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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20  통권 87호  필자 :  |  조회 : 2798   프린트   이메일 
[자료실]
중국 기독교 삼자애국운동 50문

20. “삼자”를 믿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는 말은 옳은가?
답: “삼자”가 신앙의 범주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삼자”를 믿어야 한다고는 말할 것이 못된다. “삼자”는 당초 하나의 애국운동이기에 오늘 중국기독교인들은 기꺼이 이 운동에 참가하도록 창도해야 한다. 동시에 이것은 중국교회를 잘 감당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견지해야 할 원칙이다. 기독교인은 다만 “사도신경”과 “니케아신조”가 귀납한 신조만 믿어야지, 이것을 제하고는 모두 기독교인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삼자”를 믿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자체는 개념적으로 틀린 것이다.


21.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이 “삼자를 믿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가?
답: 먼저 응당히 지적해야 할 것은 “삼자”가 무슨 교파의 명칭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슨 “삼자교(三自敎)”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삼자교를 믿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다. 어떤 사람은 단지 표현상의 편리를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삼자원칙을 견지하는 교회를 “삼자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꼬임을 받아 부화뇌동한다. 어떤 이들은 근본적으로 무엇이 “삼자”인지, 그리고 “삼자”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삼자애국운동의 합리성, 정의성, 필연성에 대해 전혀 모른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무엇이 신앙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중국교회가 새로이 외국선교회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공격하려는 마음을 품고, 여론을 조성하여,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없게 한다. “삼자”는 근본적으로 신앙이 아니다. “삼자”는 각 지역 교회가 일을 잘하기 위하여 마땅히 지켜야할 하나의 원칙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삼자”는 하나님이 각국 각처에서 자신의 교회를 잘 건설하기 위하여 예비하신 하나의 도구요 수단이다. 따라서 “삼자교를 믿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 말은 개념상 근본적으로 틀린 것이다.
 

22. 우리나라 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이 시작된 이래 50년 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나?
답: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이 7가지 방면의 성과가 있다. 첫째, 광대한 교인들의 애국주의 각오를 고취시켰으며, 그들로 하여금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고 조국의 사회주의 건설사업에 투신하게 했다. 둘째, 전국에 걸쳐 기본적으로 중국교회의 독립 자주와 자치, 자양, 자전을 실현하게 되었다. 셋째, 기독교의 이미지를 개선하여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해 호감을 갖게 했으며, 종교 신앙 자유정책을 구현하는데 있어서의 장애를 감소했다. 넷째, 교파간의 화목과 공존을 촉진하여, 우리나라 기독교의 오늘날 초교파의 국면을 위하여 조건을 준비했다. 다섯째, 제3세계 국가 교회로서, 전국 규모로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교회를 세워 운영하는 효시를 이루어, 제3세계 국가의 교회를 위하여 모본을 세웠다. 여섯째, 식민주의, 제국주의가 기독교를 이용하여 우리나라를 침략한 진상을 밝히고, 세계 각국 교회의 인사와 역사학계에 고도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선교운동의 반성과 갱신, 그리고 분화(分化)를 촉진했다. 일곱째, 국제교회에서의 중국교회의 지위를 높이고 많은 친구를 얻었다.
 

23. 무엇이 삼자원칙인가?
답: 1997년 1월 2일 폐막한 중국기독교 제 6회 전국회의는 삼자원칙을 개괄하기를 반드시 독립자주를 견지해야 하며, 반드시 애국애교를 실행해야 하며, 반드시 단결을 증진하고 노력해야 하며, 반드시 “삼호(三好)”를 힘써 구현해야 한다고 했다. 이상을 약칭 “사개필수(四个必須)” 곧 반드시 해야 할 네 가지라 한다.


