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열차는 어느덧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중국 공산화 전에 놓여졌다는 이 협궤철도는 가파른 산들이 만들어내는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나갔다. 열차는 이 눈 덮인 선로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나갔다. 열차는 이 눈 덮인 선로를 따라 연신 덜커덩거리는 소리와 함께 심하게 흔들리며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듯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창 밖에는 잔뜩 찌푸린 날씨에 눈발이 휘몰아치고 있다. 흩날리는 눈발은 차창을 스치며 우리 뒤로 지나갔다.
열차의 내부는 몹시 낡아 열차의 나이가 많이 들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차 안은 난방이 되지 않아 몹시 추웠다. 우리들은 방한복을 입고 옷에 달려 있는 방한모와 장갑까지 낀 채 추위를 견뎠다. 그러나 차 안 어디로부터인지 불어들어오는 차디찬 바람이 괴롭혔다. 우리는 딱딱한 의자에 마주앉아 발을 구르며 거의 8시간을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게다가 나는 점심으로 먹었던 음식이 도무지 소화가 되지 않아 괴로웠다. 열차가 덜컹거리며 좌우로 심하게 흔들릴때마다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이 느껴졌다. 참다못한 나는 흔들리는 열차 안의 좁은 통로를 따라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 통에 한 번 토해냈다. 화장실 거울 속으로 창백해진 나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나 내 영은 주님 앞에 있었다. 그리고 두 마디의 기도가 내 속에서 소리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도우소서’
‘주여! 목적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갑작스런 여행
이 여행은 그 날 아침 급작스럽게 결정되었다. “똑! 똑! 똑!” 누군가가 우리 집 현관문을 다급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누구세요?”, “피터, 나 데이빗입니다.” 현관문을 열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미국인 형제 데이빗이 어딘가 여행을 갈 것 같은 옷차림과 여행용 가방을 어깨에 짊어진 모습으로 문 밖에 서있었다. 데이빗은 주님 안에서 신실한 형제로 나와 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를 응접실로 들어오게 하였다. 데이빗은 소파에 앉자 진지한 눈빛과 침착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피터, 오늘 나와 함께 이삼 일 간 시골에 다녀올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입니까?” 나는 뜻밖의 제안에 약간 놀라며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인 목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J목사님은 연로하신 데다 신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계신데, 최근에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 지금은 몹시 위독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J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나와 피터를 보고 싶다며 급히 와달라는 전갈을 보내셨습니다. 피터, 저와 함께 지금 당장 출발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있던 나는 J목사님이라는 분에게 꼭 가봐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망설일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함께 가겠노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급히 짐을 꾸렸다. 배낭 속에 세면도구와 몇 벌의 여벌 옷 등 필요한 물품 등을 챙겨 넣었다. 배낭의 나머지 공간은 조그만 성경책들로 모두 채웠다. 으레 시골 지역에는 성경을 필요로 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기 때문이다. 길에는 어젯밤부터 내리고 있는 눈이 이미 30센티미터 가까이 쌓이고 있었다. 우리는 눈길을 헤치고 어렵사리 열차역에 도착하였고 정오에 출발하는 차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난방이 없는 열차 안에서 얼마 동안 추위에 떨었을까. 차 안 천장에 붙어있는 형광등이 희미한 불빛이 어느새 환하게 커져 있었다. 달리는 차창 밖에 내리던 눈발은 그치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차창에 대고 모아진 두 손 사이로 얼굴을 밀착해 창 밖을 내다보았다. 뒤로 지나가는 계곡들 사이로 추수를 끝낸 눈 덮인 들녘의 풍경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얗던 눈은 어느새 어두움 속에서 짙은 회백색으로 변해 있었다. 메스껍던 속은 좀 나아졌으나 몸은 여전히 추위로 떨고 있었다.
