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교회 중국선교에 바라는 나의 의견은 지난 15년 동안 해 온 방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선교는 분명 증인으로서 현장에 가는 것이고, 주님의 제자를 삼는 것이다. 증인이 되지 못하면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만족을 위한 행위에 속할 뿐이다. 주님의 제자를 만들어내지 않고 내 제자를 만들면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것일 뿐이다.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나라이다. 다만 그들의 어려움은 50년 간 공산주의 체제하에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로서 할 일이 있다면 그들을 섬기는 자로서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즉 성경보급과 아울러 신학서적 공급과 도전을 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선교사는 죽을 때까지 그들 속에서 함께 하지 않는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책임은 그들로 제자 되게끔 만 해주고 그들로 그 다음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필자는 미국이 서구신학을 한국에 심으려 했던 것을 실패로 보는 편이다. 복음을 전한 이후에는 한국적인 신학을 개발하도록 도왔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중국선교를 하는 한국 교회가 일반적으로 중국에 한국식 신학을 심으려는 시도에 대해 좀 걱정스러운 입장이다. 우리는 다만 그들을 섬겨 복음을 깨닫도록 돕기만 하고, 물러서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라는 것이다. 왕노릇하거나 당회장 노릇하는 게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고, 물러서서 그들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라는 것이다. 씨를 뿌렸으니 그들로 물을 주게 하고 거두게 하라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냐?’고 묻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무익한 종의 자세로 중국선교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중국만 국한시켜서는 안된다고 본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 습관과 풍습이 우리와 같을 수 없고, 우리가 그들보다 더 잘 알 수가 없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열세에 놓인다. 다만 제자삼는 일까지만 한 후에 물러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중국에서의 한국식 선교에 실패하고 있다는 자성을 듣고 있다. 특히 조선족에 관한한 매우 실망스럽다. 돈을 퍼주고 얻은 것이란 우리처럼 ‘거지 성도들’을 만들어내서 손 벌리는 버릇만 키운 것이다.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조선족 교회를 누구의 책임으로 돌릴 것인가? 그런 경우에 “기도하라”고 했다가 당한 경우가 어디 한 두 번인가 말이다. 기도보다는 구걸이 더 빠르더라는 조선족 교회의 칭얼거림을 누가 만들어냈는가? 이제라도 중국에서만은 조용히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키워주고 물러서는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15년 간의 사역을 통해 복음만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 사람을 찾아내 그들로 일하게 했다. 가르친 것이다.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선교가 아니라. 오직 명령수행에만 목적이 있었다면 지금의 조선족 교회 같은 경우는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더 멀리 더 깊이 갈 수 있게 되었다. 신뢰를 쌓은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 제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선교는 하드웨어(hardware)가 아닌 소프트웨어(software)에 해당된다. 건물도 땅도 아닌, 그렇다고 쌀도 돈도 밀가루도 아닌 ‘복음’만을 21세기에도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선교의 일획을 그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복음 들고 가라! 그리고 사랑하라! 당신에게서 작은 예수를 발견하게 하라!
21세기의 가장 적합한 선교전략은 초대교회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원칙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삭 | 목사·모퉁이돌선교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