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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8.20  통권 71호  필자 : 주보라  |  조회 : 2370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축복의 시간들

안식년으로 중국을 떠나 귀국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꼭 6년 전 고국을 떠나던 때처럼 또 가슴앓이를 해야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간이 길든 짧든 헤어져야 한다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다. 어느덧 귀국한 지 4개월, 지난 6년 간 사역의 현장에서 만났던 이들이 눈에 아련하다. 우리의 헌신을 부끄럽게 만든 중국 교회의 사역자들, 함께 동역한 선교사 가정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도움을 주었던 주위의 고마운 사람들, 귀국을 앞두었을 때 빨리 돌아오라며 눈물 흘리던 이들, 그들은 모두 주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천사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했던 날들을 되돌아볼수록 아쉬움과 부끄러움도 크지만 감사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는 실로 대단하다. 대책 없이 기도하던 우리에게 주님은 안식년 동안 우리가 머물 좋은 거처를 예비해 주셨고, 팔순 중반의 시어머니를 잠시나마 모실 수 있게 해 주셨다. 또한 학업 문제로 현지에 남게 된 중학생 두 딸을 위해서 좋은 보모를 만나게 하셨고, 셋째 아이도 선물로 주셨다. 마음껏 소리내어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쉼이 될 것 같다.


선교지로의 출발
결혼 전 이미 선교사로 헌신한 남편은 결혼 후 3~4년 후에는 선교지로 나가길 희망했었지만, 교회 개척과 연로한 모친 등의 여건들로 인해 주님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다. 우리에겐 참 힘든 기간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국내에서의 10년 목회를 통해 우리 부부를 사역자로 훈련시키셨다.

94년 8월 ‘선교한국’대회를 통해 남편과 나는 중국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했고, 그 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사천리로 이끄셨다. 중국어문선교회에서 6개월의 훈련을 받았고, 소속단체의 인준과 후원회 구성 등을 거처 95년 봄 중국으로 출발했다. 살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기대, 복잡한 심정으로 도착한 O시는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땅이었다. Δ대학에서 우연히 마주친 형제자매들을 통해 주택과 언어연수과정의 대학 입학, 가족의 정착에 필요한 많은 것을 도움 받았다. 아이들의 이모와 삼촌으로, 유일한 이웃으로 우리 가족들이 빨리 적응하도록 도와준 그들은 또 우리를 그 지역의 한 가정교회에 소개시켜 주었다.

O시에 여름은 유난히 길고 더워 4월부터 시작된 불볕 더위는 10월, 11월이 되어도 꺾일 줄 몰랐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한참을 방안에 누워 더위에 지친 몸을 쉬어야 했다. 그런가 하면 난방이 없는 겨울은 짧지만 습도가 높아 음산한 날씨가 계속 되었다. 1년 내낸 날아다니는 모기는 밤낮 없이 우리를 공격했고, 엄지손가락보다도 더 큰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는 이곳이 낯선 선교지임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으로 돌아온 지 4개월이 지난 오늘, 나는 그래도 그 곳의 긴 여름과 습도높은 겨울이 그리워진다. 지난 6년의 세월 속에 그 곳이 나의 또 다른 고향이 되었음을 느끼며 감사한다.


어려움들은 간증이 되고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겪은 어려움은 아이들의 학교 입학 문제였다. 8살과 10살된 두 딸의 입학을 위해 여러 학교를 방문하였으나 어떤 학교는 터무니없이 비싼 기부금 요구로, 어떤 학교는 입학 거부로, 또 다른 학교는 너무나 형편없는 시설이어서 결정하기 힘들었다. 결국 우리는 중국의 신학기인 9월에 입학시키기로 하고 기도 중에 우선 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고 은혜였다. 아이들은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하는 유치원 수업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중국어를 듣는 가운데 귀가 트이고 입이 열렸다. 9월이 되어 두 딸은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좋은 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유일한 외국인 학생들이어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두 아이의 첫 학기 평균 성적이 A+가 될 정도로 기대 이상으로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해 갔다.

한국처럼 정상적인 교회 활동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우리 가족은 매일 저녁 가정예배를 통해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영적인 힘을 공급받았다. 어려움이 다가올 때마다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함께 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더 가까이 체험할 수 있었다. 남편이 사역으로 한두 주씩 집을 떠나도 이 기도회는 우리를 견고케 해 주었다. 우리는 조국과 조국 교회, 한국의 가족들, 세계와 중국에 흩어진 선교사들, 파송 교회와 후원 교회, 그리고 남편의 사역지와 현지 동역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고백하건대 어려움이 많은 만큼 우리는 하나님과 더 가까이 살게 되었다.

1998년 IMF로 인해 재정적인 어려움이 닥치자 남편의 사역도 지장이 있었음은 물론 두 아이도 더 이상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해결해주지 않으시면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매일 저녁 하나님을 의뢰했고, 연말이 되어 주님께서 그분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셨을 때(중국인 동역자들의 눈물어린 헌금, 한국에서 두 교회의 특별헌금)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얼마나 감격했던지∙∙∙. 그 외에도 97년 단기사역으로 중국에 왔던 간호사 자매가 남편의 턱뼈 밑 침샘에 생긴 종양을 육안으로 발견하여 4시간 반의 수술 끝에 제거한 일, 98년 두 번째 뇌출혈을 일으킨 노모를 사경에서 깨끗이 회복시켜 주신 일, 비자를 합법적으로 해결시켜 주신 일 등 그분의 은혜는 제한된 지면에 다 기록할 수가 없었다.


