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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20  통권 85호  필자 : 편집부  |  조회 : 1926   프린트   이메일 
[인터뷰]
방지일 목사님을 만나다

편집자의 말 -- 방지일 목사님은 본선교회 고문이시며 영등포교회 원로목사님으로 목사안수를 받은 지 67년째가 되어간다. 그는 평양신학교를 나왔으며, 1907년 평양 대부흥의 중심지인 장대현교회 등에서 사역을 했으며, 1937년부터 1957년까지 총회 파송 선교사로 홍콩으로 추방되기까지 20년 간 중국 산둥성에서 사역을 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본대로 들은대로’, ‘피의 복음’, 그리고 성경 강해서를 비롯해 97권의 책을 펴냈다. 


언더우드상을 받고
방지일 목사님은 지난 11월 연세대에서 제정한 언더우드 선교상을 수상하셨다. 수상 소감을 물었더니 ‘한 일도 없는데 상을 받게 되어 고맙다.’며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셨고 하시는데 그의 부르심에 참여하였던 제게 수상은 송구스러울 뿐이다. 복음이 들어온 지 30년도 되지 않을 때에 우리 총회가 조직되면서 우리도 받았으니 이제는 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예전에 孔孟의 道义교훈을 받았으니 생명의 말씀을 중국에 전하자는 결의가 되었다. 중국은 우리보다 80년 전에 복음을 받았고 교회조직이 되어 있었다. 총회에서 중국 교회에 제의하였더니 저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매우 신기하게 생각하며 孔孟의 道义에 答한다면 그 근거지인 山东城에서 가장 오지인 来阳현을 처음에 지적하여 주었다.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해 주신 일이었다.”

1937년 봄에 산둥성에 부임하셨다. 21년을 지나면서 다섯 번의 정변을 당하셨고 일본의 합작에 거절하시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삼자교회와 지하교회간의 신앙적인 갈등이 있지만 그때는 말씀에 근거한 삶을 살았다고 하신다. 추방당하시기 전까지 그곳에서 사역하시면서 40여 개의 교회를 개척하셨다. 지금은 그곳에 가시지는 못하지만 그곳 교인들로부터 연락을 온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 본인은 그곳에 가실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중국선교의 태동과 당시의 상황
한국 교회가 중국선교 붐이 일어난 지 불과 10여 년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90년이 넘었다고 보아야 한다.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들어와서 복음을 전한 지 23년 만에 한국 목사가 탄생하였고, 28년 되던 해 총회가 결성되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孔孟의 道义의 교훈을 받았으니 생명의 말씀으로 중국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결의하게 되었다.

중국 교회가 지적해준 山东城 来阳현에 부임하여 사역을 시작하였다. 방목사님은 중국 교회에 입적하여 중국 교회의 뜻에 따라 사역하였다. 그 당시 일본이 대륙을 점령하여 서양선교사들은 철수하거나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중국 교회는 공백상태가 되었다. 이틈에 일본에서는 동아시아 선교회를 만들어 일인목사를 파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사역하기를 요청하였지만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결국 가택수색을 당하고 헌병대에 끌려가고 마지막에 추방하겠다는 위협을 받았지만 저들에게 굴하지 않았다. 중국 교회 교인들의 간절한 기도로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었고 중국 교회와는 더 큰 협력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중국이 공산화 된 후에도 9년 간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중국 교회와 교인들 덕분이었다. 홍콩으로 추방되기까지 교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교단과 교리문제에 대해서
그들 스스로 교단을 형성하여 움직이는 것이 가장 좋다. 외국 선교사가 들어가서 자신의 교단을 강조해서도, 또 초교파라고 해서 정죄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복음을 전할 때는 교단이나 교파가 사라져야 한다. 순수한 복음, 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 동안 서로 경쟁적으로 사역을 하다보니 인적, 물적으로 낭비가 심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일이 지속되면 엄청난 에너지가 낭비될 것이다.

교
회의 문화를 보면 개발도상국 안에 있는 교회들은 교파가 없다. 교파로 따지면 여러 교파지만 그것을 묶어 하나의 총회를 만든다. 신학교를 짓는 일에도 각 교단에 속한 신학교가 아니라 교파를 초월한 신학교여야 한다.

