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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8.20  통권 65호  필자 : 에스더  |  조회 : 2467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 현주소]
부인 선교사, 특별한 주부의 보통의 삶

동반 사역자의 영광
선교사의 아내를 그의 학력이나 소명에 상관 없이 부인 선교사로 인정하고 함께 파송을 하는 것은 그만큼 그 역할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부인 선교사의 역할 역시 평신도 가정주부와 별 다를 바 없다. 신앙생활하면서 자녀양육하고, 살림하고, 손님대접하는 일들이다. 단지 선교지에 살면서 하기 때문에 똑같은 일이라도 선교사역이 되고, 주의 일이 되며, 십자가의 길이 되는 것이니 얼마나 축복되며 송구스럽기까지 한 일인가! 

누구나 일생을 살면서 한 번쯤 사고를 당하거나 상처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선교지에서 겪은 상처나 사고는 주님의 남은 고난의 흔적을 내 몸에 채우는 영광의 상처요, 십자가의 면류관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주님께서 여러 배로 갚아 주시는 축복과 상급이 있기에,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그 날을 바라보며 지금의 고난이 고난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체제와 낯선 문화 속에서 중국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너무 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사랑과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웃이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조심스럽게 경계하면서 관계를 맺어야 하므로, 지속적으로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한 영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게 여겨지고, 한번 맺어진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들이 머지않아 함께 주의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의 관계가 될 것이라는 그림을 처음에는 선명하게 그리지 못했다. 단지 주님이 보여주시는 만큼 순종함으로 나아갈 때 주님의 뜻을 알게 되고, 전체 그림의 윤곽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진다.
 

생활이 곧 선교
나는 사역 생활 초기부터 학교에서 언어를 꾸준히 배우고, 오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현지인 과외교사로부터 실용언어와 중국 문화, 관습에 대해 공부했다. 문화와 언어를 꾸준히 익혀감으로 중국을 더 잘 알고 이해할 수 있으면서 사역에 직접적으로 동참할 수 있었다. 과외교사를 통해서 보모를 구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그녀의 장래를 위해 계속 공부하도록 도와주고 학비와 생활비는 자신이 벌어서 쓸 수 있도록 일들을 마련해 주면서 조금씩 교제의 폭을 넓혀갔다. 중학교만 졸업한 그녀는 열심히 공부해서 정식학교를 다니지 못한 이들을 위한 ‘문화고시(文化考試)’에 합격,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얻었고, 전문기술을 익혀 전문대학까지 졸업하였다. 또한 우리 모임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고 성경공부를 통하여 신실한 믿음을 갖게 되었고, 같은 모임에서 만난 형제와 결혼하였다. 

사역에 있어서 전체 모임과 그룹 성경공부, 형제들의 개인양육은 남편이 주로 하고, 필자는 자매들 개인양육과 소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하였다. 현지인을 직접 돕기 시작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이들에게 떡과 복음을 얼마만큼 적절히 공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남편과 의견이 다를 때도 있었지만,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가난과 필요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필요를 채우거나 도울 때에도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구하였고, 그들의 자존심과 체면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지혜를 구하였다.

