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우리는 중국을 하나의 동질적인 공간으로 일반화하여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연적, 문화적 요소를 다양하게 지니고 있는 대륙으로서 바라볼 때 비로소 중국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으며, 이것은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인이란 56개의 민족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개념이다. 각각의 민족들은 상잏나 문화, 풍속, 종교, 언어 및 생활습관을 갖고 있으며, 같은 한족(漢族)이라도 거주 지역에 따라 신체적, 심리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을 연구할 때 몇 개의 지역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질, 지형, 기후 등 자연환경적 차이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고, 상업과 교통 체계에 의해 묶어지는 경제권을 기준으로 나눌 수도 있다. 중국 정부는 현대 행정구역의 위치와 인접성을 기준으로 다섯 지역(동북, 북부, 중부, 남부, 남서부)으로 나누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가장 단순한 구분은 중국인들의 일상적인 인식에 근거하여 북방과 남방으로 나누는 것이다. 남북개념은 역사, 지리,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주요한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 역시 남북 개념에 따라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베이징(北京)을 중심으로 하는 북방문화와 한족(漢族)의 끊임없는 남하로 번성한(長江, 揚子江)이남의 남방문화이다.
북방인의 남방 이주와 근대화
역사적으로 중국 정치, 군사의 핵은 북방이었다. 황하의 중상류에 해당하는 서북쪽 고원지대, 잦은 범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재난으로 물아 온 황하 중하류의 황토 지역에서 용맹한 제왕장사잉 배출되어 역대 제국을 창출하였다. 이 지역은 대체로 간쑤(甘肅)에서 허난(河南)동부, 허베이(河北)남부, 안후이(安徽)북부, 산동(山東)서부를 거쳐 장쑤(江蘇)북부에 이른다. 이 곳에서 주, 한, 위진, 당, 송, 명대의 제왕들이 태어냤고, 근현대 시기에 전국을 호령하던 군벌 위엔스카이(袁世凱), 펑위상(馮玉祥)등 군벌 장군들도 태어났다.
북방의 정치와 군사력에 밀려 송대에 이르기기까지 남방 지역은 변두리, 유배지에 불과하였다. "만(蠻)"이란 거칠고 사리분별 없음을 일컫는 말인데, "남만자(南蠻子)"는 중국 고대에 남방민족을 질시하는 호칭이고, "남만지지(南蠻之地)"는 황당하고 낙후한 지역의 대명사였다. 위진시대부터 비로소 북방인들은 남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농경 기술을 전파하면서 세를 넓혔다. 현재 광동(廣東), 푸젠(福建), 장시(江西), 타이완에 살고 있는 커자(客家:광동어로 하카)인이 바로 그 당시 남방으로 이주한 중국인들이다.
송대에 이르러 성리학이 남방의 선비와 서원에 의해 세력을 얻으면서 근대화는 남방의 몫이 되었다. 풍부하고 살기 좋은 지리적 조건, 그리고 남방인들의 지혜와 예술적인 재능이 바탕이 되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선 창장(長江)이남이 기름진 대평원인 데다 장쑤, 저장, 푸젠, 광둥 4개 성이 바다에 연해 있다는 지리적 조건, 근대 이후의 인적 자원을 들 수 있다. 양무운동의 주창자였던 증국번(曾國番), 이홍장(李鴻章), 변법운동의 주창자인 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啓超), 그리고 현대문화의 아버지 루쉰(魯迅), 중국 공산화의 주인공 마오쩌둥(毛澤東)등은 모두 남방 출신이다. 그 뿐 아니라 중국의 근대화, 공산화를 촉진한 아편전쟁, 난징조약, 태평천국, 양무운동, 번법운동, 신해혁명 등 역사적인 정치사건, 사회운동의 대부분이 남방에 집중되었다.
남과 북의 문화는 자연의 선물
'황제(黃帝)의 자손으로 서북 황허(黃河)유역에서 발원한 용(龍)의 계승자(傳人)' 이것은 북방의 한족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이다. 그에 비해 남방인들은 자신들을 염제(炎帝)의 자손이라 여겼다. 혈연 중심의 사회구조를 더욱 확대시켜 효(孝)의 충(忠)의 개념을 제도화한 유가(儒家)의 사상이 북방문화의 소산이라면, 개인의 자유와 초현세적인 관념을 발전시킨 도가(道家)는 남방문화의 소산이다.
