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가난으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 일어서서 복음의 사도가 되려는 교회!’ 중국 교회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갖게 되는 소감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무형식적이며 간혹다소 어설퍼보이는 것들도 오히려 사랑스러워지곤 한다. ‘애정으로 중국교회를 대하는 것’이 중국교회와 교류하는 기본자세임은 분명하다. ‘부족함’이 자랑스러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외부인들이 ‘애정’ 으로 보는 교회도 당사자에게는 아직도 ‘부끄러움’에 불과한 것이다.
다만 중국교회가 이 부끄러움의 여지를 없애버리기에는 아직은 이르기에 떳떳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일 뿐, 그러한‘부족함’은 언제고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중국에도 이러한 ‘부족함’을 자각하고 약간 색다른 의미의 느낌과 감동으로 다가오는 교회가 있다. 그들이 바로 따롄(大連)시 기독교 협외와 그 산하 교회들이다.
따롄의 산뜻한 이미지 가꾸기
따롄은 북방의 홍콩으로 불린다. 항구도시로서 일찍부터 많은 서구 열강들과 일본, 러시아 등의 탐욕을 불러일으켰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유럽풍의 중후한 건축물들이 길가에 즐비하게 서 있다. 따롄은 일반적으로 중국의 여타 도시들과는 많이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깨끗한 길거리 등에서 이들의 높은 생활수준과 문화수준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중국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택시 내 강도방지용 칸막이도 따롄의 택시에는 없고, 자전거 물결도 이곳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들은 싱가폴을 모델로 하여 시를 가꾸어가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해변가에 위치한 수많은 별장과 휴양지는 이곳이 혹시 홍콩이나 마카오의 해변가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 정도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들의 밤 또한 풍요롭다. 적어도 홍청이는 홍콩의 상업가나 환락가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조명과 잘 가꾸어진 조경을 배경으로 한 드넓은 광장에 모여드는 시민에게 여유로운 삶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정부에서 시민의 오락으로 권장하는 ‘교춤’을 이 밤에, 그것도 광정에서 공개적으로 배우고 익히기에 열심이다. 우리네 사회에서 비정상적이고 음지(陰地)화 되어버린 문화가 이곳에서는 하나의 즐거운 생활약식으로 향유되고 있는 것이다. 따롄은 중국이 지닌 후진국의 이미지를 떨어내고 선진국 못지 않은 산뜻한 이미지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열정에 가득찬 사역자들
따롄역 광장에서 우리를 맞아준 분들은 따롄시 기독교 협회 회장 코우요우궈(寇有國)목사와 왕더량(王德良)주임이었다. 코우 목사는 젊은 40대이며 왕 주임은 70대의 노인이었다. 코우 목사가 시 기독교협회에 속한 교회와 처소들에 대한 목회적 관리와 지원을 책임지는 반면, 일체의 행정이나 재산관리는 전부 왕 주임의 못이다. 왕 주임은 코우 목사의 아버지 목사의 동료였다. 두 사람의 연령을 초월한 협력은 중국,
그리고 중국교회의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왕 주임은 보통 새벽 2~3시에 일어나서 하루의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현재 따롄시의 기독교회의역사를 정리하는 일과 개인적으로 성서의 전내용을 칠행시로 엮는 서예작업을 벌이고 있다. 역사 정리사업은 자신의 동료들이 주님 품으로 하나 둘 떠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가장 큰 사명이라고 생각되어 몇 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이제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당시 주로 이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덴마크, 독일 루터교회의 생존 선교사를 만나 그 때의 역사에 대한 감수를 받으면 작업이 완료될 것이라 한다. 또한 서예에 일가견이 있는 왕 주임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중국교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칠행시 작업을 시작했으며, 방금 구약을 끝냈다고 한다.
코우 목사는 매우 정열적인 설교가로 소문나 있다.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비범한 눈동자, 다부진 체격이 그의 강한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1986년 그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곳에 오면서부터, 허약했던 따롄 교회는 튼튼한 교회, 열심히 넘치는 교회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동북신학교 졸업생들의 리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나의 교회
따롄 지역에는 10만여 명의 신도가 200여 개 처소와 3개의 교회당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10만여 명 가운데 4만명이 세례교인이다. 1913년 덴마크 루터교회가 북경가교회를 개척한 후 따롄 교회는 루터교회의 영향 속에서 성장해 왔고 지금도 루터교회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 코우 목사는 따롄 지역교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하나의 교회’를 내세웠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이전에 있던 아홉 개 교파가 1956년 통일되어 연합교회를 이룬 일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의 목회자들이 교회의 분리관리에 동의하지 않았고, 한편 따롄에는 루터교 이외의 큰 교파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루터교 중심으로 교파들이 연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교회의 모든 장식과 배치는 루터교 형식을 따르고 있다.
