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올해 75세의 장(張) 노인은 다시는 못 볼 시멘트집을 보듬고 다시 만져보았다. 잠시 후 그는 상하이(上海)로 향하는 이민 운반선에 몸을 실어야 한다. 찢어질듯 한 가난 속에 한평생을 살아온 그였지만, 자신이 태어나고 조상들의 숨결이 간직되어 잇는 고향을 떠난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상하이에 가면 정부에서 마련해준 깨끗한 새집에서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고향만 한가…” 발길을 움직이지 ㅇ낳는 그에게 장성한 손자 부부 내외가 재촉을 한다. 빨리 배에 타야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만 모두 146가구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늘 두 배에 나누어져 고향을 등진다. 이제 떠나면 다시는 못 돌아올 이곳. 떨어지는 눈물을 훔쳐가며 장 노인은 운반선이 정박한 부두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총칭완바오》
작년 8월 14일부터 중국의 언론매체에서는 장 노인과 같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향해 떠나는 창장(長江) 상류 산샤(山峽) 일대 주민들의 모습을 연이어 보도하였다. 이들은 중류지역인 후베이(湖北) 이창(宜昌)에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산또우핑(三斗坪, 일명 양자강 삼협)댐의 건설로 인해 전국 각지로 이민을 떠나는 주민들이다. 산샤댐 관공 후 수몰되는 면적은 632㎟로,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무려 113만 명에 달한다. 행정 구역으로 따지면 후베이성의 4개 현과 총징(重慶)시의 15개 현, 시가 하루아침에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셈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산샤댐 수몰지구의 주민들을 상하이를 비롯해 광동(廣東), 저장(浙江) 등 11개성, 시에 분리하여 이민시키는 계획을 중이다. 2008년까지 계속될 이 대이동이 끝나게 되면, 완성된 댐에는 물이 차면서 창장의 상류는 거대한 인공호수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거대한 야심작, 산샤댐
그렇다면 중국이 심혈을 기울여 건설하고 있는 산샤댐 프로젝트의 실체는 무엇일까? 자료로 본 미래의 모습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지난 1993년 5월 당시 중국 물가수준으로 예측된 산샤댐 전체 공사비용은 인민폐 900억 위안(元), 달러로 환산하면 108억에 달하는 천문학적 수치이다. 원래 전체 공사비용 중 댐 건설을 위한 비용은 500억 위안이고, 나머지는 수몰지구 주민들의 이민을 위해 배정된 예산이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가 실토하고 있는 2009년 완공까지의 공사비용이 2,093억 위안, 즉 204억 달러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댐 하나 짓기 위해 중국이 들이는 비용은 막대하다. 이렇게 밑 빠진 독에 불 붓듯 돈을 쏟아 붓는 산샤댐이지만, 완공 후 그 성과는 중국으로서 결코 아쉬울 게 없다.
산샤댐 건설이 모두 끝난 후 예상되는 전력생산량은 연 847억 와트로, 이는 시기 예상되는 중국 전체 전기상용량의 1/10을 차지하는 수치이다. 따라서 만성적인 전력부족에 시달리는 중국 중서부 지역은 일거에 안정적인 전기를 공급받게 된다. 게다가 해마다 여름이면 창장 주변 주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라넣었던 홍수의 재난에서 완전히 해방됨으로써,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 방지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여기에 거대한 호수로 변하는 상류의 수량으로 말미암아 5천만 톤에 달하는 선박도 자유롭게 창장을 운행함으로써, 물류이동의 획기적인 개선을 꾀할 수 있는 이점도 낳게 되는 것이다.
험난했던 댐의 건설 과정
이렇듯 수많은 재원과 노력이 동원되는 산샤댐이 건설되기까지는 거의 1세기에 달하는 내부의 진통을 겪어왔다. 1918년 현대중국의 국부인 쑨원(孫文)이 자신의 저서인 「건국방략1 : 실업(實業) 계회5ㄱ」에서 처음 거론한 산샤댐 구상은, 1930년대 당시 집권세력인 국민당의 수리전문가들에 의해 면밀한 고찰과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계속된 내전과 일본의 침략으로 댐 건설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중국은, 공산당이 집권을 하면서 본격적인 건설 준비를 하게 된다. 1984년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급속도로 발전한 ㄴ경제에의 필요성이 증진된 산댜댐 건설을 결정하게 된다.