언어와 생활 습관, 사람들의 기질, 경제와 정치를 대하는 시각 등에서도 남방과 북방 중국인들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북방인들은 예로부터 징이나 북같은 타악기를 즐겼다. 그래서 북방은 "나고문화(鑼鼓文化)"로 표현되는데, 나고문화는 황토문화, 농경문화로서 뿌리가 깊고 안정되어 있으며, 투박하고 근면하다. 남방은 근대에 이르도록 늘 변방이었고 침략과 위협에 전전긍긍했지만, 온유하고 평화로운 기질은 삶의 기쁨을 안에서 찾으면서 삶의 향상을 밖으로 돌렸다. 남방인들의 문화는 섬세한 현에 구슬픈 가락의 "어창문화(漁艙文化 : 수상생활 문화)"로 표현된다. 어창문화는 흐르는 물과 같이 동적이며, 적극적이고, 황혼 속의 뱃노래처럼 흥겹고 자연스러우며 조용한 멋이 있다.
북방은 화북평원을 끼고 있으며 특별히 높은 산맥이 없어 문화적 갈래가 비교적 단순하다. 이에 비해 창장(長江) 이남은 산맥이 발달해 있어 민족, 문화 간의 교류가 뜸할 수 밖에 없었다. 남방은 원래 비한족 민족들의 거주지였는데, 북방의 한족들이 전쟁과 전제왕권의 압박을 피해 끊임없이 북에서 남으로 이주해왔다. 따라서 남방문화는 이민문화의 속성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특히 남으로 이주한 한족들이 원래 이 지역에서 거주했던 “백월(白越)” 등 소수민족들과 융합하면서 언어와 혈통이 세분화하고 이는 다시 북방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남방만의 특징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남방 곳곳에 있는 기복의 심한 계곡에 의한 고립적 환경은 한족과 비한족의 혼혈을 제한하였을 뿐아니라, 일단 정착한 한족 집단 간의 왕래와 교류도 방해하였다. 따라서 남방은 방언의 차이가 심하고 문화적 특성도 매우 다양하게 분포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남방에는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한족들의 다양한 방언들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는 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북방의 언어는 남방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동질적이어서 언어의 지역간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방인들은 대부분 과거 관원들이 사용한 공용어인 관화(官話 : Mandarin)에 가까운 “관화방언”을 사용한다.
이에 따라 남방 문화는 북방 문화보다 잘게 쪼개진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는 화둥(華東)문화권, 푸젠(福建)에서 타이완까지 아우르는 민난(閩南)문화권, 홍콩을 포함한 광둥(廣東)문화권, 춘추전국시대 중원의 한족과 대항했던 유서 깊은 초(楚 : 현재의 후난성과 후베이성), 삼국시대 천하삼분(天下三分)설을 앞세우며 자존심을 드높였던 유비(劉備)의 파촉(巴蜀 : 현재의 쓰촨성)이 각각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남과 북 기질이 다르다
예로부터 “고향 사람 만나니 눈물이 비 오듯 한다.”“아름다운 건 고향산수요. 믿을 건 고향 사람뿐이다.”라는 말이 전해올 정도로 중국인은 지역감정을 매우 중시한다. 오랫 동안 지속되어 온 지역감정은 남방과 북방의 문화, 가치관, 행동양식, 언어 등 여러 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가져왔다. 특히 지역적으로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같은 지역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더욱 가깝게 하고 상호간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반면, 타지방 사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배쳑하는 태도를 갖게 하였다.
공자는 저서인 「중용(中庸)」에서 남방인과 북방인을 이렇게 비교했다. “관대하면서도 부드럽게 사람을 가르치면서 무도한 사람을 보복하지 않음은 남방인의 강점이요.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자면서 죽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북방인의 강점이다.” 곧 남방인의 온유성과 평화성, 북방인의 강경성과 투쟁성을 비교했다.
린위탕(林語堂)이 쓴 「남방과 북방」에 따르면, 북방임은 사고가 단순하고 소탈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비교적 힘든 생활에 습관이 되어 투쟁적이고 열정적이며 유머감각이 있다. 반면 남방인은 신체적으로 왜소하고 정적이지만, 재능이 뛰어나고 사업심이 강하며 돈을 잘 쓰고 모험적이고 진취적이다. 린위탕의 눈에 북방인은 정복자, 황제가 되기에 적당하고 남방인은 장사꾼이나 선비가 되기에 적합했다. 그리고 남방의 경제가 수 세기 동안 북방보다 풍요러웠던 까닭에 남방중에서도 특히 장강 하루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치, 과식, 미색을 즐기는 경향이 생겨났다. 기질적으로 남방이 정치인 온유라면 북방은 동적인 강경으로 요약된다.
