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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20  통권 80호  필자 : 석은혜  |  조회 : 2711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중국을주께로 80호를 맞으며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중국을주께로>의 발자취

<중국을주께로>가 이번 2003년 3/4월호로 지령 80호를 발간하게 되었다. 중국어문선교회가 1989년 10월 30일 창립되면서 1989년 12월호를 창간호로 하여 <중국을주께로>가 탄생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느덧 13년의 세월이 흘렀고, 올해 14살이 되었다. 흔히 10년 세월이 지나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중국을주께로>도 1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많은 발전을 했다.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80호를 발간하게 되니, 무엇도다 먼저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을주께로>는 처움 중국어문선교회의 회지로 출발을 했다. 1호부터 5호까지는 월간지로 안거안 출판부 간사의 주간으로 발행하다가, 6호부터 필자가 책임을 맡게 되면서 격월간지로 전환하여 발행하게 되었다. 이 잡지의 출발은 한마디로 초라했다고 말할 수 있다. 책의 부피는 얇았고, 발행부수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선교회 회원들, 중국선교 관심자들에게 무료로 배부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책의 정보가 풍성해지자 독자들이 시중 기독교 서점에서 판매할 것을 건의해왔다. 1994년 3/4월호(27호)부터 정식으로 출판등록을 하여 유가지로 전환하여 기독교 서점에서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1995년 8월까지 5년 동안 필자가 <중국을주께로>편집장으로 사역을 하다가 1년반 동안 안식년으로 중국에 가게 되자 한영 간사가 편집장을 대행하였다. 1997년 3월 중국에서 돌아와 다시 3년 동안 편집장으로 사역을 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2000년 3/4월호(62호)부터 한영 간사가 다시 편집장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발행인이었던 이요한 총무가 선교사로 파송되어 다른 사역을 위해 자리를 옮기게 되자. 2001년 1/2호(67호)부터 목양교회 담임이신 유관지 목사가 발행인이 되었다.

<중국을주께로>는 재정과 인력의 어려움 속에서도 변함 없이 격월간으로 출판되어 독자들에게 읽혀졌고 이번에 통권 80호를 발행하게 된 것이다. 지나간 10여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여기에서 필자는 80호를 발간하기까지 <중국을주께로>의 뒷 이야기들과 이 책이 미친 긍정적인 영향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중국을주께로>의 뒷 이야기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필자는 1990년 7/8월(6호)부터 이 잡지 제작에 동참하게 되었다. 필자가 출판업종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다는 것 외에는 책을 만들어 본 경험도, 컴퓨터를 다룰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맡게 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혼자 책을 뒤적거리고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컴퓨터를 배웠다. 원고를 청탁하고, 컴퓨터에 입력하고, 교정과 편집디자인은 물론 인쇄소에 가서 인쇄를 부탁하는 일까지 혼자 도맡아 잡지를 만들었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아 실수로 애써 입력해 놓은 파일이 전부 지워지는 날에는 혼자 밤을 세워가면서 다시 입력을 해야 했다. 그때 그 고통과 외로움이 어떠했는지는 오직 주님만 아신다. 잡지 한 권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필자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간사를 한 명 보내주셨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영혜 집사님이 자원봉사자로 교정, 교열을 해주셨고, 편집디자인(당시에는 수작업으로 디자인을 했음)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도 왔다. 이후 더디긴 했지만 잡지 제작을 위해 일할 전임 간사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가지로 전환하던 1994년 3월에는 필자를 포함해서 5명의 전임 간사가 이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

대부분 비전문가였던 간사들은 보다 전문적인 출판관련 지식을 배우기 위해 퇴근 후에는 두란노출판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선교회의 다른 부서에 비해 출판사역을 하는 간사들은 늘 바빴다. 계다가 잡지가 유가지로 시중 서점에서 판매되면서부터 더 바빠질 수 밖에 없었다. 책이 총판을 통해 정해진 기일 내에 서점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시간에 늦지 않게 완성된 원고를 인쇄소에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편집을 했기 때문에 임의 절차도 지금에 비해 상당히 변거롭고 오래 결렸다. 인쇄를 넘길 시간이 다가오면 밤을 새는 일이 다시 반복되었다. 그래도 동료들과 함께 새우는 밤샘은 혼자 밤을 새울 때에 비해 서로 의지가 되어 견딜만 했다.

1999년 선교회에서 출판 전문 컴퓨터를 구입했고, 디자인을 전공한 간사가 헌신하면서 1999년 1/2월호부터 맥킨토시 컴퓨터로 편집을 하게되자 번거로운 절차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잡지를 만드는 일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사례비 없이 개인이 후원금을 모금해야하는 선교회의 재정원칙으로 인한 간사들의 잦은 자리 이동이 그 중 가장 큰 문제였다. 출판 사역은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새로운 간사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교육기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도 출판사역은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인력난, 재정적인 어려움, 필진 부족, 인쇄 마감 시간에 쫓김, 독자들의 다양한 요구 등등 잡지를 만드는 일은 실무 책임을 맡은 필자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가져다 주었다.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탓인지 본인이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탓인지 1999년 8월 필자는 위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후 2000년 1월부터 한영 간사가 편집장을 맡게 되었고, 필자는 편집위원으로 실무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되었다.

<중국을주께로>를 변함 없이 사랑해 주시는 독자들이 있기에, 그리고 사역의 열매들이 보이기에, 힘은 들었지만 이 사역에 나름대로 보람을 느껴왔다. 이제 안식년을 통해 쉄을 얻었고, 수술의 상처도 아물어지기에 실무자만이 알고있는 이런 뒷이야기들을 이제는 웃으면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긴것이다.

