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동원은 곧 기도동원이며, 선교사역은 곧 기도사역이다. 이것은 과장된 표현도, 논리의 비약도 아니며 실제로 그러하다. 협력선교, 선교협력은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의 확장으로 계속되며 그 기도의 응답으로 완성될 것이다. 한국에서 중국선교 사역의 우선순위는 중보기도이며 중국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감당할 사역의 우선순위 또한 중보기도이다. 왜냐하면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선교는 선교 현장에서 하나님으로 일하게 해드리는 사역, 곧 성령의 활동 수위를 높여 드리는 사역이다. 기도 외에는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없으며, 기도를 통하지 않은 사역은 공허한 외침일 따름이다.
중보기도 사역은 선교의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니라 모든 사역의 기초이며, 힘이며 전략이며 전부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실상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요 6:29).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단지 하나님이 일하시는 인격적 통로로 사람들을 필요로 하시며 사용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신 그 분의 선한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선교의 전략적인 열쇠는 다름아닌 중보기도에 있다. 그 예로서 예수님의 승리가 십자가에 앞서 겟세마네에서 이미 이뤄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땀흘리듯 피를 흘리시며 기도하셨고, 이후 십자가에서 그 승리를 사단과 모든 열방 가운데 드러내 보이셨다.
또 하나의 예로 여호수아 3:10의 말씀을 보자.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족속과 ……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 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약속의 땅을 취하기 전에 그 승리를 미리 알고 보게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요단강 강물이 멈추는 기적이었다. 하지만 요단강이 멈추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과 신뢰의 행위가 필요했다. 중보기도에 대해 무지하면 손에 쥐어진 것만 보면서 그것을 말하는 근시안적 사역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보기도를 통한 선교사역은 계속적으로 내 입을 통해 말한 것을 손으로 쥐며 달려간다. 그러므로 사실 현장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나 영적전쟁, 영혼구원은 이미 기도에서 결정된다.
이 글에서는 국내에서 중보할 사역자에 초점을 맞추어 전략적 중보기도 사역에 대한 필자의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말씀과 기도가 하나가 되게 하라
기도는 말씀 묵상에서 나온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기 위해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에 말씀과 기도는 하나이다. 믿음의 간구는 들음에서 시작되고 그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기도는 듣는 것이다. 들은 것을 마음에 믿고 간구하고 주장하고 선포할 때, 성령께서 행하신다. 중국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구체적인 사역이 말씀에 담겨있다. 말씀과 기도가 하나가 될 때 그 기도사역은 곧 성령사역이 된다.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님이 함께 계셨으며 집행하시는 영으로 임재하셨다.
얼마 전 춘천에서 열린 한 집회에 필자와 함께 강사로 초빙된 중국 선교사님을 만난 적이 있다. 바로 이 분은 말씀과 기도가 하나가 된 성령사역을 중국에서 하고 계셨다. 서로의 강의를 들으며 하나님의 일들을 확인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기쁜 시간을 가졌다. 이 선교사님은 중국 현지인과 탈북자들과 함께 한 방에서 몇 년 간 성경통독과 연구에 몰입하여 몇 백독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방 안에 앉아서 성경통독하는 것이 무슨 선교인가 자문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바로 기도와 연결되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만든 모임이 세계축도선교회. 말씀과 기도가 하나가 되면 간구 차원에서 “…찌어다.”선포하며 성령께서 일하심을 미리 경험했다고 간증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하나님은 중국을 위해 중보하는 자들에게 중국을 향한 비밀을 말씀하시지 않고는 결코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실 것이다(암 3:7). 중국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믿는 중보의 동역자들이여! 중국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를 열고 여호와의 입 앞에 앉자. 그리고 그 말씀하신 것을 이루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도하자.
자료를 모아 기도의 언어로 삼으라
필자는 신문과 중국 관련 선교단체, 선교사들의 기도편지, 자료실 작업, 도서관 작업을 통해 기도제목을 수집한다. 기사화 된 신문자료나 도서화 된 자료들은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갖고 있지만 기자의 주관적 관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단지 그 기사의 주장만을 갖고 기도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러한 자료들을 중국기도 스크랩 노트에 옮기고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묻는다. 쉽게 말하면 자료를 앞에 두고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다리는 것이다.
중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중에 하나님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모든 사건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이 땅에서 높은 것만큼 다르기 때문이다(사 55:8). 또한 중국의 정치, 경제, 군사 방면의 지도자들의 사진을 최대한 모아 필자의 중보기도 사역실에 붙여놓고 기도한다. 나는 그들의 사진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그들의 심령을 만질 것을 믿고 기도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통용되는 모든 돈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8),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라”(시 24:1) 중국의 모든 돈은 여호와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주장하며 기도하는 자는 너무나 적다. 사람들은 자기 손에 쥐어진 자기 것만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집착함으로, 열방에 있는 하나님의 돈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한다.