24. “삼호(三好)”란 무엇인가?
답: “삼호”란 1980년 10월 6일, 띵꽝쉰(丁光訓) 주교가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교회 활동을 회복하는 첫 번째 전국적 회의, 즉 중국기독교 제3기 전국회의 개막사 중에서 제시한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자치(自治)를 하되 잘 치(治)하고, 자양(自養)을 하되 잘 양(養)하고, 자전(自傳)을 하되 잘 전(傳)해야 한다.”고 해서 약칭 “삼호(三好)”라고 부른다.
 

25. “삼호”의 표준은 무엇인가?
답: 잘 치(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교회를 치리하되 교인이 만족하고 교회 밖의 사람들이 칭찬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교회를 하나님은 반드시 기뻐하신다. 잘 양(養)한다는 것은 교회가 교인들로 하여금 즐거이 헌금을 하도록 충분히 힘을 써서, 교회의 일상 경비를 유지하고 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잘 전(傳)한다는 것은 강대상에서 생명수를 공급하여 양떼들로 들어가도 꼴을 얻고 나가도 꼴을 얻도록 하며, 광대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진정 좋은 교인이 될 뿐 아니라 좋은 공민(公民)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교회일 때, 반드시 교인의 영성이 부흥되고 교회가 건강하게 발전하여 사회에서 아름다운 간증이 된다.


26. 평소에 약칭으로 “양회(兩會)”라고 하는 이 양회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답: 우리나라 기독교 내에 평소 간략하게 부르는 “양회”는 전국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中國基督敎三自愛國運動委員會)와 중국기독교협회(中國基督敎協會)를 일컫는다. 성(省), 시(市), 현(縣)으로 말하자면 그 지방의 명칭을 바꾸어 말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OO성(시) 삼자애국운동위원회, OO성(시) 기독교협회(어떤 지방협회는 또한 OO시, 현 기독교 교무위원회라고 칭하기도 한다.)라고 하면 된다.
 

27. 무엇이 중국기독교 삼자애국회의 근본취지인가?
답: 1997년 1월 2일 중국기독교 제6회 전국회의에서 통과된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장정” 제2조는 오직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의 근본취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개술(槪述)하고 있다. 본회는 중국 기독교인들의 애국조직이다. 근본취지는 신도로 하여금 애국애교하도록 인도하고, 교회의 독립자주를 유지보호하고, 교회내의 단결을 증강시키며, 중국의 교회를 잘 운영하도록 봉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28. 무엇이 중국기독교협회의 근본취지인가?
답: 1997년 1월 2일 중국기독교 제6회 전국회의에서 통과된 “중국기독교협회장정” 제2조는 오직 중국기독교협회의 근본취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개술하고 있다. 본회는 중국기독교의 전국적인 교무조직(敎務組織)이다. 그 근본취지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는 전국의 모든 기독교인을 단결시켜, 성령의 인도 하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성경의 진리를 따르도록 하며, 삼자애국원칙을 견지하며, 우리나라 교회의 규장제도(規章制度)와 국가헌법, 법률, 법규, 정책을 준수하여 중국 교회를 잘 운영하는 것이다.
 

29. 각급(各級) 기독교삼자와 기협(基協)은 어떤 관계인가?
답: 각급 기독교삼자와 기협은 각자의 장정(章程)에 근거하여 사역을 펼쳐나가는 역할분담과 협력의 관계이다. 마치 한 사람의 몸에 왼손과 오른손이 있듯이 똑같이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다. “삼자”가 기협 혹은 교회를 영도한다고 여길 수 없다. 이러한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교회에 삼자조직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으로 여기는데, 이러한 생각도 역시 잘못된 것이다. 비록 “삼자”와 기협의 근본취지가 중점에 있어서 다르다 할지라도 그러나 교회를 잘 운영하고자 하는 목적은 처음이든 현재든 장래든 모두 같은 것이다.
 

30. 우리나라 각급 기독교삼자애국조직의 직능은 무엇인가?
답: 삼자애국회의 근본취지의 결정에 의하면, 그것은 기독교인의 애국조직이며, 교회와 정부 사이의 교량이다. 따라서 그 직능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의 지시를 정확하게, 적시에 전달한다. 둘째, 교회의 요구를 정부에 적시에 반영한다. 셋째, 교회와 교인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한다. 넷째, 교회를 잘 운영하기 위하여 봉사를 제공한다.
 