따롄시의 교회들은 예배의식과 교회제도, 조직, 재정을 통일하여 관리하고 있다. 각 교회마다 집사회가 있어 기본적인 교회 운영을 담당하지만, 설교와 성만찬 등의 모든 성무(聖務)는 통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약 200여명의 평신도 사역자들이 각 처소에서 사역하고 있는데 모두 적극적으로 이러한 기독교협회의 방침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교회들의 홀로서기
따롄 지역의 교회들은 성공적으로 재정자립, 즉 자양(自養)을 실현해가고 있었다. 물론 모든 교회들이 재정자립을 이룬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은 자신만만하게 이 모든 재정문제를 해결해 가고 있었다. 이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따롄시 기독교협회의 도움과 지도가 절대적인 힘이 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따롄시 기독교협회와 교회들에게 받은 첫 느낌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이었다.
특히 어느 작은 처소에서도 재정부족과 도움에 대한 호소를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성도들의 헌금과 기독교협회의 도움만으로 교회를 건축 것을 대단히 자랑스러워 하였다. 코우 목사는 모든 예배당 건축은 성도들의 기도와 헌금에 의존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부족하다면 기독교협회로부터 받을 수 있다.
따롄시 기독교협회는 대부 형식으로 각 예배당 건축을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각지 교회로 지출된 금액은 현재 약 150만 위안(元)(한화로 약 1억 5천만 원)이 되고 이 기금은 계속 순환하면서 교회당 건축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따롄에서 약 3시간 떨어진 푸란뗀(普蘭店)시에서 우리들은 아주 훌륭한 4층 건물의 새 예배당을 보았다. 그 예배당을 짓는 데 모두 104만 위안이 들었는데, 기독교협회에서 30만 위안을 빌려 건축을 마쳤고 지금은 열심히 부채를 상환 중이라고 했다. 그들은 기독교협회에 부채를 갚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 교회당 건축 자금을 적립하는 마음으로 상환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들이 방문한 따롄시 외곽의 교회들은 한결같이 기독교협회의 지원으로 깨끗한 예배당을 완공했다. 이 교회들은 전국 어느 곳의 얘배당보다 훨씬 깨끗한 환경과 외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따롄 시내의 교회들은 한결같이 성도들이 너무나 많아 수용한도를 넘어설 지경인데도 아직 건축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왕 주임은 말한다. “따롄 시내의 교회들이야 말로 증축이 필요합니다. 교인들은 이나마 예배당도 있고 마당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골교회나 처소들은 예배당조차 없어 고생하기도 하고, 예배당이 없어 관리들에게 핍박받는 일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교인들과 의논하여 다른 지역의 문제가 해결되는 동안 따롄시의 교인들이 좀 더 참자고 설득하였습니다.”
늘 부족한 성경
따롄시 기독교협회는 성경보급에도 열심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문한 양이 다 들어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전국 기독교협회의 방침이 성(省)기독교협회의 주문량을 먼저 소화하고 그 다음 중소도시로 내려오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다른 성에 남아 있는 것을 구입해서 지금까지의 성경부족을 대충 해소하였다. 코우 목사는 “일반 성도들을 위한 성서보급은 따롄지역에서는 대략 이룬 것 같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들을 지도하는 사역자들을 위한 성경이 보급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는 기본적인 주석이 첨부되어 있는 계도본(啓導本)성경을 사역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소원이다. 이를 위하 ㄴ재정도 마련되어 있으나, 책을 구할 방법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애덕인쇄소에서 인쇄되고 있는 이 성경이 하루 빨리 따롄으로도 오기를 그는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평신도 훈련반
따롄시 기독교협회가 직접 운영하는 평신도 훈련반도 교회의 단결과 하나됨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들이 방문했을 때, 막 새로이 시작한 훈련반에는 18세부터 64세까지의 처소지도자 및 예비지도자들 80여명이 등록하여 훈련을 받고 있었다. 따롄에서 3시간 거리인 푸란뗀 교회당에서 열리고 있는 이 훈련반은 전국 어느 훈련반보다도 깨끗한 환경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맞바람 부는 깔끔하고 시원한 교실, 책상마다 덮인 하얀 책상보, 단정한 옷차림에 배움의 의지로 충만한 눈동자들이 우리 눈에 산뜻하게 다가 왔다.
오전, 오후 각 4시간씩 하루 8시간을 수업하며, 일주일에 5일을 수업하고 주말에는 각자의 교회로 돌아간다. 이렇게 한달에 3주를 학습하고 나머지 일주일은 집에 돌아가 농사 등 집안일을 돌보는 식으로 2년 간의 과정을 마쳐야 수료즈을 받고 졸업할 수 있다. 참가자격은 처소 인도자와 처소에서 추천한 예비전도원이어야만 한다. 엄격한 생활 수칙이 있어 이 수칙을 위반하는 자는 퇴교당한다. 난징금릉신학교와 동북신학원의 교사들을 비롯, 전국 각지의 실력 있는 신학자, 목회자를 초빙하여 강의를 맡기는 것이 따롄 기독교협회의 방침이다. 이 과정을 마치면 교회의 단결과 하나 됨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훈련반의 모든 경비를 따롄시 기독교회가 부담하여 꾸려가고 있다.
