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부터 교회를 다녔던 나는, 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를 할 때 종교란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적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대학을 다닐 때에도 여전히 교회를 다녔고 모든 교회 활동에 열심히 참가했다. 집회에 참가하고, 성경도 읽고, 결혼도 교회에서 했다. 표면적으로 나는 완전히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기독교적인 의식과 규례도 모두 지켰지만, 믿음은 분명치 않아 우매한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후 공산 정부는 무신론을 제창했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인이라는 신분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한 권의 성경책과 찬송가는 남겨놓았지만…. 문화대혁명 시기에 한 친한 친구가, 어떤 학생이 우리 집에 와서 가택수사를 할 것이라고 귀뜸해 주었다. 나는 성경책과 찬송가, 그리고 좥홍루몽(紅樓夢)좦 책이 생각났다. 나의 출신 배경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오빠들이 모두 해외에 나가 있기 때문에, 만약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큰 어려움이 닥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깊은 밤에 성경, 찬송가, 홍루몽을 밖으로 갖고 나가 모조리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고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퇴직한 후, 나는 과거의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매우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회개했다. “하나님! 제가 과거에 신실한 기독교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매번 나를 어려움에서 구해주셨습니다 - 한 번은 하나님께서 내가 비행기 타는 것을 막으신 적이 있었다. 결국 그 비행기는 사고가 나서 48명 모두 조난을 당했다. 또한 문화대혁명의 그 위험한 시기에도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셨다.- 하나님은 저를 그토록 사랑하셨는데 저는 당신께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저의 안전을 위해 성경과 찬송가를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과연 내 죄를 용서해주셨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만약 내 죄를 용서해주셨다면 하나의 증거를 보여 달라고 기도했다. 3일 연속 나는 동일한 기도를 드렸다. 얼마 후 하나님은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게 하셨다. 전기 플러그가 꽂혀 있지 않은 빈 녹음기에서 음성이 들려온 것이다. 한달 반 동안 매일 아침 8시 반, 11시 반과 오후 5시에 하나님은 항상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시는 것에 너무나 감사했다. 하나님은 나의 집에서 나와 함께 먹고, 함께 살고 매일 나를 부르셨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울면서 애원했다.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달라고….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3일이 지나 내가 여전히 매우 상심해 있을 때, 해외에서 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친척 한 분이 방문하였다. 그는 내게 하나님이 은혜의 길을 걷게 하셨으니 또 다른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기도하였다.“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전에 당신에게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당신은 이미 저를 용서하셨고 그 증거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부터 전심으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이전에 잃어버린 믿음의 삶을 되찾기 위해 더 열심히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한 편 한 편 성경을 읽어나갔고 그때부터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기 시작했다.
나는 여러 번 성경을 읽어서 열 여덟 번이나 완독하였다. 만약 전도자가 되려면 성경을 30번 이상 읽어야 된다고 어떤 책에 쓰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멀지 않았는가? 내가 이전에 화학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때처럼 단 하루만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기게 되었다. 특별히 내 주변에 있는 형제 자매들은 대부분 문맹이라서 성경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진리를 잘 알지 못했고, 잘못된 것을 정확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는 긴박한 필요를 느꼈다.
정말로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해주셨고, 적당한 시간에 성경반이 모집되도록 인도하셨다. 그런데 우리집은 길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항상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았다. 다른 자매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1주일에 3일씩 성경을 읽어 내려갔다. 10명 정도가 시작했는데 다들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매우 엄격하게 이끌었다. 처음 1독할 때는 우선 글자를 익히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매번 3장씩 읽고 필요할 때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들은 1년 2개월만에 성경을 한 번 다 읽을 수 있었다. 2독에 접어들어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번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집이 이사하기 전까지 1년 정도 지속되었다. 그런데 낯선 곳으로 이사온 후부터는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2년 여 동안 지속되던 성경공부는 중단되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자동차에 타고 있었는데, 운전기사가 나를 태우고 높은 산을 오르다가 깊은 계곡으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산은 가파르고 계곡의 물살은 거셌다. 사방에 꼬불꼬불한 작은 길들이 있어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차는 신기하게도 하늘을 날아 그 좁은 길을 쉽게 건넜다. 운전기사의 뛰어난 운전 솜씨에 감탄하고 있을 때 또 하나의 좁은 문이 나타났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도저히 지나가지 못할 것 같군요.” 그러나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우리들은 이미 넓고 아름다운 땅에 도착해 있었다. 햇살이 내 몸에 비쳐 매우 따뜻했다. “기사님, 차 좀 세워주세요. 차에서 내려 햇볕 좀 쐬고 갑시다.”
차는 멈췄고 운전기사도 나를 따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거기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기사는 앉자마자 그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사역 중에서의 부족함을 지적했다. 나는 매우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낯선 곳으로 이제 이사왔는데…’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또 겸손치 못하다고 할까봐 참았다. 내가 고개를 돌려보니 운전기사와 차는 없었다.
꿈에서 깨어난 후 꿈속에서 만난 운전기사가 바로 예수님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좁은 길과 좁은 문을 쉽게 지나가셨다. 그러나 나는 이사한 후 주님을 위한 일은 전혀 감당하려 들지 않았다. 나는 바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제가 당신께 잘못했습니다. 제가 이곳으로 이사온 후부터는 당신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나는 전에 함께 성경공부하던 자매를 찾아가 성경공부반을 다시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회의적으로 말했다. “어떻게 다시 시작하죠? 그 자매들이 사는 곳은 이곳에서 너무 멀어요.” “하나님의 인도를 구합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동하셔서 이곳까지 오도록 말입니다.”
결국 전에 함께 공부했던 자매들은 돌아왔고 우리들은 성경3독을 시작했다. 처음 1독할 때는 글자를 깨우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해석을 했고, 이번에는 성경을 연구하였다. 참가자들이 모두 돌아가면서 모임을 인도하며 훈련을 받았다. 매번 한 사람이 강의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보충을 했다. 우리들은 신약과 구약을 번갈아 공부하는 방법을 택했고, 계도본(啓道本: 지도자용 주석성경-역자 주)과 성경강해서를 보조교재로 삼았다. 이 과정은 매우 힘들었지만 우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착실히 밟아나갔다. 3년을 하루같이 성경을 공부해가면서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참으로 많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내가 주님 앞에 나갔을 때 죄사함 받은 증거를 얻었고, 주님은 나를 사용하셨다. 그래서 지금 80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경말씀을 통해 내 자신을 바로 세워가면서 또한 다른 지체를 도울 수 있으니 감사하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큰 은혜이다. 나는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주님만 섬기기를 원한다.
출처 | 「中國與福音」 제11호( 96년 3~4월호) 중국복음선교회의 승인하에 발췌, 번역하였습니다.
번역 | 곽숙 ·본지 편집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