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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20  통권 68호  필자 : 데반  |  조회 : 3969   프린트   이메일 
[문화적용]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96년 여름 중국에서의 첫 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중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베이징(北京) 공항에 도착하여 다음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6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때는 제대로 앉을 만한 의자도 없어서 공항 바닥에 신문을 깔고 앉아야 했다. 그런 일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베이징에는 초현대식 시설을 갖춘 신공항이 건설되었다. 중국의 빠른 변화와 발전 속에서 어떻게 보조를 맞추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면서 보낸 시간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세심하신 사랑과 보살핌에 감사를 드린다. 처음 그렇게 낯설었던 골목과 사람들이 이제는 너무나 다정하게 느껴지고, 먼 곳에 갔다가 다시 오면 고향에 온 것 같은 포근함을 느끼곤 한다.

설 자리를 잃어가는 위구르어
내가 살고 있는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자치구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르로드의 중요한 관문지역이다.지역 특성상 이슬람과 중화문명이 만나는, 상당히 강한 문명충돌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공용어는 중국 전체에서 통용되는 한어(보통화=표준중국어)이지만, 위구르족의 자치구이므로 위구르어도 사용된다. 그래서 필자는 이곳에 온 처음 2년 동안은 한어를 배운 후, 위구르어를 배웠다.

위구르어는 투르크 계통의 언어로서 한국어와 많은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는 알타이어계 언어이다. 위구르어는 중국의 위구르족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심지어 터키에 이르기까지 통역이 필요 없을 만큼 널리 사용되는 언어이다. 비록 독립 국가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위구르 민족은 중국에서 남북한 8배의 넓은 면적에 살고 있고, 중앙아시아에 분포되어있는 인구까지 합친다면 1,300만 정도의 인구를 가진 큰 민족이다. 그런데 중국의 13억 인구 앞에서 상대적인 소수가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위구르어 역시 열등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쓰는 열등한 언어로 취급받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한어는 구사 못하면 살아가기 어려운 나라이다. 그러나 중국의 소수민족 지역에서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연구하려는 사람들이 민족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지금은 현실적으로 그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 지역 대학에서도 위구르어 강의는 점점 감소하는 실정이다. 내후년이면 전면적으로 한어 강의로 전환된다고 한다. 그만큼 이 지역에서 위구르어를 배우는 입지가 점차 좁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구르족이 자기 민족의 언어로 자신들의 역사, 문화와 전통을 배우는 것도 얼마 지나면 먼 옛날 일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 다른 문제는, 현대 위구르어가 한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위구르어로 모자를 ‘모자’라고 발음한다. 한 위구르 학생은 한국어와 위구르어 가운데 비슷한 말이 많다고 재미있어 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 ‘모자’는 중국어 ‘마오즈(帽子)’의 한국식 발음이다. 마찬가지로 위구르인들도 ‘마오즈’를 위구르 식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어 명사의 80%이상이 중국어에서 온 것과 마찬가지로 위구르어도 한어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다. 도시의 위구르인들은 자신들의 말에 대부분 한어를 섞어서 사용한다. 심지어 위구르어로 어떻게 표현하는 지도조차 모르는 단어도 많다. 외부적으로는 한어를 못하면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가고, 내부적으로는 이들이 자신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버리고 무분별하게 주변 언어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인하여, 자연히 위구르어는 급속도로 위축되는 추세에 놓여 있다.

외국인이 위구르어 배우기 어려운 이유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인이 위구르어를 배우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위구르어를 배운 한국인이 위구르인에게 위구르어로 질문을 하면, 그들은 우리가 한족과 같은 외모를 가졌기 때문에 한어(중국어)로 대답한다. 그리고 물건을 파는 위구르 상인들은 대부분 우리를 한족으로 보고 바가지를 씌우거나 불친절하게 대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한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태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처음 위구르어를 배울 때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많은 인내심과 담력이 있어야 위구르인들에게 위구르어로 물어볼 수 있다.이전에는 시내 대부분의 간판들이 위구르어와 한어로 쓰여 있었으나, 위구르문자는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이고 한어만 부각시키는 경향이 짙다.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 거리의 간판과 주변 상황은 많은 연관이 있다. 공공시설과 시내버스, 열차의 안내원들, 그리고 백화점이나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위구르인들도 거의 위구르어를 쓰지 않는다. 심지어 위구르인들끼리 서로한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다.

