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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8.20  통권 71호  필자 : 강성광  |  조회 : 2679   프린트   이메일 
[특별 기고]
중국선교, 성령의 역사와 보조를 맞추자

내적 연단기를 지나는 중국 교회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져들고 있지만 유독 중국 경제는 계속해서 빠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러한 중국 경제의 성장과 활성화는 세계 경제의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중국 교회의 영적인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중국 교회는 그 규모나 영향력에 있어서 이 시대 기독교의 올바른 성장과 활력을 주는 교회로 빠른 발돋움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나 서구 교회의 신학이나 조직, 목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 교회는 모순과 부족함이 많은 교회로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적으로 성도 개개인의 순수성과 헌신도, 그리고 영적인 열정은 현존하는 교회 가운데 가장 초대교회적인 생명력과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가 핍박과 환난 가운데 처할 때는 오히려 순수하고 생명력 강한 믿음 안에서 성장해갔지만, 핍박이 없고 평안한 기간에는 종교적 신앙으로 퇴색되어 진정한 영적 활력을 상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중국 교회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기에 특별히 사용하실 수 있는 교회로 준비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 가운데 중국 교회는 불 같은 연단과 특별한 성장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주님을 온전히 따르고 헌신된 삶과 사역을 하기 원하는 개인이나 그룹은 많은 연단을 겪고 있다. 그것은 정부로부터 당하는 외형적인 핍박뿐만 아니라, 내적인 연단 또는 여러 환경을 통하여 얕은 근거를 철저히 흔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표면적이나 인위적인 사역에 안주하지 않도록, 영적 생명과 교회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깊이 뿌리박지 않으면 안 되도록 불 같은 연단을 받는 것이다. 이런 과정 가운데 그들은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분만 의지하고 바라보는 신앙인으로 가다듬어지고 있다. 교회가 순전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께 깊게 헌신되고 집중되지 않았을 경우, 오히려 이단을 통해서 이들을 흔들어 기복적인 종교 신앙과 참 생명의 신앙을 구별하여 세우신다.

이제는 중국 교회 안에 수적인 증가보다는 참 생명을 회복할 신앙과 생명이 특별히 준비되고 있다. 표면적인 현상으로는 잘 분별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면 깊은 곳에서 성령의 인도와 사역 가운데 조용한 영적 혁명과 부흥이 준비되고 있다. 이 가운데 외형적 핍박은 과거보다 심하지 않지만 내면적인 연단과 시험이 강하게 진행되며,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고 숨가쁜 영적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 필자는 중국 땅 안에 무작정 몰려든 3만 명의 용사가 아니라 기드온의 300명 용사 같은 사람들이 준비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중국 교회의 모순적 상황
최근 중국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과 위험은 교회 외부로부터 오는 핍박이 아니라 교회 내부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그것은 빠른 기독교 발전을 위한 다양한 열심과 세속화, 그리고 인위적인 종교화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교회가 지금까지 여러 한계와 어려움들 가운데서도 빠른 성장과 영적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여러 원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꼽는다면 첫째는 목사 – 여기서 목사라는 호칭은 신학교육을 받고 정식으로 안수를 받은 개념이 아니라, 일반 신도들과 구별되고 지식과 능력을 갖춘 사례를 받는 전임 사역자를 말한다 – 가 없는 것이고, 둘째는 예배당이 없었던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이 중국 교회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가정교회 그룹의 성장과 부흥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체계적인 신학 훈련도 없고 성경 지식이 좀 부족하다 할지라도, 순수하게 주님께 헌신되고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스스로 복음을 전하고 지체들을 섬기는 것이다. 즉 한 사람의 사역자에 의존하는 피동적인 신앙 생활이 아니라, 교회 대다수의 구성원들 모두 사역자적인 헌신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진정한 초대교회적인 역동성과 부흥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늘날 중국 교회 안에서 분명히 증명되고 있는 현실이다.

둘째는 예배당이 없는 것이 중국 교회 부흥의 주원인이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당에 나가 예배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생활과 신앙의 분리가 아니라, 한 가정 자체가 교회이며 생활의 현장이 되었다. 그리고 예배당 한 곳에 제한된 것이 아니라, 한 호주(户主)가 예수를 믿을 경우 그 집이 바로 집회 장소이며 교회로 활용될 수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이웃들에게 자연스럽고 쉽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다. 즉 체계적으로 훈련된 전임 사역자는 없을지라도, 가정교회는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된, 그리고 순수한 동기에 의해 사역하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사역자로 세워져 나갔다. 엄숙하고 종교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멋있는 예배당은 없을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주님만 바라보고 경배하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체로서 간증을 나누고 교제하는 진정한 예수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가정교회 중심의 사역은 어떤 사역자들이 계획적으로 추진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 시대 가운데 초대교회적인 역동적인 교회 생명을 회복시키시는 사역의 결과들이다.

