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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31  통권 98호  필자 : 오중국  |  조회 : 1824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복음으로 행복한…

모 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섬기던 어느 날, 한 선교사님을 모시고 집회를 가졌다. 선교사님 은 열정적으로 말씀을 선포하신 후 “선교사로 헌신할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라고 하셨다. 순간 예배당엔 정적이 흘렀다. 선교사님은 다시 한 번 외치셨지만 중·고등부 학생 다섯 명만 앞으로 나갈 뿐 청장년 성도들은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교육전도사인 나는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씩씩하게 앞으로 뛰어나갔다. 이 후에 어떤 일이 펼쳐질 지도 모른 채 말이다. 

중국사랑
그로부터 2년이 채 가기도 전에 우연찮게 중국에 가게 되었고 중국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당시 성도들의 열정과 순수함은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다. 그들의 눈빛은 힘이 있었고 진리에 대한 목마름과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말씀에 대한 무지로 인해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나는 하나님께서 왜 이들을 보게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주님은 내게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날 대하셨던 것처럼…. 
나는 이미 예정되었던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선교사님의 초청에 용감히 뛰어 나갔던 교육 전도사 시절이 생각나면서 모든 일을 여호와 이레로 채워 가시는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그러나 선교지에 도착한 첫 날 아내와의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는데 서로 긴장하고 예민해 있던 터라 서로에게 큰 아픔을 주게 되었다. 나름대로 선교사 훈련도 받았고 이 정도면 괜찮지 하는 마음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정말 스스로 생각해봐도 ‘나 정말 선교사 맞아?’ 라고 할 정도로 내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한 달 뒤 중국 전역에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인 전염병(SARS)이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서도 병에 걸린 사람들이 병원으로 실려 나갔고 동네는 격리되었다. 3개월 동안 꼼짝없이 집안에서 갇혀 지냈다.  주위의 유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한국으로 귀국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사실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값이 없었다. 정말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한 이곳에서 위만 쳐다 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이 쉽지 않은 선교지에서의 삶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전염병이 지나 가고 이어서 언어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이 공부해본 적도 없었다. 순간순간 고비가 있었을 때마다 선배 선교사님들에게 중국어 공부를 잘 하는 방법을 물을 때면 “중국인을 정말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도 사랑하듯이 중국어도 사랑스러워지고 중국어에 친근감을 가지게 되어요.” 라고 말해주었다. 이해는 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오히려 도대체 이 성조는 누가 만들었냐며 불평을 하곤 했다. 

처음엔 중국 영혼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지만 살다보니 어떤 때는 얄밉고 이해 안 되는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론과 실제에 이런 큰 차이가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순수하고 해맑은 중국 영혼들이 아닌 중국 놈(?)들로 보이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원망과 불신으로 중국인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중국인을 섬기러 온 선교사가 맞는가 하는 회의에 빠지곤 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낸 아이들
중국 생활에서 나만 고통의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 역시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큰 아이는 중국에서 1년 정도 홈스쿨을 하다가 사회성 방면에 문제가 있어 결국 중국 학교에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적극적이고 활발하던 아이가 중국에 와서는 중국 아이들과 좀처럼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타이르며 이해도 시켜 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야단치며 매를 들었다. 그때 아들이 울면서 “아빠, 3학년 되면 말할 거예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좀 더 기다려 주지 못하고 이해해 주지 못한 자격 없는 아빠라는 죄책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주님은 나의 어떤 잘못과 부족함 앞에서도 기다려 주셨는데… 

요즘 아들아이는 중국 친구들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3학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난 언제쯤 영적인 3학년이 되려는지! 아들에게도 미안하고 부끄럽다. 둘째 딸아이는 중국에 처음 와서 폭죽에 놀라 적응을 못했다. 중국 유치원에 가서도 바지에 오줌을 계속 쌌고 밤마다 한국에 돌아가자고 울면서 졸라댔다. 더운 여름 어느 날 딸아이와 약속을 했다. 창 밖에 눈이 내리면 한국에 갔다 오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거실에 앉아 있는 내게 딸아이가 달려오면서 하는 말 “아빠, 지금 밖에 눈이 온다. 빨리 한국 가자!” 이 여름에 무슨 눈이 내리겠는가! 찢어지는 아픔이 밀려왔다. 울며 보채는 아이를 끌어안고 복음을 위해 받는 영광의 대가지불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명을 전하는 자
언어연수를 하면서 중국 청년들과 중국어 성경을 통독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후 1년 동안 함께 교제하면서 청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도 받았다. 그 가운데서 복음전도자로 헌신한 형제들도 생겨났다. 어느 날 한 형제가 한국 선교사들과 공부하며 생활했던 경험을 나누면서 이런 말을 했다. “ 모 선생님은 중국어는 잘하는데 생명이 없고, 모 선생님은 중국어는 못하지만 생명이 있습니다. 다른 모 선생님은 중국어도 못하고 생명도 없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나도 하나님과 현지인들에게 이렇게 평가 된다고 생각하니 하나님과 현지인들 앞에서 더욱 부끄럽지 않은 선교사로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돌아보며
지난 중국에서의 삶을 글로 정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이 글이 예비 선교사와 초기 정착단계의 선교사들에게 적으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는 순간순간 어려움이 닥쳐올 때마다 가장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체크해 본다. 자녀의 문제, 아내와의 문제, 부모님의 문제, 동역자와의 문제, 현지인들과의 문제,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짧은 시간을 통해 체득하게 되었다. 

누가 나에게 선교사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참 복음을 소유하라.”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그곳이 영적인 불모지라도, 우상숭배가 만연한 곳이라도, 후원비가 들어오지 않더라도, 핍박이 있는 곳이라도, 손해가 있을지라도, 오해를 받을지라도, 외로울지라도, 내 안에 참 복음이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내가 서있는 바로 이곳에서 주님이 맡긴 사명을 감당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선교훈련을 잘 받고 언어에 탁월한 재능이 있고 사역이 잘 되어도 참 복음이 없다면 그것은 가장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나 죽으나 다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내 안에 주님이 주인 되어 이끌어가는 복음. 이 복음을 소유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보고 점검하는 것이 선교사로서의 첫 번째 준비가 아니겠는가!


오중국 |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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