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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31  통권 98호  필자 : 유은식  |  조회 : 3149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티베트가 열리다
티베트 불교권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접촉점
얼렁따르마의 반불정책에 대한 이해를 통해

중국 내의 티베트(藏)족과 대화하다 보면 지금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언어와 종교뿐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짧은 시간에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 티베트 언어도 심각한 소멸위기를 맞고 있다. 사실 중국 내에서 문자를 가지고 있는 소수민족의 언어의 소멸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어 자체가 워낙 다양한 방언을 갖고 있어서 문화와 정책을 통일하고 지역적 통합에도 어려움이 있는데 소수민족의 언어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통일사업에 걸림이 된다. 그래서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중국이라는 한 울타리 속에 통합시키려고 ‘민족대가정’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는 중앙정부는 소수민족의 문자와 언어를 정리하는 정책을 펴 왔다.

문화대혁명 때에 칭하이(靑海)성의 경우 십 수 년 간 티베트어를 학교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했었다. 중국에 있을 때 티베트어를 가르쳐 주었던 40대 중반의 교수는 대학에 와서야 티베트어 문자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는 강압적인 것이었다 해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정부는 티베트 사람들 스스로 이 언어는 이제 필요 없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정책을 사용하였다. 무슨 뜻이냐 하면, 소수민족 학생들이 대학을 가기 시작하면서 칭하이성의 티베트족의 경우 지원할 수 있는 학과가 제한되어 있는데 문과의 경우 주로 티베트어 학과나 사범계열을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졸업한 뒤에 취직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고용문제는 중국 전체의 해결과제이기도 하지만 티베트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중앙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통치정책의 구조적인 문제가 보태진다. 주로 학교의 티베트어 선생이나 정부의 문서 번역실에 들어가게 되는데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대학졸업생은 계속 늘어 심각한 고용불균형 현상을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 조금 과장되게 표현해서 2001년 이후 졸업생이 한 명도 취업하지 못했다. 이 현상을 나름대로 극복하기 위해 캄바 티베트족의 주요 거주지인 쓰촨(四川)성 지역이나 라싸(拉萨) 외곽지역의 학교에서 교사로 오라는 요청이 있어서 거기라도 가야겠다며 취업 희망자들이 라싸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로부터 라싸어를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티베트의 젊은이들 사이에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아무데도 쓸모 없는 티베트어를 포기하고 처음부터 중국어로만 수업하여서 중국어 실력을 키우고 다른 외국어도 하나 더 배움으로 이 상황을 극복해 보자는 소리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 결과 2004년 초등학교에서 티베트어로 수업하던 교육 용어를 중국어로 바꾸는 일대 개혁이 이루어진다. 즉 티베트어 수업을 제외하고는 수학이나 기타 과목의 수업 용어가 중국어가 된 것이다. 물로 교재도 티베트어가 아닌 중국어로 바뀌었다. 이것이 칭하이성을 제외한 다른 티베트족 지역에서도 있는 현상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렇게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과정을 보면 마치 일제가 우리를 지배했을 때 무력통치를 하다가 1919년 3.1 독립운동이후 문화통치로 지배 방법을 바꾼 것을 생각나게 한다. 문화대혁명이 강압적인 무력통치였다면 지금의 방법은 문화통치인 것이다. 이렇게 보니 이것이 중국정부가 계획한 일이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정부의 조직적인 지도가 없이 교재를 바꾸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지금 우리와 직접 연관이 있는 동북공정처럼 중앙정부의 소수민족 지역의 효과적인 통치를 위한 서북공정, 서남공정인 것이다.