31. 현재 우리나라 삼자애국운동위원회의 설립 상황은 어떠한가?
답: 현재 상황으로부터 보자면, 우리나라 대다수의 성(省), 직할시(直轄市), 자치구(自治區)는 모두 각자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세웠다. 성회시(省會市) -성회시(省會市)란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도청소재지와 같은 의미로서 그 성의 수도를 일컬음- 의 교회 역시 모두 각자의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세웠다. 적지 않은 현(縣)이나 시(市) 구(區)의 교회 역시 모두 삼자애국운동위원회 혹은 삼자준비소조(三自籌備小組)를 세웠으며, 일부 현(縣)이나 진(鎭)의 교회 역시 삼자애국소조를 세웠다. 역자 주: 현 중국 행정단위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성급(省級)은 모두 33개로서 네 개의 직할시(북경, 상해, 천진, 중경)와 23개 성(하북성, 산서성,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복건성, 강서성, 산동성, 하남성, 호북성, 호남성, 광동성, 해남성, 사천성, 귀주성, 운남성, 섬서성, 감숙성, 청해성, 대만성), 5개 자치구(내몽고자치구, 광서장족자치구, 서장자치구, 영하회족자치구, 신강위구르자치구), 1개 특별행정구(홍콩)가 있다. -中華人民共和國民政部編, 「中華人民共和國 行政區劃簡冊」(中國地圖出版社出版, 1999年版) 참조. 후에 1999년 마카오가 중국에 귀속됨으로써 특별행정구는 2개가 됨- 조건을 갖춘 현이나 시, 구는 가능한 빨리 각자 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세워, 효과적으로 삼자장정에 따라 사역을 펼쳐나가야 한다. 전국 기독교 내에 사역 네트워크을 형성하여, 우리나라 기독교회를 잘 운영하고, 이단사설(異端邪說)과 해외침투를 저지하는데 대해 모두 적극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32. 어떻게 해야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설립할 수 있나?
답: 이 문제는 각 지역의 상황을 보고 결정해야 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적어도 아래와 같은 조건을 구비하여야 한다.
첫째, 절대다수의 교인들이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세우고자 하는 요구가 있어야 한다.
둘째, 일정한 예배당과 처소가 이미 현급(縣級)이상 정부의 종교사무부문에 의해 법적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야 한다.
셋째, 해당지구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조성할 수 있는 적합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넷째, 해당 삼자애국운동위원회 주석(주석위원 혹은 주임) 직무를 맡을 적합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해당 지역 종교사무부문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야 한다.
여섯째, 준비소조(籌備小組)를 세워 해당지구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설립하는데 있어서의 일련의 일들을 책임진다.
마지막으로 대표회의의 형식을 통하여 해당지구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설립하면, 준비소조의 역할은 이에 따라 끝난다.
 

33. 삼자조직, 삼자조직성원, 삼자원칙 이 세 가지 사이에 구별이 있는가?
답: 있다. 삼자조직은 기독교대표회의의 선고(宣告)를 거쳐 설립된 것으로 조직직능과 권위성을 지닌다. 삼자조직성원은 기독교대표회의에서 대표들의 선거를 거쳐 생긴 것으로 대표성, 군중성, 그리고 합법성을 지닌다. 삼자원칙은 바로 각급 삼자애국조직이 반드시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모 지구 삼자조직의 개별 성원이 어떤 구체적인 일들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방법이 타당치 않고, 이미지가 좋지 못하여 교회에 해가 되고 심지어 주의 이름을 욕되게 할 때, 삼자조직이나 삼자원칙의 탓으로 돌릴 수 없으며, 마땅히 구별하여 대해야 한다.
 

