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분류보기 > 전체보기 
북쇼핑
2001.2.20  통권 68호  필자 : 나여호수아  |  조회 : 2554   프린트   이메일 
[사역의 현장에서]
젊은이들과 함께하며

끝없이 도전하고 바라며 좇아가는 삶
3년 전, 처음 공항에 가족과 내렸을 때 어느 누구 하나 반기는 자 없이 그렇게 중국 땅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것도 모르는 황량한 곳에서 하나하나 알아가며 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이 막막하기만 했지만, 어느덧 여러 모양의 동역자들, 즉 가정으로 온 사역자들과 독신 사역자들, 그리고 자비량 단기 사역자로 온 젊은 형제, 자매들과 함께 균형을 이루며 팀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하나님께서 하셨다’란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이 땅 중국의 변화속도는 과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빠릅니다.

“불가능한 꿈을 꾸고, 이루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별을 따러 가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젊음이란 끝없이 도전하고 바라며 좇아가는 삶인 듯합니다. 또한 호탕함과 매이지 않음, 개혁과 운동이요, 불가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젊음의 특권인 것입니다. 저는 중국의 청년들 속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열심을 이뤄가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중국에 온 지 4년이 접어든 지금, 매년 성탄절을 맞이하는 기분은 다릅니다. 오붓하게 가족끼리만 드려야했던 첫 해 성탄절이 있었는가하면, 몇 안 되는 제자들과 함께 했던 성탄절도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각 사역마다 제자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자체적으로 조촐히 성탄절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작년 성탄절에는 제자들이 손수 파티를 준비하여 친구들을 초청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젊은이들의 예수님 안에서 성장의 묘비를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 젊은이들을 대하면서, 내가 벌써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지만 마음만큼은 20대 못지않은 젊음을 가진 사람임을 느낍니다. 이들과 함께 축구를 했다가 1주일을 앓아누운 적도 있지만 말입니다. 젊은이들 속에 살아가고, 저들과 함께 호흡함이 나의 큰 행복이고도전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이 젊을 살아드리고 싶은 욕심입니다.


캠퍼스의 두 가지 ‘열심’
중국의 캠퍼스에서 가장 주목하는 두 가지의 ‘열심’이 있습니다. 하나는 캠퍼스 구석구석의 돌로 만든 벤치에 앉아 공부에 열중하는 젊은이들의 열심이고, 또 하나는 타인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있는 걺은 남녀들의 열심입니다. 저자의 열심, 그리고 또한 후자의 열심에서 저는 이 나라의 미래를 바라봅니다. 어떤 열심히 우세한가에 따라 이 나라의 운명이 판가름 나겠지요.

중국의 미래 지도자들을 배양하는 대학은 97년까지만 해도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일명 공부벌레들만의 양성소였습니다. 왜냐하면 국가가 지원하여 미래 일꾼들을 위한 정책을 세워주므로, 대학생들에겐ㄴ 열심히 공부하여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겠다는 사상이 모든 의식의 흐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97년 이후 중국 정부는 교육기관에 대한 국가지원을 제한하여, 학생 본인과 부모에게 재정적 부담을 넘겼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 젊은이들의 의식에는 이제 더 이상 국가를 위해 공부한다고 하는 애국정신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이들의 최대의 고민이자 갈등은 직업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 고생한 부모님께 보답하고 자신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ㄹ흘러 들어가, 진정으로 찾고 갈구해야 할 삶은 좋은 직장이나 명예, 부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전하는 ㄷ것이라 함은 큰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껏 자신이 추구해온 삶, 진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삶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이들의 사상이 너무나 고정되었습니다.

