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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20  통권 69호  필자 : 방선기  |  조회 : 2409   프린트   이메일 
[선교일언]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하라
-직업을 통한 선교-

지난해 여름 중국에서 ‘두 번의 수련회를 인도할 기회가 있었다. 하나는 선교사들의 가정을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랜드 그룹의 지사 원들의 가정을 위한 것이었다. 수련회를 인도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선교와 관련해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교사들의 수련회에서는 정말 처신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나는 목사가 아닌 선생 혹은 사장이 되어야만 했고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야만 했다. 언제 어디서나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선교사들의 사역을 보고 들으면서 정말 수고를 많이 하고 또 열매도 있지만 사역의 범위에 한계가 있다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지사 원들의 수련회에서는 훨씬 자유스러웠다. 직원들이 마음대로 나를 목사라고 불렀고 말도 비교적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다. 기업체에서 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감시로부터 훨씬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회사 내의 상황을 들어보니 자유롭게 중국인 직원들과 접촉할 수 있고 영업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역의 범위가 훨씬 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선교의 구체적인 열매에 대해서 말한다면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며, 이러한 나의 느낌으로 선교사역을 함부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안다. 다만 이런 느낌을 통해서 선교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직업을 통한 선교의 장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직업을 통한 선교의 장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직업을 통한 선교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에 대한 관심은 선교사명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선교비전을 가지고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그 동안 생각하고 있던 바를 나누려고 한다.

직업과 선교와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
전통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직업과 선교는 무관하다고 생각해왔다. 선교는 직업을 버려야만 가능했다. 고기 잡는 어부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배와 그물을 버린 것처럼 직업을 버려야만 선교사역에 헌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실제로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직업을 포기하고 전임사역에 헌신한 사람들이다. 통계적으로도 현재 세속의 직업과 무관하게 선교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와 달리 직업을 선교의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존의 직업을 유지할 뿐 아니라 그 직업을 통해서 선교사역에 헌신하는 경우이다. 주로 의사나 교사들이 선교현장에서 자신의 직업으로 선교사역에 봉사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된다. 요즈음 직업의 종류가 다양해져서 의사나 교사 외에도 작은 기업이나 농업기술 등을 통해 선교에 헌신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경우는 직업을 선교의 통로로 생각하는 것이다. 선교사로서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에 특정한 직업에 속한 사람으로 들어가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다. 이 때 많은 경우 직업은 선교지에 들어가게 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정도에 그친다. 이 두 경우는 직업이 선교사역에 사용이 되기는 하지만, 실제로 직업 자체가 가지는 의미나 그 직업을 통해서 선교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이에 비해 직업 자체를 선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가서 농업이나 상공업과 같은 구체적인 직업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선교지 사람들을 돕는다. 그들은 이 경제활동 자체를 선교사역으로 생각하고 헌신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직업과 선교와 관련하여 다양한 견해들이 있는데, 어느 경우도 그 동기나 선교사역 자체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 현실적인 필요를 따라서 사역을 한 것이며, 직업과 선교에 대해 신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균형을 잃어버리기가 쉽다. 직업과 선교의 관계를 성경에 근거해서 좀더 명확하게 신학적으로 정의한다면, 직업과 선교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두 개의 사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것은 선교지의 특성이나 전략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기본 원리라고 생각된다.

직업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사명이다(창 1:28).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의 복종으로 우리는 직업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알고 인정할 뿐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세속직장에서 일하는 성도들을 향해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고 가르쳤다(골 3:23). 세속직업을 그만두고 선교에 헌신하는 사람들이나, 직업을 가지고 선교에 헌신하는 사람들도 직업 자체에 이런 영적인 가치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선교만이 하나님의 사명이며, 직업은 선교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도구 정도로만 여기는 것은 동기야 어떻든 신학적으로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

반대로 직업의 가치를 강조한 나머지 직업 자체를 통한 활동을 모두 선교라고 하는 것은 선교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나머지 영혼 구원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될 우려가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교의 명령은 기본적으로 영혼을 구하는 것이며, 직업이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업을 갖고 선교에 헌신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직업의 사명과 선교의 사명을 분명히 알고 헌신해야 한다. 물론 이 두 사명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일이 쉽지 않다. 상황에 따라서는 일시적으로 어느 한편이 무시되거나 아예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컴퓨터 기술자로 선교지에 갔던 사람이 컴퓨터와 관련된 일로는 도무지 선교사역을 할 수가 없어서 그 일을 그만두고 의사를 돕는 사역을 하게 된 경우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때로는 직업을 바꿀 수도 있다. 반대로 선교를 하기 위해서 기업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지역의 상황 때문에 구체적인 선교사역을 일시적으로 미룰 수밖에 없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겉으로 볼 때 선교의 열매가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직업선교의 경우 현실적으로는 이렇게 될 가능성이 많지만, 그렇더라도 직업과 선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의 변화에 따라 선교 자체가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교비전을 가진 직업인들의 자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선교비전을 가지고 사는 신앙인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선교사역자로 헌신해서 선교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세가 있다.