34. 중국기독교는 정치를 어떻게 보는가?
답: 삼자애국운동은 설립 초기는 물론이고  지금도 강렬한 애국사상이 그 안에 들어 있어, 정치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중국기독교는 애국애교의 통일을 제창하고 있다. 애국은 바로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고, 사회주의제도와 공산당의 영도를 옹호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일종의 정치태도이다. 중국기독교인이라고 정치를 외면하고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자신의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기독교인의 태도는 응당히 정치를 뛰어넘지 않고, 또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35. 하나님은 애국주의를 찬성하시는가?
답: 찬성하신다. 공민(公民)이 되어 애국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기독교인은 애국주의를 제창해야 하는가, 아닌가? 대답 역시 긍정이다.
애국에 대해 언급하면 어떤 사람은 곧 말하기를 하나님의 교회는 우주적이고 천하가 다 한 가족이며, 국경과 지경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하나님은 오히려 국경과 지경을 중시하신다. 사도행전 17장 26절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했다.
로마서의 서두(1:5)와 말미(16:26)에는 모두 “만국(萬國)”이라는 말이 두드러진다. 이는 하나님께서 천하의 인류를 하나의 나라로 통일한 것이 아니며, 또한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조국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면 천지만물은 모두 하나로 돌아가지만 “열국(列國)”과 지상의 군왕(君王)은 여전히 존재한다(계21:24).
이로 보건대, 교회에는 국경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교회(有形的)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無形的)를 혼돈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혼돈은 매우 해로운 것으로서 애국주의를 반대할 뿐 아니라 해외침투의 “이론적 근거”에 영합하는 것이며, 또한 교회의 진리를 현저하게 위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강림하셔서 전 인류의 구주가 되셨지만 그는 결코 국적 없는 유민(游民)이 아니었으며, 특정한 국적, 특정한 민족을 지니고 있었음을 우리는 보아야 한다. 주 예수의 애국열정은 확연하게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민족이 로마의 통치 하에 처해 있고, 조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곧 멸망당할 것을 보았을 때,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리셨다(눅19:41-44). 이는 실제로 당시 상황하의 애국주의의 표현이다.
시편 137편은 유대인들이 조국이 멸망당할 때의 비통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시편 126편 역시 조국의 부흥을 위하여 환호한 것이다. 이 역시 애국주의이다.
모세는 몸은 애굽 왕궁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스라엘 동포에게 있었다(히11:25). 다윗은 용감히 전쟁에 임하여 적군인 블레셋 사람을 물리쳤다. 이 어찌 모두 위대한 애국주의가 아니겠는가?
사도들은 이스라엘의 부흥을 소망했으며(행1:6), 바울은 자신의 민족을 “골육지친(骨肉之親)”으로 불렀으니 이 어찌 애국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성경속의 선배들은 자신의 조국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는데, 어찌 중국의 교인들은 자신의 조국을 열렬히 사랑할 수 없단 말인가? 자신의 조국조차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디에 기독교인의 박애가 있겠는가?
 

