 캉시황제 2년(1663년)에 ‘량야오(粮瑶)’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그것은 남자의 머리모양으로 인한 것이다. 아오야오의 남자들은 머리를 땋는데, 머리 윗부분의 중앙에서 땋았다. 그 모양은 같은 야오족이라 할지라도 차산야오나 화란야오와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 ‘정야오(正瑶)’라고도 불렀었다.

4) 판야오(盘瑶): 판야오에서 ‘판’이라는 글자를 때로는 판(板)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이름은 이전에 판야오의 부녀들이 목판으로 만든 모자를 썼던 데서 기인한다. 지금은 목판으로 만들지 않고 나무껍질이나 밀랍으로 만들지만 이름은 아직도 ‘부비엔’이라고 부르면서 결혼할 때에만 한 번씩 사용한다. 비엔은 판(板)의 야오족 발음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판야오들이 자기들의 조상이 ‘판왕(盘王)’을 숭배했기 때문에 판야오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복장으로부터 부르는 이름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동의를 한다.

5) 산쯔야오: 간단하게 줄여서 ‘산쯔’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이 이름은 과거에 한족(汉族)지주들이 자기의 땅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농사를 짓게 했는데, 이런 사람들은 ‘덴즈(佃子: 소작인)’라고 불렀고, 야오산 지역에서는 이런 사람을 산쯔라고 불렀다. 곧 이 이름은 이들이 과거에 소작인의 생활을 했던 것을 말해 준다.

다른 민족과의 관계
야오족은 일찍부터 자기들의 정착지를 잃어버리고 자주 이동을 하고, 넓게 분포되어 살아가면서 함께 이웃해야만 하는 한족(汉族), 좡족(壮族), 둥족 등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민족간의 갈등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고, 충돌은 계속 있어왔다.

생활
농업이 주이고 임업과 수렵을 겸한다. 농업은 물이 많은 곳에서는 논농사를 주로 하고, 산지 등 물이 풍부하지 못한 곳에서는 밭농사를 주로 한다.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논에서 수확이 끝난 후 밭작물을 심어 논농사와 밭농사를 겸하기도 한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긴 했으나 산에 사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방법은 화전(火田)이다. 밭농사의 주된 생산물은 옥수수, 좁쌀, 감자, 콩 등이다. 임업계통으로는 차잎과 란톈(蓝靛-남색염료)이 주요한 생산품인데, 야오족의 란톈은 매우 유명한 전통 염료이다.

야오족은 남녀의 일이 분업형태로 구분이 된다. 남자는 주로 힘을 사용하는 노동(농사, 벌목, 사냥, 건축, 고기잡이 등)을 하고, 여자는 섬세함을 요구하는 일과 힘이 적게 드는 일(수놓기, 염색하기, 옷감 만들기, 가축 돌보기, 장사 등)을 주로 한다.

결혼
각 지파마다 약간씩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자유연애를 하고, 약혼을 거쳐서 결혼을 한다. 그러나 약혼 전에 부모의 동의를 필요로 하고, 부모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는 부모가 지정해 주는 사람과 해야 한다. 이러한 습관으로 인해서인지 결혼 전과 후의 생활이 단정치 못하고 이혼율이 다른 민족에 비해 높은 편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70%가 이혼을 경험한 곳도 있다. 이혼 후에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 결혼한다.

약혼과 결혼시에는 서로 다른 중매인을 필요로 한다. 약혼은 젊은 남녀가 연애 중에 서로 마음을 정했을 때 부모의 동의를 얻고 한 쪽에서 중매인을 통해 다른 한 쪽의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고 서로 말로만 하거나 아니면 팔찌를 교환해서 언약을 한다.

결혼 때에는 전날 배우자를 취해오는 쪽(남녀에 관계없이 주동적으로 상대를 데려 올 수 있다)에서 중매인을 상대의 집으로 보낸다. 이 때 중매인은 약혼 때와는 다른 사람을 택한다. 중매인이 다음날 배우자를 데리고 오면 잘 영접함으로 결혼은 성립된다. 이 때 중매인은 증인의 역할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취해오는 쪽에서 상대방의 부모에게 고기를 주거나 예물을 주기도 하며, 약간 복잡한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장례
야오족의 장례는 토장(土葬)과 화장(火葬)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자손들은 곡을 하면서 시체를 물가로 갖고 가서 씻긴다. 이 때 씻기기 전에 먼저 물의 신에게 종이를 태워 예를 표하고 동전을 물 속에 던져 물을 산다. 물을 길을 때는 대나무통으로 세 번 긷고, 데워서 시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다. 절차가 끝나면 다시 집으로 데려와 거실의 중앙에 안치한다. 그리고 무당을 불러 사자(死者)를 보내는 제를 지내고 입관을 한다. 관을 집에 두는 동안에는 관 앞쪽에 밥을, 관 아랫 쪽에 물을 한 그릇씩 떠서 놓는다.

