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영성학자이자 실천가인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는 그리스도인이 온전하고 경건한 삶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세 가지 과제를 제시한 적이 있었다.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돈, 섹스, 권력’은 인간의 욕망의 대상으로서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해온 가장 힘 있는 실체이기도 하다. 돈과 섹스 그리고 권력이 힘이 있다는 의미는 그것들이 인간이 얻고자 하는 강한 욕망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고 때에 따라서는 인간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리차드 포스터는 퀘이커교 출신의 영성수련가 답지 않게 속물적 근성을 대표하는 이 세 가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적인 조망아래서 돈과 섹스 그리고 권력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세상을 지혜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적절한 도구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이 세 가지 과제에 대해서 올바르게 대응하는 삶의 모습이야말로 최고의 영성에 이르는 길이라 밝히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바 있다.

“돈과 성과 권력에 관계를 맺고 살면서도 올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삶을 성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이것들을 오용하고 남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스러운 것들을 더럽히는 일이다”

그의 말은 세속화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필자의 판단은 오랜 인생살이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식이라기보다는 수많은 다양한 인생을 묘사하고 있는 영화로부터 배운 것에 기인한다. 

우리가 예술을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인생에 대한 참된 서술 내지 묘사여부에 달려있다. 훌륭한 작품일수록 인생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요소를 다루고 있으며, 그것은 단지 추상적이며 심오한 것이라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돈과 섹스 그리고 권력을 다루는 영화예술은 대중을 상대로 한 현실적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인생에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경우가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세계 최고의 영화 반열에 들 수 있었던 이유가 실감나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화려한 전쟁장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절대반지는 남을 지배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 반지 앞에서 사람이나 요정 가릴 것 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음을 보았다. 권력은 악마가 인간의 욕망에 부응해서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전략으로 쓰여 질 수 있음을 영화는 말해준 것이다. 우리는 주인공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모르도르 화산 앞에 서지만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잊지 못한다. 이것이 권력이며 권력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한 모습인 것이다.

그렇다면 돈과 섹스 그리고 권력 가운데 가장 세속적 힘을 발휘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세 가지는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을 목적으로 혹은 무엇을 도구로 삼는가에 따라서 느끼는 힘의 무게는 달라질 수 있다. 즉 돈이나 권력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섹스(사랑)를 수단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돈이나 권력을 활용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나 문학 같은 예술 속에서 섹스(사랑)는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과 상대방을 향한 성적 욕망을 동일시 할 수는 없지만, 영화는 성적 욕망과 사랑을 구분 짓지 않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마지막에 추구하는 대상으로 올려놓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랑과 권력의 묘한 함수관계         
펑 샤오강 감독의 중국판 햄릿인 야연(夜宴)은 탐욕스런 권력이 빚어내는 죽음에의 결말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권력보다 더 강한 사랑의 존재를 부각시킴으로서 관객들을 꿈의 세계로 몰아간다. 

영화 <야연>은 중국 당나라 말기 혼돈의 시대를 배경으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황제의 뒤를 이어 동생인 리(유게)가 새 황제로 등극한 이후 새로운 권력체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살육과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새 황제 리는 선재의 미망인 완(장쯔이)을 황후로 맞아들이고 죽은 황제의 아들 우(다니엘 우)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낸다.

그러나 사정은 여의치 않고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는 점이 <야연>이 화려한 무술과 더불어 관객에게 흥미를 제공하는 부분이다. 즉 숙부와 조카 관계인 리와 우는 형수이며 어머니 관계였던 완을 사랑하고 있었고, 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황후 완은 그를 살리기 위해 황제 리와의 결혼을 추진한다는 설정이다.

이 복잡한 관계는 권력과 사랑의 묘한 함수를 내포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사랑을 얻지 못하며, 사랑을 얻은 자는 권력으로부터 뜻밖에도 소외된 모습이다. 새 황제 리는 형을 암살해서 황제의 권력을 획득했지만 끝내 완의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한다. 우는 일찍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완을 빼앗긴 바람에 상처입고 궁을 떠나 낙망(落望)한 생활을 하고 있고, 선황제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를 자격이 있지만 이 역시 숙부의 야망에 눌려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를 사랑하는 정혼녀가 있는가 하면 무엇보다도 완의 사랑을 받고 있다. 권력을 잃은 자가 누리는 사랑의 비극 역시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말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영화란 원래 꿈꾸기 기능을 제공하는 환상적 오락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역시 어느 정도 현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때 설득력 있는 꿈을 제공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황제의 가족 안에서 벌어진 권력의 암투와 사랑의 욕망을 보여주는 <야연>을 통해 관객이 원했던 꿈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풍요로운 물질의 사회로 진출하면서 느낀 사랑에 대한 갈증이 극한의 사랑을 맛보고 싶은 심리로 나타난 것은 아닐는지.

전도서를 통해 본 <야연>
우리는 주인공 모두가 사랑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처음에는 권력 때문에 죽기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사랑 때문에 죽고 있음을 기억해야할 필요가 있다. 형을 죽이고 권좌에 오르고 그 권좌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조카를 살해하려고 자객을 보낼 만큼 잔인한 새 황제 리 역시 사랑하는 완이 건넨 복수의 독주를 선선히 받아 마시는 이유 또한 사랑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과 사건은 흔히 신파적이며 통속적인 것으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물이나 현대물 가릴 것 없이 이러한 신파조의 사랑이 여전히 대중문화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여전히 사랑에 성공하지 못하며, 사랑하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사랑의 상처 없이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고 죽음에 이르는 일에 공감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말은 허무주의로 물든 인생관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사랑과 권력을 쫓아 산 인생이 헛된 것임을 성경은 이미 간파하고 있다. 전도서는 인생의 지혜서이며 그 같은 얘기로 가득 차 있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2:11).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이야기야 말로 얼마나 헛된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전도서가 인생에 대한 지혜로운 성찰과 더불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지 아울러 제시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일 경우 헛되기만 한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전9:1).

우리는 예수의 사랑과 죽음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다. <야연>의 죽음에 이르는 사랑과 예수의 우리에 대한 죽기까지 사랑한 역사(롬5:8)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첫째는 사랑과 죽음의 목적과 방향에서부터 다르다. <야연>의 사랑은 이성 간의 사랑에서 흔히 나타나듯 자기중심적이다.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도사리고 있는 심리는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에 상처를 받는 일 역시 자기만족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결과 아닌가! 사실 이 부분에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랑 때문에 죽는다는 사람 역시 그것에 의한 최후의 만족을 기대하는 심리가 깔려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랑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우신 분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방향은 철저히 자신의 밖을 향해 있으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둘째는 창조적 변화의 유무이다. <야연>의 사랑과 죽음이 일으킨 변화가 있는가?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은 사랑과 죽음에 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그를 깊이 사랑해야 한다. 죽기까지 사랑하는 일은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수많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창조적 능력이다. 자폭하듯이 사랑을 불태우는 일이 감동적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창조적 변화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면 비극적 사랑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전도서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왜 예수님이 필요하며, 우리의 사랑과 죽음이 헛된 비극으로 종결되지 않도록 인생을 준비시키고 성찰케 만드는 지혜의 보고임에 틀림없다.

<야연>은 전도서를 펼쳐놓고 보아야 하는 영화다. 그래서 그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성경적 조망을 원한다면 말이다.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전9:6).      

강진구 | 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 한동대학교 겸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