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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20  통권 62호  필자 : 중국어문선교회연구부  |  조회 : 3577   프린트   이메일 
[중국의 관문도시]
복음의 관통로,중국의 관문도시들 - 우한(武漢), 쑤저우(蘇州)
중국의 관문도시(13)

우한(武漢)
우한시는 본래 우창(武昌), 한커우(漢口), 한양(漢陽)이 각각 별개의 도시였으나 지금은 이 세 지역을 합쳐 우한이라고 부른다. 우한은 이 3개 진(鎭)이 합쳐서 이루어진 곳이라는 의미로 옛 이름은 강하(江夏)이다. 그래서 지금도 시내를‘우한삼진(武漢三鎭)’이라고 한다. 창장(長江) 중류 물줄기와 한수(漢水)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후베이(湖北)성 중부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행정구역 : 후베이성의 수도로서 우창(武昌), 한커우(漢口), 한양(漢陽) 3개 지역이 병합되어 이루어졌으며, 8개의 성구(省區)와 2개의 교구(郊區), 3개의 직할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명칭을 보면 강안(江岸), 강한(江漢), 교구(      ), 한양(漢陽), 무창(武昌), 청산(靑山), 홍산(洪山), 동서호(東西湖), 한남(漢南), 채전(蔡甸), 강하(江夏), 황피(黃陂), 신주(新州)가 있다.
 

인구와 면적 : 총인구 728만에 총면적 8,467㎢이다. 이중 시구의 인구는 450만 명이다. 우한은 창장 중류 물줄기와 한수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 인구 388만의 상공업 도시이다.
 

지리와 기후 : 우한이 속해있는 후베이성은 예로부터 수륙교통의 요충지였는데 우한대교의 완성으로 그 역할이 더 높아졌다. 기후는 아열대 습윤 계절풍 기후로 사계절이 뚜렷하고 연평균 기온은 15∼17℃이며 1월 중에는 2∼4℃, 7월 중에는 27∼30℃이다. 우한은 창장 유역의 난징(南京), 충칭(重慶)과 함께 중국의‘3대 화로’라고 불릴 정도로 무더운 지역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온이 높아 40℃ 이상 되는 날도 많고 연 강수량은 800∼1,500mm 정도이다.

역사 : 일찍이 상(商) 왕조부터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이 지역은 전국시대에는 초(楚)나라 땅이었다. 초나라는 전국칠웅(戰國七雄) 가운데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진(晉)과 남북으로 대립하며 이 지역을 400여 년 간 다스렸었다. 지금의 우한은 동한(東漢) 때부터 다시 건설되기 시작하여 당송(唐宋) 때 기본적으로 도시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명조(明朝) 때 행정부로 설치되면서 한커우는 상업이 번영하여 중국 4대 유명한 진으로 불렸다. 악양루(岳陽樓)와 함께‘강남의 3대 명루(名樓)’중의 하나인 황학루(黃鶴樓)는 당나라 이백(李白)이 시를 읊기도 했던 곳이고, 기원전 3세기 시인 굴원(屈原)이 시를 읊었던 장소도 이곳 우한에 있다.

아편전쟁 이후에는 외국의 조차지로 개방되어 지금도 우한에는 서양식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이곳 우한은 1911년에 손문의 신해혁명에 도화선이 되었던 지역으로 우한의 한 지역인 우창에서‘우창봉기’가 일어나 결국 신해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또 초기 공산당회의도 한커우에서 열리면서 초기 공산혁명의 중심지로 활약을 해왔다. 1923년에 한커우시가 설립되었고, 1949년에 세 개의 진(우창, 한커우, 한양)을 합병해서 지금의 우한시를 설립했다.
 

경제 : 우한은 명대 이후부터 중국의 4대 행정도시 중의 하나로 5대 통상 항구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였다. 20세기 초에는 대외무역액이 상하이(上海)에 이어 중국 전체에서 제2위를 차지하여 ‘동방의 시카고’라는 별칭을 얻은 적도 있다.

또 우한은 중국 곡창 지대의 하나이다. 주로 쌀(2모작), 소맥, 옥수수를 생산하고 수수와 고구마도 난다. 특용작물로는 면화, 차, 유채, 담배 등을 재배하며 양잠도 활발하다. 서부 산지에는 목재 이외에 오동나무나 옻칠(전국 1위)을 많이 생산한다. 지하자원은 철, 석탄, 석고(전국 1위), 동(銅) 등이 풍부하다. 공업도 우한제련소의 철강을 비롯하여 공작 기계, 철도 차량, 면방직, 종합 식품, 시멘트, 제분 등의 공업이 활발하다. 한커우(漢口)는 상업도시이며, 우창(武昌)은 약 60여 개의 고등교육기관이 있는 교육도시이고, 한양(漢陽)은 공업도시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후 줄곧 국가의 투자 중점지구로 중요시되어 온 우한은 이제 중국 3대 철강 공업지대의 하나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후베이성 정부 소재지일 뿐 아니라 성 전체의 정치, 경제, 과학, 기술,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더구나 화중 지구에서 특대형의 중심 도시에 속하는 우한은 그 우월한 투자환경으로 해외 기업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옛부터 동서로는 상하이와 충칭을 창장의 수운으로 연결하고 남북으로는 창장대교를 통해서 베이징(北京)과 광저우(廣州)를 철도로 연결한다. 우한은 옛날부터 교통의 요충지여서 굴곡도 많은 혁명의 역사적인 무대가 되기도 했다. 우한 장강대교, 황학루(黃鶴樓), 동호(東湖), 무당산(武當山), 태화궁(太和宮)은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특히 전국적으로 유명한 무당산은 도교의 중심지로 많은 사람들이 도를 닦고 수행하던 곳이다.
 

