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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  통권 61호  필자 :  |  조회 : 5348   프린트   이메일 
[중국 뉴스초점]
마카오의 중국 반환과 그 의의

1999년 12월 20일 거행된 마카오 반환은 97년 7월 1일 홍콩이 반환된데 이어 타이완(臺灣)에 ‘통일’압력을 가하는 카드였다. 공산당 정권 수립 이후 중국은 타이완을 한 개의 ‘성(省)’으로 간주하고, 국가가 아닌 독립된 정치 실체로 보면서 국가통일을 대내외적으로 강조해왔다. 마카오의 반환 과정에서도 중국 정부는 홍콩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잘 수행되고 있는 것처럼, 마카오에서도 충실히 시행될 것을 강조하여 은근히 타이완에게 일국양제의 범위 내로 들어오라고 압박을 가했다. 마카오에서의 일국양제가 잘 수행되면 중국 정부는 대만에게 더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남은 식민지가 본토로 귀환하는 과정은 오랫동안 준비되고 예정된 일이긴 하지만 많은 문제의 여지가 있다. 우선 마카오의 역사와 반환과정, 그리고 오늘날의 마카오의 모습을 정리하고 마카오 반환의 의의를 살펴보면서 타이완에 압력을 가하는 카드로서의 마카오 반환을 홍콩 반환과 같은 맥락에서 정리해보기로 한다. 
 

마카오의 과거
마카오는 1152년 향산(香山)현에 속하는 지역으로 1277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1535년 포르투갈인이 항해 무역을 하기 시작하였고, 1557년부터는 포르투갈인들이 장기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1584년부터는 포르투갈인들의 행정기관이 생겼다. 1685년부터는 청나라가 마카오를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1849년 청나라가 아편전쟁에 패배한 틈을 타서 포르투갈도 마카오를 식민지로 접수하였다. 1974년 포르투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포르투갈 정부는 마카오가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아닌 포르투갈 관할 하의 특수지역임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1979년 2월 8일 중국과 포르투갈은 정식으로 수교하였다. 이때부터 4차례에 걸쳐 양국은 마카오가 중국의 영토인 것과 그 반환 시기와 세부항목을 논의하기 시작하여, 1987년 3월 26일 양국은 마카오의 반환에 대해 공식 서명하였다. 훨씬 이전부터 포르투갈 정부는 마카오 반환 의사를 표시했지만, 중국 정부는 홍콩 반환일이 확정된 후에야 마카오를 인수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는 그동안 중국 정부의 관리역량이 부족하였고, 홍콩을 반환하기도 전에 체제 인수의 좋지 않은 실례를 남기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1997년 홍콩이 반환된 후 일국양제를 안정적으로 수행한 2년 후에야 마카오를 인수한 것은 홍콩과 마카오 반환이 타이완 문제 해결의 선례가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마카오 반환 과정의 정치 및 행정적인 측면
마카오의 반환은 일찍이 79년 중국과 포르투갈 양국이 수교를 맺으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87년에 ‘마카오 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제정하고,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代)에 마카오 지역 위원을 두어 세부사항을 논의해 왔다. 모두 11차례에 걸쳐 마카오 특별행정구 준비위원회가 진행되어 왔다. 또 마카오 특별구 행정회의도 진행했다. 반환 후 마카오의 정치와 행정의 문제점은 대부분의 각료가 30대로 행정 경험이 부족한 경제계 인사이고, 또 절대적으로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대부분의 고위직을 포르투갈에서 장악해왔고, 중국계 마카오인은 경제계에서 활동하거나 행정 하위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대책으로 홍콩의 행정인력을 마카오에 일부 배치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 반환 전에는 총독이 전 분야를 총괄했었지만, 이제는 특구행정장관이 지역 내에서 최고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법률적인 측면 - 「기본법」제정

마카오는 88년에 90명의 저명인사가 함께「기본법」의 초안을 구성한 이래, 89년 5월 9일에는 베이징에서 19명의 마카오인과 29명의 내지인이 함께 모여 기초안을 구성하였다. 이 때 중요한 세수입원이 되고 있는 유흥 도박업에 대한 법제정과 천주교 등 종교활동 보장에 관한 안건과, 포르투갈인에 대한 차후처리 등에 대해 세심하게 논의하였다. 드디어 93년 3월 31일 제8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마카오 특별행정구 기본법」과 상응규정을 1999년 12월 20일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통과시켰다. 이 기본법은 기본적으로 홍콩의 기본법을 토대로 제정되었는데, 중국 사회주의 법률과 부합되지 않거나 포르투갈인들을 유리하게 하는 법 조항 등은 삭제하였다.

