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성숙한 선교에 있어서 세계관의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그동안 여러모로 입증되었다. 만일 문화를 지도에 비유한다면, 세계관은 그 지도상에 나타나 있는 것보다 더 심층적인 내용을 의미한다. 즉 그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려주는 것과 비유된다. 따라서 지도만 보아서는 한 지역 혹은 한 나라를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문화의 개념을 이해했다고 해서 한 선교 대상지역 혹은 종족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더욱이 이들을 변화시켜서 우리가 원하는 소기의 선교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결국 지도 이외에 더욱 근본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그것은 곧 지도가 나타내고 있는 심층부분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세계관에 비교할 수 있겠다. 한 개인이나 집단의 신념과 가치관과 생각을 알려주는 세계관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효과적인 복음화는 물론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교회의 선교가 지금까지는 선교사들이 현지에 정착하고, 문화에 적응하고, 열심히 사역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선교의 성숙기에 접어든 지금은 선교사와 선교단체들이 선교대상의 세계관을 파악함으로써 이에 적절한 선교전략을 세우고, 그들에게 적합한 메시지를 선포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들의 세계관이 변함으로 말미암아 성서적인 성숙을 경험하고, 이에 따라 사회와 경제와 교육과 도덕의 변화까지도 뒤따르게 하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선교사가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가는 회의적이다. 아무리 유능한 선교사도 한계가 있다. 세계관의 변화가 선교사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하지만 선교사가 세계관을 이해하고 외부자로서 자극을 줌으로써, 궁극적으로 내부자의 세계관의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데 있어서의 역할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
초기 한국선교와 세계관의 관계
한국의 경우 비록 세계관 개념이 형성되지 않은 때에 서양 선교사들이 입국했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 선교사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성서적인 세계관과 접하게 하였다. 마침내는 우리가 주역이 되어 우리의 성숙과 복음화를 통해서 세계관의 변화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을 잘 하지 못했다. 만일 선교사들이 초기부터 세계관 변화를 목표로 선교했다면, 현재 우리 한국 교회의 성숙도가 매우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기 선교사들은 세계관 개념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하고 구체적인 몇 가지의 축소된 목표를 한국교회에 제시하였다. 성수주일, 금식기도, 연보, 새벽기도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신앙의 백지상태와 같은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실현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우리 문화에 적합하게 상황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축소된 목표였기 때문에 이것이 한국 교회가 보다 성숙하게 되는 데에 장애 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 선교사가 다른 지역에 나가서 선교를 하는 지금에 와서 우리는 똑같은 과거를 반복할 필요가 없다. 비록 초기에는 우리도 한국에 들어온 외국 선교사들처럼 구체적이고 단순하고 실현 가능한 몇 가지의 가시적인 목표들을 제시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세계관의 변화가 올수 있도록 변화의 매개인(change agent)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현지 문화와 세계관의 관계
세계관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현지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세계관은 문화 속에서 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세계관 개념 형성의 유래를 보더라도 문화 인류학자들이 풍습이나 문화의 외적인 표현들을 주로 다루어왔지만, 그것이 그 문화 전체의 참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풍습이나 외적인 표현에 앞서 한 문화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좀더 깊은 틀들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각 문화권마다 초자연적인 차원이든 또는 자연적인 차원이든 그 문화의 틀이 되는 기본적인 신념과 이념과 가치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세계관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하였다(Kraft 1996: 53). 한 세계관과 문화와는 이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한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문화가 소유한 세계관을 이해할 수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한 문화권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화를 이해했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에 와서 세계관 개념은 선교사가 선교할 때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따라서 선교사는 현지 문화와 함께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한국선교사와 세계관 변화를 위한 사역
선교사가 현지에 나가서 선교대상자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그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선교사 본연의 임무를 다 수행하였다고 볼 수 없다. 선교사는 궁극적으로 선교대상자들로 하여금 성서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변화를 위한 중재자(change agent)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사가 현지인들에게 성서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하려면 현지인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과 아울러 다음과 같은 이해가 뒤따라야 한다.