기독교 상황 : 1949년 공산화 이전 중국내지선교회(CIM)는 후베이성 내에서 선교사들 뿐만 아니라 많은 중국인 사역자를 통해 그 사역을 개척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토착화로 후베이성에 많은 수의 기독교인을 배출할 수 있었다. 우한은 우리의 평양과 같이 공산화 이전에는 복음의 중심지였다. 원래 80개의 교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구세당(救世堂), 영광당(榮光堂), 무창당(武昌堂), 청산당(靑山堂) 4개의 삼자교회만이 남아있다. 인구 750만의 대도시에 단 4개의 교회만이 남은 것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교회에 대한 통제와 외국인에 대한 통제가 심해 공안에서는 우한을 통제관리의 모델로 제시할 정도이다. 일반 외국인에 대해서도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회사 내에 직원 한 명은 감시교육을 시켜서 정부에 반하는 어떤 활동을 하지 않는지 보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우한시 공안의 3명이 이들 사업인들을 전담하여 관리하고 조사하고 있다.

또 우한인은 전국에서 가장 상업적인 사람들로 마음을 쉽게 열지 않을 뿐더러 이익이 되지 않으면 쉽게 돌아선다. 교회통제의 한 예로 한 교회의 청년이 50명이 넘어서자, 교회에서는 청년부 자체를 폐쇄해버렸고, 한 전도사가 열심히 사역하여 교회가 부흥하자 그 전도사를 사임시키기도 했다. 우한에 있는 중남(中南)신학교의 경우 10년 간 200명씩만 모집해왔다.
 

정부와 삼자의 조직적인 정책으로 실제 우한 교회의 영적 분위기는 매우 침체되어 있다. 가정교회들의 경우 제자양육과 지도자의 부족으로 신비주의 경향이 강하며 서로에 대한 오해와 갈등이 있다고 한다. 후베이성 내 교회 지도자의 교육수준이 대체로 낮고 그 자질이 부족한 편이라 효과면에서는 지식인을 전도하여 양육하는 것이 전략적으로는 유리하다.

또 양육을 하게 될 경우에도 돈을 주지말고 어려운 여건에서 교육을 진행하여, 이 현지인 제자가 중국인 사역자로서 광범위하게 사역할 수 있도록 일선에서 물러나 문서를 보급하고 말씀을 양육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외국인이 삼자교회에 공식적으로 신분을 알리고 사역을 하면 설교도 할 수 있고, 교회도 지어줄 수 있지만, 문제는 삼자교회에서 사역의 기회를 주는 것은 본국에 와서 돈을 가져오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평생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한 명, 두 명의 제자를 키워내는 사역을 하고 있는 분의 귀중함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중남신학교에 영적으로 각성한 일꾼들이 많이 들어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삼자교회가 내부에서 영적인 개혁이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중보해야 한다.
 

기도제목
1. 우한의 교회를 압박하는 모든 사단의 전략을 묶고 삼자교회와 가정교회 모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개혁과 각성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자.
2. 기독교 교재(양육), 신앙서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지인의 정서에 잘 맞는 문서가 번역, 보급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
3. 더 많은 일꾼들이 우한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하자.



쑤저우(蘇州)

쑤저우는 상하이(上海)에서 1시간 떨어진 곳으로 장쑤(江蘇)성 경제의 중심지이며, 창장(長江) 하류의 거점도시이다. 옛부터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도시이며, 백거이(白居易) 등 시인의 작품 무대가 되었던 아름다운 곳이다. 도시 전체가 정원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곳곳에 조성되어 있고, 곳곳에 운하가 있어 사람들이 배로 이동하며, 다리 위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이 옛 정취를 자아내게 한다.
 

행정구역 : 쑤저우시는 핑장(平江), 진창(     ), 창랑(滄浪), 자오취(郊區) 등 4개의 시구(市區)와 창셔우(常熟)시, 창자항(長家港)시, 쿤산(昆山)시, 타이창(太倉)시, 우장(吳江)시, 우씨엔(吳縣)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4개의 향(鄕), 158개의 진(鎭), 3,332개의 촌(村), 22개의 가도(街道)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와 면적 : 총인구 573만 여 명으로 장쑤성 내에서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면적은 8,488㎢로 성 내에서 다섯 번째로 크고  성 전체 면적의  8.2%를 차지한다. 이 중 시구의 총면적은 392.3㎢로 쑤저우시 전체 면적의 4.6%에 해당한다.
 

