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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20  통권 66호  필자 : 박준형  |  조회 : 3642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중국인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선교
문화 이해의 유연성을 키우자

베트남에 공장을 차린 한국인 중소기업 사장은 현지인이 자기를 “어이!(베트남어로 ‘여보세요’라는 뜻)”라고 부르자, 한국식 “어이”로 착각, 건방지다고 혼을 냈다가 외국인 1호로 베트남 감옥에 갇혔다. 인도네시아에 파견된 한국의 모 기업 주재원은 현지 직원을 공공연히 꾸중하고 머리 한 두 번 쥐어박았다고 해서 살해되었다. 멕시코에서도 현지 직원을 업신여겼다가 총으로 살해당한 한국인 기업가가 있었다. 극단적인 사례라고 여겨지겠지만, 이것들은 단지 표면화 된 몇 개의 사례에 불과하다. 현지 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기본적인 이해부족과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인하여 비참한 종말을 가져온 예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중국에서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태도에서 벗어나 상대방 문화의 뿌리를 알고 수용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기업인들만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글로벌 시티즌(Global citizen)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생존의 ‘필수사항’이요, 오직 하나님만을 붙잡고 나아가야 할 선교의 사명을 띤 자들에게는 더더욱 핵심역량이다. 문화의 갑옷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 삼아야 현지인도 살고 우리도 사는 ‘윈윈(Win-Win)’ 선교철학이 하루빨리 정착되기를 바라면서, 타문화를 접했을 때 갈등의 소지가 되는 원인과 잘못된 자세들을 되돌아봄으로, 문화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관이 없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선교사들이 되기를 희망한다.

자민족 우월주의(Ethnocentrism) 
자민족 우월주의란 자기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은 자기의 기준과 일 처리 방식에 입각해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평가한다. 우리가 낯선 문화에 직면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감정들 즉 두려움, 증오, 당황 등등을 생각해보면 자민족 우월주의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지도 모른다. 특히 중국과 같이 경제적으로 우리 나라보다 뒤떨어진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특히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은 종교라는 하나의 잣대가 더 생기니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극단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것은 모두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우리 모두는 자민족 우월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데이비드 후페스(D.Hoopes)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우리를 지탱시켜주는 것 즉 우리의 부모, 가족, 문화 집단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긍정하기 시작한다. 자기 집단을 동일시하며 긍정하기 시작한다. 자기 집단이 옳고, 따라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자연과 다른 집단으로부터의 침략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기제가 되어 왔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되고 복잡해지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문화 집단 간의 왕래가 증가하면서, 자민족 우월주의는 이제 위험한 것이 되었다.” 

우리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보는 관점은 우리의 인간관계 능력을 질식시킨다. 자기와 타인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성급하게 상대를 평가하고 낮은 점수를 주기 쉽다. ‘저건 말도 안돼!’, ‘어떻게 저럴 수가?’, ‘희한한 일도 다 있네.’, ‘정말 끔찍해!’ 등등. 불안해지거나 체면이 깎일 우려가 있을 때는 으레 이런 말들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같은 민족,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끼리는 더 가까워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되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로 하여금 이처럼 강한 반감을 가지게 만든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저들의 입장이라면 나는 사물을 어떤 식으로 보게 될까? 저들 방식대로 했을 때 흥미있고 가치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의문이 들면서 편견이 줄어들고 사고와 반성의 여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잘못된 태도 
우리의 전통적인 규범적 기대를 벗어나는 다른 태도를 보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다른 이유로 돌려 이해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미국인들과 협상할 때, 미국인들은 우리가 자기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우 불편하게 여긴다. 영미 문화권에서는 상대를 쳐다보며 눈을 마주치는 것이 보통이다. 부모와 교사는 자녀나 학생에게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에게 얘기하고 있을 때는 나를 쳐다봐.” 어린 아이들은 뭔가 부끄러운 게 있거나 숨기는 사실이 있으면 어른의 눈길을 피하곤 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상대방이 눈길을 피할 경우는 무언가 숨기는 게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며, 결국 신뢰를 보이지 않는다고 확대 해석하게 된다. 한편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는 것은 공격적인 태도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테이블 저쪽의 미국인은 ‘이 사람은 신뢰할 수 없으니 같이 일하기 힘들겠다.’라고 생각하고, 이쪽의 한국인은 ‘저 사람은 너무 무례해. 같이 일할 수 없어.’라는 생각을 하는 상황까지 이르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중국에서 한국 기업인들이 공장 이전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벌이고 있다. 계속되는 상담 도중 중국 측에서 갑자기 만리장성 관광을 가자고 제안한다.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가지고 돌아와야 할 한국의 신토불이 기업인들은 저들의 이러한 태도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돌아올 비행기 시간이 확정되어 있어 초조한데, 중국 측의 제안을 거절하자니 상대방의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고, 가자니 일이 복잡해진다. 이에 대해 한국인은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상담전략이라 여기고 상대방을 경계하기 시작하고, 중국이의 입장에서는 관계중심적인 상호 호혜평등의 중국 사회를 너무 모르는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단정한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흔히 상대방의 문화를 조금밖에 모르는 데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상대에 대한 정보나 문화적인 배경을 좀 더 깊이 알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만으로 빈 여백을 메워버리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상대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라는 말은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에 좋은, 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라는 뜻이다.

