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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  통권 61호  필자 : 한이슬  |  조회 : 4195   프린트   이메일 
[중국 소수민족을 알자]
위꾸족(裕固族)
중국소수민족을 알자(15)

위꾸족(裕固族)

인구 : 12,297명(1990년 인구조사 통계) 중국 내의 55개 소수민족 중 4번째로 적은 수의 민족이다.

분포 : 서북지역인 간쑤(甘肅)성 짱이에(張掖)지구의 쑤난(肅南) 위꾸족자치현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해발 2,500~3,000m 정도의 고산지대이다.

언어 : 알타이어계에 속한 두 언어가 있다. 동(東) 위꾸어는 몽고어와 거의 비슷하고, 서(西) 위꾸어는 카작스탄어와 비슷한 점이 많은데, 이 두 언어는 한 민족의 언어이지만 방언이라고 하기보다는 다른 언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심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대도시에 살고 있는 위꾸족 중에 많은 수가 자기 민족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한어(漢語)를 사용한다.

문자 :
현재는 없으나 위꾸족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일부 지식인들은 현재 자기들의 문화와 역사와 언어를 지키기 위해 위꾸족 문자를 개발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역사 :
위꾸족은 당나라 시기에 알려진 후이허(回紇)족이 간쑤성 서북으로 이동하면서 간쑤성 안에 있는 다른 종족들과 섞여서 형성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주거지를 옮겨 다니면서 사냥을 하던 그들은 점차 사냥 생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황니바오(黃泥堡)에 정착하면서 유목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타민족과의 관계 :
멍구(蒙古)족과 장(藏)족과는 생활 습관과 풍습들이 비슷해서 사이가 좋고, 한족과도 대체로 좋은 편이나, 후이(回)족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이유는 자기들과 풍습, 습관, 성격이 많이 다르고 후이족이 유목민들에게 아편을 팔며, 특히 이들이 볼 때 후이족들이 이윤을 목적으로 인간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후이족과의 이런 대립관계에 대해 짱족과 위꾸족, 한족에서 전해지는 “후이족이 해주는 밥은 먹어도, 친구는 안한다.” 라는 속담도 있다. 한편 위꾸족은 후이족은 물론이고 한족과의 결혼도 원치 않았었는데, 요즘은 많이 바뀌어서 한족과 위꾸족 사이에도 결혼이 이루어지고 있다.


경제 :
주로 유목생활을 한다. 따라서 주요 소득원은 면양이고, 그 외에 야크, 말, 산양, 당나귀 등도 기른다. 추운겨울이나 아직 풀이 풍족하지 않은 봄에는 집 주위의 목장에 가두어 키우며, 풀이 많은 여름과 가을에는 초원을 찾아 이동하면서 방목을 한다. 방목을 할 때는 초원 등지에 굴을 파놓아 양이 비를 피할 수 있게 한다. 양 한 마리는 보통 200위안(元·한화 약 3만원)이며, 양털은 1kg에 7.7위안이다. 양 한 마리 당 평균 3.5kg의 양털이 생산되며 1년에 한 번 판매 한다. 1년 소득은 양 100여마리를 소유한 사람의 경우 5천~6천 위안에서 1만~2만 위안이다. 위꾸족은 다른 소수민족들 보다는 비교적 연간 소득이 많은 편이다. 그 외에 농사도 짓는데, 주요 작물은 밀이다.


가정 :
요즘 위꾸족의 대부분은 핵가족으로 형성되어 있다. 즉, 3대의 가족이 있는 경우 2세대들은 주로 초원에 남아서 목축생활을 하며, 3세대는 교육을 위해 1세대인 조부모와 함께 현(縣 )근처의 집에서 산다. 노부모를 부양하는 자녀는 막내아들이며 돌볼 자식이 없을 경우 현의 양로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결혼 :
결혼은 3일 간에 걸쳐서 치루어지는데, 첫 날은 신랑 집에서,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신부 집에서 지내게 된다. 결혼은 연애-동의-약혼-신부 집에 옷, 차, 술, 돈과 같은 선물 전달-집안 어른끼리 청첩-결혼식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장례 :
보통 화장을 하는데, 아기가 죽은 경우는 매장을 한다. 노인이 죽은 경우 라마사원에서 장례행사를 치른다.