36. 성경은 권세 잡은 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잘 처리하라고 기독교인들을 지도  하고 있는가?
답: 어떤 사람은 “삼자”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대하는데 이는 “삼자”조직이 정부의 영도를 받자고 제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정부의 영도를 받는다는 것은 우상을 섬기고, 간음죄를 짓는, 곧 대음부(大淫婦 : 곧 음란한 여인)”라고 한다. 해외의 또 어떤 이들은 선동하여 말하기를 “누가 권세를 잡든 그 사람을 반대하는 것은 바로 선지자의 사명이다”
이 말은 맞는가, 틀리는가? 성경 잠언 24장 21절-22절을 보면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라고 했다.
  디도서 3장 1절-2절에는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했다.
왜 바울은 디도에게 “모든 사람에게 깨우치라”고 했는가?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주를 믿은 이후 여러 가지 원인으로 집권자와 도무지 맞지 않아 대립상태에 처하고 심지어 그들에게서 벗어나 정치와 현실의 생활을 초월해야 비로소 경건하고 영적이라고 여긴다.
  이는 “권세 잡은 자들에게 순종하라”는 진리를 소홀히 하거나 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모든 사람을 깨우치고 바로 잡아야 한다. 이 “깨우치는” 임무가 지금 역사적으로 삼자조직의 몸에 지워진 것이다.
  정부의 정확한 영도를 받아들이자는 제창은 삼자조직의 하나의 사업이다. “삼자”의 장정에는 명확하게 이 조항을 기록하고 있다.
디도서를 보면, 1장에는 성직자를 세우는데 대하여, 2장은 진리의 바른 교훈에 대하여, 3장은 권세 잡은 자에 대한 순종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1장, 2장은 영적이고, 3장은 세속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3장 역시 성경이며,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의 견해가 치우쳐서는 안 된다.
로마서 13장 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했으며, 5절에서 강조하기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않을 수 없나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반드시 권세 잡은 자를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가?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실 뿐 아니라 만유의 머리이시며, 또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다.“(계1:5)
둘째, “하나님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신다.”(단4:17, 25, 32, 5:21)
셋째,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
넷째, 권세 잡은 자는 “하나님의 사자”이며(롬13:4), 또한 “목자”이다(사44:28).
다섯째,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는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2),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롬13:5)
여섯째,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13:7)
일곱째,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딛3:1)
여덟째,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벧전2:13)
많은 성경 구절이 증명하듯이 정부의 정확한 영도에 복종하고 애국과 법을 준수하도록 제창하는 것은 각 기독교인의 불변의 진리라는 것이다.
 

37.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가?
답: 할 수 있다. 아래의 예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요셉은 애굽의 바로 왕 밑에서 총리가 되었다(창45:8).
둘째,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수하의 술 관원(느1:11)이었으며, 후에 유다 땅 총독이 되었다(느5:14-15).
셋째,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의 재상(재宰相)이었다(에10:3).
넷째, 다니엘은 바벨론 왕 수하의 총독이었다(단6:1-3).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성경의 근거를 고려치 않고, 계시록 13장 11절의 거짓 선지자의 “두 뿔”을 크게 잘못 해석하여 말하기를 “뿔은 권세의 뜻으로서 두 뿔이 있다는 것은 바로 정치적 권세를 가질 뿐 아니라 또한 교회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여, 교회의 권세를 가지면서 정치적 권세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다. 삼자조직 안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협위원(政協委員), 인대대표(人大代表) 역자 주: 정협(政協)은 정치협상회의(政治協商會議)의 준말이며, 인대(人大)는 인민대표대회(人民代表大會)의 준말이다.
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두 뿔을 가진 짐승’이다.”라고 한다. 만약 이런 견해가 옳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요셉, 느헤미야, 모르드개와 다니엘은 어쩌란 말인가?
여기에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자. 한 그리스도인이 공민의 권리를 행사하고 정치에 참여하여 국가 대사를 관리하는 것이 신앙의 정조를 잃은 것인가? “우상을 섬기고”, “간음을 범한” 것인가? 성경의 대답은 명확하다. 신앙을 견고하게 지킨다는 전제하에서,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으며, 심지어 믿지 않는 정권 속에서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요셉, 느헤미야, 모르드개, 그리고 다니엘 모두가 이와 같았다. 어느 누가 요셉, 느헤미야, 모르드개와 다니엘과 같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정권 속에서 정치에 참여함으로 그들의 신앙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무도 없는 것이다.
 

38. 그리스도인은 정부를 위하여 중보하며 축복해야 하는가?
답: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매우 분명하게 설명한다. 디모데전서 2장 1절-3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라고 했다.
그러나 현재 소수의 그리스도인과 전도인들의 입에서 인민정부를 위하여 중보기도하며 축복하는 소리를 들어볼 수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훼방하고 저주하는 말을 한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경건하고 단정한 것인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는 것인가?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인가? 이다. 욕을 험하게 하면 할수록 더욱 영적이라고 여기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야곱이 바로에게 한 축복(창47:7)을 보고 또 바울의 권고를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성경의 진리 앞에서 냉정하게 이런 사람의 부정확한 신앙의 태도를 교정할 수 있을 것이다.