고정관념(Streotype) 
‘한참 뒤떨어진 사람들이군!’, ‘원시적인 인간들이야!’, ‘정직하지 못해!’, ‘지저분해!’, ‘느려 터졌어!’ 이것들은 우리가 중국 사람들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적인 고정관념들이다. 문화적인 오해는 흔히 우리가 다른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고정관념은 개별적 차이나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폐쇄적 카테고리에 속한다. 아무리 새로운 정보라 해도 기존의 카테고리를 통과하게 되면, 다시 그 카테고리를 강화시키고 기존의 관점을 다지는 정보가 된다.

그리고 고정관념 중에는 긍정적인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고정관념적인 시각은 개인과 개인 간의 진실한 교류를 차단한다. 다시 말해 사람을 볼 때 겉모습만 보고 그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경계해야 할 점은, 당신이 상호작용하고 있는 상대방 역시 당신을 ‘빨리빨리 한국인’, ‘어글리(Ugly) 코리안’, ‘속물’ 따위의 고정관념 등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상대의 고정관념이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느껴지면 상대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면 된다. 또한 필요에 따라서는 그 고정관념과 당신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음을 암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중국인들처럼 만만디를 즐기고 시간에 초연한 모습도 보여줄 수 있다. 단, 방어적으로 되려고 애쓰지는 말라.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사람에 신경을 쓰지 말고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라.


에티켓(Etiquette) 
중국인들에게 흰색은 불길한 색이므로 결혼식 등 부조를 할 때 흰봉투에 돈을 넣으면 안되고, 우산이나 탁상용시계, 괘종시계를 선물로 주지 않는다는 것(마지막, 죽음을 의미함) 등은 중국을 아는 사람들에겐 기초 상식이다. 미국 등에서 즐겨쓰는 OK 제스추어가 그리이스, 브라질, 터어키 사람들에게는 외설스런 의미이며, 일본인들이 중지로 가리키는 행동이 미국인에게는 외설스런 행동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에게 발바닥을 보여주는 것은 명백한 모독행위에 해당한다. 이처럼 언어 또는 제스츄어, 표정 등의 비언어적인 요소들은 타문화 케뮤니케이션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에티켓의 기본은 ‘현지 관행에 따를 것’과 ‘상응할 것’이다. 속은 한국인이되 겉은 중국인이 되어야 하며, 상대방이 베푼 것은 반드시 대등한 몫으로 되돌려져야 한다.

시간과 장소 
우리가 다 아는 옛말 중에 ‘모든 일에는 때와 장소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는 상대방이 그렇게 해도 좋다는 표시가 있기 전에는 식사 도중에 비즈니스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라마단이라고 하는 금식기간이 30일 동안 이어지는데,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남들이 보는 앞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시간을 보는 관점도 나라마다 다르다. 중국인들의 시간에 대한 관념은 한국인들보다 훨씬 유동적이다. 두세 시간이 훨씬 넘는 점심시간 동안 술이나 낮잠을 즐기고 정시에 ‘칼퇴근’한다. 한국식의 시간적 효율을 가지고 접근하다가는 금방 지치고 말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지인들과 조화롭게 잘 살기 위한 첫 번째 원칙이 ‘공감(Empathy)’이다. ‘왜 저럴까?’라고 하기보다는 ‘저들 나름대로 무슨 이유가 있을거야.’라고 역발상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화제(Topic) 
일반적으로 교제의 초기에 정치, 성(性), 종교, 돈, 나이, 그리고 문화의 비교에 관한 화제는 피한다. 이러한 화제들은 논쟁이 되기 쉬우며, 첫인상을 망치게 하는 수가 많아서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특히 종교에 관한 문제는 개인이나 그 민족의 믿음체계 중 근본을 형성하는 것이니 세 번을 숙고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또한 중국인들과 처음 만났을 경우 정치체제나 천안문 사태 등 민감한 문제는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 그 나라의 전형적인 약점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관계 형성을 위해 좋은 방법이 못된다. 아마도 거만하고 무지하며 공격적이라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또한 사전에 적절한 대화거리를 파악해 두어야 한다. ‘중국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좋아할까?’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화두이다.

언
어 
언어는 아마도 타문화권에 들어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장벽일 것이다. 이 점은 서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한 예로 영국인 경영자와 미국인 경영자들이 만났다고 하자. 영국인이 “이제 다른 아이템을 ‘심의(table)’하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이 말을 다른 주제에 대한 논의를 미루거나 그만두자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table’의 뜻이 미국에서는 ‘무기한 연기하다’ 혹은 ‘보류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말을 한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단 다른 언어에 대한 기초 지식(인사법, 사과, 부탁, 감사의 표현 등)은 반드시 아아두어야 한다. 그리고 현지인과 대화를 할 때는 쉽고 천천히 말할 필요가 있다. 굳이 그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은어나 속어, 잘 쓰이지 않는 관용어, 구어체 표현은 알아도 피하는 것이 좋다. 정말로 언어에 익숙하여 그 나라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표준 중국어, 격식을 갖춘 중국어를 반복하자.

※ 이문화(타문화)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기 원하는 분은 필자가 운영하는 Culture Compass의 웹사이트(www.culturecom.com)를 참조하십시오. 

박준형/ 이문화 .국제매너 컨설턴트,  前 삼성인력개발원 이문화, 국제화 교육담당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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