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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  통권 67호  필자 : 조경호  |  조회 : 2597   프린트   이메일 
[선교일언]
선교, 맨땅에 헤딩하지 맙시다

언어학 박사인 구학관 씨가 저술한 『영어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여러분!』이란 책이 요즘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되고 있으며, <에콜리시- 영어공부, 맨땅에 헤딩하지 맙시다>라는 책도 흥미있게 읽혀지고 있다. 최근 발간된 두 책은 영어공부의 기본원리와 방법론을 다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과거 한국 사람들의 영어공부 방식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원리에 근거한 방법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토익과 토플 학원에초·중학생이 몰려드는 것도 영어능력이 대학입시에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도 어려워하는 공부를 어린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영어를 못하면 대학 졸업장도 받지 못하고, 직장에서 승진할 수도 없다. 대학은 마치 영어학원처럼 변질되어 버렸다. “한국에서는 영어 못하면 살기 어렵지만 미국에서는 영어 못해도 잘 산다.”하는 우스개 소리가 유행할 정도로 한국인의 영어에 대한 집착과 집념은 학교와 사회에서 과열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영어에 집착하는 사회현상을 바라보면서, 그 열기에 대해 긍정하거나 부정하기 보다는 솔직히 부러운 마음을 느껴야 했다. 왜 한국 교회에는 선교에 대하여 영어 과열현상과 같은 뜨거운 관심과 열망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 잘못은 누구에게 있으며, 누가 해야 할 일인가? 선교사를 8천 명이나 파송한 이 시대의 한국교회는 교회의 진실성과 선교에 대한 열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새 천년 첫해를 마감하고 또 다른 새해를 맞는 우리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할 거이다.

의식이 없는 교회
필자가 담임하고 있는 형제교회 청년들은 한 달에 한 번 중증장애인 시설을 방문하여 빨래와 청소, 목욕을 돕고 있다. 뇌성마비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면서, 한국 교회도 뇌성마비 현상에 빠져있다는 사실이 느껴져 두려워진다. 뇌성마비 중증장애인들은 먹고 자는 일 이외의 삶의 목표나 성취, 의미있는 인생을 만드는 일에는 둔감할 수 밖에 없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로 교회의 존재 목적과 방향을 상실해 버렸다. 이는 잘못된 교회관과 변질된 교회관으로 인한 전반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

교회의 사명은 ‘제자훈련’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고 교회에 명령하셨다. 제자사역에서 먼저 검토되어야 할 내용은 ‘제자도’에 대한 정립이다. 가장 성경적인 제자도의 단계를 보여준 교회가 미국의 새들백교회이다. 새들백교회의 제자도는 “야구 베이스의 사각형”으로 제시되는데, 구원-성장-사역-선교의 네 단계로 제자사역이 완성되는 것이다. 제자의 삶의 최종목표는 선교이며, 제자의 성숙은 선교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자도의 과정에는 ‘선교’가 빠져있다. 제자훈련 사역을 모범벅으로 목회하고 있는 서울 모 교회의 제자훈련의 목적도 평신도 사역자 양육이지만, 거기에는 제자도의 완성인 ‘선교’가 빠져있다. 선교가 제자의 삶의 연장이 아니라, 단지 교회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마치 속옷만 입고 같옷을 입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벌거숭이 임금님’과  같은 미와성된 제자의 삶이다.

홈베이스가 없는 야구경기를 생각해보라. 선수들은 열심히 공을 던지고, 온 힘을 다해 방망이를 휘두르지만,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경기의 승패는 나지 않는다. 선수들만 지치는 것이 아니라 관중들도 지쳐버릴 수 밖에 없다. 교회는 다시 성경적 교회관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공동체이어야 한다(엡1:20~23). 교회가 제자의 삶을 처음부터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훈련했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선교에 헌신되고, 좀더 바람직한 선교를 위한 선교관련 책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성경공부 교재만큼이나 선교에 대한 교재가 매일 수십 종씩 새로 발간되며, 선교 열풍이 교회마다 불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한국교회는 거짓 재단사에게 속아 ‘정직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옷’을 입은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거짓된 제자도에 속아 교인들의 삶을 기만하고 있다. 