39.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모든 제도에 순종해야 하는가?
답: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한 나라에 속하며, 영적생활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생활하기에 응당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는 주를 위하여 순복”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2장은 이 두 방면의 내용을 똑같이 고려하고 있다. 1절에서 16절은 신앙상의 영적생활, 예를 들어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신령한 집”을 세우고, “신령한 제사”를 드리고,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며”, 13절에서 17절은 곧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응당히 갖추어야 할 품행이다.
베드로전서 2장 13절에서 17절까지의 본문은 곧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란 무엇을 말하는가? 본문 전체를 통해 볼 때, 국가의 사회제도, 경제제도, 정치제도와 민간의 모든 제도(예로 향촌의 자치규약), 그리고 이러한 제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정책과 법령을 포괄함을 의미한다.
둘째, 이러한 인간의 모든 제도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모두 “순복하라고 한다.” 왜 순복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15절 말씀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이는 신앙을 고치라는 말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인이 응당히 갖추어야 할 품행이다. 주 예수께서도 이와 같이 행하셨다(마17:24-27). 두 번째는 16절 말씀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하라” 여기에 하나의 모순이 있다. 즉 “자유하나”와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이다. 종이 된다는 것은 마치 자유가 부족한 것과 같이(요8:32) 구속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특히 하나님의 종이다. 자유를 가지고 악독을 감추거나 자유를 방탕한 정욕의 기회로 삼을 수 없다(갈5:13).
현재 어떤 사람은 자유를 “자기 마음대로”바꾸어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종이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을 받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정책과 법제에 대한 관념조차 없으면서 사람의 모든 제도에 순종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자유”는 국가가 허락지 않은 것이며 성경 또한 허락지 않은 것이다. 법을 어기고 어지럽게 하는 사람은 정책과 법령상의 보장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도 똑같이 보장받지 못한다.
셋째,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의 목적은 무엇인가? 성경은 말하기를 “주를 위하여”라고 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훼방 받지 않게 하고, 주님의 진리의 말씀이 가로막히지 않게 하며, 주님의 교회가 “많은 사람의 기쁨을 얻도록” 함이다. 이로 보건대, 법을 어기며 어지럽히는 사람은 절대로 “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사욕과 악독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정으로 주를 위하는 사람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공의 역시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벌을 가하는 제도를 통하여 나타난다.
바울은 로마 국적을 가지고 당시 인간의 모든 제도를 순종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주님의 사역을 위해서였다. 그는 로마 국적의 권리를 이용하여, 핍박을 받을 때 놓임을 받아 주님을 위하여 더 많은 거룩한 사역들을 할 수 있었다(행16:35-40).
따라서 우리 온 그리스도인들은 주를 위하여, 국가의 모든 제도를 옹호하고, 인민정부의 정확한 영도에 순종하며, 인민정부의 각종 정책과 법령을 준수하며, 애국애교해야 한다. 조국의 안정과 단결,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문명건설을 위하여 더욱 많은 공헌을 하고,  사회주의 사회와 서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교회를 이끌어, 우리 교회로 하여금 부단히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40. 어떻게 하면 교회가 “자치(自治)”에서 “치호(治好)”로 갈 수 있나?
답: 무릇 잘 운영되는 교회는 대부분 아래와 같이 두 방면의 사역을 잘한다.
하나는 교회가 확실하게 행할 수 있는 규장제도를 제정한다.
이러한 규장제도는 첫째, 교회학습, 회의제도, 둘째, 교회사역 안배제도. 셋째, 교회재무관리제도 등을 포괄한다.
규장제도를 제정하면, 교회는 그 규장법규에 의거하여 교회를 잘 다스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담임자와 목회자들이 모범적으로 회의에 통과된 교회 내의 모든 규장제도를 순종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민주를 실행하여 교회를 관리한다. 잘 운영하는 교회가 되려면 인사안배, 사역계획은 물론이고, 경비예산까지도 회의를 통한 민주토론을 거친 후 실시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일언당(一言堂)”이라는 가부장적 모습을 피할 수 있고, 또 “군언당(群言堂)”이라는 집체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교회를 잘 운영하려면 반드시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도록 하며, 교회 내의 각종 사역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41. 어떻게 교회가 “자양(自養)”에서 “양호(養好)”로 갈 수 있나?
답: 우선적으로 교회는 형제자매들에게 “부지런함으로 부요한 자가 되어야 영광스러운 것이다”와 같은 적극적인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더욱 영적”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버리고, 신앙 상에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금전관(金錢觀)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기초 위에 우리가 강대상에서 말씀을 공급하기만 하면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의 열정이 타오르게 되고 교회에 헌금하는 것도 자연스레 증가하게 된다. 그 다음 교회의 부동산을 효과적으로 개발하면 비교적 큰 경제적 유익을 발휘할 수 있다. 조건을 갖춘 교회는 기업을 운영하여 교회의 자양 능력을 증강시킬 수 있다.
 