도시, 특히 대학 안에서는 한어만 배워도 위구르인과 대화가 가능하다. 실제로 ‘민카오한’이라고 해서 초등학교부터 한족들과 함께 교육 받은 위구르인도 있는데, 이들은 2냔 정도 위구르어를 배운 한국인보다도 더 위구르어를 못한다. 그럴 때면 굉장히 미안해하며 당황해하는 사람도 있고, 도리어 우리에게 뭣 하러 위구르어를 배우냐며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외국인에게 위구르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재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교재들은 대부분 한족 학생들이 위구르어를 배울 때 사용하는 교재들이다. 따라서 한어로 설명된 교재로 한국인이 위구르어를 배우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또 아직까지 한국어-위구르어, 위구르어-한국어 사전이 없다. 그래서 하나의 위구르어 단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위구르-한어사전을 찾고, 다시 한어-한국어사전을 찾아야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만 한다. 즉 외국어를 또 다른 외국어로 배우는 어려움이다. 더군다나 한족의 관점으로 번역된 위구르어 교재를 사용해서 배운 후 위구르인과 대화를 했을 때 많은 오해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인들은 ‘니하오’라고 인사를 하는데, 그 의미는 ‘안녕’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위구르인들은 무슬림식 인사인 ‘에쌀라무엘레이쿰(평안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한다. 한족들은 ‘니츠판러마(식사했습니까)?’라고 묻는 습관이 있는데 위구르인들은 이러한 인사를 하지 않는다. 문법설명에 있어서도 한어로 되어 있어서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것이 많고 한어 자체로 설명이 안 도니는 문법도 많다.

민족 간 갈등 사이에서
이 지역에서 공부를 하거나 여행,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다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데 매력을 느끼고 직접 이런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 원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 존재하는 민족 간의 이해관계와 갈등으로 인해서 이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언어를 배우면서 그 문화에 적응하고 친구를 사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곳에서 다른 두 민족의 친구를 사귀는 것은 심적으로 매우 부담되는 일이다.

한족과 위구르인을 함께 가정에 초대할 경우 양측 모두에게 큰 시례가 된다.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이들 모두가 소중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자신들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 장소에서 한족과 위구르인들과 교제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한번은 한족 찬구를 우리 가정에 초대했는데, 위구르 친구가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다. 한족 친구가 먼저 위구르인에게 농담을 했다. “한국에 가서 양 꼬치 장사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니?” 그러자 위구르인 친구는 화를 내면서 대답했다. 나한테 한국에 가서 그런 천한 일을 하라고? 대학가서 교수하면 했지 그런 것은 안한다.“ 이렇듯 평범한 대화에서도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나타난다.

다양한 미족이 살아가는 곳에는 각각의 민족들의 문화와 언어, 관습 등이 다를 수 있다. 무슬림들에겐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금기로 되어 있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더럽혀져 있다고 생각하며, 이들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족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미족이다. 이러한 차이로 많은 갈들이 빚어지곤 한다. 우리는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무슬림인 위구르인과 친구가 되기 위해 집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위구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아무 것도 먹고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전에 찬 위구르 선생이 친구가 되려고 나에게 다가왔다. 어느 덧 마음을 나누는 사이이가 되기를 바라는 시점에서 그는 정중히 내게 물었다. “당신은 돼지고기를 먹습니까? 아니, 먹어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지금 집에서는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먹어본 적은 많습니다.” 그러자 그의 태도는 전과 달라졌고, 이후엔 친구로 가깝게 지내기가 어려웠다.

위구르인들은 후이족(回族)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후이족들은 외모가 한족과 같고 언어도 한어를 쓰기 때문이다. 위구르인들은 “후이족들은 보이는 데서는 알라를 신봉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비난한다. 이처럼 한족이 아닌 이민족 간에도 적지 않은 갈등이 있다.

한 번은 시장에서 아내와 아내의 위구르 친구가 같이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여기저기서 위구르인이 한족이랑 팔짱을 끼고 간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장거리 버스를 탈 때도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운전기사가 한족이면 차에는 대부분 한족들이 타고, 위구르인이면 위구르인이 탄다. 필자는 위구르어를 배울 욕심으로 위구르인들이 많은 차를 타곤 하는데, 내가 한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위구르인들에게 이해시키려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또 한족 친구들과 함께 위구르 지역을 다니거나 친구들을 만나면서 마음속에 많은 갈들이 생긴다. 한어로 이야기를 하면 위구르 친구가 싫어하고, 그렇다고 위구르어로 말을 하면 한족들이 이해를 못한다. 한어로도 위구르 친구와 대화 하고 있지만, 사실 이들의 마음속 깊은 이야기는 자신들의 민족어로 할 때만이 가능한 것을 여러 번 경험하였다.

이러다 보니 이들의 민족적 갈들과 언어 사이에서 배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만약 어느 한 민족만 사랑하고 다른 민족은 사랑하지 않는다면 선택이 분명해질 테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사실이 더욱더 어렵게 만든다.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인들을 사랑하고 이들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중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느끼리라. 나 자신은 이들을 모두 품을 수 없고, 어떤 때는 이 모든 것들을 회피해버리고도 싶지만, 내 안에서 인도하시는 분이 이 일을 위해 나를 부르셨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이 갈들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냥 웃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작은 일에서부터 큰일까지 이러한 갈등의 현장에 있으면서, 사도 바울이 어떻게 타문화권에서 살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갈등의 골이 깊은 다민족 사회에서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바울서신의 한 고백을 묵상하기를 제안하는 바이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괸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나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엇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 9:19-21)



데빈 | 중국인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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