중국 내에 있는 신학교 중에 정부의 허가를 받은 학교는 동북신학교 밖에 없다. 북경이나 그 외의 지역은 비공식적인 학교로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특성상 삼자교회와 지하교회가 있는데 삼자교회의 목회자들은 정부에서 인정한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지역마다 교회의 상황이 다르다. 어느 지역의 市長이 예수를 믿으면 그 지역은 삼자회에 가입하지 않고도 예배당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고은 삼자회에 가입하거나 지하교회로 활동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곳만 보고 중국의 교회가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수 없다. 일부 선교사들이 자신의 교파나 교리를 내세워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초교파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선교지에서 사역해야 한다. 

이단의 침투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이단의 침투를 막을 방법은 없다. 이단의 문제는 중국의 교회가 하나하나 구성원이 되어 있지 않고 조직을 갖추지 않아서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오직 대처할 방법은 지하교회 지도자들인데 그들도 제대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통일교나 구원파 등과 같은 이단이 들어오면 대처할 능력이 없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려면 지하교회 지도자들과 사역자들을 교육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의 연합체를 구성하여 강력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의 신앙은 우리의 신앙보다 훨씬 좋다. 그리고 깊이가 있다. 그들은 신앙의 황무지가 아니다. 중국 교회들 가운데 실력 있는 교회들이 많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교회를 개척하거나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씨뿌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방문할 때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신앙으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하 교회를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도자 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중국이 선교하는 나라가 된다?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선교의 방향이 새로운 흐름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선교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러시아가 무너질 때도 사상의 변화가 있었다. 중국이 경제만큼은 개방하면서 정치, 문화, 교육, 종교에 있어서 사회주의를 계속 표방하는 것은 일종의 모순된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생각건대 이러한 정책이 지속되면 사회주의 정권은 오래가지 못하고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현재 중국인들은 사상적으로 혼미한 상태에 있다. 그동안 배운 교육이나 사상이 레닌주의이지만 외부에서 유입되는 대중문화로 인해 그들은 정리되지 못한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 교육이나 사상에 있어서 레닌주의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본다. 세계 각 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그 동안 사회주의 안에서 배워왔던 것과 차이를 느끼게 되면 제2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현재 중국은 손문의 삼민주의 사상이 핵심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러시아가 무너진 것처럼 중국에서도 막스 레닌주의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려면 그들의 선택은 삼민주의일 것이다.

중국이 선교하는 국가가 되려면 사회주의 체제를 버려야 한다고 하셨다. 공산권이나 이슬람권에서는 선교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계획적인 선교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선교 헌신자들에게
선교 후보생들이나 헌신자들에게 요구되거나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열정을 가지고 선교지에 들어간다. 그러나 열정만 가지고 선교를 하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의 인격, 즉 知正义가 일치된 선교사를 요구한다. 한국 선교사들은 대부분이 정서가 앞서고 의지와 이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지정의가 일치된 선교사를 선별하고 훈련시켜서 선교지에 보내야 한다. 아직까지 단체나 교단, 교회가 선교사를 보내서 자신의 이름이나 단체를 나타내려는 경향이 많은데 이는 옳지 않다. 그들에게 순수한 복음, 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게 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오직 씨뿌리는 것인데 이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처럼 그렇게 해야 한다. 삼자교회는 외국인 선교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 사역을 하려한다면 삼자교회와 교섭해서 그들 아래서 사역을 해야 한다. 선교사가 교인들에게 책을 전하거나 기도하고 위로하는 것은 좋지만 보다 더 나은 방법은 보일 듯 말듯 생활 속에서 나타나야만 한다. 물론 그 이전에 다른 사람이 했던 것을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돈을 주는 것보다는 신앙의 참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또한 반드시 배우는 자세를 잊어버려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선교사는 배우러 가는 것이지 무엇을 주러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요즘 근황은
작
년 11월, 12월에 걸쳐 뉴질랜드. 호주에서 열린 선교대회 강의를 갔었고 싱가포르에서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에 있는 농장을 방문하고 돌아오셨다. 곧이어 일본으로 가셔서 선교사들을 만나서 그들을 위로하고 세미나를 하고 오셨다.

2004년 1월부터 선교지 방문이 이어졌다. 미국에서 열린 선교대회, 파키스탄 선교사수련회의 강의와 필리핀, 그리고 캐나다를 방문하기로 약속했다고 하신다.

중국선교의 일인자라고 할 수 있듯이 방목사님의 사역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에 있다. 93세의 고령에도 일년의 절반은 선교지를 방문하고 선교사들을 위로하고 강의하는 것이 그의 주요 사역이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하실 것인지 질문했더니,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이 일을 쉬지 않고 계속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명예나 권위에 대한 욕심보다는 소박하고 검소하며, 따뜻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황혼의 아름다운 모습이 방 목사님을 통해 따스하게 느껴졌다. 


취재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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