주거 :
‘장탕(帳堂)’이라는 야크털이나 양털로 만들어진 사각기둥 혹은 사각뿔 모양의 천막집이나 흙, 벽돌로 만들어진 집에서 살고 있다. ‘장탕’의 내부구조는 방의 구분이 없이 한 개의 공간으로 되어 있으며, 주로 중앙에 화로가 있고 한쪽에 침대와 다른 한쪽에는 부엌이 있다. 야크털은 방수효과가 있어서 비가 새지 않는다. 특별한 전기 조명 기구가 없는 집에서는 천장의 개폐가 가능해서 낮에는 열어 놓고 조명기구와 통풍시설을 대신한다.


음식 :
항상 푸차에 야크젖을 섞은 나이차를 마신다. 주로 아침에는 나이차에 수여우라는 야크젖으로 만든 버터를 넣은 차오미엔차를 마시고, 점심과 저녁에는 빵을 먹거나 수제비와 같은 밀가루 음식을 먹는다. 고기는 양고기를 먹되 죽은 것은 먹지 않고 주로 양고기는 말려서 나중에 삶아 먹거나 수제비와 같은 음식을 먹을 때 넣어서 먹기도 한다.
 또한 양의 내장을 이용한 즈궈간이라는 순대를 먹는다. 그 외에도 야크 젖으로 만든 야구르트, 치즈와 버터를 먹는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기호식품으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자주 핀다. 손님이 오면 청과주라는 술을 대접한다.


연료 :
겨울에는 석탄을 이용하고 여름에는 야크 똥을 말려서 이용한다.


종교

라마불교 : 위꾸족을 대표하는 종교는 라마불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라마불교에 대한 그들의 종교심은 점점 희박해져가고 있다. 라마불교를 믿는 다른 종족에 비해서 이들의 종교는 생활 가운데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지는 않는 듯하다. 노년층은 여전히 라마불교를 강하게 믿고 있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선 하나의 형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 이러한 변화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여전히 라마불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비록 젊은 이들 사이에서 라마불교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있다 할지라도, 라마불교는 위꾸족을 대표하는 전통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다른 종교로 개종하게 되면 많은 핍박이 있다.


전통신앙(주술신앙) :
각 집(家)마다 제단이 있다. 라마불교를 믿기 이전에는 샤머니즘적 제사가 이루어졌고 라마불교가 들어온 이후부터 라마불교식으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제사 참석은 남녀노소 모두 가능하다. 이러한 제사는 15~16세기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다. 동물을 죽이지 않고 경을 읽고 제사장이 제사를 주관하며, 제사 외에도 두목(頭目)회의에 같이 참석한다. 제사는 전쟁을 앞두거나 개인적 소원을 빌 때, 병을 고칠 때 행해졌다. 제사를 부탁한 사람은 제사장에게 곡식이나 동물을 갖다 바쳤다.


덴그르칸(点格爾汗) :
일반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한 모든 알타이어계 민족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천신사상(天神思想)의 하나로 생각된다. 덴그르칸은 ‘하늘의 신’으로, 위꾸족은 이 신에 대한 확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고, 자기를 보호하는 신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앙의 구체적인 대상이 무엇인지, 이것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그들 자신도 모른다.


기독교 :
1990년까지는 기독교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으나, 1998년도 이후로 약간의 기독교인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위꾸족 안에 약 20명의 기독교인이 있다고도 하고, 100명이 있다고도 하나 정확한 통계를 알기는 어렵다. 그 수가 어떻든 매우 적은 수에 불과하다. 공식적인 교회나 양육자가 없어 양육되고 있지 못하고 있고, 일부는 가까운 도시에서 한족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민족을 위한 사역자가 한 명도 없었는데, 반갑고 희망적인 소식은 중국의 한족 기독교인 가운데 한 가정이 위꾸족의 선교를 위해 헌신했다고 한다.

위꾸족의 전통적인 종교와, 종교의 자유와 전도를 허락하지 않는 중국의 종교법 때문에 위꾸족에게 전도하기란 쉽지가 않다. 위꾸족 전도를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소수의 위꾸족들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한 장막에서 다른 장막으로 이동하는 거리가 짧지 않다. 그래서 전도자는 늘 장거리를 여행해야 하며, 사람들을 모아 집회를 하거나 양육을 하는 일에 많은 제약이 있다. 현재 생겨난 기독교인들은 비록 소수이지만 자신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갖기를 원하고 있고, 장차 자신들의 언어로 찬양과 예배를 드리길 소망하고 있다.