어느덧 우리를 싣고 달리던 열차는 속도를 줄여 M지역의 조그맣고 초라한 역사 앞에 미끄러지듯 들어가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정지하였다. 우리는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열차에서 내렸다. 어둠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몇 명의 형제들이 한눈에 알아보고 밝은 모습으로 맞이하였다. 그들은 우리 짐을 빼앗듯이 받아들더니 미리 대절해 놓은 승합차 쪽으로 안내하였다. 차는 논 사이로 난 길을 달리더니 어느덧 한 마을의 골목길을 이리저리 달리고 있었다. 골목길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다. 우리를 태운 차량의 전조등 불빛으로 전방만이 환하게 비추어지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덧 차의 전조등은 허름한 철문을 비추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대문 옆으로 ‘00교회당’ 이라는 퇴색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이 차에서 모두 내리자 그 차는 골목길을 재빨리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이 사라진 골목은 다시 칠흑의 어둠과 정적속으로 들어갔다. 인도하던 형제가 철문을 탕탕 두드려 놓고 잠시 안쪽의 인기척을 기다렸다.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안에서부터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철문이 쇳소리를 내고 열림과 동시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형제 자매들이 나와서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이하였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허름한 예배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J목사님과의 만남
예배당은 약 100명 정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크기의 공간이었다. 맨 먼저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예배당 한 쪽에 피워놓은 모닥불이었다. 예배당 내부는 흔들리는 모닥불 빛으로 희미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위로는 높은 천장에 서까래 등의 목재 구조물과 지붕에 얹어 놓은 기와의 모습이 보였다. 아래 바닥은 흙바닥 그대로였다. 모닥불 주변에는 앉은뱅이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형제 자매들이 그 모닥불 주위에 방금까지 둘러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우리가 들어서자 서로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느라 조용하던 공간은 한바탕 활기를 띠었다. 형제 자매들은 우리를 따뜻한 모닥불 가에 앉도록 배려해 주었다. 모닥불의 따스함이 얼어붙은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순간 메스껍던 속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편안해지고 어지럽던 머리도 개운해졌다. 오는 길에 겪은 장시간의 추위와 차멀미의 고통이 일순간에 잊혀졌다.
이 때였다. 우리들의 시선은 모두 예배당에 딸린 침실에서 형제 자매들의 부축을 받고 힘들게 걸어나오고 있는 한 노인에게 고정되었다. 순간 나는 그분이 바로 우리를 불러 이 자리에 오게 한 J목사님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일어나 몇 발 앞으로 나가 목사님의 손을 잡고 인사를 드렸다. 그분은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밝은 모습으로 맞이해주시며 오느라고 수고했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목사님의 연세는 올해로 일흔 둘이다. 그의 창백해진 얼굴빛은 병세가 매우 위중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목사님은 짙은 색의 누빈 솜옷바지와 겨울 방한복을 위에 입었으나 조금은 추운 듯이 보였다. 깊게 파여진 얼굴의 주름들은 그가 걸어온 인생 길에서 겪어야 했을 모진 시련들의 흔적처럼 보였다. 목사님은 비록 병세가 악화되어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야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지만 비교적 큰 키와 넓은 어깨를 가지고 계셨다. 젊었을 때의 목사님은 분명 당당한 체구의 건장한 모습이었으리라.
우리는 모닥불가로 모여 앉았다. 몇몇 자매들이 부산히 움직이며 대접하기에 바빴다. 표면에 물기가 있는 방금 씻어낸 듯한 유리컵들이 준비되었고 약간의 녹차 잎들이 그 안에 넣어졌다. 더운 김이 올라오는 보온병을 기울이자 뜨거운 물이 찻잎이 들어 있는 유리컵 안으로 부어졌다. 나는 따뜻한 녹차가 들어있는 유리컵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그리고 뜨거운 녹차를 후루룩 소리를 내며 조금 마셨다. 따뜻한 온기와 구수한 녹차의 향이 압안에 퍼져갔다. 모닥불의 열기는 나의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모닥불 건너편으로 흔들리는 불빛에 비친 밝은 미소를 머금은 젊은 형제 자매들이 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주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렸다.
