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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20  통권 69호  필자 : 김성곤  |  조회 : 4920   프린트   이메일 
[중국 문화 읽기]
시선(詩仙)과 시성(詩聖)
-이백과 두보의 시 세계-

이백과 두보의 만남
중국 당대의 유명한 시인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처음 만난 것은 천보 3년(744) 여름, 천년 고도인 낙양(洛陽)에서였다. 당시 이백은 현종 황제 밑에서 한림학사로 봉직하다가 당시 실권자였던 고력사의 미움을 받아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두보는 과거 시험에 실패한 후 살 길을 찾아 고관대작의 문전을 열심히 드나들며 동분서주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백과 두보 모두 삶에 지치고 세상에 염증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젊은 시인 두보가 문단의 대 선배인 이백에게 먼저 <이백께 드리는 시>를 건냈다.

구중궁궐의 빼어난 선비시여
몸을 물려 조용한 곳을 찾아가시네
양송 지역을 유람하실 양이면
함께 요초를 주으러 가십시다

이백도 젊은 후배 시인을 사랑했다. 둘은 함께 양송(지금의 개봉)과 제남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함꼐 사냥도 하고, 명승과 고적을 찾아 함께 시를 지으며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그 당시의 그들의 친밀한 모습은 두보의 시에서 “나 또한 그대를 사랑하기를 형제와 같이 하였어라/ 취하면 이불을 함께 덮고 잠들고/ 손을 잡고 가을 길을 함께 거닐었었지”라고 표현되고 있다. 헤어진 후에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백은 “그대 그리는 마음 저 강물과 같아/ 끝없이 끝없이 남쪽으로 흘러가네”라고 했고, 두보도 “쓸쓸한 서재에서/ 아침 내내 그대 생각하네.”, “어느 때나 술잔 들고/ 다시 문학을 논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이백은 주로 강남 지역에서 노닐었고, 두보는 서남 지역에서 유랑했기 때문이다. 이백은 정치적인 이유로 멀리 야랑까지 유배되었다가 사면되는 파란을 겪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강남의 아름답고 넉넉한 풍광 속에서 잘 살다가 지금의 남경에서 멀지 않은 당도라는 지역의 친척집에서 편안히 죽었다. 두보는 가난과 전쟁에 쫓기어 중국의 서남쪽을 흘러다니다가 결국 병을 얻어 장강의 탁한 강물 위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시대가 낳은 두 시인의 시풍
대체적으로 이백과 두보의 시를 거칠게 이분하여 말하기를 전자는 낭만적이요 후자는 현실적이라고 한다. 또 전자는 도교적이요 후자는 유교적이라고도 한다. 이백은 당나라가 흥성한 태평 시절에 작품 활동을 주로 하여 명작들을 내었고, 두보는 당나라가 쇠락한 전쟁 시절에 작품 활동을 주로 하여 명작들을 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백의 작품에는 술과 여자, 음악과 춤이 가득하여 황홀하고, 두보의 작품에는 굶주림과 상처, 울음소리와 몸부림이 가득하여 침울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백의 작품을 말할 때 흔히 인용하는 작품으로 <장진주>가 있다.

그대 못보았는가
하늘에서 내려온 황하의 물이
바다로 흘러가 다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그대 못보았는가
고대광실 밝은 거울을 비추며 백발을 슬퍼하나니
아침에 청사 같던 머리가 저녁에 흰 눈이 되었다네
사람 일생 좋을 때에 맘껏 즐길 일이니
황금 술잔 빈 채로 달빛 아래 버려두지 말 것이라
하늘에서 날 만드니 필시 쓸모가 있을 것이요
돈이사 흩어지면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법.
염소 삶고 소를 잡아 즐겨나 보세
마시기로 하자면 삼백 잔은 마셔야 하는 것이라
(중략)

두보의 시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삼리 삼별이다. 그 중의 한 작품인 <석호리>를 인용한다.