특별히 종교부문 법규를 보면, 기본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원래 활동하고 있던 종교단체의 활동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겠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원래 활동하고 있지 않았던 종교단체의 종교활동에 대해서는 실제로 어느 정도로 통제할지 미지수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 영향을 받아 천주교가 많이 전파된 것은 사실이지만, 상위층인 포르투갈이나 그 영향을 받은 일부 마카오인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성당 안에서 중국의 등불이 켜져있는 등 천주교는 이미 토착화된 상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믿는 것은 미신이다. 마카오의 거리 곳곳에서는 향을 피우며 개인의 복락을 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사회적 측면
마카오는 3%의 포르투갈인과 97%의 중국인(혼혈 포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포르투갈 공무원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계속하여 마카오인으로 살 것이다. 포르투갈의 통치가 거의 약해진 상태에서 이미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반환에 대한 마카오인들의 동요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언어는 포르투갈어와 중국어를 공용어로 하기 때문에 모든 홍보물과 공공문서 등에 앞으로는 2개 국어를 실어야 한다. 

마카오는 유명한 위락도시로 도시세 수입의 60%를 카지노 운영자금으로부터 끌어들이고 있다. 거대 범죄조직인 삼합회(三合會)의 본거지이기도 해서 살인, 방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것을 이유로 중국 정부는 주하이(珠海)에 병참기지를 두고 마카오 내에 1천 명 규모의 군대를 주둔시켰다.
 

마카오 반환의 의의
1999년 7월 9일 타이완의 리덩후이(李登輝) 대통령은 ‘타이완과 중국은 별개의 나라’라고 주장했다. 이는 마카오 반환을 앞두고 다음 차례가 되어버린 타이완의 독립을 분명히 하기 위함으로 보여진다. 사실 타이완이 독립된 나라임을 주장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공식 석상에서 ‘국가’란 명칭을 분명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것에 대해 중국 정부는 매스컴에 ‘사실상 독립선언’이라고 비난 보도를 싣는 등 강경 대응을 펼쳤다.

그동안 중국은 세계국가들과의 회담에서 타이완과의 수교를 끊고 본토와 수교할 것을 강조해 왔다. 또 마카오 반환 이후 장쩌민 국가주석은 타이완은 21세기 중반에 통일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공언을 했고, 많은 정부 고위관리들도 언론에서 타이완 통합에 대한 발언을 하였다. 이것에 대해 신임 마카오 특구 행정장관인 허호우화(何厚鏵)도 본토의 정책과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타이완의 양국론(兩國論)을 비판한다고 의사를 표시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홍콩 반환 이전 홍콩과 마카오의 반환을 앞두고 일국양제, 즉 하나의 나라 안에 두 가지의 다른 정치체제로 국가를 운영하는 원칙을 제시했다. 1997년 홍콩 반환 후 2년간 이 원칙이 시행되어 왔고, 이제 마카오도 일국양제 하에 본토에 편입되었다. 홍콩과 마카오에서 일국양제가 잘 운영되면, 타이완은 본토 편입이라는 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타이완과 대륙을 연결하던 중간다리인 홍콩이 97년 본토로 귀속하였고, 20세기 최후의 식민지인 마카오가 반환됨으로써 타이완의 고립상태는 더 심해질 전망이다.

또 경제적인 관점에서 중국 정부는 이미 중국 전체 국내 총생산의 25%를 차지하던 홍콩을 접수하고, 세계적인 위락도시 마카오를 접수하게 되면서 인근의 주하이와 선전(深玔)을 연계하는 주강(珠江) 삼각주 경제구역이 더 보강되었다. 여기에 하이난성(海南省)과 타이완을 포함하여 화남(華南)경제권을 구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다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화교상권을 망라한 대중화(大中華) 경제권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카오 반환은 21세기 중국의 새로운 장을 여는 중요한 획이 되는 것이다. 마카오 반환은 오랜 계획 하에 집행되었고 성공하였다. 법 제정도 홍콩의 선례를 거의 따랐고, 사회적인 동요도 그리 크지 않다. 거기에 군대를 주둔시킴으로 단기간 내에 사회의 안정을 추구하였다. 이제는 타이완이 남아 있다. 중국의 눈은 항상 타이완에게 맞추어져 왔다. 중국 대륙이 말하는 ‘조국통일’과 타이완이 말하는 ‘복속’이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질 것인지는 마카오가 반환되는 시점에서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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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人民日報』99.11.1/10.27외, 『경향신문』99.7.2/10.18, 『중앙일보』99.11.18/11.11/ 10.27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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