주께서 허락하신 만남들
하나님께서는 중국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깊은 교제를 갖게 하셨다. 정말 선교는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것(행 16:6~9)이라고 믿는다. 97년부터 H, K 선교사와 공동사역을 해 온 것이나 Δ성의 O지역교회와 동역하는 것을 통해 역시 협력사역이 귀하고 결과도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O시에 온 첫 주부터 6년 동안 동역해 온 한 가정교회와는 이미 한 가족이 되었다. 남편은 동역자들과 함께 최근 2년여 동안 10여 명의 사역자를 양육하였는데, 그 중 두 가정은 좋은 직장을 사직하고 전임 사역자로 헌신하고 있다. 96년부터 우리 교회에서 예수를 믿기 시작한 ‘쑨’이란 사역자는 지난 가을 남편의 주례로 결혼을 했다. 최근 그 부부는 소원하던 대로 극적으로 출국하여 제3국에서 신학수업을 받고 있다.

중국 교회 사역자들의 주님을 향한 헌신과 사랑 그리고 목숨을 건 복음 전도자로서의 삶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남편과 이혼 후 그 아픔을 믿음으로 이기고 일생을 주님께 헌신하여 7년 이상 공단 안에서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P자매와 그의 제자들, 열악한 환경의 공장안에서 돈이 목적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직공이 된 지체들, 주를 위해 2년 넘게 투옥된 경험이 있는 Y형제 부부, 폐가 거의 없다시피 한 몸으로 전국을 누비는 R형제∙∙∙ 동역자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려 주님께 기도하다보면 이들을 만나 함께 일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 특별히 기억되는 두 자매가 있다. 한 자매는 우리 아이들의 첫 중국어 가정교사였던 A자매인데, 고향에서 남편과 이혼 후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왔다가 주님을 만나 가정교회 사역자가 되었고, 지금은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 자매는 처음 믿기 시작할 때부터 성장하고 헌신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우리 가족과 함께 나누며 기도해 왔다.

A자매에겐 중3인 딸이 하나 있는데, 아버지와 새엄마의 냉대와 멸시 속에 자라다가 가출하기를 수 차례, 결국 무책임한 아버지에게 다시 버림을 받아 지금은 A자매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깊은 상처로 인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성품이 매사에 부정적이다. 지난 겨울 방학 때 모녀가 우리 집에서 함께 잠을 자게 되었는데, 딸아이가 엄마와 한 침대에서 자지 않ㄴ겠다고 우는 것이었다. 자신의 엄마마저도 거부하는 그 아이를 바라보며 정말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그 아이는 우리 가족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다가 갑자기 흐느끼며 울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온 가족이 단란하게 예배하는 모습과 자신의 처지가 비교되어 그랬다고 한다. 중국에 와서 안타까운 일 가운데 하나는 너무도 많은 가정이 쉽게 깨어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 가운데 상처받고 버림받는 아이들을 보는 일이다. 주께서 세우신 가정의 소중함이 이 땅에 회복되기를 기도한다.

A자매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딸을 치유하시기를 기도하며 믿음을 더욱 굳게 세워갔고, 1년 전 O신학교에 입학하였다. 학비와 생활비, 딸의 교육비 등 모든 것을 기도로 채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길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 교회의 지도자로 자라날 이런 자매를 한국 교회와 개인이 믿음으로 후원할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큰 보람과 기쁨의 열매가 되리라 생각한다.

또 한 자매는 우리 집에서 파트타임 보모로 일하던 W자매다. 남편과 세 남매를 고향에 두고, 아이들의 교육비와 치료비를 벌고자 홀로 O시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매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참 성실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나는 작년 봄 그녀에게 복음을 전했고, 자매는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영접하였다. 그 후 일주일에 한 번씩 성경공부를 하였는데, 이 자매는 숙소로 돌아가서 배운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였고, 곧 그 숙소엔 10여 명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감사하게도 작년 가을부터 한 사역자가 그들과 연결되어 이제는 어엿한 가정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 떠나오기 전 몇 번씩 찾아와 눈물로 우리를 송별하던 자매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과 가까이 한 축복의 시간들
내가 무엇이관대 이런 은총을 누릴 수 있는가? 사도바울이 “나의 나됨은 주의 은혜”라 고백했던 그 한 마디로 지금 내 심정을 표하고 싶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두 딸도 잘 자라주었고, 막둥이도 벌써 100일이 지났다. 이젠 중국의 콰이찬(快餐)이 먹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위샹체즈바오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받은 아브라함처럼, 나그네 된 우리 가정의 지난 6년의 삶은 참으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는 축복의 시간들이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을 가진 이들이 함께 주를 예배할 그 날(계 7:9~12)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진정 행복하다.


주보라/중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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