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닝성의 약칭은 '遼'로, 지린(吉林)성, 헤이룽쟝(黑龍江)성과 더불어 동북삼성 이라고 불리운다. 랴오닝성은 동북쪽으로는 압록강과 북한을 접하고 있으며, 아시아 대륙 전체를 등지고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전략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한 자워니 풍부하고 무역도 발달해서 동북 지역과 네이멍구(內蒙古) 지역이 세계로 향하는 창문이라고 할 수 있다. 랴오닝성은 중공업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야금공업, 기계공업, 화학과 재료 공업 외에도 광산업이 발달해서 철, 다이아몬드, 시멘트 등이 생산된다. 랴오닝성의 인구는 약 4,120만 명이며 그중 소수민족의 인구 비율은 16%(약 655만 명) 정도이다. 랴오닝성의 소수민족 비율은 전국 5위로 광시좡족(廣西壯族)자치구, 구이저우(貴州)성, 윈난(雲南)성, 신장(新彊)위구르족자치구 다음이다. 이 지역에 1만 명 이상의 소수민족은 만주(滿州)족, 멍구(蒙古)족, 후이(回)족, 조선(朝鮮)족, 시보(锡伯) 족 등 다섯 개 민족이다. 랴오닝성 중남부의 치엔산(千山)은 오랜 도교화 불교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20개가 넘는 사당과 탑이 있어 매년 전국 각지에서 제사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교회 역사
1867년 윌리엄 번스(Willian C.Burns) 선교사가 랴오닝성에 들어와 최초로 복음 전도를 시작하였다. 1920년 백여 명의 선교사들이 각가 다른 7개의 교회와 교파에서 파견되어 26개의 선교거점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이 때 기독교인의 수는 약 1만 6천여 명이었다. 1931년에 보터리(伯特利) 포교단이 동북삼성을 순회하며 부흥집회를 열었고, 중국의 유명한 전도자 쑹샹제(宋尙節) 역시 이 집회들을 통해 구원의 소식을 듣게 된 사람 중의 하나이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 직전(1965년)까지 성 안의 기독교인들은 6만여 명으로 추산되었다.
교회 근황
1993년, 랴오닝성의 신자들은 14만 명 정도로 추산 되는데 그중의 1/5이 조선족이다. 1998년 신자들의 수는 이미 4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이 숫자는 문화대혁명 이전의 7배에 상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성장에도 불구하고 성 안의 기독교인 비율은 백분의 일 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다. 조선족들을 타겟으로 하는 사역이 비교적 많은 편으로, 한국 교회와 선교사들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만주족들은 대부분 높은 산간지대와 농촌에 살고 있는데, 최근에는 교회가 만주족들을 향한 복음사역에도 힘쓰고 있다. 최근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청년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다. 농촌 교회의 신자들 역시 복음이 들어가기 어려운 네이멍구 지역에까지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단드리 교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말씀을 전하기도 한다.
랴오닝성의 성동인 선양(沈陽)에는 공식 신학교인 동북신학원이 있는데, 학생 중에는 조선족들도 있고 한족들도 있다.
기도제목
*현재 랴오닝성의 신자들은 전체 성의 백분의 일에 불과하다. 복음이 아직까지 전해지지 못한 영혼들, 특히 소수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사람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하자.
* 불교와 도교를 믿고 있는 영혼들이 우상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자.
*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이단의 미혹은 제압해 주시도록 기도하자.
* 동북신학원을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학교의 규모를 확장시켜 주시고, 더 많은 학생들이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그래서 진리로 무장한 이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도록 기도하자.
* 중공업이 발달한 랴오닝성에 많은 공장들이 세워지고 있고, 외부 지역의 많은 노동력들이 일자리를 위해 이 지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노동자들의 실업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자.
출처 | 中國代禱的頁, 2002년 7월호, 9월호
번역 | 김미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