카지노 같은 교회
강원도 정선의 카지노 VIP 객장은 ‘황금족의 무대’이다. 하룻밤 억대 배팅이 보통이며, 아예 근처에 아파트를 얻어놓고 키지노로 출근하는 황금족들도 생겨나고 있다. 수천만 원을 잃어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는 ‘큰손’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 식당에서는 ‘1천만 원 수표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나간 후 현금과 수표 1천만 원이 바닥에 떨어져있어 수소문하여 연락하자 ‘알아서 처리하라’는 대수롭지 않은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오늘날 교회 역시, 마치 하나님의 축복을 배팅하는 황금족의 무대같다. 기복주의 신앙이 오랫동안 전통 교인들의 신앙의 뿌리를 형성하여 깊이 뿌리를 내렸다. 한 교회에서는 교회당을 건축하고 모자라는 건축비를 63명의 장로와 권사를 세워 헌금을 충당하고 헌당예배를 드렸다는 말을 들었다. 교회 직분조차도 예배당 건축과 축복신앙의 카지노로 뒤바뀐 시대에서 교회의 선교는 카지노장을 출입하는 입장권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세계적인 선교 지도자 토마스왕 목사는 “교회 재정 비율이 50:50 이어야 성서적이다.”라고 권한다. 교회의 예배와 사역을 위해 50%, 선교와 사회봉사를 위해 50%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 선교를 향한 개척자적인 교회가 늘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재정의 50%, 교인의 10%가 ‘나가는 선교사’로 헌신하는 교회상이 가장 이상적인 교회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시대가 변했다. 과거 한국 경제를 주도해오던 대기업들이 퇴출당하고 거대한 부채를 이겨내지 못해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 교회도 과도한 교회 확장주읭[서 벗어나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목회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선교중심의 교회상이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는 더 이상 카지노장이 되어서도 안되고 황금족들의 무대가 되어서도 안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위해 존재하며, 선교를 느끼고 탐험하는 하나님의 공동체이어야 한다.

용기 있는 선교단체와 교회
농민들이 고속도로를 점거하면서 농가부채 경감을 요구하고 나섰던 지난달, <한국일보 포럼>에서 농촌문제를 다루기 위해 필자를 찾았다. 농림부 관계자, 대학교수들이 농민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글을 써주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와 농민들의 반발이 두려워 자신의 견해조차 밝히지 못하는 공무원과 지식인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진정한 논쟁은 없고 투쟁만 남았다.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선교단체는 선교에 있어서 전문가들이며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한국 교회가 어디서 실패하고 있으며,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지식인들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일깨우고 선교하는 교회에로의 변혁과 부흥을 주도해 가야할 선교단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을 어귀 느티나무 정자 아래서 몇몇 노인들이 잡담하듯이 하는 말은 아무런 변화도 일르킬 수 없다. 지식인들의 열정이 교회를 깨울 수 있으며, 선교단체와 교회가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위해 함께 동반자가 될 때에 이 땅에 진리의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교회 시대가 열려질 수 있을 것이다.

신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교회』라는 책을 신학생들에게 읽도록 추천했는데 그 책이 폐간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모든 목회자가 반드시 얽어야 하고, 신학생들이 얽어야 할 책이 폐간되는 현실에서, 선교단체가 선지자적인 용기와 부르짖음을 잃어버린 듯 싶어 안타까웠다. 선교단체는 선교감독원이다. 금감원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뇌물을 챙기고 있음으로 대형 금융사고가 일어났으며, 앞으로 1~2개 더 일어날 것으로 국정감사에서 보고되었다고 했다. 선교단체의 목소리가 너무 약하다. 용기가 없다. 침묵하는 지성인들이 한국 사회를 투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교회를 깨우는 광야의 선지자는 선교단체여야 한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사라진 현실에서 요단강에서 자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교회는 겨우 한 둘 뿐일 수 밖에 없다.

그만 가져오라
한국사회 범죄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경찰청이 2000년 1월부터 10월까지 전국 범죄동향을 분석한 결과,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등 5대 주요법죄가 분당 평균 1건씩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매 분당 한 명의 선교사가 헌신하는 한국 교회를 꿈꾼다.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고 의가 왕 노릇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죄는 점점 왕성해지는데 의는 아무런 영향력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면 복음의 영향력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매 분당 한 명의 선교사가 헌신하는 복음의 시대를 회복해햐 한다.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의 성막을 지을 때 백성들이 자원예물을 너무 많이 기져오므로 모세는 “그만 가져오라”고 소리쳐야 했다. 하나님의 복음이 제대로 가르쳐지고, 외쳐지고, 선포된다면 교회마다 “그만 헌신하라”고 외치게 될지도 모른다. 더 이상 갈 곳이 없고, 더 이상 선교사가 필요하지 않아서 말이다. 이처럼 그만 가져오라고 외치는 교회 회복을 꿈꾼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외면당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교회와 선교단체는 맨땅에 헤딩하는 현상에 빠져있다. 



조경호 | 수원형제침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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