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28일 화요일, 오늘 아침 우리는 서호(西湖: 항저우(抗州) 서쪽에 위치한 호수-편집자 주)를 유람하며 그 아름다운 호수 빛과 산의 경치에 흠뻑 취하였다. 간간이 옅은 안개가 맑고 신선한 바람을 좇아 거울 같은 호수 위를 가볍게 날아갔다. 보일 듯 말 듯한 바람소리는 글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옛말에 ‘만리장성에 이르지 못하면 호한(好漢)이 아니다.’라 하였는데, 나는 ‘서호를 유람하지 않고 호수를 논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정오에 우리는 한창 건축 중인 저장(浙江)신학교 공사현장을 참관하러 교외로 나갔다. 이 신학교는 외관이 매우 산뜻하고 내부 시설도 상당히 현대적이었다. 내년에 수업이 시작되면 350명의 기숙생과 100여 명의 단기생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신학교의 건축비는 그 절반 이상이 해외 중국인들의 헌금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신학교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은혜가 되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얼마나 큰가! 이 현대화된 신학교가 배출해 낼 학생들은 장차 현대 지식을 갖춘 성직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중국의 사회상황을 이해한다면, 중국 정부가 국민의 의식형태를 중시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중국은 인구가 너무 많고 땅도 넓은데다가 교육이 그리 보편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반 국민의 문화수준은 낮은 편이다. 그러기에 정부가 국민의 의식형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단사설’이 쉽게 범람하고 만다. ‘파룬궁(法輪功)’이 바로 그 좋은 예이다.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혼란 국면의 시작은 대개 일부 야심가들이 종교를 가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다가 결국에는 난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동한(東漢)의 ‘황건적(黃巾賊)의 난’과 ‘오두미교(五斗米敎)’, 원(元) 말의 군웅(群雄)이 일으킨 ‘백련교(白蓮敎)’, 청(淸)대 중엽의 태평천국(太平天國)이 숭배하던 ‘상제회(上帝會)’, 청말의 의화단(義和團) 등이 있다.
따라서 교회가 이렇게 현대화된 신학교를 건축하도록 정부가 허가한 이면에는 종교에 대한 정부의 독특한 견해가 있는 것이다. 신학교는 인재를 배양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전도인과 목사를 배양하는 곳이다. 바꾸어 말하면 미래 중국 교회의 ‘지도자와 핵심 간부’를 배양하는 곳이다. 이것은 중국의 기독교인들이 20년 개혁개방 시기에 국민의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기독교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이요, 사회를 안정시키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되었다. 그러므로 비로소 교회가 신학교를 세우는 일을 안심하고 허가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구세대 기독교인들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사회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참 도를 확실히 실천하여, 기독교를 서양종교로만 인식하던 중국인의 왜곡된 관념을 타파하였다.
저녁에 우리는 항저우시 쓰떵탕(思澄堂)에서 성탄 감사 청년예배를 드렸다. 이 교회는 우리들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는데, 성도들은 교회당을 마치 거대한 성탄 선물처럼 장식하였다. 커다란 빨간 리본을 교회 정문 위 정 중앙에 걸어 놓았고, 커다란 끈을 정문 난간까지 늘어놓았다. 교회가 번화한 큰 대로에 자리하고 있어, 그 순박함과 독특함이 한층 돋보였다.
우리는 이 교회 목회자와 교제를 나누면서, 근래 들어 신도 수가 급속히 증가했고, 지금 교회를 위해 일할 사명감 있는 성도들을 적극적으로 양육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 기쁨과 위안이 된 사실은 최근 몇 년 동안 새로 온 신도 중에 청년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많은 젊은 지식인들이 교회에 참신한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우리가 참석한 청년 예배는 아름다운 찬양과 함께 무척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예배가 시작될 때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오늘 예배에 참석한 세 단체를 소개했다. 첫 번째는 홍콩에서 온 우리 교우들이었고, 두 번째는 약 30여 명의 천주교인이었고, 세 번째는 외국 교회의 성가대였다. 주 안에서 한 가족임을 깊이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천주교인이나 기독교인, 외국 교회 교인이든 그 어떤 구분도 없는 것이다. 지극히 높으시며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영원히 스스로 계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인간이 어떤 방법으로든 진리를 좌지우지하려 해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리에 맞설 수 없다. 과거 중국 교회가 받은 많은 핍박은 오히려 그들을 겸손하게 하였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섭리 위에 세워진 것임을 믿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역사 배경이 서로 다를지라도 서로의 예배형식을 존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큰 도를 굳게 지킨다.
예배의 마지막 부분에 외국 교회 성가대가 찬양할 때 역시 매우 감동적이었다. 피부색, 국적, 언어, 문화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는 마음은 한결같음을 실감했다.
현 중국이 WTO 가입과 과학교육 부국을 미래의 주요 노선과 방침으로 삼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중국의 세계화 지향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며, 중국인이 예로부터 가지고 있던 그 문화적 우월감은 더욱 큰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미래의 동서문화 교류에서 기독교는 중국과 서구문화 교류의 중요한 일환이 될 것이다. 중국인의 교육 수준이 끊임없이 향상되고 국민 생활의 질이 부단히 개선된 이후, ‘중화문화’ 개혁운동은 시대의 발전에 부응하여 필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기독교 역시 이 과정 중에서 토착화될 것이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사랑이 중국 전체를 지속적으로 널리 비취어, 복음이 중국의 온 땅 위에 두루 전해질 수 있도록 힘써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홍콩 교회 성도의 중국대륙 방문기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주〕
출처 | “華東豊盛之旅”, 「展望中華」 2000. 4/5
번역 | 김현주 · 자원봉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