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함으로 믿음으로
단기선교에 임하는 나의 마음은 설렘과 기대 그 자체였다. 교회 안에서도 8주에 걸친 중국어 강의와 기도, 풍선아트 등으로 준비하였고 그 가운데 중국을 향한 소망과 나에게 부어주실 은혜에 대한 간구가 더 절실해졌다.
단기선교를 떠나기 전 집회를 참여하면서 영적으로 많이 깨어지고 새롭게 채워지는 시간들을 경험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 없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믿지 않기 때문에 체험 하지 못했을 뿐,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필요한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역사하고 계셨다. 그렇다!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 라는 말씀은 성경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가운데도 유효한 것이다.
주님의 예비하심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소수민족은 티베트족(藏族)이었다. 듣도 보지도 못했던 이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 앞서 기대감이 생기고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 분명했다.
영적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차를 타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로공사 때문에 차가 통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각자 기도한 후에 생각을 나누면서 처음에 ‘거기까지 어떻게 걸어갈까?’ 라는 생각이 ‘지체 말고 걷자’ 는 의견으로 생각이 모아졌다. 그때부터 우리는 자칭 ‘고난의 조’ 가 되었다.
걷고 또 걸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에서 적절한 때에 주님은 우리를 위해 차를 예비하시고, 예비한 한 영혼 A를 만나게 하셨다. 순간순간 역사하시고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다
A는 우리가 마을을 찾아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우리는 그의 부인이 중풍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가정에 복음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A의 차를 타고 마을로 가는 도중에도 공사를 하는 곳이 많아 차가 멈추기 일쑤였다. 그러나 땡볕에서 3시간을 걷고 나니 길가에 서서 1시간쯤 기다리는 일쯤은 더 이상 힘든 일이 아니었다. 조원 모두가 타기에는 좀 작았고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차였지만 불평하기 보다는 서로를 격려 하면서 인내하는 시간이었다.
아침에 출발해 저녁 먹을 즈음에 도착한 우리는 그만큼 힘들고 고생스러운 시간이 있었기에 그들이 더 반갑고 사랑스러웠다. 우리를 통해 그곳을 어떻게 변화시키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마을을 두루 다니며 사람들을 모았다. 이때 내가 배워간 풍선아트가 빛을 발했다. 고도가 높은 지역이라 가끔은 터지기도 했지만 불기만 해도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서 풍선을 부는 일을, 만드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정말 그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풍선을 불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을 만들어서 전해줄 때마다 그 아이들을 축복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실력도 없었고 아주 작은 선물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사용하니 귀한 선교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풍선아트를 할 때의 손 떨림이 잊혀지지 않는다.
실내에서는 아픈 사람들에게 기도하고 안마하며 약을 나누어 주는 사역이 이루어졌고 밖에서는 아이들과 장기자랑이 벌어졌다. 서로에게 환호하며 춤과 노래를 기꺼이 함께 했다. 우리는 금새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밤이 되도록 우리는 각자 맡겨진 자리에서 주님의 일을 감당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친히 준비한 민속춤을 보여주며 우리를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내겐 정말 색다른 경험이며 가슴 벅차는 일이었다. 이들에게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열매 맺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행복하게 저물어 가는 이 밤! 하루라는 시간이 이렇게 아쉽고 짧은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주님의 놀라운 은혜
다음날 우리는 마을을 내려와 A의 아내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중풍으로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그녀를 보는 순간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났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은 후 그녀의 친척집으로 향했다.
그녀를 위해 두 시간에 걸친 안마와 기도가 시작되었고 그와 동일하게 영적인 싸움도 시작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었다. 우리 조 누구라도 그랬다. 인간의 기술에 의지할 수도, 의학에 의지할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우리가 의지하고 부를 단 하나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뿐 이었다. 눈물로 고쳐 달라고 기도하는 가운데 안마를 받으시며 누워 계시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밝게 웃었다. 그 뒤로부터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픈 곳을 고쳐 주세요.’ 라는 기도가 어느새 ‘저 가엾은 영혼을 구원해 주세요.’ 라는 기도로 바뀌어 있었다.
그날 밤,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고 영접했다. 마을에서 종교 물품을 조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그녀의 가정에서 일어난 이 일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예수! 내 삶의 주인
살면서 한 번도 예수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 누군가가 복음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으면 죽을 때 까지 예수가 누군지도 모른채 살아갔을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돌아왔지만 실은 그들을 위하여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그들을 만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를 얼마나 가까이 두고 싶어 하시는지, 나와 얼마나 이야기 하고 싶어 하시는지 알게 되었다.
짧으면 한 달, 길게는 두 달이 지나면 이 여정은 아련하고 그리운 추억이 되어 조금씩 잊혀져 갈 것이다. 그러나 내 삶의 중심에 주님이 계신다는 것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단기선교는 끝이 났지만 내 삶 속에서의 선교적인 삶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누군가 단기선교를 궁금해 하고 어땠느냐고 물어 본다면 위의 적었던 모든 말들을 뒤로 하고라도 한마디만 목청 높여 이야기 하고 싶다.
“와 보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박고은| 부천삼락교회 청년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