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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쇼핑
2002.4.20  통권 75호  필자 : 김예인  |  조회 : 1940   프린트   이메일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다시 만난 고국 산천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 이렇게 기분을 좋게 하는 바람도 있네, 햇살이 어떤 방해도 없이 거침없이 대지 위에 쏟아진다. 모두들 덥다고 야단이다. 이런 햇살도 다 있네, 눈이 부시다. 아름답다.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산들이 녹색 기름칠을 한 것 같다. 생명이 용솟음치는 것 같다. 먼 산과 하늘이 서로 맞닿은 선이 또렷하다. 신기하다. 어떻게 저리 선이 또렷할 수 있는가? 맑은 물, 맑은 공기 모두가 새롭고 신선하다. 집 앞 벤치에 누워 밤하는을 보니 별들이 뿌려 논 보석처럼 하늘에 박혀 있다. 해운대 달맞이 고갯길에 있는 나의 집은 파아란 태평양이 지척이다. 얼마나 느껴보고 싶었던 감촉인가. 솜털이 올올히 일어선다. 11년 만에, 아니 생애 처음으로 느껴보는 희열이다.

중국으로의 여정
매연이 안개처럼 흐르는 곳에서, 뜨거운 열기가 한증탕 같은 삭막한 도시에서 한 줌의 신선한 바람을 그리워하고 반짝이는 한 줄기 별빛을 사모하였다. 옆 산을 오르면 그 많은 높은 건물들이 스모그에 휩싸여 눈을 닦고 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길가 가로수 잎에는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흡이 가빠오게 한다. 너나 없이 버린 쓰레기가 건물과 건물사이를 연결해 준다. 이곳이 내가 7년 반을 보낸 중국이다.
불신자 집안에 태어나 아무렇게나 살다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나의 인생은 달라졌다. 어렸을 때부터 신비하게 여겼던 중국으로 가고자 하였다. 그 곳은 「사기(史記)」에 나오는 많은 영웅들이 살았고, 또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살았던 곳이다. 그러나 당시 중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없었기에, 중국 유학생이 많다는 말만 듣고 독일에 갔다. 그 곳에서 독일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주로 중국인을 사귀며 그들에게 독일어로 성경을 가르치면서 삼년 반을 보냈다.
한•중수교가되자 곧 중국으로 왔다. 독일에서 밀라노, 로마, 그리고 홍콩을 거쳐 중국에 도착한 첫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한겨울이라 내복에 스웨터에 코트까지 걸쳐 입고 왔는데 ㅇ시의 날씨는 거의 30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값이 싼 비행기를 타서 여러 곳을 경유하여 지친 데다 날씨까지 더워 나의 온 몸은 땀으로 젖었고, 들고 온 가방과 전기장판은 한없이 무거웠다. 이 지역의 날씨는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기후에 관한 고정 관념을 완전히 깨버렸다. 아열대인 이 곳은 겨울인데도 여름 날씨처럼 더웠다가, 며칠 후면 엄청나게 추위진다. 한 번도 영하로 떨어진 적이 없지만, 난방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최저 기온이 영상 7도 정도되면 굉장히 춥다. 실내 온도 5도 정도 되면 옷을 두껍게 입고 침대 속에서 오돌오둘 떨며 잠을 청해야 한다. 그 어디에서도 몸을 따뜻하게 할 만한 곳이 없다. 다시 온도가 오르기만 기다려야 한다. 여름이 되면 40도에 육박하는 엄청난 더위에 습도는 또 얼마나 높은지 한증막 같고, 그늘도 시원하지 않아 밤의 기온도 낮과 별 차이가 없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중국에 도착한 그날 ㅇ역에는 구정이 되어 고향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넓은역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마치 시루 속의 콩나물 같았다. 표를 구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역광장에서 머칠씩 밤을 새우기도 한다. 암표상들은 어찌 그리 많던지!
