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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8.20  통권 71호  필자 : 편집부  |  조회 : 2649   프린트   이메일 
[중국의 관문도시]
상하이(上海)

중국 제1의 도시 상하이는 중국 근대사의 중심지이며, 미래의 중국을 이끌어 나갈 정보통신 산업과 금융 등 경제, 산업, 과학, 문화의 중심지이다. 지도에서 중국의 해안선을 따라 가보면 랴오둥(辽东)반도와 산둥(山东)반도가 발해만을 에워싸고 그 남쪽에 황해, 동중국해, 남중국해가 이어져 있다. 이 긴 해안선의 중심은 창장(长江) 하구 주변이며 상하이는 바로 이곳에 위치한다. 현재의 상하이 시는 베이징(北京), 텐진(天津), 충칭(重庆)과 더불어 정부 직할시이며, 창장 하구의 충밍다오(崇明岛)까지 포함하는 면적 5,800㎢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으로 인구 1,350만을 자랑하는 대도시이다.

상하이는 중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나 비즈니스맨으로 24시간 내내 활기에 넘쳐 있다. 베이징이 정치, 문화, 관광의 고장이라면 상하이는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내에서는 상하이 브랜드 제품[名牌]이 압도적인 인기가 있으며  자전거, 카메라, TV 등 상하이 제품을 많은 사람이 갖고 싶어한다. 그러한 경향은 공업제품 뿐만이 아니다. 패션이나 연극 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젊은이들은 항상 상하이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전의 상하이에는 외국 열강의 조계(租界)가 형성되어 금융과 상공업 단지로써 번영을 이루었는데, 지금은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중공업을 비롯한 산업 전반의 발전과 세계 다국적 기업의 최대 투자지역으로 자본이 넘쳐흐르는 국제 도시로 발전되고 있다.

역사
오랜 세월에 걸쳐 상하이의 동남부가 서서히 바다에서 솟아올라 육지가 되었다고 추측한다. 춘추시대에는 오(吴)에 속했고, 전국시대에는 월(越)에 속했다가 그 뒤 초(楚)가 차지했다.

서부 지역이 융기하여 생긴 상하이는 10세기가 되어서야 현재의 지반이 형성되었다. 상하이의 옛이름은 호(沪: 조그만 어촌이란 뜻) 또는 신(申)이었고, 상하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무역항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던 송대로 당시의 이름이 ‘상하포(上海浦)’였다. 상하이의 발전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남송(南宋)대(1127~1279년)에 도읍이 비엔징(卞京: 현재의 开封)에서 린안(麟安: 현재의 杭州)으로 옮겨지게 됨으로써 상업, 해운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원대의 상하이진이 현으로 승격되었고 명대에는 중국 최대의 면방업 중심지로 각광을 받게되면서 상공업이 급속히 발전했다. 면방업이 발달하게 된 것은 물론 이 일대의 면화 생산과 풍부한 노동력 때문이었다. 강회 24년(1685), 해관(海关)이 설치되었으며 건륭(乾隆), 가경(嘉庆) 시대에는 무역항으로의 발전이 가속하되었다.

상하이가 지금처럼 중국 최대의 인구를 포용하는 도시이면서 최대의 상공업 중심지로 번성하게 된 것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기록인 아편전쟁 패배 이후였다. 1842년 청왕조가 아편전쟁에 패함에 따라 남경조약(南京条约)이 체결되어 개항을 강요당하고 근대의 문이 억지로 열렸다. 영국,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열강제국이 이 고장에 ‘조계’라는 이름의 ‘외국령’을 각기 또는 공동으로 마련하고 중국 침략의 거점으로 삼았다. 조계마다 각국의 주권을 행사하고 빌딩을 세워 화려한 중심가를 조성하였다. 상하이 특별시로 선포된 것은 1827년이었고, 1930년에는 상하시로 정식 승인되었다. 1945년 항일전쟁 승리 후에는 조계를 회수했으며, 1949년 5월 27일 중국 공산당이 상하이에 입성하였다.

지리, 기후
상하이는 북위 31.14도, 동경 121.29도에 위치하며 중국 남북 해안선의 중심이다. 동으로 태평양, 서로 장쑤(江苏)성, 저장(浙江)성과 인접하였고, 북은 청장(长江)의 바다 진입구이다.

상하이에는 몇 개의 작은 구릉 외에는 전부 평탄한 충적평원으로 해발고도는 4미터 좌우이고 경내에는 충밍다오, 헝샤다오(横沙岛), 장싱다오(长兴岛) 등의 섬이 있다. 상하이의 총면적은 6.341㎢, 그 중 푸둥신취(浦东新区)의 면적은 약 532㎢이다. 푸둥신취는 황푸장(黄浦江) 이동, 청장구 서남의 삼각형 지대로 면적이 350㎢인 푸시스취(浦西市区)와 마주하고 있다.

사계절의 변화가 분명한 것은 상하이 기후의 특징이다. 겨울과 여름철이 길고 봄, 여름이 짧은데 겨울은 약 126일, 여름은 약 110일이며 봄과 가을은 합하여 약 130일이다. 상하이는 아열대 해양성 계절풍 기후에 속하는데 연 평균기온은 약 15℃, 7, 8월의 기온은 제일 높은 열 평균 28℃이다. 1월의 기온이 제일 낮은 월 평균 3℃이고 년 강우량은 1,100㎜이다. 겨울이 춥지 않고 여름이 창장 중류의 도시처럼 아주 무덥지는 않다.

