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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  통권 61호  필자 : 박승준  |  조회 : 3853   프린트   이메일 
[중국. 중국인]
중국인이 무섭다고 느껴질 때

중국인에게는 약자를 끝까지 공격해 완전히 짓밟지 않는 미덕(?)이 있다. 1989년의 천앙문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超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 서기도 그런 경우의 하나다. 과거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도 한때 마오쩌둥(毛澤東)의 미움을 샀지만 지방으로 추방당했을 뿐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물론 린뱌오(林彪)는 마오의 미움을 사 목숨을 잃었지만, 중국 당국은 아직도 린뱌오가 죽은 것은 소련으로 탈출하려다 비행기가 몽골 고비사막에 추락해서 죽은 것이지 누가 죽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오쯔양의 경우를 비롯해 많은 중국 공산당 지도자가 실각해서 지위는 잃을 지라도 당적(堂箦)을 박탈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중국 지도층 인사들은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월급이나 보수는 현직에 있을 때와 거의 비슷하게 받는다. 그러나 당적이 박탈될 경우에는 연금을 한 푼도 못 받고 꼼짝없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다. 당적 박탈이란 벌은 사실상 사형을 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른바 법의 보호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되는 것을 뜻한다. 평생 법의 보호를 못 받게 되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잘 하는 말 중에 '10년 내에만 복수하면 사나이라고 할 수 있다.' 는 말이 있다. 그만큼 속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또 어떤 분한 일을 당했을 때 잘 잊어버리지 않는 것도 중국인이다. 한 중국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A라는 어떤 공산당원이 어느 날 인사에서 강등되었다. 그 기관에 있던 당 조직의 당서기가 A의 후배는 승진시키면서 A는 오히려 강등시킨 것이다(중국 공산당원의 수는 5,800만 명이나 된다.

어떤 경우에라도 꾸준히 승진을 해야지, 한 번이라도 강등을 당한 사람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강등 당한 이 사람은 원한을 품고 그날부터 자신을 강등시킨 당서기의 신임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매일 같이 당서기의 주위를 맴돌며 웃는 낯으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기를 몇년, 당서기는 그 사람을 완전히 신임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당 조직 내에서 당서기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당서기는 밤길을 가다가 일단의 괴한을 만났다. 그 괴한들은 칼로 당서기의 온몸을 난자했다.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당서기는 다시는 사회 생활을 못 할 만큼 몸이 망가졌다. 당서기가 사고를 당해 입원한 병원으로 맨 먼저 달려온 사람은 바로 A였다. A는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쳤다. "누가 우리 당서기님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지. 내 반드시 찾아내겠어!" 당서기는 A를 자신의 후임 당서기로 지명했다.  

그러나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얼마 후 당서기를 난자한 범인은 다름 아닌 A임을 밝혀냈다. A자신이 직접 나선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사서 저지른 범행임이 밝혀진 것이다. A는 몇 년 전에 당한 억울한 강등을 잊지 않고 가슴에 묻어 두었다가, 당사자인 당서기조차 그 일을 잊을 만한 시간이 흐른 뒤에 복수를 한 것이다.  

중국인이 실화라고 주장한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적어도 중국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 이야기에 나오는 A라는 사람을 은근히 칭송한다. '10년 안에 복수를 한다면 사나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을 즐겨하며... . 

한국인은 성격이 급하고 기분 나쁜 일을 당하면 생각할 겨를 없이 욱하고 일부터 저지르기 때문에 피해자 주변을 연고(缘故)수사하면 금방 용의자가 드러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한 번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자리에서 금방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가슴에 묻어 두었다가 상대방이 그 일을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되는 어느 날, 이미 몇 년이 흘렀는지도 모를 어느 날 조용히 복수의 칼을 뽑아드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국인들의 범죄 수사에는 연고 수사가 벽에 부딪히는 일이 많다고 한다.  