<중국을주께로>가 미친 영향

중국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중국을주께로>를 읽어보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호의적으로 이 잡지를 평가해 주고 있어 감사하다. 여기에서 <중국을주께로>가 그동안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혹자는 자화자찬이 아니냐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분들이 이에 동감하고 있으며, 비교적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을 밝혀둔다.

첫째, 중국선교 동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한국 교회의 젊은이들에게 중국선교의 필요성을 알리고, 그들을 중국선교에 헌신하도록 동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다. 중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선교 등의 정보를 제공하였고, 단기선교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지역정보, 준비의 필요성, 유의사항 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다.

둘째, 중국 선교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한중수교 이후 한국 선교사들이 중국선교를 시작할 때 정보가 없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그러나 이 잡지가 중국의 종교정책, 교회상황, 선교상황 등을 알려주면서 바람직한 선교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또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준비와 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국어문선교회와 중국복음선교회 등 중국선교 전문기관에서 훈련을 받고 나가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셋째, 선교사들이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않도록 복덕방 역할을 했다. 한국 교회가 중국선교를 시작한 초창기에는 선교사들의 70-80%가 동북삼성의 조선족 지역에서 사역을 했다. <중국을주께로>는 선교사들이 지역적으로 편중된 사실을 알리고, 중국 전역에서 흩어져 사역하도록 도왔다. 그리고 효과적인 중국선교를 위한 사역대상으로 조선족에서 한족, 소수민족에게 확대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많은 선교사들이 중국인과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선교하도록 복덕방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중국어문선교회 홍보에 일익을 담당했다. 한국 교회와 중국선교 관심자들에게 중국어문선교회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1989년 중국어문선교회가 창립될 당시만 해도 회원들 이외에는 선교회를 아는이가 적었다. 그러나 잡지가 시중 기독교 서점에서 판매되면서 중국선교에 관심있는 교회, 개인들에게 중국어문선교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지만, 심지어 중국 공안들조차 이 잡지를 필독서(?)로 하고 있고 중국어문선교회를 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정도면 홍보 하나는 정말 잘 된 것 같다.

다섯째, 중국선교 동역자들을 네트워크하였다. 이 잡지를 통해 많은 중국선교 동역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동역하게 되었다. 중국선교에 비전이 있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분들이 <중국을주께로>를 보고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로 비전을 공유하고 동역자가 되기도 하였다. 중국어문선교회에서 파송 받기를 원하거나 선교회와 협력하기를 원하는 선교사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잡지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섯째, 중국을 위한 기도운동을 일으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처음에는 <중국을주께로>안에 중국을 위한 기도제목을 싣다가, 1995년부터는 별지로 편집하여 잡지와 함께 보급하였다. 1997년부터는 부록으로 <중국기도>라는 소책자를 발행해 '중국을 위한 증보기도 네트워크(pray4china.net)를 확산기켰다. 중국어문선교회는 이를 토대로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중국을 위해 증보기도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일곱째, 중국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중국을주께로>의 발전과 보급의 확산은 중국에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선교 관심자들이 늘어나고, 중국을 위한 증보기도자가 늘어나고, 많은 선교사들이 바른 정보를 가지고 사역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보면, 중국에 복음이 선포되고, 방해하는 사단이 결박되고, 선교사들의 사역이 활발해지기에 중국에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더 넓혀져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을주께로>의 발전을 기대하며

<중국을주께로>가 이렇게 중국선교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이 책을 만드는 데는 여전히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여전히 부족한 인력, 잦은 인사이동, 필진 부족, 홍보 부족, 재정적인 어려움 등이다. 또한 정보 면에서는 비교적 풍성해졌지만 보안 때문에 사역적인 면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제약이 따른다. 이제 <중국을주께로>가 더 충실한 중국선교 전문지가 되기 위해서 내용 면에서 거듭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국을주께로>가 더욱 발전하고, 충실한 중국선교 전문지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 교회의 관심과 기도, 재정적인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 교회와 교단, 성도들은 한중수교 이후 앞다투어 중국선교에 힘써 왔지만, 문서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데는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라도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문서선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많은 교회가 협력하여 문서선교에 대한 재정적인 투자와 문서 사역자 양성에 힘써 주기를 바란다.

최근 들어 중국 당국은 선교사들의 활동을 더욱 규제하고 있다. 현장에서 사역하다가 발각된 선교사들에게는 많은 벌금을 추징하거나 심지어 추방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WTO 가입,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등으로 중국선교는 더욱 활성화 될 전망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중국선교는 더욱더 지혜가 필요하고, <중국을주께로>역시 더욱 충실하게 제 역할을 감당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독자들의 <중국을주께로>를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난 13년 동안 <중국을주께로> 출판을 위해서 이름없이 빛도 없이 변역과 교정을 돕고 글을 써 주신 분들, 사진 및 자료를 제공하고, 재정을 후원하며 기도해 주신 분들게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 잡지를 만들기 위해 같이 밤을 세우며 동역한 많은 사역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주님의 위로와 축복이 넘치길 기도한다.

<중국을주께로> 80호 발간을 축하하면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동안 이 잡지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한 앞으로 <중국을주께로>를 만드는 귀한 사역에 동참할 일군들이 많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한다.


석은혜/ 전(前) 편집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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