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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4.20  통권 81호  필자 : 유관지  |  조회 : 2412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중국선교 왜 여전히 해야 하는가?
중국 선교의 우선 순위는 변함없이 높다


1912년 장로교 총회가 조직될 때 '지나(支那)' 등지에 선교하자는 전도국의 청원이 받아들여지고 이에 따라 1913년 박태로(朴泰魯)•사병순(史秉淳)•김영훈(金英勳)  세 분을 선교사로 산동성에 파송한 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한국교회의 중국선교가 시작되었다. 중국선교는 잘 진행되다가 피선교지와 선교를 하는 나라의 사정이 동시에 어려워지는 일을 겪게 되었다. 피선교지인 중국은 1930년대 이후 중일전쟁, 국공내전 등 정치•사회적인 불안이 날로 커지다가 1949년에는 공산화되어 죽의 장막으로 가려졌고, 1960년대 중반부터는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선교를 하는 나라인 한국은 일제말기의 암흑상태, 해방 뒤의 분단과 혼란에 이어 6.25를 겪었다. 이런 형편 때문에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오랫동안 휴지(休止)내지는 동면(冬眠)상태에 있었다.

1970년대 후반 중국의 개방정책과 한국교회의 성장에 따른 선교역량 보유가 맞물리면서 중국선교가 재개되었는데 이렇게 재개된 중국선교는 1990년대 초반까지는 지하선교, 특수선교의 성격 속에서 진행되었다. 또 중국선교라고 하면서 사실은 중국 대륙 동북지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을 중요한 대상으로 하여 선교를 하였다. 사회주의 국가가 된 중국에 대해 어떻게 선교해야할지 경험도, 지식도 없었고, 중국은 기독교의 공식적인 선교를 용인하지 않으니까 이것은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 여권으로는 중국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기본적인 제약이었다.

지금 중국선교는 특수 선교사가 아니라 일반선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비록 자본주의화 되어 가는 모습을 많이 보이기는 하나 중국은 변함 없는 사회주의 국가이고, 공식적인 선교가 용인되지 않는다는 점은 전과 같기 때문에 '중국선교는 일반선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직 무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선교사 명단에서 중국선교사들은 등재하지 않거나 'X국' 식으로 적어야 하고, 가명을 사용해야 하고, '교회' 대신에 '집단', '목사' 대신에 '사장' 또는 '대표'라고 하면서 간접선교, 또는 위장선교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중국 선교의 현주소이니까 중국선교는 여전히 특수선교요 지하선교라고 해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일은 회교국가들을 비롯하여 선교를 용인하지 않는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일인데, 그런 선교를 특수선교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현지 출입과 주재가 가능해진 것은 근본적인 변화이다.

이렇게 중국선교가 특수선교에서 일반선교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는 것이 '중국선교의 우선권 상실론'이다.(이번 호 특집의 제목은 '왜 중국선교는 여전히 해야 하는가?'인데 이제 중국선교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잡았다고 한다. 대상국가가 어디이든지 간에 선교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요 지상명령 불복종이며 고기 뱃속 행을 자초하는 일이어서 '중국선교불요론'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정확하게는 '중국선교의 우선권 상실론"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자극효과를 내기 위해 '왜 중국 선교는 여전히 해야 하는가?'로 제목을 정한 줄로 안다).

그 동안 중국선교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센티멜털리즘이었다. 아무리 프로포즈해도 못 본 척하던 구애 대상자가 어느 날 슬그머니 손을 잡아도 뿌리치지 않았을 때 느끼는 들뜬 흥분과 같은 감정이었다. 이런 단계를 지나 테이트가 가능해지면 열이 식는 경우가 있는데 중국선교의 우선권 상실론은 그런 것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되면 진달래, 개나리, 철쭉이 활짝 핀다. 무척 아름다워 시선집중이 이루어진다. 그 다음에 꽃이 지고 잎이 돋으면 시선을 많이 끌지 못한다. 그 다음에 열매를 맺을 때는 다른 많은 나무들의 하나로 여기게 된다. 지금 중국 선교는 꽃이 지고 잎이 돋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꽃이 떨어졌다고 외면하는 대신에 신록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그 나무에 다가서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우리는 중국선교의 우선권을 여전히 높은 곳에 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중국선교의 중요성을 수없이 역설하여 왔는데 그 중요성들 가운데 이제는 사라지거나 변경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시점에서 다시 점검해 보면 오히려 더 무거워지고 구체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선교가 왜 중요한지, 왜 변함 없이 중국선교의 우선권을 높이 두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지금 성령이 가장 강하게 역사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가 예루살렘→로마→유럽→미국→한국을 거쳐 지금 중국에서 강하고 뜨겁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일이다. 중국교회가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도 놀랍게 성장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쇠는 닳았을 때 쳐라'는 서양 격언이 있는데 중국은 뜨겁게 달아오른 쇠이다. 여기부터 쳐야 한다. 

미전도 종족들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선교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미전도 종족들의 존재가 부각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에는 55개 소수민족이 있는데 조선족•마오(苗)족•리쑤((傈僳)족들의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미전도 종족들이다. 중국은 미전도종족의 보고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미전도 종족 전도를 위해 중국선교를 소홀히 하자는 논리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거나 앞뒤가 안 맞는 모순된 이야기이다.

