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빠’를 찾는 청소년들
작년 중국에 갔을 때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에서도 ‘왕빠(網吧)'라고 쓰여 진 간판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왕빠란 컴퓨터,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pc방‘을 말한다. 예전에는 대학가 주변에서만 간간히 볼 수 있던 왕빠가 지금은 주택가는 물론 작은 시골 마을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왕빠는 간판이 없다. 어떤 곳은 밖에서 보면 일반 가정집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실상 겉에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왕빠가 중국 전역에서 영업을 하고 있으리라 추측된다.
그동안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관련 기업이나 전공분야의 대학생 등 고학력층에 국한되어 있었다. 일반인들은 컴퓨터가 없거나 집에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혹은 접속비용이 비싸 인터넷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사정은 이미 지났다. 인터넷 문화는 이제 일반 대중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 사이에 부는 인터넷 열풍은 과거 그들의 부모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다. 중국의 청소년들이 인터넷에 쉽게 빠져드는 데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왕빠의 확산에 있다.
얼마 전 가출한 지 두 달 만에 돌아온 15세 소년에 관한 기사가 중국 「北京辰報」에 실렸다. 인터넷광으로 이미 네 번이나 가출한 경험이 있는 샤오샤오(瀟瀟)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두 달 동안 왕빠를 전전하며 생활한 것으로 밝혀졌다. 두 달 동안이나 나이 어린 소년이 왕빠에서 하루 종일 집에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고도 왕빠에 있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고 자세히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가정에는 그를 잘 대해주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가 있었지만, 샤오샤오는 평소에 그들과 별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을 보도한 신문은 도처에 분포되어 있는 왕빠의 부작용이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며,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를 빠지고 학업을 멀리하게 하는 ‘전자아편’이라고 표현했다.
사이버 연애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작년 12월경에 이미 2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대부분이 10대 청소년과 대학생이다. 왕빠를 드나드는 중고생의 절반 이상이 채팅을 통해 이성 친구를 만날 목적으로 왕빠에 온다. 채팅의 내용 또한 사이버상의 ‘연인’과 나누는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런 현상은 날이 갈수록 정도를 더해가고 있다. 중국의 한 신문에 따르면 칭다오(靑島)시의 한 18세 소녀는 두 달 동안 여덟 명의 ‘사이버 애인’을 만났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 소녀의 부모는 밤늦게까지 왕빠에 남아 있는 딸을 집에 데려오는 것이 일이었다고 하니, 중국 청소년들의 ‘왕리엔(網戀: 사이버 연애)’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베이징 시내 중고생의 40% 이상이 인터넷에 빠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중국의 청소년들은 인터넷과 채팅에 빠져드는 것일까? 헤이롱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의 심리학 교사 왕자빈(王佳濱)은 이에 대해, “청소년들이 대부분 독생자녀로 외롭게 자란 탓에 심리상 같은 나이의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방적인 전자오락과는 달리, 채팅(網上聊天)은 상대방이 있어서 즐거움과 고독, 고통 등을 서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현실적으로 부족하거나 이뤄지기 어려운 것을 인터넷을 통해 보충하려는 욕구도 작용한다 했다. 이성 친구를 찾는 것을 대표 사례로 꼽았는데, 즉 초·중학생의 연령상 현실적으로 이성 친구를 사귀기 어렵기 때문에 채팅을 통해 이성 친구를 찾는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인터넷 채팅이 혼자 자란 청소년들의 심리적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라 나쁘게만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방임해서는 안 되며 지도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히 성적으로 예민하고 분별력도 충분하지 않은 청소년기에 쉽게 이성을 사귀는 것에 대해서는 학교와 가정의 신중한 관심과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청소년들 사이에 나타나는 이러한 인터넷 문화에 대해 많은 학부모들은 거의 모르거나 아예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생업에 바빠서 아이들의 공부와 여가생활을 돌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학부모들 스스로가 컴퓨터를 모르는 ‘컴맹’, ‘넷맹’ 이어서 아이들이 인터넷상에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어떤 학부모는 아이들이 왕빠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왕빠에 모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우려하는 중국 정부
인터넷 문화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는 중국에서 인터넷과 관련한 청소년 문제는 자못 심각해 보인다. 지금 중국에j는 가뜩이나 성의 문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청소년들의 사이버 연애 현상에 대해서도 학교기관과 학부모들이 나서서 싹이 자라기 전에 막아야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상하이(上海)시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인터넷 지도원까지 등장했다. 그들은 나이가 어리고 판단력과 자기통제력, 분별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인터넷 세계에 진입하는 길을 이끌어줄 책임을 맡는다. 베이징에서는 지난해에 왕빠 안전관리 통지문을 발표했다. 또한 최근 상하이 정부는 오염된 인터넷 문화를 깨끗이 하자는 취지 아래 허가 없이 불법으로 영업하고 있던 1000여 개의 pc방을 폐쇄시켰다.
하이테크, 하이터치
한국의 청소년 문제 역시 기성세대가 심각히 우려하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이지만, 이웃 나라 중국도 이에 못지 않은 현실 속에 고민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갑작스런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를 맞은 중국에서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가로놓인 벽이 쉽게 허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한 자녀로 자라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중국의 신세대들은 가난과 전쟁, 혁명과 투쟁을 겪은 부모 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상과 감정을 갖고 있다. 독재적이고 획일적인 사상의 통제 속에서 개인의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야 했던 부모와 달리, 지금 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쉽게 상대방과 관계를 맺어간다. 이들은 중국의 그 어느 시대보다도 풍요로운 경제발전의 유익을 누리는 혜택 받은 세대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이테크의 수혜자인 그들 내면의 하이터치에 대한 갈망을 본다. 그들의 외로운 영혼을 깊이 만질 수 있는 그 누군가를 그들은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한영 | 본지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