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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6.20  통권 70호  필자 : 티엔커(天客)  |  조회 : 3029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지식인과 중국복음화
지식인은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

  ○지식인 선교의 중요성

 

사회발전의 주도적 세력
사람들은 21세기를 일컬어 정보화 시대라고 한다. 정보화 시대는 전문 지식인의 시대이기도 하다. 정보화 시대에 들어선 중국에서도 지식인의 중요성과 역할이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은 사회발전에 주도적인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당(黨)과 정치에 참여하는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한 사람의 당성(黨性)에 따라 그 사람의 사회적 직위(職位)가 결정되었지만, 지금은 당성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있다. 이것은 날이 갈수록 더해질 것이다. 따라서 지식인에 대한 선교사역은 매우 중요하다. 지식인에 대한 선교는 곧 중국을 이끌어갈 주도세력에 대한 선교이며, 이는 중국의 복음화를 가속화하는 중요한 사역이다. 

교회 지도자의 공급원 
지식인에 대한 선교의 중요성은 중국 교회의 상황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중국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교회를 이끌고 성도들을 목양할 지도자가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믿는 자들은 날마다 늘어가고 있지만, 이들을 양육할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중국 교회는 성도 수와 지도자 수에 있어 심한 불균형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정상적인 목양 사역이 이루어지며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다. 지도자 부족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 주의 하나가 바로 젊은 지식인들을 복음화하는 것이다. 지식인 선교에 박차를 가할 때 중국 교회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를 공급할 수 있다. 

중국 복음화의 지름길 
중국 기독교 신도 분포를 보면 도시에 비해 농촌 신도의 수가 훨씬 많다. 이것은 신도들의 지적인 수준이 평균치보다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가정교회들이 ‘농촌으로부터 도시를 포위한다(農村包圍城市)’는 기치 아래 도시선교를 시도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 원인은 지적인 수준의 차이 때문이다. 농민들이 지식인 사회까지 파고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바 도시선교는 도시인들로 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지식인들의 복음화를 통한 도시선교, 도시에서 농촌선교로 방향을 정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 선교는 중국 복음화의 지름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식인들의 삶의 특성 
지식인 선교의 중요성을 깨달은 많은 해외 선교사들이 도시 내 캠퍼스를 중심으로 열심을 다해 선교사역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지식인 선교는 열심만 있다고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젊은 지식인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식인 사회의 특성과 상황, 기독교에 대한 인식 등을 바로 이해할 때 그들에 대한 선교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환영받는 존재 
중국의 전례 없는 경제적인 발전은 지식인들에게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일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젊은 지식인들이 성공의 기회가 많은 대도시를 찾기 어려운 반면, 지방 도시는 전문 지식인이 부족하여 골치를 앓고 있다. 어떤 지방 도시는 높은 월급과 주택까지 내걸고 전문 지식인을 유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정부에서도 해외에 나가 유학하고 있는 고급 인력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최상의 대우와 이중국적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 지식인의 위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과거처럼 많은 지식의 소유가 더 이상 ‘반동(反動)’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지식인은 이제 어디를 가나 환영받는 존재가 되었다. 

삶의 불안 
과거에는 좋든 나쁘든 한 직장에서 충성을 다해야 했지만, 지금은 성공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여 더 나은 미지의 길을 재척해야 한다. 과거에는 물질적으로 부족했지만 그래도 안정된 삶을 살았는데, 지금은 더 큰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모험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과거에 가난했을 때 누렸던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지식인들의 삶에는 성공의 기회, 가능성과 함께 삶의 불안 요소들이 많아졌다. 

경쟁시대의 이기주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경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식인들은 보다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만 한다. 필자가 아는 어떤 이는 공부를 잘해 대학을 졸업하면 교수 추천을 받아 시험을 보지 않고도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당시는 대학원 등로금을 내지 않아도 장학금이 나와서 생활까지 가능했음),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전문 지식인에 대한 대우가 좋아지면서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으며,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이뿐 아니라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서도 경쟁을 해야 하고, 그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경쟁을 해야 한다. 기회가 많아졌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중국 지식인들의 삶의 현주소이다. 이러한 경쟁은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치열한 싸움이다. 경쟁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은 쉽게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으로 변한다. 중국의 지식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의 삶 속에서 동지애나 더불어 사는 공동체 지향적인 모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그 대신 서로 간에 불신과 싸늘한 가슴만 더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지식인들은 정서적으로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불평등한 현실 앞에서의 좌절감 
중국이 무한 경쟁의 사회에 들어섰지만 평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문화 자체가 ‘관계(關係)’ 문화이다 보니, 인맥이 있는 자는 능력이 없어도 노력을 하지 않아도 쉽게 성공하여 경제적인 부를 누릴 수 있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지식인들은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지식인들은 불평등한 현실 앞에서 자신들의 한계와 좌절감을 많이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종종 현실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표출된다. 

돈으로 채울 수 없는 공허함 
자금 대부분 중국인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그들은 재산의 축적이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리라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나고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는 것 같다.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지식인들의 삶은 ‘만만디(慢慢地)’가 아니라 매우 바쁘고 급하다. 그러면서도 삶의 허전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식인들은 그들의 공허한 마음을 돈으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지식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 

무관심-현실과 무관한 종교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기독교에 대해 관심이 없다. 지식인들이라고 해서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인생이니, 이상이니, 신앙이니, 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대다수 지식인들의 관심은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이고 현재고 돈이다. 