같은 해 ‘산사공정개발총공사(三峽工程開發總公司)’ 준비처를 설립하면서 가속도가 붙은 산샤댐 건설은, 1986년 전국에서 모인 412명의 건설토목 전문가와 21명의 고문이 14개 팀을 이루어, 댐 건설시 필요한 계획과 세부사항, 재원의 조달, 파생효과 등에 대한 문제를 논증하기 시작한다. 88년에는 2년간의 다양한 논증을 거쳐 “산샤댐은 중국 현대화 건설에 필수적으로 기술상 아무 문제가 없고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높이 181m, 길이 2,345m에 달하는 매머드댐이 건설되면서 나타날 예측할 수 없는 환경 및 생태계의 파괴, 수몰로 인해 고스란히 수장될 값을 칠 수 없는 자연·문화유산, 주민이주로 나타날 지역공동체 해체, 호수화 될 댐에 쌓일 토사와 쓰레기의 처리문제, 댐 파괴 시 일어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재난 등의 이유로 국내외적으로 거센 반대에 부딪힌다. 이를 보여주듯, 1992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상의 표결에서는 출석인원 2,633명의 인민대표(우리의 국회의원 격) 중 177명이 반대를 하고 664명이 기권을 하는 등 중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정치적 반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막대한 문화재가 물에 잠기기도
수많은 설왕설래 속에 댐 건설을 위한 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은 중국 정부는 그 뒤로는 속전속결, 결단성 있는 정책 집행을 보여 주었다. 1994년 12월 14일 당시 중국 국무원 총리이자 산샤댐 건설위원회의 위원장인 리평(李鵬)이 이창에서 댐 시공의 개시를 알리는 버튼을 누른 이후. 97년까지 댐 건설지 주변 강의 흐름을 바꾸고 기반시설을 세우는 제1차 공정을 완료했다. 98년부터는 댐의 윤곽을 그려나가면서 발전시설을 배치하고 선박이 다닐 운하의 공사를 진행 중이다. 지금의 2차 공정이 마무리되는 2004년 이후부터 2009년까지는, 담수가 시작되면서 댐의 전체공정을 완전히 마무리하고 수몰지구민이 모두이주를 떠나면서 16년 동안의 대역사가 종지부를 찍게 된다.
하지만 댐의 건설과 때를 같이하여 창장 상류를 대표하던 천고의 자연경관인 산샤(산샤는 다시 대산샤와 소산샤로 나누어진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와 더불어 중국 고대문명사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1천 2백 곳 이상의 유적지도 세상에서 사라진다. 최근 들어 수몰 지구에서는 전국에서 몰린 고고학자들이 한창 유물의 발굴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전체 유적지 중 겨우 10%만이 발굴되고 수집정리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댐부터 총칭까지 장장 6백km에 달하는 호수가 생긴 이후에는 중국 선사시대의 유물뿐만 아니라 고대왕조들의 문화유산이 그대로 종말을 고하게 된다.
수몰민을 고소득 지역으로 이민시켜
세상의 빛을 못 보게 되는 것은 자연경관과 문화재만이 아니다. 장 노인처럼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의 집과 토지도 물에 잠기면서 지도상에서 사라진다. 초기 일부 지역에서 결결한 저항까지 발생했던 중국 정부의 수몰민 이민정책은 현재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총칭시 일부 지역에서는 수몰 지역민을 위한 신시가지가 건설되어 이주를 완료했으며, 총칭시 자체 포용이 불가능한 주민들은 중앙 정부의 세심한 배려 속에 나 지역으로 이민 중이다. 대부분 소득이 높고 주거환경이 좋은 연해지방 성·시에 마련된 마을로 이주하는 수몰민들은, 우선 정부에서 지어준 집에 거주를 하면서 달마다 지급되는 생활보조금으로 앞날을 설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수몰민을 마을단위로 집단이민 시킨다는 방침 아래,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새 지역에서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구상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중국 정부는 산샤댐 프로젝트의 원활한 재원조달을 위해 신용도 AAA급인 ‘산사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앞으로 약 100억 원까지 발행될 채권은 높은 이자율로 인해 근래 들어 중국인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세계은행을 비롯한 전 세계 유수한 금융기관의 자금을 빌려왔으며, 댐 발전설비 구입에 있어서도 다른 7개 국가의 국책은행으로부터 신용대출을 받는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193년 이래 32개 국가에서 온 7,000여 명의 건설토목 전문가와 엔지니어, 금융·기업인들이 방문하여 기술교류와 비즈니스·경제협력을 산샤댐의 건설현장은 중국인들에게도 손꼽히는 관광코스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복이 될 것인가 재앙으로 다가올 것인가
1997년 한 해만 해도 두 차례에 걸쳐 댐 건설 관련 국제회의 가 열리고, 전 세계의 이름 있는 기업체는 모두 건설에 참여한 산샤댐의 미래를 속단하긴 아직 이르다. 댐이 중국 정부의 희망처럼 수천 년간 중국 인민들을 괴롭혔던 홍수의 악몽을 잊게 하고, 풍부한 전력을 공급하며 연해-내륙간의 교류를 가능케 해주는 구세주가 될 가능성은 추분하다. 하지만 전 세계 대부분의 환경보호주의자들이 경고하는 것처럼 산샤댐의 건설로 생태계와 자연환경이 급격하게 파괴되어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만일 중국이 전화(戰禍)에 휩쓸려 댐이 파괴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하기만 하다. 매년 중국과 몽골의 황사현상에 의해 헤아릴 수 없는 자연재난과 질병을 앓는 한국에게 산샤댐의 건설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닌 것임을 명심해야겠다.
모종혁 | 중국유학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