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상황에 부딪힐까, 또 어떤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질까 하는 긴장 반 기대 반의 설레임으로 우리는 인천항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수천 톤의 화물선에서부터 작은 고기잡이 어선에 이르기가지, 어떤 때는 하루, 어떤 때는 한 달 이상 머물다가 바람같이 떠나버리는 중국 배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중국 각 지역에서 온 중국인 선원들이 있다. 그들이 이곳에 온 목적이야 어찌 되었든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 기회를 잃지 않고 저들에게 단 한번이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렇다. 어쩌면 저들에게는 일생을 통해 단 한 번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첫 만남
인천항에서 배에 오르려면 우선 세관으로부터 승선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요즈음에는 해당 해운회사나 세관들의 태도가 까다롭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활동이니 만큼 그들이 별로 달가워할 리 없지만, 어쨌든 지혜롭게 넘어야 할 첫 관문이다. 이 문턱을 넘으면 또 각 배의 선장의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그래야 순조롭게 선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되었구나 싶으면 넘어야 할 산이 또 있게 마련. 배 안에는 선원 관리를 위해 공안원 또는 당 간부들이 한두 명씩 있다. 그들을 의식한 선원들이 우리의 방문을 막아내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 앞에 닫혀 있을 문이 그 어디 있으랴. 무료함에 지쳐있던 대개의 중국 선원들은 배에 오른 낯선 이방인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마음 여는 선원들
가족과 고향을 떠나 긴긴 항해에 지치고, 몇날 며칠을 갑갑한 선실 안에 갇혀 지내는 외로운 이들에게는 복음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방문 자체가 ‘사건’이 아닐 수 없을 터. 먼저 자연스럽게 가벼운 인사와 자기 소개로 분위기를 잡고, 찬양과 율동으로 선원들의 굳어 있는 마음을 푸는 시간을 갖는다. 여기에 중국어 찬송은 물론이요, 기타 반주나 아름다운 율동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대개 이 때쯤 경계를 푼 선원들의 마음은 복음 들을 준비가 된다. 이 때를 틈타 우리는 사영리나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복음을 전한다. 때로는 그림이나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복음의 진리를 간단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중국어를 못 하는 자원봉사들이 ‘나도 중국어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할때가 바로 이 때. 하지만 이들은 뒤에서 말없이 기도하며 성령께서 역사하시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몇몇 선원을 제외하곤 대부분 진지하게 복음을 받아들인다. 아예 그 자리에서 영접기도를 따라하는 선원도 생겨난다.
더 깊은 물가로
이렇게 만나 복음을 전한 선원들을 그냥 그 상태로 놔둔다면 사역은 일회성에 그치고 말아 별로 효과가 없다. 주님을 영접한 그들이 계속해서 항해하는 동안에 늘 주님과 동행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서도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더 나아가서는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성숙한 제자로 양육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인천항만 가까이에 있는 외항선교회 선교센터에서 중국 선원 초청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뿐 아니라 센터의 문을 항시 개방하여 중국인들이 어느 때나 와서 쉬고 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센터에 중국어로 된 간판이 붙어 있기 때문에 중국인 선원드리 오며 가며 한 번 쯤 꼭 들리곤 한다. 센터 내에는 각종 신앙서적은 물론, 그들이 지치고 무료해진 심신을 쉴 수 있도록 당구대나 탁구대와 같은 편의시설도 갖춰 놓았다. 하지만 문을 열어 놓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닌가. 그들을 반가이 맞아주고 함께 교제할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기대된다.
한 영혼이 서기까지
인천 시내 지리를 모르는 중국 선원들과 동행하며 길 안내를 하는 이들의 말없는 수고가 없다면, 그들이 선교센터의 물을 밀고 들어올 때 언제라도 따뜻하게 상대해줄 이가 없다면, 예수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고, 같이 기도하고 싶어도 도와줄 이가 없다면 잘 갖추어진 센터는 헛것이 아닌가! 중국 선원들이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오게 하는 데는 다양한 은사와 섬김이 모아져야 한다. 몸이 아픈 선원들을 돌보아 줄 사랑의 의술, 지저분한 머리를 상큼하게 다듬어줄 이미용 봉사의 손길, 선원들에게 나눠줄 전도자료 복사,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식사나 간식을 제공하는 손길 등….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주님의 나라를 넓혀 가고 있다. 이런 수고를 통해 거듭난 한 중국 선원의 간증이 있다.
“저는 10년 전부터 삶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내는 당 간부로 정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아내가 나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 사랑도 저의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면서 인생의 의미와 진리를 추구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생의 허무감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천항에 정박하여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간염보균자로 판명받았습니다. 저는 더욱 좌절하게 되었고 제 인생은 황폐해갔습니다. 그런 제가 한국에 왔다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과 같은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어디 이 한 형제 뿐이랴. 이리저리 절망의 망망대해에서 헤매는 많은 중국 선원들이 애타게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기에 오늘도 인천항을 향하는 우리의 발길을 멈출 수 없다.
‘몸 도우미’가 필요하다.
지금 현재 인천항 승선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중국어문선교회 인천지부에 전임사역자는 단 한 명뿐이다. 외항선교회와 함께 사역을 하고 있지만, 중국어가 가능한 유일한 사역자이기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많은 할 일이 있다. 중국어로 복음을 전하고 찬양을 하는 직접적인 사역부터 기독교 문서나 설교, 찬양 테이프를 복사하는 일, 선물로 줄 사탕을 포장하고 성경구절을 예쁘게 써서 책갈피로 만드는 일, 부활의 의미를 일깨워 주기 위해 계란을 삶고 포장하는 일, 생일을 맞은 선원을 위한 케이크 헌물 등 다양한 모양으로 참여할 수 있다. 비록 중국어는 못하더라도,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동역자는 어디에 있는가? 문제는 관심이요 사랑이 아닌가. 만약 내가 주님이라면 “나중에, 나중에” 하는 ‘말 도우미’ 보다는, 당장 팔 걷어 붙이고 달려오는 ‘몸 도우미’ 가 더 예뻐 보이지 않을까?
보내주소서
우리가 중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저들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이것만큼 귀한 기회가 어디 있을까? 기회를 주실 때 최선을 다해서 힘을 모아 고기를 건져야 할 때이다. 할 일은 너무 많고 어부는 너무 적다. 주님의 탄식이 들려오는 듯하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다!” 우리가 가진 시간, 재물, 은사가 비록 작다 하여도 드리지 않은 큰 시간, 재물, 은사에 비길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이들의 마음에 주님의 절절하신 마음이 전해지길 간절히 바란다.
글/한영혜 기자 . 취재/ 김은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