첫째로 우선 직업을 사명으로 생각한다면 그 직업에서 인정을 받도록 해야 한다. 직업이 중심이 되는 사역이든, 직업이 선교의 보조가 되는 사역이든 자기가 일하는 영역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위치에서 성실하며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잠 22:29). 종종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회사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선교의 열정은 보여주지만 직업의 영역에서 맡겨진 일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뿐 아니라 별 기여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보았다. 이들의 선교비전이나 열정은 높이 사겠지만, 직업인 선교사로서는 별로 추천할 만하지 않다. 그런 경우에 선교비전이 뚜렷하다면 직업을 그만두고 전임 사역자로 선교에 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둘째로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준비한다면 전도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 선교의 비전이 있고 구체적인 지역을 놓고 기도도 하는데, 정작 현재 있는 곳에서 전도의 열매가 별로 없다면 그 비전이나 열정은 선교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있는 곳에서 구체적인 열매가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전도의 열정은 볼 수 있어야 하며 뿌리는 수고는 해야 한다. 하나님은 꿈을 가지고 기도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선교의 비전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 업무와 전도에서 준비를 하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기도하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프로젝트를 위해서도 주님께 기도를 드려야 하는데, 하물며 타 문화권에서의 직업선교는 어떤 프로젝트보다도 기도가 필요한 영역이다. 특히 전통적인 선교에 비교할 때 훨씬 다양하기 때문에 자신의 은사에 맞고 현재의 형편에 가장 효과적인 방향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한다.

끝으로 기도하면서 좀더 구체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훈련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동생은 다니던 회사에서 해외지사로 나가게 될 것을 예상하고 1년 동안 선교훈련을 받았었다. 훈련 자체로도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비전을 구체화하는 데는 그런 준비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특히 타 문화권에 대한 이해와 적응방법 등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선교지가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지역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선택과 결단
이 일에 헌신한 사람도 일단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선택과 결단이 필요하다. 모든 신앙적인 결단이 그렇듯이 이 일에도 몇 가지 고려할 것이 있다.

첫째, 일단 손해와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나가는 만큼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거나 유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경제적인 보상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의 대우일 수도 있다. 국내에서 의사로서 누리던 돈과 명예를 포기하고 선교지로 향한 어느 선교사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은퇴한 후에 가도 될 텐데 왜 지금 가기로 했습니까?” 그 때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내 인생의 가운데 토막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이것이 직업을 갖고 선교에 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결단이다.

둘째, 이와 같은 각오를 하면서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개인의 은사를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결단이 개인의 욕심이나 야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선교의 은사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선교여행을 하면서 깨닫는 것은 선교사들에게는 입과 관련된 두 가지 은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는 언어의 은사요, 다른 하나는 음식과 관련된 은사다. 언어를 빨리 습득할 수 있거나 의사소통을 잘 하는 은사가 있어야 한다. 선교에서 언어는 기본이기 때문에 도무지 언어의 발전이 없이 선교사역을 한다는 것은 본인도 힘이 들겠지만 객관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또한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은사도 필요하다. 음식은 문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음식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문화적응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은사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결단하는데 중요한 요인은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구체적인 사역의 방향에 대한 결정도 중요하다. 선교사역은 사실상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역을 생각하지 않고 떠나게 되면 애매하게 시간을 보낼 수가 있다. 특히 직업을 갖고 선교지에 나가는 경우는 아무런 열매도 없이 그냥 이름만 선교사로 가서 평범한 직업인으로 지내다가 올 수도 있다. 이 때 너무 환상적인 계획을 짜지 말고 현실적으로 맺을 수 있는 작은 열매를 기대하고 계획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임으로 선교하는 것에 비해 직업을 통한 선교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지만 지구상의 이 모퉁이 저 모퉁이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직업인 선교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 분들이 이 글을 읽고 더 많은 경험들을 추가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방선기/ 이랜드 그룹 사목, 직장사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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