42. 교회가 “자전(自傳)”에서 “전호(傳好)”로 가자면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가?
답: 진정으로 “전호”를 하려면,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
첫째, 인재양성에 힘써야 한다.
둘째, 신학교를 잘 운영해야 한다.
   ①1985년 절강 막간산 중국기독교 신학교육 좌담회(浙江莫干山中國基督敎神學敎育座談會)에서 확정된 우리나라 신학교운영방침은 영(靈), 덕(德), 지(智), 체(體), 군(群)의 통합적인 발전에 있다.
   ②인재선발은 각 교회가 추천하여 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자 하는 학생의 선발을 포함한다.
   ③신학교육을 규범하여 우리나라 자체의 신학교육체계를 형성한다.
   ④신학 졸업생의 배치와 사용
셋째, 봉사자 양성
1998년 중국기독교 농촌사역위원회에서 통과된 “중국기독교 의공배훈반강요(시행)”를 조직 실시한다.
넷째, 신학사상건설을 강화하고, 또 정확한 신학사상을 갖추도록 지도한다.
 

43. 왜 국내의 어떤 사람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삼자”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답: 이러한 현상을 초래한 데에는 첫째, 일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일관되게 삼자애국운동을 훼방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삼자조직 안의 소수 사람들의 행위가 “삼자”의 이미지를 손상시킨 것은 분명히 있다. 셋째, 어떤 사람들은 “삼자”의 깃발을 들고 “삼자”를 반대함으로 사람들에게 “삼자”는 단지 하나의 허황된 구호이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역할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인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넷째, 어떤 사람들이 반(反) “삼자”를 표방하여 스스로 영적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여 딴 살림을 차리기 때문이다. 다섯째, 어떤 지역은 종교정책이 아직까지 뿌리 내리지 못해서 “삼자”의 교량역할을 상실함으로서 삼자애국조직의 호소력은 자연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
 

44. 해외에는 여전히 “삼자”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답: 있다.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단지 소수에 불과하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일부 반화세력(反華勢力)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을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우리나라의 기독교를 통제하는 지위를 회복하고자 기도(企圖)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어떤 사람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근거도 없는 것을 조작하고, 과장해서 말하고, 부화뇌동하여 발생한 이롭지 못한 영향이다. 세 번째는 우리나라 교회가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일에 다소 부진한 까닭이다.
근 50년 동안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을 통해 삼자의 정의성, 합리성 및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국제 기독교회 및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 교회가 실시하고 있는 삼자원칙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틀림없이 갈수록 적어질 것이다.


출판| 중국기독교 농촌교회 사역위원회
저자| 리빠오러(李保乐)
번역| 하영인·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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