행정구역
면적은 5,800㎢이다. 상하이 시내 행정구역은 황푸(黄埔), 장닝(长宁), 양푸(杨浦), 루완(卢湾), 난스(南市), 푸투오(普陀), 자베이(闸北), 징안(精安), 바오산(宝山), 수화이(徐淮), 홍커우(虹口), 민싱(闵行), 푸둥신취(浦东新区), 지아딩(嘉定) 등의 구(区)로 나누어져 있다.

교통, 관광
중국의 경제 중심지답게 상하이 교통은 매우 발달해 있다. 항공, 해운, 철도, 고속도로는 세계의 각 지역과 국내 주요 도시 사방으로 뻗어 있고 시내교통도 아주 편리하다. 시내 중심도로는 모두 지상도로와 고가도로가 이중으로 놓여져 있고, 시내 중심부를 통과하는 지하철도 있다.

중국의 옛 성이면서도 1291년 도시가 건립된 이래, 특히 1843년 문호를 개방한 백여 년 사이에 많은 중대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상하이에 대량의 사적을 남겨두었다. 도합 13개가 전국 중점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이런 보호단위는 이미 적지 않은 곳이 유명한 기념지, 관광지로 되었는바 예를 들면 ‘만국건축’으로 불리는 와이탄(外滩)건축군, 소도회 봉기지휘부, 예원(豫园), 손중산(孙中山)선생과 송경령(宋庆龄)의 저택,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유적지, 노신(鲁迅)저택과 묘지 등이다. 또한 상하이는 중국 신문화운동의 발상지로써 수많은 교육가, 문학가, 예술가 등을 배출하였고 그들이 살던 집 또한 중요한 관광지가 되었다.

또한 중국 현대화 건설의 창구로써 90년대에 준공된 동방명주(东方明珠)방송탑, 상하이 박물관 신관, 인민광장, 도서관, 체육관, 대극장 등을 비롯한 높은 빌딩 등은 상하이의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었고, 세계 유수한 기업들의 각축장이 된 푸둥신취는 참관하려는 세계 각국의 기업인들로 붐비고 있다.

사회
상하이로 여행을 가거나 사업차 출장을 가는 사람들은 상하이의 발전한 모습에 놀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내지를 돌아다니다 상하이에 도달한 사람은 엄청난 상하이의 모습에 기가 막힐 것이다. 내륙의 도시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륙에서 생활을 하다가 상하이로 가면 그 엄청난 물가에 손이 떨려 돈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상하이의 서부지역은 아직 낙후되어 있지만 황푸강을 중심으로 번화한 곳은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특히 난징루(南京路)를 걷다보면 주위에 쭉쭉 올라가 있는 마천루, 회황찬란한 불빛, 특히 담배꽁초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깨끗한 거리의 모습에 놀란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상하이에서 살고 싶은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으나, 이재에 밝은 상하이인들을 깍쟁이들이라고 여기고, 상하이 사람들은 타지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 상황
상하이를 대표하는 역사인물 서광계(徐光启)를 중심으로 실용적 문물과 함께 명대에 전파된 천주교는 오랫동안 상하이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쉬자후이(徐家汇)에는 그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문화대혁명 가운데서도 파괴되지 않고 남은 건축물을 볼 때 상하인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이 큰 지를 알 수 있다.

그 후 열강의 침략과 함께 전해진 복음은 새로운 문화의 차원에서 전파되어 교육, 의료 등과 함께 대중적으로 전파되었다. 곳곳에 외국인을 위한 예배당이 세워졌고, 이후에 순수한 복음의 열정을 가진 이들에 의하여 하나님은 크게 역사하셨다. 이곳에 중심을 둔 선교단체들은 내지(内地)복음화를 향해 나아가기도 했고, 중국의 어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혼란기에는 큰 핍박을 당하였다.

현재의 기독교 상황은 비교적 어려움이 적은 편이다. 국제적인 도시규모와 경제중심의 정치상황은 복음이 전파되는데 많은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인민공원 맞은 편에 있는 무언당(沐恩堂)을 비롯한 시내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대형 삼자교회는 많은 신도들로 넘치며 도시 속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가정교회도 아주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상하이에는 수많은 이단의 종교단체들도 앞다투어 진출하여 복음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경제발전과 함께 돈을 찾아 모여든 젊은이들에게는 이미 돈이 우상이 되어 있으므로 복음의 수용력은 점차 줄어가고 있다.

기도제목
∙ 중국의 가장 앞선 도시 상하이가 복음의 축복을 함께 누려, 중국 경제의 모델로써 복음도 함께 나타내는 기회를 허락하시도록.
∙삼자교회들이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복음의 본질을 잃지 않고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가정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들이 바른 신학사상에 서고, 이단에 대처할 수 있게 복음으로 강하게 무장되도록.
∙물질이 우상으로 되어가는 상하이인들이 복음 앞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열도록.


정리/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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