후자의 열심은 중국 젊은이들의 특징 주 하나인 개방적 연애관을 보여줍니다. 거리, 캠퍼스 곳곳마다 낯 뜨거운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볼 때, 내가 어느덧 너무 보수적인 세대가 되어버린 탓인지 야단을 칠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외국인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 항의거리가 될 수 있을 jet 같아 참았는데, 지켜보면 볼수록 이건 특별한 장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중국인 교수님에게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기성세대의 입장은 어떠한지 물었을 때, 선생님은 자기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자기가 관여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어쨌든 중국에서는 젊은이들의 그러한 생동에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면서 무분별하게 들어온 사상 중 하난가 이런 자유분방한 연애관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대다수 중국 젊은이들의 연애관은 ‘계약적 연애’입니다. 생활에서 부딪히는 어려움과 외로움 등을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지내다가, 졸업 이후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 아무 미련 없이 헤어질 수 있는 그런 관계입니다. 편하긴 하지만 원가 씁쓸한 기분은 어절 수 없는 듯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젊은이들에게
1980년부터 시작된 ‘한 자녀 정책’이라는 산아제한으로 인해, 현재 중국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외동아들, 외동딸로 자라났습니다. 조부모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자라다보니, 올바른 가정교육이 이뤄진다기보다는 부모가 아이의 기호를 맞추는 식의 과보호 속에서 자녀들이 가정의 주인처럼 행세하게 되었는지요. 오늘날 중국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은 매우 개인적이어서, 공동체 샌ㅇ활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좁은 대학 기숙사에서 어쩔 수 없으니까 7-8명이 한 공간에 사는 것일 뿐,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과 공동체 의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간혹 성격이 아주 모가 난 아이가 있어도, 그 아이에게 선의의 조언을 하는 사람은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여깁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자가 되었을 때 우리는 저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래야 한다. 그를 정죄하고 판단하기 전에 먼저 그를 위해 기도하고, 더 섬겨야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고해 줘야 한다. 등등…. 주이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요구되는 십자가라고나 할까요. 젊은이들은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순종하면서 점차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간증하곤 합니다.

갈림길에 선 젊은이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가득 찬 이곳에도 소망이 있음은, 남을 낫게 여기며 선기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작은 예수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젊은이들은 공산당에 들어가 출세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비록 보장되지 않은 미래라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 되신 예수를 선택할 것인지 고민합니다. 결국 어떤 이는 공산당을, 어떤 이는 예수를 선택합니다. 공산당을 선택해 떠난 제자로 인해 안전의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결코 쉬운 결단을 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주님 앞에 더 머리를 숙이며 아뢰는 길 밖에 없습니다. 20여 년 이상 잘못된 사상과 이념 속에서 교육받고 자라온 이들의 가치관을 바꾸는 길은 그리스도의 보횰 밖에 업음 잘 알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소명을 불들라
저 또한 부족하고 아직 모르는 것이 많지만, 사역을 준비하고 계신 예비 선교사님들을 위해 몇 가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선적으로는 소명에의 확신입니다. 간혹 젊은 사역자들 중에는 열정만으로 선교현장에 나왔다가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자신의 정체감이 흔들기고, 급기야 부르심의 소명이 흔들려 돌아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주님과의 견고한 관계 속에서 계속적인 부르심의 확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보안의식입니다. 중국은 곁으로는 매우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복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약이 많은 곳입니다. 전화, 인터넷, 편지, 팩스 등 ㅁ든 정보가 도청되고 있음을 명심하고, 자산의 모든 자료에 대해 보안을 지키는 것이 원칙입니다. 철저한 보안교육을 받지 않고 열심만으로 이곳에 와서 단기선교로, 혹은 장기사역으로 일하는 분들에게서 위험스러운 광경을 자주 발견합니다. 무엇보다도 뱀 같은 지혜로 행동해야만 하는 곳이 중국입니다.

또 하나, 중국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역사를 모르고서는 이들의 내면을 만질 수 없습니다. 또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관계가 이뤄진 이후, 성령의 민감함으로 복음의 담대함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젊은이들과 함께할 사역자
지금 이곳에는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저들과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사역자가 필요합니다. 이들과 마음이 통할 젊은 사역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저희는 한국에서 매학기 50명 이상의 자비량 선교사들이 중국에 와서 단기(년)로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이를 위해서 방학 기간에 교회 청년부나 선교단체에서 200명 이상의 딘기선교팀들이 오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현지를 밟고 목도한 자만이 하나님의 행하심과 이 땅의 필요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기로 온 분들에게 저희는 1년, 2년의 자비량 사역을 권고합니다.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2년 동안 군대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주를 위해 2년 동안 젊음의 시간을 헌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이곳을 다녀간 단기선교사(학생)의 90%가 장기사역자로 헌신하였습니다. 그 밖의 학생들도 동역하는 자로, 후원하는 자로 살기로 헌신하였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바로 하나님을 목도하고, 그분의 행하시는 역사의 증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인정받고 칭찬받던 사람도, 그저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도 ,모두 이곳의 생활 속에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고 또한 분명한 삶의 푯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바로 이들을 통해 이 땅의 젊은이들을 일깨우며, 또한 이 땅의 젊은이들이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경배하며 찬송할 그 날을…. 세계로 복음을 들고 나아갈 전도자의 힘이 이 땅에 있음을 확신합니다.



나여호수아 | 중국선교사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