지금 중국 가정교회가 직면하는 가장 큰 도전은, 과거 이천 년의 교회사에서 보여지듯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인 인위적이고 종교적인 열심과 사역이다. 이러한 장애물에 부딪힐 때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순수한 생명이 흘러가는 반대 방향으로 치닫곤 했다. 중국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최근 들어 가속화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중국 교회의 부흥과 영적인 역동성의 주원인이었던 목사가 없는 것과 예배당이 없는 장점들이 오히려 그들의 문제와 단점으로 부각되어, 이젠 정식 목사를 배출하는 것과 예배당 짓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열심과 사역은 일부 중국 교회에서 내부적으로 추진될 뿐 아니라 외부 사역들에서도 중점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소수의 전임 사역자 혹은 전문화된 목사(꼭 목사라는 호칭은 사용되지 않을지라도)들이 세워짐으로 인하여 대다수의 성도들은 가만히 앉아서 공급을 받는 소비자로서의 평신도로 전락하는 것이다.

물론 지도자를 세우는 사역은 지극히 필요하고 중점적인 사역이다. 하지만 모든 성도들이 세상과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세워지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들 모두가 목사와 같은 사역자로 온전히 세워질 수 있도록 그룹 전체의 영적 역동성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예배당 건축도 잘못하면 성령께서 중국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방향과 대치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제 진정 중국 교회를 돕고 세우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선교사가 필요하다
본지 2001년 5/6월 호와 7/8월호에 연재된 중국 교회 사역자의 호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글을 통해 현 상황에서 해외 사역자들이 진행하고 있는 중국 사역이 전체적으로 볼 때 중국 교회를 오히려 더 곤경에 처하게 하고, 중국 교회 스스로 나아갈 길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무섭게 질타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해외 사역자들은 중국 교회 지도자의 이러한 호소를 심각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중국 교회에는 더 이상 선교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아니다. 필요하다. 성령께서 이 시대에 중국에서 행하시고 일으키시는 주님의 교회에 들어와서 그들과 함께 배우고 함께 세워지는 동역자와 친구들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와 교제하고 있는 한 젊은 중국 사역자가 말하기를, 중국 교회가 필요로 하는 동역자는 중국 성도와 사역자들을 사역과 일로 이끌어가고 독촉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들이 더욱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더 온전히 알아가도록 격려하는 사역자라고 하였다. 그렇게 될 때 사람의 일이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역자는 그들을 가르칠 선생이 아니다.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배우는 선배 학생으로서,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사랑하며 충성하는 것에 본을 보이고 격려할 선교사이다. 또한 중국 교회에는 올바른 역사 의식이 있는 선교사가 필요하다. 교회 이천 년 역사 가운데 성령께서 이 시대 주님의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를 깨닫고 그 방향 감각으로 온전한 교회의 생명의 역사 가운데 서서 섬길 수 있는 일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중국 교회 성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성경적인 교회 생명을 회복하기 위해 더 고민하고 기도하고 있다. 이들은 어떤 핍박이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쩌면 우리보다 더욱 깊은 영성을 추구하고 있다. 선교사들은 이 마지막 시대에 성령께서 중국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가시는지를 겸손히 바라보며 배우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중국 교회를 중국 교회가 되도록 돕고, 성경적이고 역사적 관점에서 그들과 같이 서는 것, 그들에 의해 ‘당신은 진정으로 우리의 친구이며 영적인 부모입니다’라는 고백으로 받아들여질 선교사가 필요하다.

이러한 중국 성도들과 교회 안에서 온전한 ‘성육신(동화)’을 이루는 선교사라면, 그들이 더 이상 돈이나 지식으로 자신들을 통제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이런 분을 더 많이 보내주십시오’라고 요청할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마음과 중국 교회를 통하여 회복하길 원하시는 교회의 진정한 영적 부흥과 생명을 준비하시는 주님의 역사에 맞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중국 선교도 이런 관점에서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하며 계속해서 들려지는 주님의 음성에 민감히 순종할 때가 아닌가 한다.


김성광/중국 선교사∙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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