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버려지는 아이들과 고아들을 돌보는 중국 교회 성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국 가정교회는 정부의 통제와 핍박으로 인해 외부적으로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많은 제한을 갖고 있으나, 이웃의 필요를 채우며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을 통해 어두운 세상에 빛을 전파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밭에 버려진 어린아이
지도자 훈련을 위해 X시에 갔을 때 나는 그곳에서 B자매를 만나게 되었다. 2년 만에 만난 그녀에게 난데없이 이제 막 재잘거리며 뛰어다니는 딸 하나가 있었다. 알고보니 2년 전쯤, 시골에 사는 B자매의 어머니가 밭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 더듬어 찾아가 이 여자아이를 발견했다고 한다. 금새 주위의 사람들이 몰려 들었지만, 다들 웅성웅성할 뿐 전혀 손 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결국 그녀의 어머니가 잠깐이나며 아이를 돌볼 생각으로 집에 데려 왔으나,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정부 관리로부터 경고를 듣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아이는 생육계획(生育計劃 : 인구조절을 위해 한 자녀만 낳도록 하는 정책)을 어긴 부모에 의해 출생되었으며, 따라서 버려진 아이를 데리고 와서 돌본 것은 초과 출산을 암암리에 돕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를 버릴 수도, 기를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B자매는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미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호적에 입적시키려면 2천 위안(한화 30만원)정도의 벌금을 내야 했다. 그래야만 아이가 법적으로 살아갈 권리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2천 위안도 기관에서 그녀를 잘 봐준 것이라고 한다. 원래 생육계획을 어기고 출산할 경우 4천 - 5천 위안만으로도 입적이 불투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과 출산으로 태어난 아기는 산이나 강에 버려져 죽거나(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대체적으로 여자아이들이 버려진다), 다행히 부모에 의해 키워진다고 해도 호적에 올려지지 못한 "헤이하이즈(黑孩子)가 되어 교육도 못받는 소외계층이 되는 것이다.
B자매는 아이에게 "뚜오자(多加 : 더 얻었다)"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녀의 집은 원래 접대하는 일이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어린 뚜오자는 벌써 많은 언니, 오빠들의 귀염둥이가 되었다고 한다. 뚜오자가 B자매의 집에 오게 된 상세한 연유를 들으면서 내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냉혹한 사회의 현실이 사람들의 마음마져 얼음장같이 차게 만들어 버렸으니, 사람들이 버려진 아이들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B자매와 어머니는 처음 이런 일을 경험했지만, 만약 계속 이런 일을 겪게 된다면 그 많은 버려진 아이들을 키울 능력이 없을뿐더러, 만약 아이들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수천 위안의 벌금을 낼 여력이 없다. 이처럼 많은 아이들이 버려지는 현실 속에서 다른 좋은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병원 문 앞에 버려진 어린아이
X시를 떠나 Y시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만난 A형제 부부도 이와 비슷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부부는 Y시의 가장 큰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특히 유명한 외과 의사인 A형제는 만약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면 이미 부원장으로 승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부원장이 되기 위한 선결 요건은 공산당원이 되는 것인데,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은 공산당원이 될 수 없으므로 그는 신앙을 포기하느니 과감히 승진의 기회를 포기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A형제 부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구제에 힘쓰는 것은 주위 모든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언젠가 한 위급한 환자가 병원에 실려 왔을 때, 가족의 서명과 수술비 보증금이 필요하다는 규정 때문에 병원 문 앞에서 치료를 거부당한 일이 있었다. 그때 A형제가 직접 서명을 해서 그 환자는 간신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환자는 상태가 좀 좋아지자 몰래 도망쳐 버렸고, 2만 위안의 병원비는 모두 A형젝 떠맡게 되었다. 이번에 그들을 만났을 때 누군가 그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자 그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지금 그들을 가장 난감하게 하는 것은 계속해서 병원 문 앞에 버려지는 아이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보고도 못 본 척 한다. 어린 생명이 죽어가거나 말거나 그들에게는 별 일이 아닐 수 있지만, A자매는 그아이들이 죽어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한 두 번은 그녀와 그 남편 부담으로 아이를 가까스로 살려서 고아원에 보내곤 했었다. 주위 사람들은 방관하기도 하고 냉소적인 몇 마디를 던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아무도 그들에게 도움이 손길을 주지 않았다. 버려진 아이들이 발견되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고아원에서도 그들에게 쓸데없는 일 하지 말라는 식으로 충고하였다. 이런 일들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 A형제 부부에게 적지 않은 마음의 부담이 되고 있다. A자매가 병원 문앞에서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다른 사람들이 버려진 아이들을 발견하고 A자매에게 그 사실을 알리면서, 마치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는 듯이 그녀를 지켜보기도 한다. 그녀가 이런 답답한 심정을 이야기 할 때, 나는 감동하는 한편 막막해지기도 했다. 그녀와 함께 걱정해 주는 것 이외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교회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의 어려움