예를 들면 중국 친구들을 주로 집으로 초대하여 작은 천국의 모형인 가정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볼만한 비디오 테이프가 생기면 친구들과 함께 와서 보게 하고, 좋은 영화가 상영되면 함께 영화도 보러갔다. 봄, 가을이면 자매들과 함께 만든 김밥을 싸들고 야유회를 가거나, 방학 때 형제 자매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그 식구들과 함께 교제하기도 했다. 김치를 좋아하는 한 형제에게 김치를 싸준 적이 있는데, 기숙사 친구들이 5분 만에 해치웠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 형제의 기숙사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김치 등 한국 음식을 대접하였다. 결국 그렇게 김치가 인연이 되어 그 기숙사 친구 전부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선교지에서의 자녀 교육
선교사 후보로 훈련원에 들어가기 전, 한 모임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기도제목이었던 자녀교육에 대해 기도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한 사모님이 “중국에 가면 중국사람으로 키우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고 한 말이 참으로 충격적이고 상처가 되었다. 내가 믿음이 없어서 쓸데없는 걱정이나 하는 연약함을 노출하고 말았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훈련원에 들어가 보니 모든 선교사 부모들에게 자녀교육은 가장 큰 염려요 기도제목이었다. 하지만 훈련을 통해 자녀교육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립이 되고, 선교지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날 수 있을지 실제 사례들을 통해 대비할 수 있었던 점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선교지에서의 자녀양육은 부모의 철학이 가장 중요하다. 선교지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많은 변수를 안고 있기에 부모의 생각이나 믿음처럼 진정한 한국인으로 성장하기 힘들다. 국제적인 감각을 지니면서도 정체성이 분명한 한국인으로 키우는 것은 부모의 철학과 교육방법에 달렸다. 그래서 필자는 자녀들을 정서적으로 안정된 한국인으로 키우고자 결정하고, 현지 학교에 보내면서도 방학 때마다 한국의 학년에 맞게 국어공부를 보충해주고, 매일 한국어로 일기를 쓰도록 했다. 선교지에 들어갈 때 초등학교 1학년과 유치원생이었던 두 아이는 저학년 시기를 잘 적응하여 1년 후에는 현지 학교에서 상위권을 다투는 실력이 되었다.

그러나 자녀들이 현지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적응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처음 큰아이는 몇 달 동안 매일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고, 작은아이는 매일 배가 아프다고 했다. 현지 학교에서 선생님이 몇몇 아이들을 남게 하여 나머지 공부를 시키는데, 글씨가 정갈하지 못하고 갈겨쓰듯 하는 작은아이에게도 남아서 글씨를 다시 쓰도록 하였다. 자기가 나머지 공부의 대상이 된 아이는 크게 화가 났던지, 학교에 안 가겠다고 매일 울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아이에게 틱 장애(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반복적으로 불규칙하게 근육이 움직이거나 소리를 지르는 정서장애-편집자 주)가 왔다. 정서적으로, 심적으로 스트레스와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선생님을 찾아가 외국 아이니까 특별한 배려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면서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토요일마다 놀이공원에 가고, 중국의 문화를 체험케 하였다. 틱 장애는 두 달 이상 지나서야 없어졌다. 처음 얼마 동안은 힘들었지만 아이들은 곧 적응하면서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해나갔다. 언어가 어느 정도 터득되자 매일 받아쓰기 시험과 자주보는 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였다. 아이들은 서로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면서 적응하기가 훨씬 수월해지는 것 같다. 중국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함께 먹고, 놀고, 공부하고 경쟁하면서 재미와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선교사 자녀
자녀교육에 대한 또 하나의 어려움은 사역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외로운 외국생활에 손님들이 자주 오는 것에 대해 아이들이 반가워하고 좋아했었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는 점점 반응이 달라졌다. 손님이 오면 거실에서 만화영화를 볼 수 없는 것에 불만을 표하더니, 매일 손님 오는 일에도 불만을 표하는 것이었다. 자유롭게 밖에서 놀 수도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즐거움인 만화영화를 못 보게 될 뿐만 아니라, 방에서 조용히 있어야 하는 고문(?)에, 자신들의 생활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가정에서 모임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처 자녀들을 배려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과 아쉬움이 있다. 이후로는 지나치게 자녀들의 희생까지 요구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선교지에서의 자녀양육은 어려운 점도 많이 있지만, 장점은 최대한 활용하고 단점은 보완한다면 이보다 좋은 교육 여건은 없을 것이다. 국제화, 세계화의 시대에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과 또 하나의 문화권에서 외국어를 익힐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장점인가. 물론 단점도 있겠지만 부모가 미리 알고 최대한 보완하면서 자녀에게 그 시기에 맞는 적절한 대처를 한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차세대의 지도자로 하나님께서 키워가실 것이다.
 

분명 선교사 부인의 삶은 그 남편의 사역과 연결된 특별한 삶, 선교적 삶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삶의 내용은 그 어느 여염 주부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부인 선교사가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산은 어쩌면 남편 선교사보다 훨씬 클지 모른다. 그것은 부인 선교사의 삶의 성패가 곧 그 선교사의 사역의 성패를 결정지울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인 선교사의 바람직한 역할상을 실제적으로 정립하고 부인 선교사를 배려하는 과제가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에스더 | 중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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