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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  통권 61호  필자 : 박병식  |  조회 : 2923   프린트   이메일 
[선교일언]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선교

한국 교회는 이제 성숙기에 들어섰다. 그 중 특히 선교가 그렇다. 전세계에 산재하는 수 많은 나라들 가운데 한국 선교사가 활동하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이제는 관심이 나라들에게서, 그 나라들 가운데 복잡하게 얽혀있는 수천의 소수민족들에게로 옮겨가는 추세에 있다. 10/40창 운동의 결과 이런 소수민족들과 결연을 맺은 교회들이나 선교단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의 수는 아시아에서 최고의 수준이다. 싱가포르에 위치한 아시아 타문화권훈련원(ACTI : Asia Cross-Cultural Training Institute)이 1995년 12월에 발표한 자료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 훈련원에서 훈련받고 선교 현장으로 가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 중 42%가 한국 선교사들이라고 한다. 다른 선교훈련원들의 상황도 역시 이와 유사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국내외 선교 관계자들은 한국 교회가 앞으로 세계선교에서 큰 몫을 해내리라로 한결 같이 기대하고 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런 기대에 못지 않게 들려오는 우려의 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그 우려는 선교에서 가장 크게 요구되는 협력사역의 부족이다. 타문화권 선교사들과의 협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한국선교의 실정이다. 더 나아가 선교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선교사들 간에도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 교회가 수많은 교파들과 교단들로 나뉘어져 있는 현실을 이해한다면 현장에서의 협력이 왜 부족한가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각자 다른 교파 혹은 교단들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들이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서 드러나는 색깔, 정책과 목표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새로운 세기를 맞는 시점에서 선교현장이 이렇게 계속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선교 협력은 선교사들의 사역을 보다 원활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게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한 선교사가 이중이나 혹은 삼중의 회원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한국 교회는 적극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권장해야 한다. 선교사들 역시 개인적으로는 대다수가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들을 보낸 교파, 교단과 교회들의 인식은 이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

보
내는 이들은 변해야 한다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들이 갖는 일반적인 모습이 있다. 선교를 통해 본국 교회를 과시하려는 모습이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때는 그 정도가 지나치기도 하다. 선교사의 능력이나 재능을 무시하고 교회에 보고할 수 있는 성과만을 요구한 나머지, 선교사는 언어를 익히거나 선교지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선교사는 오히려 교회에 알릴만한 실질적인 성과를 얻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심지어 선교지에  설립된 교회의 이름을 본 교회와 동일하게 부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한 교파나 한 교단의 차원으로 넘어가면 더욱 뚜렷해진다. 과연 선교가 이런 모습이어야 하는가, 주님께서 과연 이런 모습을 원하시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선교가 극히 제한 받는 한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지역에 한 교회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신학교를 세웠다. 적합한 지역에 대지를 구입하고 건물을 세웠다. 학교를 돌볼 직원들이 있고 교수들도 있다. 이 교회는 매월 신학교를 운영하는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 액수도 상당하다. 물론 학생들을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하고 그 비용도 교회가 다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교회의 담임 교역자의 자세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는 선교지를 방문할 때도 자신의 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이 신학교를 거의 방문하지 않는다. 학생들과 사진 한 장 촬영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가서 학생들에게 인사하거나 단 5분이라도 강의를 한 적이 없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그 지역 교회 지도자를 방문하거나 행정담당관을 찾아 인사드리는 일이다. 그 지역의 교회 지도자나 행정담당관은 그와 그가 하고 있는 신임한다.

그에게는 교회의 힘을 대내외에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다. 오직 전략상 중요한 이 곳에 신학교를 세우고, 이 지역을 위해 일할 주님의 일꾼들을 양성하는 일에만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게는 오직 주님의 일을 이루어 드리기만을 원하는 심정이 있을 뿐이다. 이런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결국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는 일이지, 교회의 힘을 과시하여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국제 선교단체와의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국제적으로 알려진 여러 유수한 선교단체들이 있다. 오엠에프(OMF), 네비게이토(Navigator), 인터서브(Interserve), 웩(Wec) 등이다. 이런 선교단체들은 오랜 경험과 선교지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갖고 있다. 어느 특정한 나라의 교회나 교파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여러 선교사들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국제적이다.

이들은 각 선교지에서 쓴 실패와 함께 감동적인 복음의 성공을 경험하였다. 이들은 각 선교지에 맞는 선교사들을 어떻게 선발하고 어떻게 훈련시킬 것인가를 알고 있다. 이들은 가능한 지난날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음으로 효율적으로 선교를 수행할 전략을 갖고 있다.