이튿날 시내 구경을 하기 위해 나온 내 앞에 펼쳐진 도시의 풍경은, 깨끗한 나라 독일에서 온 나에게 경악 그 자체였다. 낡고 오래되어 먼지에 싸여 있는 건물들, 창문이 다 깨지고 발로 차면 옆구리를 그대로 뚫고 들어갈 것 같이 낡은 버스들, 쓰레기가 널려 있는 좁은 거리, 빛 바래고 이상한 디자인의 낡은 옷을 입고,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목욕은 언제 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 몰골의 사람들이 물결처럼 끝없이 어디론지 가고 있었다.
내가 여기에 왜 왔는가 자문해 보았다. 복음을 전하려고 왔는데 이 사람들에게 과연 필요한 것이 복음인가? 이 사람들이 과연 내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갑자기 머리가 회전을 멈추고 주위 사람들은 멀리 사라져 나 홀로 무인도에 있는 것 같았다. 이 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내 자신이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작아지기 시작하였다. 
대학 언어연수 코스에 등록하고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 시내를 바라보며 "이곳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겠습니까?"라고 하나님께 어쭈어보았다. 하나님은 대답이 없으셨다. 기다리자. 그저 기다리자. 하나님께서 일하시기까지 기다리자고 끝없이 나 자신을 설득하였다. 사람이 이리 많으니 다른 것은 보지 말자. 선교는 사람만을 보고 사람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나 자신을 달랬다.

하나님이 하신다
어느 날 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우리들을 데리고 학교 내 서점으로 가더니, 아무 중국학생과 대화를 하는 것이 그날의 수업이라고 하였다. 그 때 만난 학생이 Z이다. 유학생 기숙사로 놀러오라는 나의 초청에 그는 친한 친구 W을 데려왔고, 이들과의 성경공부가 시작되었다. W는 창세기1장을 읽고 난 후 소리내 웃으며 세상에 무슨 이런 책이 다 있느냐고 하였다. 미국 대통령도 이 책을 믿는다고 Z가 자기 친구에게 나 대신 대답해 준다. 나는 그들이 성경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저 짧은 중국어로 내가 할 말만 준비하여 전할뿐이었다. 그들은 물은 것을 서로 대답해 주고 나에게 옳은지 틀린지를 묻는다. 나는 무엇을 묻는지도 모르면서 언제나 네말이 맞다고 대답해 주고 웃었다.
W는 졸업후 직장을 따라 고향으로 갔지만, Z는 동생, 친척, 친구들을 계속 데려왔다. 심지어 시골에서 이 도시로 이사온 부모님까지 예배 모임에 데리고 왔다. 우리 가족과 이들은 공동생활을 시작하였고 Z는 예배의 설교자로 성장하였다.
나는 믿음이 없어 이 곳에서 과연 누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며, 누가 복음을 필요로 할 것인가 의심하였지만,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을 친히 이렇게 이뤄가신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중국에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신 작은 예에 불과하다. 중국에서 이미 자신의 택함 받은 마지막 한 사람이 구원을 받기까지 친히 이 일을 완성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열심히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내어 드리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자신을 훈련시켜 가면 된다. 하나님은 나에게 선교적 업적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연단된 자가 되기를 원하셨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광야의 만나 생활이 준 것은
처음부터 자비량으로 출발한 나에게 물질 문제는 언제나 무거운 짐이었고 해결되지 않는 고통이었다. 자립하기 위해 열 가지도 넘는 일들을 해 보았다. 독일에서는 저녁마다 식당이나 맥주집으로 다니면서 신문을 팔았다. 유학생 신문팔이들이 모이면 "우리는 독일 언론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농담을 하였다. 방학 때에는 공장에서 노동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던 빵 공장은 오히려 나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다.