성경번역 : 안되어 있음


복음음반 : 녹취가 되어 있지만, 아직 위꾸족에게 보급 되지 않았다. 


쑤난현 방문 :
최근, 필자(한이슬)는 쑤난현 현성과 동부 위꾸족이 사는 캉러를 방문했다. 쑤난현의 쑤난 현성(縣城)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일차적으로 복음을 덜었던 위꾸족들을 방문했다. 돌아보면서 느끼는 것은 비록 한 사역자가 열심히 전도를 하였지만, 관리와 양육이 되지 않으면 그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목장에 있는 위꾸족은 양치는 일로 바쁘고, 쑤난현 내의 위꾸족은 상업을 하기 때문에, 이들을 정기적인 시간이나 장소를 정해놓고 양육을 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전도하는 사역과 기독교인이 된 위꾸족을 규모있게 훈련시킬 사역자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들은 설령 예수님을 믿어도 외부적으로 공개하기가 어려운 열악한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믿음을 갖는 일에 많은 갈등을 하게 된다. 일단 그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친착들로부터 소외를 당하거나 정부에 고발을 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문한 한 가정의 아내는, 자기 남편이 예수님을 믿으면 정치적 압박을 당할 것을 생각해서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는 그들에게 권면하기 위해 기도한 후 무거운 마음으로 그 집을 나와야만 했다.


짱예(張掖)에서 약 2시간 정도 가면 캉러에 도달한다. 이곳에 사는 위꾸족 대부분은 동 위꾸족이며 유목생활을 한다. 이들 대부분은 흙으로 된 벽돌로 만든 집과 장막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서 이들은 여러 지역으로 옮겨 다니며 방목을 한다. 우리가 캉러를 방문했을 때에는 모두들 양을 치기 위해 장막으로 옮겨 대부분의 집이 비어 있었다. 그래서 장막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을 걸어도 장막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7시간을 걷던 중, 한 장막을 발견했지만 그들이 우리를 반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다른 장막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야만 했다. 나중에 그들이 왜 우리를 환영하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은 현 정부와 깊은 관련된 가정이었다. 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과 자신의 가정에 불이익을 받게 되기 때문에 우리를 반기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점점 어두워지는 어둠 속에 오로지 하늘 위에서 내려 비춰주는 수많은 별들과 은하수의 빛을 받으면서 걸어갔다. 저녁 10시가 넘어서 한 장막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편안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필자는 그 때 캉러의 초원을 다니면서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롬 10:15)”라는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한 장막에서 다른 장막으로 가기 위해 너무나 많이 걸어야 하고, 더 먼 곳을 가려면 우리나라의 경운기와 같은 삼륜차를 이용해야 했는데 길이 너무 거칠어서 여간 어렵지 않았다. 주님은 이곳에 복음을 전하길 간절히 원하신다. 누가 이러한 상황을 기쁘게 감당하면서 복음에 소외된 이들을 위해 올 것인가? 이것은 주님의 사랑을 아는 우리들의 일이다.


위꾸족 지역에 가려면 :
한국에서 베이징(北京)으로, 베이징에서 란저우(蘭州)(기차 또는 비행기)로, 란저우에서 짱예까지 기차를 이용한다. 시간은 기차에 따라 11시간 정도에서 13시간이 걸린다. 짱예에서 쑤난현까지는 버스를 이용하는데,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현재 쑤난현은 현 정부 소재지인 쑤난 현성을 제외하고는 외국인이 접근할 수 없는 미개방 지역이다.


기도제목

◎ 쑤난현에 위꾸족 기독교인을 위한 교회가 들어서도록.
◎ 동 위꾸족 가운데 L의 딸 J와 S라는 청년이 급속적인 신앙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영적으로 더 강건하게 성장하여 위꾸족을 위한 사역자로 세워지도록.
◎ Z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겠다고 시인을 했지만, 현재는 거의 신앙 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 Z형제의 신앙이 회복되도록.
◎ 위꾸족을 위해 헌신하시는 현지 사역자 가족을 위해
1) 날마다 주님의 돌보심과 은혜 속에서 사역을 하도록.
2) 이 가정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부족함 없이 공급이 되도록.
◎ 위꾸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역자들이 더 많이 일어나도록.


작성 | 한이슬 · 중국선교사
정리 | 김중하 ·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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