한때 조선일보에 「한중만필(韩中漫筆」 이란 글을 쓰던 마중가(馬中可)라는 분이 있었다. 물론 마중가란 이름은 필명이다. 이분은 하얼빈 공과대학에서 교수를 하던 조선족 동포로, 미국 여행 중 서울로 왔다.  이분이 한국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에서 살다 보니 신문에서 '한국적인 사건'을 가끔 읽게 된다. 이를테면 처가 사람들이 자신을 괄시한다고 칼을 휘두르거나 불을 지르거나 공기총을 쏘아댄다든지 하는 사건들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일이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중국인이 만약 처가에 가서 언짢은 일을 당한다면 우선 생각을 해본다. '정말 불쾌하군. 이것들을 모조리 어떻게 해버릴까? 아니야.

그렇게 해서 나한테 무슨 이익이 돌아오지? 나도 금방 경찰에 잡혀가 결국은 사형을 당하겠지. 일단은 참는 게 좋겠군. 그래 화를 가라앉히자. 화  내봐야 내 건강만 나빠지지. 화를 풀자. 그리고 웃자. 하지만 잊지는 말자. 그리고 어떻게 복수를 할지 조용히 생각해보자. 언젠가 복수를 하면 디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 중국인이다. 그러니 늘 조심해야 한다."  

나는 어느 비오는 날 아침, 차를 몰고 가다가 비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국인을 비틀거리게 만든 일이 있었다. 그때 또 한번 무서운 중국인의 얼굴을 보았다. 그렇게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이 중국인은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자전거를 끌고 내 차의 한가운데를 가로막아 섰다.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말이다. 먼 하늘을 쳐다보며 천천히 비옷 속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는 천천히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내 차 뒤로 차가 늘어서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 시각은 아침 출근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 중국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내 차 앞을 가로막아 선 채 아무 말도 없이 천천히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웠다. 그 동안 내 뒤에서는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로 요란했다.  

그 중국인은 비를 맞아가며 담배 한 대를 다 피우더니 그제서야 운전석 옆으로 다가와서는 유리창을 내리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러더니 "네가 잘못한 일이야"라고 말했다. 그런 중국인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더럭 겁이 났다. 어쩌면 그렇게 조용히 그리고 단호히 행동할 수 있을까. 나는 얼른 우리 돈 5천 원쯤에 해당하는 중국 돈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이 중국인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내가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나에게는 네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중국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중국인은 정말 하나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나도 이 중국인에게 호락호락 질 수 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사과할 수 없다."고 우겨댔다. 그러면서 나는, 차도와 보도를 가르는 선 안쪽에서 제대로 차를 몰았으며 차도로 빠져 나와 자전거를 몬 당신이 잘못했다는 논리를 폈다. 내 앞뒤로 끝도 없이 늘어선 자동차 행렬에서 연신 경적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 30분 이상이 흘렀을까 마침내 중국인은 나를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내가 건네준 돈을 뿌리치고는 총총히 자전거를 타고 가버렸다. 나는 또다시 속을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만만한 중국인은 하나도 없군.' 

중국인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루쉰(鲁迅)의 글들을 읽는 것이다. 루쉰은 이해하기 힘든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웃음 섞인 풍자로 날카롭게 묘사한다. 루쉰의 글에서 중국인들이 맘 편하게 세상을 살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정신 승리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정신 승리법이란 어떤 상대와 싸워서 질 경우 마음속으로 '저 사람은 도저히 상대 못할 인물이군. 내가 피하는 것이 낫겠어. 어떻게 저런 인간과 싸울 수 있겠어. 피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야.' 이런 논리 구조로 자신을 합리화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맞아. 사실은 내가 승리한 거야.'라는 생각에 닿게 도니다. 이쯤 되면 현실적으로는 분명히 패배했는데도 현실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나의승리'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입장 정리를 하고 현장을 떠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솝우화에 나오는 「신 포도 콤플렉스」의 변형된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자신이 못 따먹을 포도면 마음속으로 '저 포도는 분명히 너무 시어서 못 먹을 거야.'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듯, 중국인들은 '정신승리법'으로 패배한 현실을 승리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이 글은 저자의 승인 하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중국 중국인 똑바로 보기, 박승준 저, 조선일보 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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