날 저물어 석호촌에 묵었는데
밤이 되자 관리가 사람을 잡아가네
늙은 영감은 담 넘어 도망가고
늙은 부인 문 열고 나와보네
관리의 소리 어찌 그리도 노여울까
부인의 울음소리 어찌 그리도 괴로웁나
부인이 나서서 하는 말 들어보니
“세 아들이 업성 싸움에 출정했지요.
한 아들이 이제 막 편지를 보내왔는데
두 아들이 방금 전사했다고 하였소.
살아 있는 이들이야 어찌 살아가겠지만
죽은 것들은 영영 끝난 것 아니오
집안에 남자라고는 없고
오직 젖먹이 손자가 있을 뿐이라오
며느리가 아직 손자 곁에 있지만
출입할 때 입을 변변한 치마도 없다오
늙은 할멈이라 힘이 없긴 하지만
이 밤 나으리를 따라 가리다
급한 대로 전쟁터 부역에 참여하여
그럭저럭 밥은 지을 수 있을게요”
밤 깊어 말소리는 끊어지고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 들리는 듯 하였네
날이 밝아 길에 오를 제
늙은 영감 한 사람과만 작별하였네

이백의 시에는 술취한 노랫소리가 흥겨운데 두보의 시에는 숨죽여 우는 서러운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그래서 이백은 시선이요, 두보는 시성인 것이다. 이백은 세상에 살았으나 되도록 세상의 근심을 마주하지 아니하고 세상 밖의 신선처럼 자유롭게 살았고, 그 자유로움과 분방함을 시로써 극도로 추구하였으니 시선이 된 것이요, 두보는 세상의 고통을 제 한 몸으로 받으며 부대끼며 살았고 이웃의 아픔을 제 아픔으로 동정하며 살면서 그 사랑과 그 고통을 시로써 힘써 추구하였드니 시성이 된 것이다. 그래서 태평한 시절에는 이백의 시가 즐겨 회자되어 사람들을 더욱 행복하게 했고 고난의 계절에는 두보의 시가 자주 인용되어 고통스런 마음들을 감싸주었던 것이다.

‘선’과 ‘성’의 공존
하지만 이백이 어찌 끝까지 술과 여자만을 말했겠는가? 또 어찌 두보라고 늘상 고통스런 현실만을 바라보았겠는가? 이백의 작품 중에도 민중의 삶에 대한 탄식이 있고, 두보의 작품 중에도 기생과 함께 노니는 유희도 있는 것이다.

겁많은 병졸들
불더위 남쪽으로 어려운 원정 떠나네
길게 울부짖으며 부모와 이별하니
해와 달도 슬퍼 빛을 잃었네
울다 울다 피눈물까지 흘리며
가슴이 무너져 피차 아무 말도 못하네
힘없는 짐승이 맹호에게 덤비고
길막힌 고기가 고래에게 대들 듯
천 번 싸워 한 번도 못이길 싸움
어찌 살아 온전히 돌아올 수 있으리

이백이 쓴 <고풍>이다. 전쟁에 끌려가는 병사와 가족의 이별 장면을 쓴 것이다. 두보의 <병거행>의 병사의 부모 처자가 “옷깃을 당기고 발을 구르며 길을 막고 통곡을 하는 “구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두보의 <기녀를 데리고 납량을 하다>는 시의 “월땅의 여인의 붉은 치마 빗물에 젖고/ 연땅의 계집의 푸른 눈썹 먹은 시름에 젖는다”는 것이나, <곡강>시의 “세상 이치를 따져보면 모름지기 놀며 즐겨야 하는 법/ 무엇 때문에 헛된 명예로 내 몸 구속하리요” 같은 구절은 이백의 노님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시선의 작품 속에 여전히 시성의 세상을 향한 따뜻한 눈길이 남아 있으며, 시성의 시 속에 여전히 시선의 즐거운 풍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무엇이 어떻다는 말인가? 한 사람에게 ‘선(仙)’과 ‘성(聖)’의 욕구가 함께 공존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개인적 지향에 입각한 낭만적이고 초현실적인 일련의 성격이나 행동을 ‘선’이라고 할 수 있고, 비개인적인 지향에 입각한 현실적이며 이타적인 일련의 성격이나 행동을 ‘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개인에게 있어 이 ‘선’과 ‘성’은 언제나 함께 있는 것이어서 시절에 따라, 혹은 장소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선’이 더욱 드러나 자유분방하게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성’이 더욱 드러나 이타의 성스러움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균형이 아닐까? ‘선’에만 몰두한 나머지 ‘성’을 잊고 산다거나, ‘성’에만 집착하여 ‘선’의 자유로움을 배격하는 것은 모두 옳지 못하다. ‘성’은 ‘선’에게 무게를 주고, ‘선’은 ‘성’에게 날개를 준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우주 밖으로 달아나지 않게 되고 땅속 깊이로 꺼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시선과 시성이 만나서 손잡고 노닐었듯이 우리의 심성의 ‘선’과 ‘성’이 서로 만나 조화롭게 삶을 만들어가도록 하자. 이러할 때 우리가 가꾸는 개성적 삶은 공허하지 않게 될 것이며 우리가 지향하는 사랑의 삶은 고단하여 지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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