발인시에는 도사를 청해 송장(送葬)의 법술을 행하고 집을 나서는데, 집을 나서기 전에 필히 한 사람이 길에 나가서 발인이 있다는 사실을 큰 소리로 말한다. 이 때 이 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사자의 귀신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문을 모두 걸어 잠근다. 관이 집을 나서면 소리를 질렀던 사람은 밥을 큰 그릇으로 한 그릇 들고 앞에 가면서 길에 뿌려 귀신들에게 이 밥을 먹고 관이 가는 길을 편히 가도록 해달라고 한다. 이는 귀신이 배가 고프면 관을 눌러서 관을 들고 가는 사람들을 어렵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편 관이 집을 떠난 후에는 집을 안팎으로 청소해서 귀신이 머물지 못하게 한다.

복장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간편한 복장을 입지만 아직도 전통복장을 입고 있기도 하고, 절기가 되면 전통복장을 하고 즐긴다. 복장도 각 지파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모습만으로 야오족의 복장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차산야오, 화란야오의 복장은 비교적 화려하게 수놓아 장식된 편이고, 판야오와 산쯔야오는 덜 화려하다. 그 이유는 판야오와 산쯔야오는 주로 산에 살면서 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시간을 갖지 못해 복장의 화려함이 다른 지역에 있는 지파들보다 못하다고 한다.

여자의 전통복장은 물론 각 지파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간단하게 살펴보면(자세한 무늬와 모양에 대한 설명은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소개하지 않는다. ) 바지를 입는데, 길고 짧은 두 종류이다. 짧은 바지를 입는 지역에서는 종아리 부분을 천으로 만든 끈으로 동여맨다. 상의는 커다란 깃이 있는 저고리를 중앙에서 포개지도록 해서 입는 것과 왼쪽섶이 오른쪽을 덮도록 해서 입는 것이 있다. 남자는 전체적인 모양은 비슷하지만 여자에 비해 비교적 간단하다. 야오족의 복장 중에 가장 특이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신발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일본의 게다와 같은 나무로 만든 슬리퍼인데, 지역에 따라서 아직도 착용하기도 한다.

건축
야오족의 가옥은 일반적으로 흙과 나무를 이용하여 짓는다. 지붕은 기와를 얹거나 풀을 엮어서 사용하는데, 현재는 대부분 기와를 사용한다. 날이 더운 지역에서는 대나무와 나무를 이용하여 집을 짓기도 한다. 야오족의 방은 땅에 붙여서 짓고, 주로 1층에서 생활을 한다. 먼저 문으로 들어가면 거실이고, 거실의 오른쪽에 훠탕(火塘)이 있고, 훠탕 너머에 노인들의 침실이 있다. 거실 왼쪽 문 입구에는 물을 받아두는 곳이 있고, 그 옆으로 문이 나있는데, 그 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주인의 침실이 있다. 왼쪽에는 아궁이와 주방시설이 되어 있다. 이런 모양으로 볼 때 야오족은 다른 소수민족과 달리 훠탕과 부엌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훠탕은 거실에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활동하거나 손님을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된다. 자녀들이나 손님이 있을 경우에는 2층의 방을 침실로 사용한다.

절기
야오족이 지키는 절기는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1) 전국적인 절기: 야오족 뿐 아니라 중국 안에 있는 대부분의 민족이 함께 지키는 절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춘제(春节), 중추우제(中秋节), 칭밍제(清明节) 등이다.

2) 민족적인 절기: 전체 야오족이 지파에 관계없이 함께 지키는 절기로, 야오족만의 특징이 이 절기를 통해서 보여진다. 서제(社节), 치웨제(七月节), 창신제(常新节) 등이 있다.

3) 지역적인 절기: 비록 야오족이 지키지만 전체가 지키는 것이 아니고, 특정한 지파 혹은 특정한 지역에서만 지키는 절기이다. 바오먀오제(保苗节), 치우먀오제(求苗节), 펀롱제(分龙节) 등이 있다.

4) 가족적인 절기: 조상에 대한 제사 등 가족 단위의 절기이다.

