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은 내게 까만 눈을 주었다. 그리하여 난 그 눈으로 광명을 찾기로 했다.”
20여 년 전 중국의 어느 젊은 시인이 문화대혁명 시기를 비유하여 쓴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이다. 안타깝게도 이 시인은 자신이 찾고자 했던 광명을 찾지 못했으며, 결국 타국의 어느 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 중국은 어떠한가? 시대의 변천과 사회의 변화를 거쳐서 한 시대 한 시대의 지식인들은 흥분상태에서 혼란함과 냉소, 무기력, 저속함, 급기야는 진실의 소멸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지나친 얄팍함과 초조함 뿐이다. 그럴듯한 캠퍼스의 겉모습 뒤로 지식의 숭고함은 사라졌으며, 젊은이들은 명예와 권세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지식을 택할 따름이다.
내 생각엔 이러한 배경을 가진 중국의 젊은 지식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곧바로 ‘복음의 핵심’을 갖고 접근한다면 별로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기독교 복음과 같은 무게 있는 주제를 접하게 될 때, 이미 오랫동안 심각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젊은이들은 두려움과 짜증을 느낀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이 사람이 무슨 저의로 내게 복음을 전할까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필자도 전에 어느 대학 캠퍼스에 가서 전혀 알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한 적이 있다. 복음을 제시하자 두 학생은 자신의 사고능력이 낮아서 복음을 감히 받을 수 없다면서 도망갔고, 또 다른 한 학생은 두려운 표정으로 “당신 도대체 무엇 하려는 겁니까?”라고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 대학원생은 “당신이 전하려는 복음은 무식한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우리 같은 지식인에게는 필요없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성경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중국 지식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는 기회를 기다리고 상황을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시간과 힘을 낭비하지 않고, 우리의 최종 목적인 복음의 진리를 그들이 더욱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헤엄치는 물고기”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는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복음의 대상자인 그들에게 우정으로 다가가야 한다. 어떤 이익을 바라거나 물질 공세를 통해서가 아닌, 진실한 친구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하는 자가 인격적으로 본이 되어야 한다. 현재 위치에서 겸손하고 진실하며 선하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 우리의 본래 신분인 전도자라는 직분은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우리의 진실을 통해 닫혀진 그들의 마음이 열려 감동과 이끌림을 받게 되어 복음이 거리낌없이 그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복음의 대상자들에게 기독교 문화를 전하는 것이다. 이전에 유행했던 가요 중에 <하루 종일 헤엄치는 물고기(一天倒晩遊泳的魚)>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 가사는 마치 이 시대 지식인들의 삶을 표현하는 것 같다. 물고기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헤엄쳐 다니지만 언제까지 헤엄을 쳐야하는지, 왜 헤어을 치는지 그 의미도 모른 채 그저 헤엄을 칠 뿐이다. 지친 지느러미를 내려놓고 쉴 곳조차 찾지 못한다. 잠시 수면으로 올라가 공기를 조금 마실 여유조차도 없다. 우리는 이 물고기들에게 참 안식과 평안과 기쁨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어야 할 것이다. 현대인들은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크리스천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 스트레스와 불안은 결코 산 속에 숨어 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적인 문화가 아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들은 찬송을 듣거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심신의 기쁨을 얻는다. 우리는 믿지 않는 지식인들에게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다. 경쟁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참 평안과 기쁨을 그들에게 보여야 한다.
그러나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그들에게 문화적인 우월감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중국인들은 이질적인 문화를 접하게 될 때 문화적 열등감을 가질 수도 있다. 외국인 사역자들은 중국 문화와 사회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거나 비판해서 중국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그 방면에 비교적 예민한 편이다. 필자의 경우 처음 복음을 접하면서 어떤 서양 선교사를 만났는데, 그는 중국 문화와 정신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을 하곤 하였다. 나는 이에 대해 무척 화가 나서 그의 말에 반박을 가했었다. 그래서 분위기가 매우 어색했고, 나는 그 일로 인해 며칠 동안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 기본 조건이 무르익을 때 마땅히 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기꺼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태도와 인생에 대한 확신, 세계관의 각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고 복음을 해석해야 할 것이다. 중국 지식인들의 마음은 마치 먼지에 쌓인 피아노와 같다. 피아노는 쓸 만하지만 그동안 피아노를 칠 연주자가 없었다. 우리가 구원의 진리를 전해줄 때 그 피아노는 비로소 다른 이들까지도 매료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빛을 그들에게
지식인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 동안에 쌓인 지식과 문화적인 영향으로 인해 마음이 강팍하고 고집스럽다. 그러나 그들이 드넓은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자신의 양심을 보게 될 때 곤혹스러움과 불안도 함께 따라올 것이다. 중국의 수천 년의 문명은 도대체 무엇을 남겼는가? 우리의 미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많은 지각이 있는 지식인들은 반드시 고민할 것이다. 그들의 심령 깊은 곳에서는 역시 광명을 갈구하고 있기에, 비록 그 영혼은 차갑지만 복음은 반드시 그들에게 임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큰 빛이 그들을 비출 것이다. 우리 모두 이를 위해 기도하자. 그리고 성령의 능력과 도움을 구하며 다 함께 노력하자.
* 필자는 상하이(上海) 출신으로 5년 전 대학생활을 하던 중 예수님을 믿고, 현재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모이는 가정교회 지도자이다.
恩友/ 중국인 사역자
번역/ 차이나.중국어문선교회 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