지리와 기후 : 아열대 계절풍에 속해 온난다습한 기후이다. 연평균 기온은 16.2℃이고, 1월 최저 기온이 영상 4℃ 정도이다. 연간 강우량은 1,115㎜내외로 6월 강우량이 가장 많다. 평야가 전체 시면적의 55%이고 구릉지대는 3%, 나머지가 40% 가량이 운하인 수상도시이다.
 

교통 : 공항이 없으므로 상하이에서 기차를 타면 1시간 이내에 도착하고 하루에 10회 정도 운행된다. 버스의 경우 항저우(抗州)나 우시(無錫)에서는 10회, 상하이에서는 6회 운행되고, 샤오싱(召興)이나 양저우(楊洲), 닝뽀(寧波) 등에서도 버스가 운행된다. 배편은 항저우나 우시에서 하루에 2편 정도 출항하는데, 우시에서 6시간, 항저우에서 14시간 정도 소요된다.
 

역사 : 쑤저우는 기원전 514년 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의 수도로써 오왕인 합려가 23.5㎢의 성벽을 쌓으면서 도시가 시작되었고, 이후 수나라 9년부터 이곳을 쑤저우라 불렀다. 송(宋)대엔 곡창지대로 이름 높았고, 남송 때는 자수와 비단 직조가 발달하였으며 높은 예술문화와 함께 유명한 정원이 조성되었다. 옛부터 쌀, 비단, 차, 물고기가 풍부해‘물고기와 쌀의 고장(魚米之鄕)’이라고 불리웠다. 

쑤저우에는 사원이 많이 있다. 육조시대(六朝時代)에 한산(寒山)이라는 명승이 주지를 맡아 한산사(寒山寺)라고 명명된 사찰이 있다. 수나라 때 뤄양(洛陽)에서 항저우까지 운하가 연결되면서 운하의 중심지로 활약하게 되었다. 명(明)대에 베이징(北京)에서 항저우를 관통하는 대운하가 건설되었다. 운하의 건설로 물품의 운반이 편리해져 강남의 풍부한 물산이 북부로 유통되었고, 쑤저우는 물산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송(宋), 원(元), 명(明), 청(淸) 대엔 많은 정원들이 조성되었다. 작은 사찰 혹은 왕의 정원으로 쓰이던 곳을 정치인이나, 도교 승려, 시인 등이 정원으로 개조한 것이다. 쑤저우의 특산물로는 비단과 자수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경제 : 개혁개방 이후 연평균  21.7%의 성장률을 보이며, 창장 남안의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쑤저우시는 우시(無錫), 창저우(常州)와 함께 향진기업(鄕鎭企業)을 원동력으로 하여 공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전국적으로 쑤저우시는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廣州)에 이어 네 번째로 공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장쑤성에서 다섯 번째 규모인 창자항(長家港)이 있어 화물운송에 유리하고 대외무역도 장쑤성에서 가장 발달하였다. 

쑤저우시는 ‘중화민국외상투자기업법(中華民國外商投資企業法)’제3조에 의거하여 중국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이나 첨단기술과 설비를 사용하는 기업, 그리고 생산품 대부분을 해외에 수출하는 외국기업의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에너지 및 자원절약형 기업과 총생산액의 50% 이상을 해외에 수출하는 기업, 외환수지가 흑자인 기업의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5개의 국가급 개발구와 7개의 성급 개발구를 설치하고 외국기업의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각 산업의 비율을 보면 9:60:30으로 2차 산업의 비중이 월등히 높고, 1차 산업의 비중은 현저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생산액보다 소비액이 현저히 증가하면서 3차 산업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또 공업생산에 관한 기초시설 투자액이 적은 편이어서 지방 정부의 재정은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1차 산업의 경우 농업생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외의 산업은 비중이 그다지 높지 못하다. 보리, 옥수수 등의 식량작물과 깨, 면화 등 작물을 생산하고 있다. 3차 산업인 금융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발달한 편이어서 은행 대출 규모도 큰 편이다.
  
기독교 상황 : 쑤저우는 옛부터 경제적으로 윤택한 도시였다. 다른 지역에 가뭄이 들더라도 이곳은 가물지 않는 좋은 자연조건을 이루고 있어 도시 분위기나 사람들의 마음도 평온하고 풍요롭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인들처럼, 쑤저우 사람들도 내세를 믿지 않고 현세에서 부요하게 사는 것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삶의 여유로움 속에서도 진리에 대해 갈급해 하는 영혼들이 많이 있다.

쑤저우에는 궁강탕(宮巷堂), 스투탕(使徒堂) 두 개의 삼자교회가 있는데, 메시지의 복음적인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쑤저우 대학 앞에 공산화 이전 외국인 선교사가 세운 교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기독교협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기도제목
1. 쑤저우에 있는 영혼들이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도록.
2. 쑤저우의 지식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듣고 믿어 쑤저우 복음화에 앞장 설 수 있도록.
3. 많은 사원과 도교 유적지의 영적인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결박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더 많이 이 땅으로 나아가도록.

 

정리 | 중국어문선교회 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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