오늘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기를 원치 않는다. 많은 지식인들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자신들은 신앙을 가질 현실적인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혀 관심이 없다. 기독교에 대한 무관심이 중국 지식인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일 것이다. 

미신 - 잘못된 세계관 
중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진화론과 무신론, 유물론적 역사관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허무맹랑한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점차 중국에도 신앙인이 많아지면서 대놓고 신앙을 미신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많은 중국인들은 미신과 신앙을 구분하지 못한다. 단지 미신에 대한 좀더 고상한 표현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을 객관적 사실에 대한 믿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안위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진화론적인 세계관과 유물론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신앙이 자신의 삶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 때 언제든지 신앙을 부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은 참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지식인들 역시 진화론과 유물사관에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에 진화론을 당연히 과학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믿는다. 다른 이론(창조론과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진화론의 진위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해 볼 기회마저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예수 믿고 창세기를 공부할 때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비교하면서 진화론이 얼마나 허구인지, 그리고 창조론이 진화론보다 훨씬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20여 년이나 속아서 살았다는 것이 한스러웠고, 다른 한편으로 늦게나마 진리를 발견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역사를 주관하고 있다는 세계관을 가질 때 그 신앙이 바르게 세워질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사실과 무관한 하나의 신앙일 뿐, 객관적 사실에 대한 믿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편 - 역사에 대한 오해 
근대에 들어와서 중국에서의 기독교 선교는 아편전쟁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기독교가 아편과 함께 중국에 들어왔기에 중국 역사 교과서는 기독교를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선교사들은 제국주의 침략자의 앞잡이 노릇을 했고, 기독교는 중국인들의 정신을 무력하게 만든 또 다른 종류의 아편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 지식인들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편파적이고 일방적인 역사교육을 받아왔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과거 선교사들의 한계와 그들이 범한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선교사들이 중국 사회에 미쳤던 긍정적인 영향들과 공헌들도 함께 알려줌으로 지식인들로 하여금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식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지적인 욕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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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들은 대부분 강한 지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것을 배우게 되면 그것에 대해 확실하게 알기를 원한다. 따라서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할 때 지식인들의 이러한 특성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필자는 한국인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들었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필자가 접한 성경공부는 제자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끝이 없는 주제별 공부였다. 성경본문을 깊이 공부하고 싶었고 신학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지만, 나의 이러한 욕구는 항상 너무 지적으로 치우친다는 비난으로 묵살되곤 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많은 선교사들이 성경본문과 신학을 가르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선교현장으로 떠난다. 그러기에 현지 지식인들의 지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교사 밑에서 1,2년 배우고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한다. 

지식인 선교를 하기 원한다면 1,2년 늦어지더라도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신학적인 정리를 한 다음 선교지에 들어갈 것을 권하고 싶다. 그렇게 못한다면 선교지에 가서라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어야 한다 
위에서 우리는 진화론 교육으로 인한 세계관에 대한 오해, 편향된 역사교육으로 인한 선교 역사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았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에게는 창조론에 관한 도서, 그리고 지금까지 중국에서 쓰여진 것과 다른 시각에서 쓰여진 중국 근대사 서적을 읽게 한 후 이 두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경적 세계관이 바로 세워질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 근대 선교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할 때 선교사와 복음에 대해 마음을 더 많이 열게 될 것이다.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지식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기독교가 단순히 피안(彼岸)의 세계에 대해서만 말하는 종교가 아니라,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들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위에서 말한 지식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 방법은 우선 성도들 간에 깊이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서로를 향해 마음 문을 열며,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공동체 속에서 지식인들은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평안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내적인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대학생들인 경우 삶이 비교적 단순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들은 직장생활, 결혼, 자녀양육 등 복잡한 문제들에 부딪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직장 문화는 교회에서 누려온 기독교적인 문화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이는 대학 졸업 후 직장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한다. 자매들인 경우는 특히 결혼하면서 신앙생활이 많이 흔들린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하나밖에 없는 자녀를 시설이 좋은 유치원에 ‘취엔투오(全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를 유치원에 맡겨 숙식하게 하고, 주말에만 집에 데려옴)’ 하면서 양육한다. 지식인들조차 자녀는 돈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수고로운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크리스천의 올바른 직장생활, 부부관계, 자녀양육 등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들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필자의 경우 선교사로부터 영적 성장과 영적 재생산이라는 목표 하에 양육을 받았다. 그런데 내가 배운 복음은 이 사회, 그리고 중국의 미래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저 내가 잘 믿고 또 나 같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단지 개인 구원에만 초점을 맞춘 내용으로 지식인들을 양육할 경우, 좋은 교인은 만들 수 있어도 영향력 있는 사외인은 만들지 못한다. 과거 중국에서 신문화 운동이 일어나먼서 지식인들이 중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해 사상적인 논쟁을 한창 벌이고 있을 때, 기독 지식인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럴만한 사람이 키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독 지식인들은 개인 구원에 만족하지 말고 중국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민족과 사회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교인은 반드시 영향력 있는 사회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개인적인 이상만이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실 것인가를 바라보는 것이 비전이다. 하나님께서 중국을 어떻게 경영해 나갈 것인가를 바라보고, 거기에 기독 지식인들의 삶의 방향을 맞추어 가도록 해야 한다.

天客/ 중국인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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