이슬람권 선교의 준비가 되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는 지금까지 타원을 그리며 중국까지 이르렀는데 그 흐름으로 보아 앞으로 이슬람권으로 향할 것이 분명하며 이미 그런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1990년 이후 세계는 세 차례의 큰 전쟁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데 걸프전쟁, 아프카니스탄전쟁, 지금의 이라크 전쟁이 모두 이슬람권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문명충돌론 같은 주장들이 대두되고 있지만 선교의 안경을 쓰고 보면 이슬람권 복음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된다.

여하튼 이슬람권 선교는 교회의 큰 과제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회복을 비롯하여 이슬람권을 신봉하는 소수민족들이 많다. 영화회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는 중국의 다섯 개 소수민족자치구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에는 회족이 800만 명 안팎인데 600만 명에 달하는 위그르족 사회에서도 이슬람은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똥샹족(東鄕族), 키르키즈족, 싸라족(撒拉族), 우즈벡족, 타타르족, 바오안족(保安族) 등도 이슬람을 신봉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 민중연구소에서 펴낸 '중국인민공화국 민족분포도'에는 각 소수민족 거주지가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회족 거주지임을 표시하는 점이 전국에 산재해 있음을 보게된다. 우리에게 친숙한 연변조선족자치주에도 6,000명이 넘는 회족이 살고 있다.

중국선교도 이제는 전문화되는 경향이 빠르게 진행되어 계층별 선교, 소수민족별선교 등을 분화되고 있는데 중국의 소수민족 선교에 뜻을 두고 있는 분들에게 필자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삼을 것을 권하고 있다. 중국선교는 오늘의 복음화를 위해서도 중요하고 내일의 복음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지난 겨울에 단기선교팀을 파송할 준비를 하는데 후보지역의 하나로 M국이 거론되었다. M국을 후보지로 정하는데 가장 문제가 된 것은 그 나라가 국토는 넓은데 인구는 250만 명 안팎이라는 사실이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원칙에 비추어보면 인구가 적다는 것을 문제삼는 것은 타당하지 못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기 많은 곳에 그물을 내리는 것이 효율적인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인구 13억, 이것은 하루에도 수만 명씩 구원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의미한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서둘러야 한다.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우선 행1:8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라는 말씀 때문에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야하겠다. 이 말은 가까운 곳, 조금 먼 곳, 아주 먼 곳으로 단계적으로 선교하자는 뜻이 아니라 국내, 국외 가까운 곳•먼 곳을 동시다발적으로 선교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은 한국에서 지리적으로 제일 가까운 나라이다. 배편을 이용하거나 비행기편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갖는 첫 느낌은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나?' 하는 것이다. 80년대 후반에 중국내륙 동북지역을 방문하려면 홍콩으로 해서 베이징을 거져야 했다. 보통 사흘이 걸렸다. 그렇게 해서 조중변경(朝中邊疆)인 투먼(圖門)의 두만강가에 서서 북한 땅을 바라보며 '이렇게 가까운 곳을 그렇게 멀리 돌아와야 하나?'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상례(常例)였었다. 가까운 곳을 대상으로 선교하면 경제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 유리한 점이 있고 지원하기도 편리하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은 역사적으로도 밀접한 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보은의 의미도 있다
중국은 오랫동안 한국에 복음이 전해지는 통로였었다. 멀리 당나라 시절 중국에 들어온 경교(景敎)가 신라에 전해진 흔적이 있고, 천주교는 온전히 중국을 중간기지로 해서 한국에 전해졌다.  기독교의 경우도 최초의 성서번역이 중국대륙 동북지역에서 이뤄지고 국내로 반입되었다. 초기 서북지방에서 전도에 힘쓰던 분들, 교회를 지도하던 분들 가운데는 중국대륙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분들이 많았다. 이제는 복음의 역류로 그 은혜를 갚을 때이다.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중국에서 기독교가 더욱 강한 힘을 갖게 된다면 그 영향은 세계로 파급될 것이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것을 세계의 심장에 복음의 화살을 꽂은 일에 비유하는데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중국선교를 해야 한다. 원(元)이 아시아 대륙과 유럽대륙을 석권하고 있을 때 로마 교황청이 좀 더 적극적으로 전도를 해서 원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면 세계의 역사가 달라졌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점이 선교의 역사에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12세기를 '잃어버린 세기'라고도 한다. 우리는 그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국선교는 여전히 해야할 뿐만 아니라 우선순위를 변함 없이 높은 곳에 두어야 한다. 중국선교에 대한 열이 조금 식고 중국선교의 우선순위를 낮추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들뜬 흥분으로 중국선교 했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교회가 어느정도 꼴을 갖추게 되었으니까 중국선교는 중국교회 자체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그것은 선교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중국당국의 기독교정책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소산이다. 지금은 중국선교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 성숙한 모습으로 중국선교에 더욱 힘써야 할 때이다.


유관지 /  발행인, 목양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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