광야에서 만나로 생활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나도 11년을 지내왔다. 이런 생활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의심하였으며 얼마나 많이 애를 태웠던가! 나의 생활 자체가 기도라고 할 만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구하였건만 언제나 나의 손에 있는 것은 만나 뿐이었다. 하나님 자체, 나의 아버지 되시는 그분 가운데 안식하고 평화를 누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것이 되어 있음을 믿지 못하고, 당장 나의 주머니 속에 무엇이 없음으로 인하여 불안해하고 평강을 누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한국에 빈손으로 나와 또다시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은 나에게 자신이 나의 나님 되심을 알게 해 주셨고 평강을 누리도록 도와주셨다. 11년의 광야 생활은 바로 이것을 깨닫게 하고자 하심이었다. 긴 세월 동안 굶지 않고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돌보심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삶을 뒤돌아보며
Z가 데려온 중국인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함께 사는 중국인 수가 늘어나 중국어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몇 년간 함께 살고 계속 성경을 공부한 Z와 다른 중국인을 설교자로 세워 교대로 설교하게 하였다. 빵 공장 직공들도 저녁마다 모여 성경 공부와 기도 모임을 하였다. 이 모임 가운데 두 쌍이 결혼하였고, 현지 가정교회 지체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생각지도 않았던 육신의 병을 얻어 강제적으로(?) 안식년을 갖게 되었다. 여러 가지 짐을 내 어깨에 지고, 마치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그 곳의 일이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감사하며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린다. 믿음이 없어 쉬고 싶어도 혹시 어찌될까 쉬지 못하였는데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예비하여 두셨고 나를 위로하여 주셨다.
이제 지난 삶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본다. 한국을 떠날 때 내가 선교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떠나지 않았다. 진리를 더 알기 위하여 구도자의 생활을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떠났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 알고, 성령님이 쓰시는 도구로 빚어지기 위하여 떠난 길이었다. 광야에 홀로 서서 거센 바람을 맞는 것 같은 아픔을 당할 때, 땀에 절고 어려움을 겪을 때도 언제가는 진리이신 주님을 밝히 볼 날이 올 것이요. 나 자신 성령께서 쓰시는 종으로 빚어질 것이라는 소망으로 자신을 위로하였다. 영적인 눈이 밝아져 복음을 보고, 느끼고, 그 속에 잠기고 싶었다. 이렇게 복음의 비밀을 알고, 성령님의 쓰시는 도구가 될 때 세상의 어떤 세력도, 권위도, 철학도 모두 부서지리라 믿었다. 이런 바람을 가지고 살아 온 지 이십 년이 흘쩍 넘었다. 아직도 나는 그 곳에 도착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보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아직도 능력이 없다.
중국 사람에게 전하여진 것이 복음 그 자체였는지, 아니면 나으 흐릿한 눈으로 보고 잘못 이해하여 자갈 섞은 밥을 먹이지는 않았는지..... 그들이 바른 복음으로 거듭난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지, 아니면 기독교 윤리와 도덕을 받아들여 겉만 하나님의 자녀로 만든 것이 아닌지 두려움이 앞선다. 그들의 순박함과 애정 어린 눈빛을 생각해 본다.

아직도 나의 갈 길은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복음이 바르게 이해되어 지고 바르게 전하여지기를 원하신다. 사람을 쓰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복음에 깊이 젖고,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 종들을 일으켜 세우고 계신다. 하나님은 이런 종들을 통하여 성령이 충만하고, 복음의 비밀을 소유한 또 다른 많은 그의 자녀들을 낳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요. 소망이 아닐까? 이렇게 축복받은 자들의 기쁨이 얼마나 클까? 그들의 속에 있는 생명수는 얼마나 넉넉히 그들의 영혼을 적셔줄까?
이것을 알고자 지금까지 달려왔다. 아직도 나의 갈길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가며, 내일도 갈 것이다. 여기 잠시 육신을 뉘어 상쾌한 바람도 맞고 별빛도 본다. 찬란한 햇살 속으로 자태를 자랑하는 한국의 아기 자기한 산들을 눈 속에 간직한다. 남해의 푸른 바다에 탄성을 지른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여전히 쉬지 않고 걷는다. 주님을 알고자 종종 가슴이 메어진다. 언제가 내 가슴에도 상쾌한 산들바람이 부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을 바라며 지금도 걷고 있다.


김예인 /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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