하나님은 열방의 재물을 다스리고 통치할, 돈에서 자유한 ‘하나님의 경제인’을 찾으신다. 내 수중에 있는 천만 원이 내 돈이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재산은 천만 원이지만, 내게 있는 모든 소유권을 거절하면 열방의 돈이 내 것이 될 수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신 18:18)
필자는 내 소유로 된 땅이 하나도 없지만 열방을 약속받았다. 그것이 내 소유이기에 기도로 다스리고 양육하며 통치한다. 무엇이든지 내 것이 되었을 때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 하나님은 “내게 구하라 열방을 네게 주리라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라”(시 2:8)고 말씀하셨다. 왜 내게 열방을 주시는가? 왜 소유하게 하시는가? 그것은 내가 열방을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열방의 재물도 동일하다.
그렇다면 중국의 돈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금 내게 몇 만 원이 있는가와는 상관없다. 중국의 돈을 다스릴 하나님의 중보자를 찾고 계신다. 돈이 흐르는 곳마다 죄악이 넘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중단되고, 돈의 유통경로에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날 수 있도록 이 세상의 돈을 움직일 믿음의 중보자를 찾으신다. 동역자들이여! 기도로 중국의 돈을 취하자. 그리하여 하나님께 돌려드리자.
선교사와 동시사역을 감당하라
이 사역은 필자가 대단히 소원하는 사역으로, 현재 소수의 선교사와 함께 이것을 감당하고 있다. 선교사들이나 중보기도자들이 갖는 선입견은 중보기도는 선교사를 돕는(후원)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보기도는 선교사 후원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현장에서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일하시는 유일한 도구이다.
많은 선교사들의 편지를 받아보면, 선교현장은 나에게 맡기고 당신은 나를 위해서만 기도해달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 기도는 한달 넘어가면 습관적인 기도로 변해버린다. 물론 보안상 중국이라는 선교 현장의 사역 상황을 상세히 소개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중보기도자와 선교현장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선교사와 중보기도자의 차이가 있다면 사역하고 있는 장소가 다르다는 것 뿐이다.
때로는 중보사역이 현장사역보다 더 깊게 들어갈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는 선교사가 편지로, 혹은 귀국하여 자신이 접촉하고 있는 현지 전도대상자들의 명단을 주면, 그들을 전도대상자 노트에 기록하고 예수님 영접 소식을 들을 때까지 기도 중에 호명하며 중보한다. 선교현장의 문을 열어서 선교사와 동시에, 그 지역과 사람들을 위해 중보하는 것만큼 전략적인 사역은 없다. 기도골방은 이 세상보다 더 넓다. 기도 골방의 힘은 하나님의 능력만큼이나 힘있다.
왜냐하면 그 방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기도 뒤에는 성령께서 집행의 영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앞으로 필자는 더 많은 선교사들과 함께 이 사역을 하길 원한다. 선교사들 역시 선교동원가로서 이러한 중보기도자를 계속적으로 세워주었으면 한다.
중국을 위한 중보기도 모임에 동참하라
개인의 기도골방도 위대하지만, 더 나아가서 많은 지체들이 연합하여 마음을 같이하는 기도모임의 중요성과 강력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음과 비전이 같은 사람과 함께 기도하는 것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사역과 비전 또한 구체화될 것이며, 그러한 모임의 지체 가운데 있다가 파송되면 자연히 그 그룹은 동역할 중보기도단이 될 것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그러한 기도모임이 없다면 개척하여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동참시키라. 이러한 기도의 연합은 자신이 세워져가고 타인을 세워줄 것이며, 하나님의 선교에 큰 동역을 이룰 것이다. 필자의 바람은 중보기도자들이 또한 중보기도 리더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믿는다.
21세기 선교의 관건은 연합과 협력이다. 이것은 기도사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겸손히 기도의 불씨를 모으고 중보의 삼겹줄을 이루자. 필자가 중보기도 세미나 강의를 하다보면 중국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인 선교사 수도 다른 어느 곳보다 중국에 가장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위한 정기적인 기도모임이 지역에 없거나 있어도 극소수라면, 지금 우리에겐 연합기도 사역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선교의 시계는 한국에서의 중보기도이다. 기도를 통해 미리 짐작할 수 있고 기도 중에 응답에 대한 믿음을 소유할 것이다. 기도는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 것, 펑크난 곳을 때우는 것, 긴급한 위기를 수습하는 것 그 이상의 사역이다. 중보기도를 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 세계 구원의 큰 그림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세계 구원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의 기도로 완성될 것이다.
중국은 거대한 추수대상국이자 세계의 추수꾼이 될 것이다. 이것에 대한 근거 중의 하나는 중국의 많은 소수민족들이 주변 미전도종족들과 문화적, 인종적, 지리적, 종교적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내 조선족은 북한을, 티벳족은 인도, 네팔, 부탄, 파키스탄을, 다이족은 태국을, 위구르족, 타지크족, 카자흐족, 후이족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이슬람 지역을, 몽고족은 몽골 선교를 감당할 수 있다. 고난의 시기에 잘 연단된 한족과 소수민족은 세계 복음화의 첨병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비전을 보여주시고 그림을 그려주셔도, 그것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일하실 수 없다(겔 36:36∼37). 중보기도 없이 중국선교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중보기도 없이 세계선교는 완성될 수 없다.
이경욱 | 중보기도 사역자 · 중국어문선교회 중보기도 코디네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