문학작품에 투영된 남방인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동시에 왜소하고 겁 많고 교활하며 좀스럽다. 반면 북방인은 건장하고 소탈하며 솔직하고 의리는 있으되 거칠고 투박하게 묘사된다. 이러한 구분은 중국인들 사이에 거의 고정된 사고방식으로 굳어졌다.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인 루쉰도 그의 저서 「북방인과 남방인(北人與南人)」에서 “북방인의 장점은 중후함이며 남방인은 영리하고 약삭빠르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중후함이 지나치면 어리석음으로 발전하고, 영리하고 약삭빠름이 과도하면 교활함으로 나아간다.”고 했다.
현대의 여러 학자들은 남방문화의 특징을 “변화에 능하다(善燮)”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이주해 오면서 형성된 남방문화는 현실적이며 즉흥적이다. 즉 새로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기질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남방인들은 금전적인 이익에 민감하고 주위의 시선이나 지적에 휠씬 조심스럽게 대응한다. 체면을 중시하고 ‘실용’이라는 입장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나아가 집단과 집단의 관계를 조율한다. 이에 비해 북방인들은 호방하고 자질구레한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경제보다 정치적인 사안에 관심이 많으며 자신의 금전적인 이익보다 정체성이 문제에더 매달리는 성향을 보인다. 술 먹는 습관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남방보다 직선적이며 호방하다.
다른 말로 하면 남방은 ‘이주(移住)’에서 비롯한 문화이고 북방은 오랜 기간의 ‘정주(定住)’에서 생겨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중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남방과 북방 사람의 기질을 표현하자면 남방인은 변화에 민감하고 처세에 뛰어난 ‘원(圓 : 둥금)’에 해당하는 반면, 북방인은 고지식하고 격식에 집착하는 ‘방(方 : 네모)’을 대표한다.
약진하는 현대의 남방지역
수천 년 간 낙후와 가난을 겪은 남방지역은 오늘날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부유한 곳으로 변모했다. 남방인은 자기들의 지혜와 땀으로 세인의 주목을 끌며 열등민족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개혁 개방 이후 창장 이남에 위치하는 남동부 연해 지역은 우월한 지리적 여건과 사회경제적 기반 및 중앙정부가 부유한 우대정책을 활용하여 중국 현대화 건설의 선두지역으로 발돋움하였다. 전국에서 가장 향진기업(鄕鎭企業)이 많고 부유한 마을로 꼽히는 장쑤성 화시촌(華西村)이나 저장성 원저우(溫州)같은 곳은 지난 20여 년 동안 농업소득, 공업소득이 평균10배 이상 성장하였다. 따라서 동남과 삼북(동북, 화북, 서북 지대의 총칭), 서남 지역의 경제격차는 점차 벌어졌다. 남북 도시 간의 소득격차는 심한 경우 10배 이상이기도 하다. 북방과 남방 간의 격차는 수많은 북방인들을 남방으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지역 간의 격차와 불균형이 지역 간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남과 북을 아우르는 중국 문화의 응집력
이처럼 중국의 남▪북방인 사이에 성격, 기질, 관념과 습관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중국 문화는 통일과 대동, 조화와 질서를 강조하며, 이것은 강대한 문화적 응집력으로 표현된다. 전 중국의 도시나 농촌, 심지어 서로 다른 민족 간에도 문화적인 일치성, 동일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이같은 응집력의 결과라 할 것이다. 중국의 북방 변경에서 강남까지,내륙으로부터 연해지방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자를 쓰고 젓가락을 사용하며, 공동의 국가관념, 도덕관념과 가치관념을 갖고 있다. 비록 신체상, 생활습관상, 언어상 완전히 일치되지는 않더라도 그들 사이엔 공통적인 정신이 발현되고 있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역문화 개념으로 볼 때 남방과 북방은 기본정신이 일치하는 동일한 중국문화 범주에 속한다. 그들 간에 보여지는 차이는 각각 생존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어느 방면에서는 강화되고 어는 방면에서는 변형되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남방이든 북방이든 모두가 우선은 중국사람이고 중국 문화의 소산인 동시에 지역문화의 소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예건중 외 / 중국의 분열, 대륙연구소 출판부, 1996
류제현 / 중국역사지리, 문화와 지성사, 1999
정석원 / 불가사의한 중국이, 대흥, 1992
유광종 / 니하오 중국(1)-(15), 중앙일보, 2001.10.23~2001.12. 4.
한 영 /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