이들은 아시아의 교회와 협력하기를 원하며, 특히 한국 교회와 협력하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의외로 이들과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교단 혹은 교회가 단독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교단이나 교회는 얼마든지 자신들의 힘으로 특정 선교지에 선교사를 단독으로 파송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이런 국제 선교단체들에게 선교사를 예속시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그들 밑에 들어가 선교 식민지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물론 한국 교회나 교단에 의해 독자적으로 훌륭하게 선교가 잘 수행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깊이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국제 선교단체들과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파송된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고립된 처지가 되고 만다. 아프리카나 중동아시아, 동남아시아나 동북아사이 등지에서 국제 선교단체들과의 협력 없이는 선교사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창의적 접근지역에서 선교사들에게 심각하게 고통을 주는 비자문제, 자녀들 교육문제 그리고 대정부 문제 등도 국제 선교단체들과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많다.

그들이 가진 노하우와 정보를 활용하고, 서로의 경험과 전략을 나누면서 일한다는 것은 선교현지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매우 값지고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과의 협력을 통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지상과제가 이루어진다면 선교의 모든 것은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의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일을 위해서 우리는 선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선교사가 활동하는 아프리카의 한 선교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한 선교단체가 이 지역을 위해서 이미 100년 전부터 사역을 해오고 있었다. 병원 건물이 세워졌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온 의사와 간호사들이 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선교지 곳곳마다 동일한 선교단체에 소속된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는데, 그들 역시 유럽 각 나라에서 온 이들이었다.

그 중에 한국 선교사도 있었다. 그는 이 선교단체에 소속 되어 있었고 매우 훌륭히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다른 선교사들이 그를 인정하고 있었고, 그리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 중 누구보다도 뒤떨어지지 않는 완전한 사역자였다.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한 교파, 혹은 한 교회의 파송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국제선교단체에 소속되어 일한다는 것은 행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위 선교사의 ‘이중 소속(Dual membership)'이 선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인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선교지 교회와의 협력도 필요하다 

선교사는 파송된 선교지의 영혼들을 위해 부름받은 사람이다. 대다수의 선교사들은 그 선교지를 위해 자신의 전 일생을 투자한다. 젊음도, 재능도, 힘도 선교지를 위하여 다 바치며 산다. 그러므로 선교지를 사랑한다. 선교사들에게 듣는 공통적인 고백이 있다. 선교지의 사람들을 보면 한없이 불쌍하고 동시에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안식년을 맞아 본국으로 돌아온 선교사들이나 그 자녀들이 선교지에 있는 성도들을 그리워하고 속히 돌아가기를 원하는 고백들도 자주 듣는다.

그렇다면 선교사들은 선교지의 교회와도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다수의 선교지에는 이미 기존에 세워진 복음주의 교회들이 있다. 이러한 곳에 가서 선교지 교회들과 아무런 협력없이 일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순일 수도 있다. 더욱이 장로교가 없는 곳에 장로교를 세우려고 한다. 성결교가 없는 곳에 성결교를 세우려고 한다면 선교지에 혼란만 일으킬 수 있다. 창의적 접근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은 일반적으로 열약한 환경에 놓여 있다. 많은 경우에 이교도들의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

바로 이런 곳에서 이미 세워진 기존의 복음적인 교회들을 돕고 그들의 성장을 위하여 사역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선교사는 복음적인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다. 그 선교사의 진정한 소속은 어디인가? 그는 그를 파송한 교단의 선교사이다. 동시에 그는 선교지 현지 교단에 소속된 회원이며 선교사이다. 이 삼중 소속에 어떤 문제도 있을 수 없다. 선교에서 필요한 협력이 그에게서 가장 이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접근이 극히 제한되는 아주 위험한 선교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지역 교회의 지도자를 만났는데, 그는 외국에서 오랫동안 신학을 수업하고 온 훌륭한 지도자였다. 그는 자신의 나라를 눈물겹게 사랑하는 목회자였다. 그는 한국에서 온 한 선교사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 선교사는 이미 그 지역에 온 지 수년이 되었지만 한 번도 그를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이미 여러 곳에 교회를 세웠고, 교회들마다 수십 명의 교인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거는 단호하게 이야기하였다. “나는 그 교회들을 교회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교회의 교인들을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보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 교회가 세워진 진 이미 2백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교회들의 전통 위에 세워진 사람입니다. 나는 우리 나라를 너무나 잘 압니다. 지난날에도 우리와 협력 없이 독자적으로 선교하러 왔던 이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들은 현재 한국 선교사가 한 것처럼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교사의 형향이 조금이라도 약화되면 교회들은 다 없어지고, 교인들은 다시 예전의 모슬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진정으로 협력하지 않고 선교하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을 다 그대로 수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그의 말에는 선교를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본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세기를 맞으면서 선교에서의 협력의 장을 더욱 과감하게 열어가야 한다.

박병식 | 송파제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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