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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6.20  통권 70호  필자 : 편집부  |  조회 : 2299   프린트   이메일 
[인터뷰]
중국선교 역사의 산 증인,방지일 목사

방지일 목사(91.영등포교회 원로목사)는 1937년부터 1957년까지 중국 산동(山东)성에서 선교사로 사역한 중국선교의 대선배이자 한국 교계의 원로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주의 일에 진력하는 방지일 목사는 미주, 유럽, 아시아 곳곳을 다니며 집회를 인도하고, 특히 해외선교 현장을 방문하여 후배 선교사들을 격려하는 사역을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다. 중국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후배들, 그리고 헌신자들을 위해 21년 선교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과 격려를 부탁드렸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목사님이 어떤 배경에서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셨는지 이야기해 주십시오.

저는 3대째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님(방효원 목사)이 1917년 홍승한 목사와 함께 총회에서 중국 산동성 래양(莱阳)으로 파송되어 40여 년 동안 중국 선교사로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신앙 좋으신 조부모님 품에서 자랐습니다.후에 중국에 선교사로 갈 때 그분들을 모시고 갔지요. 중국으로 떠날 때 평양역에서 저를 전송하던 신앙의 동지들은 “중국 사람이 되라”는 말로 고별인사를 대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하여, 중국 영혼을 위하여, 중국인과 함께 울고 웃는 중국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지요.

목사님께서 중국에서 선교를 시작하신 당시(1937~1957)는 선교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데, 선교사로 파송되시기 전에 훈련을 받으실 기회가 있었습니까?

선교훈련은 따로 없었습니다. 중국에 바로 들어가 어학공부만 3년을 했습니다. 게다가 중국에 들어가자마자 일본과 전쟁이 일어나서 그나마 중국어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익숙해졌습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외국인에게 따로 중국어를 가르쳐주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개인교습을 받았습니다. 한 중국인 장로와 같이 성경공부도 하고 ,그 밖의 다른 교재로 중국어를 공부했지요.

그 당시 한국인 선교사를 대하는 중국인들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중국인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민족적 자부심이 높습니다. 이것이 큰 장점입니다. 당시는 중국에 반일(反日),항일(抗日) 기운이 높아서,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 사람으로서 선교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대체로 중국인들은 서양인들을 싫어했지만, 한국인에게는 호기심으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그들과 잘 지낸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지요.

목사님께서는 중국인들을 어떤 방법으로 전도하고 양육하셨는지요? 양육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과 같이 살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말씀이지요. 처음에는 한두 명을 전도해 작은 집을 얻어 함께 지내면서 예배도 드리고 학습, 세례, 집사 직분도 주었습니다. 처음 교회를 세우고는 ‘도리반(道理班)’이라고 하는 단기성격학교를 짧게는 한 주일,길면 한달 동안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초신자로부터 사역자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가르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글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글을 가르쳐 책을 볼 수 있게 하여 성경을 가르쳤는데, 처음 믿을 때부터 성경에 뿌리를 두게 한 일은 참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도리반의 교사는 처음에는 제가 했지만, 차차 여전도사를 데려다 그가 주로 식자반(문맹자들을 대상으로 글을 가르치며 성경을 가르침)을 맡았습니다. 개척 전도 뿐 아니라 불신자를 이끄는 데도 큰 효과가 있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양육된 이들이 전도와 교회봉사에 참여하게 되면서 저는 예배와 성경 가르치는 일에만 주력하였습니다. 그때 개척했던 교회가 36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고 건물만 남았을 겁니다. 그때의 교회 분위기는 아마 지금의 가정교회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 중국이 공산화가 되었는데, 이후 정부와의 관계는 어떠했습니까?

정부에서는 나를 중국 목사로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중화기독교회라는 중국 교단에 속한 선교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외국 선교사는 추방됐지만 나는 남을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1959년 공안국에서는, 내가 거주하던 칭다오(青岛)가 주요 군사 항구라 일체 외인은 거주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속히 거주지를 옮기라고 했습니다. 제남(济南)으로 가면 집도 알선해주고 생활 대책도 세워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내 자신의 뜻에 의해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총회에서 파견된 몸이 내 마음대로 옮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떠나야 한다면 나를 파송해준 총회에 돌아가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고 하면서 3년을 버텼습니다. 강제로 끌려가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것이 아니라면, 제가 세워 놓은 원리를 어기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한 것이지요.

당시 목사님께서 양육했던 중국인들이 현재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계십니까?

사실 저는 중국을 떠나온 이후 중국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들과 연락을 할 경우 그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서였지요. 감사한 것은,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이들의 아들, 딸들이 잘 성장하여 가끔씩 편지로 나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직접 찾아오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도 내가 개척했던 교회의 신도였던 분의 손자가 무역사업으로 한국에 온 김에 나를 만나러 오기도 했습니다. 참 기특하고 감사한 일이지요.

목사님께서 선교를 시작하시던 때와 오늘의 중국선교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십니까?

주님의 분부를 받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그 사명을 개 교회들이 앞장서서 감당하는 것과 또한 개인적으로 선교사들이 감당하려고 하는 열정은 좋은 것 같습니다.그러나 선교는 함께 협력해야 하는데, 개인적인 성향이 너무 강하게 드러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역지에서도, 재정의 후원이 부족한 선교사들과 함께 나누며 사역했던 예전과는 달리 개인주의가 팽배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중국선교에 있어서 가장 약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교사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자녀교육입니다. 현지 학교에 보내려 해도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또 국제학교를 보낼 경우는 교육비가 만만치 않아 많은 어려움들을 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선교사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 함께 고민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파송한 교회들이 같은 마음으로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생활 보장을 해줘야 하는데 명목상일 경우가 많습니다.아이들의 교육문제는 선교사들의 신경을 분산시켜 사역에 있어서도 많은 장애가 됩니다.

오늘날 선교사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교사로 나아가기로 결정할 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확실한 ‘부르심(calling)’입니다. 부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일감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감으로 일을 하면 하나님의 일이요, 확실한 부르심이 없는 사람들의 사역은 비즈니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도 부르심만 확실하다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지나치게 감상적인 면으로 치중하는 것은 위험하지요. 하나님으로부터의 부르심은 인격적, 감상적, 의지적인 면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현재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 그리고 중국선교의 비전을 갖고 준비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확실한 소명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선교지에 대한 많은 연구도 필요하며 지혜롭게 잘 처신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무엇보다도 그들을 대할 때 겸손해야 합니다. 중국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이며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간직한 대국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선교할 때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예절을 갖추어 겸손한 자세로 다가갈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가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갖고, 그들의 장점을 배우겠다는 태도로 복음을 겸손히 전한다면 성공할 것이지만, 우리가 준다, 가르친다, 위에서 주니 받아들이라는 식의 수동적이고 예속적 신앙을 전파하려 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일이야말로 선교의 대원칙입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의 최근 근황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1979년 은퇴한 후 지금까지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성경강해, 「말씀의 샘」, 「본대로 들은 대로」 등 90여 권의 책을 썼고, 지금도 매일 새벽 글쓰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지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교파를 초월하여 뜻있는 목회자들과 매주 한 번씩 성경연구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있어 자주는 못하지만, 저를 부르는 성도와 목회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기쁨으로 갑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한 영 편집장
글/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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