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찾은 부모님의 땅
1990년도 초부터 한국을 드나들면서 나는 부친의 고향인 대한민국에 아주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 산에는 자원이 거의 없고 땅속에도 기름 한 방울 묻혀 있지 않지만, 그래도 아시아 지역에서 손꼽힐 정도로 잘 산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그만큼 지혜롭고 근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중국에 살소 잇는 우리들도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우리 연배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북한 교재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본주의나 한국에 대해,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고 압박하며 소수만이 잘 살고 다수가 못 사는 형편없는 나라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10년 전 친척방문차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 순간 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포공항에서 택시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가슴은 두근거렸으며, 우리와 다른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언행을 조심하지 않으면 혹시 여러 가지로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택시기사의 친절하고 부드러운 대회와 길거리에 걸려 잇는 공익 광고를 보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예를 들면 ‘어른이 지킨 질서 애들이 따라 배운다.’, 한 사람이 지킨 질서 모이면 나라 질서‘ 등의 광고문, 그리고 버스와 전철에서 젊은이들이 연세 많은 분에게 “먼저 오르세요.”, 자리를 양보하며 “앉으세요.”하는 것을 보았을 때 중국에서 들었던 생각과는 달리, 한국은 예의바른 나라이며 문화문명이 발달한 ㅏ라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큰 손님’에서 ‘한국찌꺼기’로
한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한국의 역사와 근대 발전사에 대해 다소 알게 되었다. 70년대, 80년대에는 모든 국민이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한 결과 커다란 경제, 문화발전을 이루었으며, 수출이 늘어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한국의 경제 발전은 세계의 주목을 끌었고, 이로 인해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교포들이 많은 도움을 받게 된 것도 사실이다. 많은 교포들이 옛날에는 ‘철밥통(국가에서 보장하는 평생직업)’에 매달려 월급을 타서 생활하였지만, 한국 방문길이 열리자 너도 나도 한국으로 들어왔다. 심지어 생명의 위험을 무릎 쓰고 갖은 방법으로 밀입국하여 돈벌이에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수년 동안 이뤄진 교포들의 한국 방문과 중국을 드나드는 한국인들에 의해 많은 중국인(한족)과 교포들은 한국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한국인이 중국에 여행이나 친지 방문을 오면 교포들은 큰 손님이 온 양 큰 상을 차려 대접하였고, 신혼 첫 날 한 번 밖에 덮어보지 않았을 이불과 요를 깔아주며 환대하였다. 아마도 처음 중극을 방문했던 한국 친척과 여행객들은 다수가 좋은 분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95년 이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이 점차적으로 개방되면서, 우리가 보기엔 큰 부자였던 한국 사람들이 주욲에 와서 돈벌이에 나셨다. 장사도 식당에서부터 사우나, 술집, 가라오케, 각종 생산공장, 심지어는 자그마한 구멍가게까지 못 하는 장사가 없었고, 인력수출한다는 눈가림으로 ‘사람 장사’까지 나섰다. 직접 보기도 하고 들은 말에 의하면, 중국인이나 교포 중에 한국을 오기 위해 한화 6-7백만 원을 노무회사에 맡겼으나 결국 사기를 당해 한국도 못 오고, 빚더미에 올라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 자살한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이렇게 애써 입국한 사람 중 대부분은 회사나 식당 등에서 일하게 되는데, 대부분 한국인들이 힘들어하는 고된 노동 또는 월급이 적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이다. 게다가 자칫하면 한국인 사장들에게 욕을 먹거나 매를 맞는 일도 많다고 한다. 며칠 전 중국을 자주 드나드는 비교적 솔직한 한국인을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자기가 중국에 2-3년 있어본 결과,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행하는 언행을 보면서 같은 한국인으로서 얼굴이 뜨겁다고 했다. 그 원인인즉, 돈 없는 한국인들이 중국에 가서 돈 있는 체하며 못 사는 교포들이 차마 생각도 못하는 낯 뜨거운 짓도 많이 해서, 요즘 중국인과 교포들이 한국인을 보는 눈은 아주 차갑다고 한다. 심지어 한국인에게 대놓고 ‘한국놈’, ‘한국찌꺼기’란 말을 하는 중국인과 조선족들도 있다고 한다.
한국이 있어버리고 있는 것은
그렇다면 큰 손님으로 한국인을 모시던 순진한 사람들이 왜 한국인에게 이렇게까지 대하게 되었는가? 이는 문명국인 한국에도 인격수양이 덜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에 가면 돈 있는 체하며 어깨에 힘을 주지만, 실제 한국에서 집 한 탄 없이 살면서 빚 때문에 중국에 피신 간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95년 이전만 해도 한국에 와보면 중국인이라고 친절히 대해 준다고 느꼈는데, 근 4-5년간을 지나다 보니 많이 달라졌다. 물론 그동안 일부 중국인과 교포들이 한국인에게 남긴 좋지 않은 인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볼 때 한국 사람들의 인심은 매우 각박해졌다.