금기
야오족 거주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몇 가지 금기사항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 개고기 먹는 것을 절대로 금한다.
∙ 평상시에 벽에 못을 박아서는 안 된다. 만약에 못을 박게 되면 집을 지키는 신이 충격을 받아 가족 중에 복통을 일으키거나 눈병을 앓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 불을 지피는 부뚜막에는 발을 올려놓거나 손으로 쳐서는 안 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화재의 위험이 있다고 한다.
∙ 가족이나 친척이 병이 나면 무당을 불러 귀신을 쫓는 굿을 한 후 문 밖에 푸른 나뭇가지를 꽂아 둔다. 이때 이 가지를 본 외부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만약에 이를 모르고 집안에 들어가면 귀신을 도로 데리고 왔다고 해서 주인이 욕을 하거나 때리기도 한다.
∙ 아이를 낳았을 경우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직접 물어보면 안 된다. ‘물고기를 잡았는가?’ , 또는 ‘소라를 잡았는가?’ 라고 물어보아야 한다. 물고기는 남자아이를, 소라는 여자아이를 가리킨다.
∙ 사람이 죽어 시체를 씻으러 물가로 갈 때나 올 때, 또는 씻는 과정 중에 외부인들은 이 옆으로 지나가면 안 되고 필히 길을 돌아서 가야 한다.

종교
야오족은 만물에 영혼이 있다는 생각에서 모든 신앙을 형성한다. 야오족의 주요한 신앙은 판왕(盘王)숭배, 미루오투오(密洛陀)숭배, 자연숭배, 조상숭배 등이며, 한족의 도교(道教)까지 받아들여 자신들의 신앙으로 삼았다.

기독교 상황
1949년 이전에 선교사가 사역을 시작했고 현재 백여 명의 신자가 있다고 하나 어렴풋한 짐작일 뿐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다. 필자가 알고 있는 사역자들이 야오족을 상대로 하는 사역(교회가 세워졌고 지도자 양육이 시작되었다.)에 대해 들어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사역자들에 의해서 곳곳에 교회가 서가고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그러나 이 민족은 아직도 복음을 들어야만 하는 미전도종족으로 분류 된다.

야오족의 적지 않은 수가 자유로운 지역에 살고 있는데, 자기 민족의 문화와 언어를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필자가 중국 안에서 미국 국적을 가진 리수족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중국어는 못하지만 자기 민족 문화와 언어를 잃어버리지 않았고, 지금은 자기 민족을 복음으로 섬기기 위해서 리수족이 사는 지역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이를 볼 때 야오족 중에도 자기들의 문화와 언어를 잃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또는 이미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훈련시켜 자기민족을 향해 가도록 하는 것도 검토되지는 않았지만 좋은 전략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중국 외 다른 나라에 분포된 야오족
야오족은 중국 외에 미주와 유럽 등 많은 나라에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넓은 분포를 하게 된 이유는 전쟁을 피해서 이동했기 때문이다. 먼저는 전쟁을 피해서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라오스, 베트남, 태국 등지로 갔고, 동남아를 거쳐서 미주와 유럽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각지에 있는 야오족의 수를 보면 중국 외에는 베트남이 가장 많은 474,000명(92년 통계)이고, 태국(35,635명: 91년 통계), 라오스(10,000여 명), 미국(260,000명: 93년), 캐나다(100여 명), 프랑스(1,000여 명) 등이다.

야오족 지역에 가려면
야오족은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한가지 노선으로 갈 수 없는 단점이 있다. 광시, 후난, 윈난, 광둥, 꾸이저우 등의 성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먼저 한국에서 비행기로 광저우(广州)까지 간다. 그리고 광저우에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가 닿는 곳까지 기차로 가고, 그 이후는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야오족이 분포된 구체적인 지역은 「중국야오족풍토지(中国瑶族风土誌)」18~20쪽을 보면 자세하게 나와 있다.

기도제목
1. 야오족 문자로 성경이 번역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이들의 손에 쥐어질 수 있도록.
2. 야오족을 향한 복음전도자와 중보기도자가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3. 야오족 안에 역사하는 모든 사단의 세력이 성령의 역사로 무너지도록.
4. 야오족을 입양하는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이 생겨나도록.

참고서적
1.中国瑶族风土誌,北京大学出版社
2.广西瑶族社会历史调查,广西民族出版社
(위의 두 책은 야오족을 이해하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책이다)
3.中华民族,华夏出版社
4.中国少数民族概观,天津古籍出版社
5.中国少数民族禁忌大观,广西民族出版社
6.中国少数民族宗教概观,中央民族出版社
7.中国少数民族节会大观,江西教育出版社


김중하/중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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