잠시 후 데이빗과 나를 위한 저녁 식탁이 준비되었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박하게 만들어진 나무 식탁이 모닥불 옆에 놓여지고 의자 둘이 준비되었다. 소박한 농촌 음식들이 식탁에 올려졌다. 몇 개의 음식 접시가 올라온 뒤 한 자매가 은색 비닐로 포장된 무언가를 데이빗과 내 앞쪽 식탁에 겸연쩍은 듯 하나씩 올려놓았다. 은색의 비닐 표면에는 형형색색의 조금은 촌스러운 도안이 인쇄되어 있어 시선을 끌었다. 농촌식탁에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것은 아마도 시골가게에서나 구입했음직한 일종의 인스턴트 식품처럼 보였다. 그 자매가 우리를 대신해 은색의 포장지를 뜯었다. 빵이었다. 자매는 수줍은 듯 빵이 식탁에 올려진 이유를 설명했다.“혹시 우리가 준비한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고 준비한 거예요.”나보다는 노란 머리의 데이빗을 고려해서 준비한 듯했다.“아니 괜찮습니다. 우리들은 아무거나 다 잘 먹습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되도록 데이빗과 내가 그 곳의 형제 자매들과 이질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빵을 옆으로 조금 제쳐놓았다. 그리고 중국 사람들처럼 밥그릇을 손위에 올려놓은 채 접시 위의 반찬들을 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밥그릇을 입에 대고 나무 젓가락으로 그릇 안의 음식들을 입안에 넣었다. 음식을 한 입 물고 씹으면서 연신 다음과 같이 말했다.”음… 맛있네요!” 나와 마주 앉아 있던 데이빗도 맛있다는 나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앞에 차려놓은 음식을 열심히 먹었다. 식탁 옆에서 섬겨주던 자매는 그래도 조금은 걱정스러운지 연신 빵을 좀 먹어보라고 권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다시 따뜻한 모닥불가에 모여 앉았다. 보온병 안의 더운물이 한번 더 각자의 찻잔에 부어졌고, 한 형제는 모닥불에 나무를 더 넣어 불꽃이 좀더 피어나도록 하였다. J목사님은 데이빗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시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내가 두 분을 급히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주께서 저를 곧 부르실 것 같아서 입니다.”
J목사님은 자신이 신장암을 앓고 있고 지금은 더 악화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1년 전에 의사로부터 신장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당시 의사는 목사님이 석 달 정도 밖에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목사님은 자신이 지금까지 1년이 넘도록 목숨을 더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천국에 가기 전에 이 땅에서 무언가 마무리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목사님은 피를 토하고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었고, 지금은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상태였다. J목사님은 우리를 한동안 바라보시더니 천천히 말씀하셨다.
“저는 이 시골 지역에서 주께서 맡겨주신 영혼들을 돌보며 목회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가 하늘나라로 곧 가야 할 때가 되었는데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곳에 남아 있는 영혼들을 돌보며 복음 전파 사역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놓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여기 두 분께 부탁이 있습니다.” J목사님은 좀더 분명한 어조로 말씀을 이어갔다. ”이곳의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주십시오.”
잠시 예배당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 순간 우리는 모종의 신성한 위엄이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느꼈다. 나의 귀에 들린 음성은 평생 주를 위해 살다가 이제 나이들어 병든 한 노목사가 생의 마지막에 하는 유언이 분명했다.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다. 그 때 예배당에는 분명 하늘의 영광이 둘려 있었고 주님의 보좌가 있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이 있었다. 데이빗과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나는 모닥불 주변에 앉아 목사님의 말씀을 함께 듣고 있던 젊은 형제 자매들을 둘러보았다. 젊은이들의 눈동자가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J목사님과 우리들은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목사님은 우리를 보니 복음서의 말씀이 생각난다고 하셨다. 요셉과 마리아가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갔을 때 시므온이라는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날 마침 성전에 와 계신 어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시므온은 어린 예수님을 받아 안고 하나님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군요” 라고 하였다.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시므온의 심정이 바로 지금 나의 심정입니다. 이제 나도 평안히 하늘나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J목사님을 회상하며
우리는 이틀 더 그 곳에 머물며 성도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척박한 산지를 개간하여 경직하며몇 마리 안 되는 양을 방목하는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으니 언제나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곳 형제 자매들은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마다 사모함으로 들었고 성령께서 그들을 위로하셨다. 데이빗과 나는 형제 자매들과 J목사님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곳 성도들이 손수 만든 양젖 치즈가 그들에게 성경을 나누어주고 생긴 배낭의 빈 자리를 대신했다.
데이빗과 나는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그들을 섬길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곳에 오던 날의 춥고 흐리던 날씨는 어느새 봄날처럼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로 변해 있었고 길에 쌓여있던 눈도 대부분 녹아 있었다. 버스 차창에 비추이는 밝은 햇살의 따사로움 속에 우리는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차창 밖에 이어지는 들판들도 밝은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J목사님을 회상하곤 한다. 그리고 그분을 회상할 때마다 성령께서 나에게 주신 “우리를 도우러 오라던 마게도니아인의 환상”을 떠올린다. 그 후 나는 동료들과 함께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하는 사역에 전념하게 되었다. 사역의 어려움을 만날 때면 하늘나라에서 응원하며 격려하고 있을 J목사님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문화혁명 시절 J목사님이 19년 동안 노동수용소에서 고생할 때,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맞아 등과 허리에 남아 있던 두 줄기의 선명한 채찍 자국이 가끔 생각난다.
김피터/중국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