이번에 입국할 때도 세관 검사관이 대단치 않은 일에 트집을 잡고 신경질을 내면서 하는 말이, 편하게 살려면 중국에서나 살지 무엇 하러 한국에 오냐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살아온 우리는, 비록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고향이고 같은 민족이 살고 잇는 나라이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한국을 고향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를 대표하는 공무원에게까지 이런 말을 들을 때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한국이 IMF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원인도 있겠지만, 요즘은 몇 년 전보다 인심이 많이 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며칠 전 인천행 전철을 탔는데 명절이어서 그런지 승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필리핀 사람처럼 생긴 한 사람은,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짚고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자 동전 200원을 바구니에 넣어주었다. 나 역시 동정심과 ‘명절인데’ 하는 생각에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바구니에 넣어주었다.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들을 좌우로 쳐다보니 어떤 사람은 장님이 접근하자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는 머리를 돌렸다. 그때 난 마음속으로 ‘평소엔 지나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명절인데 좀 동정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요즘 보면 전철의 노약자와 장애석에는 항상 젊은이들이 앉아 있는데, 노인들이 비틀거리며 앞에 서 있어도 일어나 양보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몇 년 전에 본 예의바른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한국 사회가 여러모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면 왜 이런 현상이 심각해지는지 모르겠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중국에도 13억 이상의 인구가 살다보니 늙은 부모를 버리는 자식도 있고, 자식을 길거리에 버리는 부모도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한국처럼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경제가 발전하고 정신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위에 상술한 상황이 사라져야 하는데, 더욱 심각해진다는 것은 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내가 알기로 1년 전 한 중국교포 유학생이 2년 동안의 한국유학 생활을 통해 느낀 것을 책으로 썼는데 “한국은 없다”라는 제목이었다. 처음 그 책을 읽고 나서는 별로 동감하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한국의 상항을 살펴보니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엔 무엇이 없는가? 내가 보기엔 정신문명과 따뜻한 인심을 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서로 제대로 보자
최근 중국을 다녀온 많은 한국 여행객과 보따리 장사꾼을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열에 아홉은 중국에 대해 그리 좋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중국의 후진성에 대하여 중국에서 살았던 나보다 더 아는 듯이 지나치게 과장하며 말했다. 사실 과거 한국인들도 지게 지고, 된장국에 보리밥 먹으며 가난과 고통의 세월을 겪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 와서 조금 잘 산다고 그렇게까지 이웃나라를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잘 산다고 하면서 못 사는 나라에 가서 보따리 장사하며, 이국땅의 아가씨를 유혹하는 일부 한국인들을 보면 참 한심하다. 그래도 정말 학식이 있는 한국인 중에는 중국에서 열심히 사업하고, 국내 생산품을 대국에 수출하며 외화를 벌어 나라를 부요하게 하고, 중구의 명승고지와 좋은 곳을 돌아보며 결코 중국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또 한 가지 내가 이해되지 않는 한국인들의 성격은, 누가 뭐가 좋다 하면 따져보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좋다고 외치고, TV나 신문에서 무엇이 나쁘다고 하면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나쁘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시장(약재시장을 포함)에 가면 중국산 한약재와 도라지, 콩 등 식품류가 많이 나와 있는데, 중국산은 값이 싸고 별로 인기가 없다. 상인과 시민들에게 물어보니 중국산은 질이 좋지 않고 지저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반 백 년을 살아온 내가 알기로, 중국처럼 자원이 풍부하고 토질이나 기후, 온도 등에서 약재 생산에 유리한 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한국의 85배가 넘는 넓은 땅에서 생산되는 질 좋고 약성 좋은 한약재가 얼마나 많은데, 왜 한국 시장의 중국 상품은 질이 좋지 않고 내가 보기에도 지저분한 것만 있는 것일까? 그 원인은 중국에서 약재와 식품을 들여오는 한국의 수입상과 도매상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좋은 것도 많은데, 돈 몇 푼 더 벌어 보겠다고 값이 싼 불량 약재만 수입하여 팔면서 국민건강엔 눈곱만치도 관심 없는 그들에게 책임과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약을 사용하고 있는 시민들도 이런 문제를 제대로 알아 정부 관련 부문에 제기하고 수입상과 도매상을 질책해야 하는데, 중국산이 나쁘다 하면서도 계속 수입하여 쓰는 것은 영 이해하기 힘들다.
아직 희망 있는 나라, 한국
이렇게 쓰고 보니 한국에서 보고 느낀 부정적인 점들만 얘기했다 싶은데, 그렇다고 무엇이나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점이 많기 때문에 이 정도로 나라가 발전했고 유엔(UN)에도 가입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우리 민족과 한국은 지혜롭고 용감하며, 부강한 나라이며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부모님의 고향과 한민족이 잘 살고 부강하기를 기원하는 마음 한결같다.
이지혜 | 중국 교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