자신의 세계관의 이해
자신의 세계관이 과연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세계관은 유교적인 가치관과 불교적인 영향과 샤머니즘적인 면들이 오랜 기간동안 조화를 이룬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신적인 개념을 생각할 때 ‘하늘님’의 존재는 믿지만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일 수 있다. 또 윗사람은 존중하지만 아랫사람은 부려도 괜찮다는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질에 대해서는 지극히 세속적인 가치관이 깊숙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유교적인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치관에 의하면 이 땅과 세상은 무척 중요하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의 전통문화의 급격한 와해와 서구 문화의 홍수로 우리의 세계관 자체가 모호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 문화는 지금 어쩌면 크래프트가 말하는 것과 같이, “새로운 문화의 틀을 형성하는 마지막 과정”(Kraft 1996: 437)에 와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최근에 와서 우리의 세계관과 문화에 대한 정체성이 매우 많이 퇴색되었고, 따라서 세계관에 관한 일관성이 부족한 상태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독특한 세계관은 아직도 남아있다. 바로 이런 한국 고유의 세계관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이것을 이해할 때 우리가 현지인들을 우리의 세계관에 동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객관적인 입장에서 우리 자신과 현지인들의 세계관을 파악함으로써 선교의 목표가 되는 성서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성서적인 세계관 이해
성서적인 세계관을 모른다면 앞에서 말한 서교사의 세계관이 기준이 되어서 결국 선교사는 현지인이 자신의 세계관을 갖도록 변화를 유도하게 될 것이다. 다행히 선교사가 성서적인 세계관을 알고 있다면 덜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다시 한 번 선교가 18세기, 19세기로 후퇴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헤셀그레이브 박사는 성서적인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서가 제시하고 있는 큰 그림을 볼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성경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로 전개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성서적 세계관을 갖기 위해서 성서적 가치관과 태도와 행동이 뒤따라야 함을 인식해야만 한다. 선교사들은 먼저 자신이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성서적인 세계관을 스스로가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Heselgrave 1994: 104~119, Hesselgrave 1991: 203~209, 이태웅 1997: 30~38). ]
신앙성숙 과정에 대한 이해
신앙이란 세계관이 차츰 성서적으로 되어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선교사가 기본적으로 신앙성숙 과정에 대한 개념이 잡혀 있지 않았을 때 현지인이 성서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돋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신앙이 성숙하기 위해서 어떤 역사들이 일어나야 되는지 경건에 관한 원칙들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 가운데 현지인들은 성령의 도우심에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 교회, 사회, 물질, 악한 영들에 대해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대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새로운 성서적인 가치관들이 형성될 것이다. 문화인류학에 있어서는 이런 면들을 자주 논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런 면들을 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결국 세계관의 변화는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고서는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상황화에 대한 올바른 개념 이해
상황화는 이미 1970년대부터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해서 복음주의 선교계에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상황화는 상대방의 세계관을 모르고서는 불가능하다고도 할 수 있다. 가령 모슬렘권에 상황화를 하기 위하여서는 모슬렘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접촉점을 이해하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갖고 믿고 있는 신, 죄, 인간, 심판 등의 세계관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들에게 성서로부터 나온 적합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이런 상황화된 의사전달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모슬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진정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새로운 성서적 세계관을 갖는 시발점이 된다. 반대로 상황화를 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성서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세계관의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세계관 변화를 위해서 상황화에 대한 개념정리가 충분히 되어 있어야 현지인이 성서적 세계관을 갖게 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이해
교육의 중요성은 한 어린 아이가 한 문화권에 태어났을 때 어떻게 그가 그 문화권의 세계관을 갖게 되는가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문화권에 태어난 이 아이는 그 문화권 내에서 비형식적 또는 비공식적, 그리고 공식적인 교육을 통해서 서서히 그 세계관이 형성되어 간다. 따라서 그가 한 문화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활동할 나이쯤 되었을 때는 이미 긴 시간의 교육을 통과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그의 세계관이 성서적인 세계관으로 바뀌어 지기 위해서는 또 한 차례의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재교육을 위해서는 먼저 이전에 받은 교육을 무효화시키는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교정학습(unlearning)’이라고 말한다. 그 후에 새로운 성서적 가치관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 교육이라고 부르던지 제자훈련이라고 부르던지 상관없다. 교육은 이렇게 세계관을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선교사가 현지에 가서 사역할 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재교육하지 않고서는 올바로 세계관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변화의 심리에 대한 이해
최근에는 변화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크래프트는 그의 저서「Anthropology for Christian Witness(기독교 증인을 위한 문화인류학)」란 책에서 ‘세계관 변화의 원동력(dynamics of worldview change)(Kraft 1996: 433)’ 에 대하여 언급했다. 그는 여기서 세계관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가에 대하여 잘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변화의 원동력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성서적인 가치관으로 판단하여 선교현지에서 활용함으로써 현지인이 긍정적이고 성서적인 세계관을 형성해 나아가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즉 성서적인 세계관을 갖는 사람을 배출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2000년대를 눈앞에 두고 선교적인 관점에서 많은 희망적인 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각 선교지에서 성숙해가고 있는 선교사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선교에 더 적극적인 한국 교회, 많이 양육되고 있는 선교후보생들, 특히 신학교에서 자라고 있는 신학생들, 선교운동들, 또 경제적 정치적 외적 여건들 등 여러 면에서 한국 교회는 앞으로도 선교적으로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선교차원에서 선교를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그렇게 하는 것을 한국 교회가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고, 또한 세계 선교세력들이 단순히 따가운 눈총으로 보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책임을 추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지의 교회들도 이제는 의식들이 높아져서 일방적으로 우리가 한국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식의 선교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한 곳에서의 실수는 그곳에 국한되지 않고, 매스컴을 타고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알려질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 교회는 세계관 개념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현지인들의 세계관이 성서적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선교를 해야만 될 것이다. 외부인으로서 세계관 변화를 주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가운데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때가 왔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이제 새롭게 다시 한 번 세계관 개념을 올바로 정립하고, 선교 선진국 선교사들과 어깨를 겨누고 21세기에도 적극적으로 선교 대행렬에 참여할 수 있어야만 되겠다.
이태웅 목사/ (사)한국해외선교회 이사장 및 한국선교훈련원장(GMTC) 원장
※ 이 글은 저자의 허락 하에 한국선교연구원(KRIM)이 발간한「현대선교」12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