애화종합의원
따롄시에서는 따롄기독교협회가 개설한 애화종합의원(愛華綜合門診)이 대단히 유명하다. 진료소와 종합병원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이 병원은 1994년 따롄시 기독교협회에 의해 애화진료소(愛華診所)로 시작되었다. 원장은 쑨위화(孫玉華)의사로 1993년에 은퇴한 이비인후과전문의이다. 그녀는 기독교인으로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자 원장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그녀가 진료소 이름의 배경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애화는 ‘愛中華(중국을 사랑함)’와 ‘愛耶和華(여호와를 사랑함)’를 종합한 이름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지었단다. 지금까지 3년 여 동안 이 곳을 거쳐간 환자는 모두 3만여 명이나 되고, 1995년 진료소는 종합의원으로 승격되었다. 현재 소아과, 내과, 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물리치료과 그리고 중의과 등이 있다.
애화진료소는 개설하면서부터 시민들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처음부터 무의탁자와 장애자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노인과 고아들에 대한 보살핌은 극진하여 멀리서부터 환자들이 찾아 올 정도가 되었다. 현재 중국에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 약 열풍 속에서도 시민들은 애화의원의 약은 진짜라는 사실에 깊은 신뢰를 갖고 있다. 모든 약은 제약회사로부터 직접 가져오기 때문에 가짜약 시비가 붙을 이유가 없다.
이외에도 애화의원의 봉사활동은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지난 봄 따롄에서 ‘전국장애인운동회’가 열렸을 때, 대회 기간 중 참가선수들에게 안마, 침, 맛사지 등의 봉사활동을 펼쳐 ‘따롄일보’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이들은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 세계여상의 날과 국경절(중국인민공화국 선포기념일)에 특별무료진찰 활동을 벌인다.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교회에서 신도들을 대상으로, 이외에는 일반시민을 상대로 가두에서 진료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한편, 농촌지역의 신도들이나 자녀가 없는 노인 신도들에게 무료치료는 물론, 교인들 집을 알선하여 숙식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앞으로는 목회자들을 위한 의료보험과 정기검진을 실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현재의 시설과 규모로는 입원환자를 받을 수 없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지금은 쑨 원장의 출신학교인 따롄의과대학고 협조가 원활하여 이 문제를 해소하고 있지만, 애화의원도 종합병원으로 발돋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조금 더 넓은 건물과 최신 의료 기기(X-ray, 내시경, 컴퓨터 촬영기 등)를 마련하면 곧 종합병원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도니다. 그렇게 도면 전국에서 유일한 교회 설립 ‘종합병원’이 되는 셈이다.
기업화된 병원조차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애화의원이 지금까지 운영되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은퇴 의사들의 수준높은 기술과 환자에 대한 사랑, 그리고 기독교인의 숭고한 봉사정신 때문일 것이다.
애강 정신장애아동 재활센터
또 하나 관심을 끄는 사회봉사기관은 애강 정신장애아동 재활센터(愛康智殘兒童康復中心)이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역시 따롄시 기독교협회와의 협조로 세워진 이 재활센터는 주로 뇌막염과 지력(智力)장애를 가진 아동들을 대상으로 교육, 재활훈련을 시키고 있다. 3년 전 설립당시 29명의 어린이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은 정식으로 소학교에 입학했고, 뜨개질을 하게 된 어린이도 있고, 글자를 깨친 아이들도 있다. 재활센터는 작년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 황해가 바라보이는 해변가의 광산노동자휴양소 1층 일부를 빌려 사용하고 있다. 주변환경은 좋아졌으나 시내에서 다소 먼 관계로 어린이들이 오고 가기가 쉽지 않아 지금은 10명으로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기독교인들로서 아직 정규 교사자격증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전문교사의 인도아래 착실히 재활교사 훈련을 받아가고 잇다. 이곳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네 가지 원칙은 사랑, 인내심, 책임성, 믿음이다.
한 예로 글자 하나를 가르치는 데 무려 열흘이나 걸리니, 사랑에서 비롯된 인내와 믿음으로 인한 책임의식이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교사들은 200위안에서 300위안의 월급을 ㅂ다고 있다. 학생들로 부터는 보건비 명목으로 월 240위안을 받고 있으며 이는 의료, 재활, 숙식비가 모두 포괄된 금액이다. 이것만으로는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에 애화종합의원의 수익 중 일부를 지원받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에 대한 사랑의 실천의 과정을 통해 따롄 지역의 교회들은 뿌리내려가고 있다.
맺는 말
중국 교회를 보면서 새로운 교회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은 늘 가졌었지만, 이렇게 세련되고 자신만만한 형태의 것은 과거에는 없었던 일이다. 코우 목사와 왕 주임은 3박 4일간의 따롄 방문 기간 동안 줄곧 우리와 함께 하였으며,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우리들은 종종함게 찬양하였다. 코우 목사는 안이숙 여사의 간증을 대단히 흠모하고 있는 까닭에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찬양을 아주 좋아했다. 주인과 손님관계를 넘은 찬양 속에서 그리스도인 됨을 자연스레 확인한 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다.
중국 교회를 방문하면서 늘 ‘무엇을 도와야 할까?’를 고민하던 것에서 ‘함께 주의 나라를 위해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더 가슴에 다가왔던 귀한 경험이었다.
출처 | 중국교회 제6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