C자매는 M시의 3만 명 이상의 성도들이 모이는 큰 가정교회를 섬기는 일꾼이다. 이 교회는 작년 성탄절 기간에 열흘 동안 각각 다른 지역에서 크리스마스 축하행사와 전도집회를 열었다. 총 2만 7천명의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했으며, 2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결신하였다. 나는 C자매와 함께 이 지역에서도 역시 버려지는 아이들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 하였다. 매번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어린 생명들이 불쌍하게 버려지는 현장을 보거나 들을 때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고 C자매는 고백하였다. 그녀는 교회가 고아원을 운영하여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교회가 정말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다면, 교회에서 신앙으로 자라난 아이들이 장차 주님을 사랑하고 주를 위해 헌신하는 일꾼들이 되어질 것을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러한 생각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일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때 사실 문제는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가정교회들은 대체로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 역시 당연히 정부의 등록이나 승인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버려진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사실 호적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부랑아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 쉽다. 교회가 버려진 불쌍한 아아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푸는 것 역시 이렇게 어려울 수 밖에 없단 말인가?
버려진 아이들을 위하 "사랑의 집"
F시에서 G형제가 운영하는 고아원을 방문하였을 때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나는 그의 집에서 집회를 연 적이 있다. 최근에 그가 열 명 정도의 고아들을 돌보는 고아원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방문할 기회를 갖지 못해 안타까워 하던 차였다. 이번 여행 중에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버려진 아이들의 무언의 호소를 듣게 하셨고, 그를 방문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인도하셨다.
역시 의사인 G형제 부부는 수 년 전 F시 근교에 작은 진료소를 열었었는데, 지금은 현 단위의 큰 병원으로 발전하여 병원 이름을 "복음의원"이라고 지었다. 몇 년 전 새벽, 그의 아들이 회사에 출근하다가 버려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온 가족이 정성껏 간호한 끝에 숨을 거두기 일보 직전에 있던 어린 생명을 결국 구해냈다. 이 일은 온 가족들에게 이 어린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만들었다.
오래지 않아 G형제가 파견 의사로 일하던 그 지역의 고아원이 재정상 문을 닫게 되었다. 열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는 돌려보낼 곳이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갈곳이 없는 아이들은 하는 수 없이 개인이 양육하도록 장려되었다. G형제도 네 명의 아이들을 데려와 자기 집에서 "사랑의 집"이라는 시립 고아원을 시작했다. 이곳 저곳으로 소식이 퍼지자 주위 사람들이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끊임없이 데려오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열여섯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최대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었다.
G형제는 고아원을 운영하는 데 온 식구들을 다 동원했다. 두 며느리는 고아들릐 전체적인 생활을 관리하고, 한 아들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필요한 잡무를 떠 맡았으며, 이미 결혼한 딸도 때때로 찾아와 일을 돕는다. G형제는 가르치는 일을 맡고, 아내와 또 한명의 아들은 진료소를 계속 맡아 병원 수입으로 사랑의 집의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이제 고아들이 다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학비만 해도 엄청난 액수가 필요하다. 아이들릐 침실을 들여다보니, 나이가 가장 어린 아이는 따로 방 한 칸에서 며느리들과 딸이 돌아가면서 재우고 있었고, 작은 침대마다 얌전히 개켜진 이불과 담요들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G형제의 가족이 이들을 위해 흘리는 땀과 눈물의 소산인 것이다.
출처 -「展望中華」2001년 6/7월호
번역 - 김미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