언어를 스스로 포기해서 살 길을 찾겠다는 것은 피압박 민족이 자신들이 처한 사회구조 속에서 자연스레 택하는 자생방법을 것이다. 네팔의 세르파족도 티베트어를 사용하지만 정부는 공용어인 네팔어를 교육 용어로 택하고 네팔어로 문맹을 퇴치하겠다며 네팔어 보급정책을 계획한다는 말을 들었다. 인도 캬슈미르의 라다크 지역은 통일된 티베트 왕국 최후의 왕 얼렁따르마의 4대손이 왕실 분열 이후 990년에 이 지역에 들어와 세운 라다크 왕조의 후예들이 사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티베트어를 사용하면서도 인도 정부에서는 공용어인 힌두어를 사용하도록 하여 아이들로부터 언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인도나 네팔에 들어가 살았던 티베트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최근 중국 내에 편입되어 있는 티베트족들도 언어에 관한 한 심각한 지각 변동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은퇴를 앞둔 범어(고대 인도어)와 티베트어의 권위자인 교수께서 50년 안에 우리 언어는 없어질 것이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것을 안타깝게 바라본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티베트어를 말할 줄 모르고 중국어만 사용하는 티베트 대학생들이 있다. 이들이 중국어를 그만큼 잘하지 못하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신분상승의 기회가 많다고 본다. 이들이 사회 주도층 인사가 되는 10년, 20년 후에는 티베트 지역에서도 중국어가 통용어가 되는 추세가 가속화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젊은이들, 특히 교사들 사이에 중국 사회에서 인격적인 대우와 정당한 직업을 가지며 버티고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자신들의 민족언어를 포기하자는 자조적인 말들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중국 내에 편입된 티베트에서는 중국정부의 치밀한 정책에 따른 다양한 통치수단으로 갈수록 중국어만 구사하는 티베트족들을 지금보다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티베트족이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종교 하나만 남는다. 최근 티베트인들이 더욱 자신들의 불교에 집중하는 현상을 이런 시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시골 장 ․ 노년층에서 뿐만 아니라 현대문물을 공부하는 대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대학에서 불교라는 우상 아래 학생들을 모이게 하는 현상이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학생들 사이에서 이탈자가 나올까봐 전전긍긍하는 교수들에 의해서 그들이 외부의 공격이라고 말하는 한족이나 외국인들의 새로운 문물을 원천 봉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 특히 학교에 있는 외국사람들 중에는 선교사들이 있다는 것을 경험한 교수들은 학생들을 이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 기독교선교사는 그들의 하나밖에 남지 않는 마지막 민족의 정체성이요 자존심인 불교를 파괴하고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자기 민족에게 심으려는 불순분자(?)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학이 되어 도시로 떠나는 학생들에게 마을의 승려가 학교 기숙사에서 매일 아침마다 불경을 읽으라며 숙제를 내준다. 학교에서는 종교활동을 못하게 되어 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이런 억압 가운데에서 아직까지는 불교라는 큰 테두리 안에 모이는 편이다. 그것이 곧 민족주의이고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렵게 한 영혼을 건지면 그 영혼은 이런 불교의 울타리 안에서 내가 예수 믿는 것이 마치 민족을 파는 매국노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고 또한 외부의 압력과 반발이 거세지면 지레 겁을 먹고 어렵게 찾은 진리인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게 되는 일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한 종교가 한 민족을 지배하는 ‘민족종교’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들에게 나아가야 하는가? 기독교 신앙을 갖는 것이 매국이 아니라는 인식, 다시 말해서 이 불교가 티베트 인족에게 꼭 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기독교가 오히려 티베트 민족을 살릴 희망의 종교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불교가 꼭 자기 민족에게 이롭지만은 않았다는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 젊은 학자들이 이미 티베트 안에 많이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이런 사고를 갖게 된 계기였다. 물론 이들은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통치정책과 관점이 잘 맞아 떨어진다는 면에서 정부가 배양한 학자들이라는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의 관점이 일반인들에게까지 전달되는 데는 상당한 반발이 있고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어로 수업을 받으며 자라난 세대들이다.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지역에서는 이들을 민카오한(民考汉)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는 그런 용어를 쓰지 않는다. 칭하이성에서는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짜시판(假西蕃)이라는 용어를 쓴다. 가짜 서쪽 오랑캐라는 말이다. 서쪽에 있는 소수민족들을 蕃(오랑캐) 라고 부르는데 한족과 동화된 가짜 오랑캐라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에 특별히 공부하지 않았어도 불교의 해악에 반감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 부모가 어렵게 모은 돈을 1원, 5월 가져다 사원에 주면 젊은 승려들이 그것으로 핸드폰을 사고 오토바이를 구입하여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우리가 더 깊이 연구하며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접촉점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본다. 이런 사람들이 논문을 쓰거나 대화 중에 주제가 되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얼렁따르마이다. 이 사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주 상반되어 있다. 지금 티베트 지역이 불교권이기 때문에 그렇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 사람이 영웅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이들은 서슴없이 한다.

그래서 요즘 티베트 젊은이들 사이에 이슈가 되고 있는 얼렁따르마를 소개하려고 한다.

9세기 티베트를 뒤흔든 큰 사건이 벌어지는데 곧 티베트의 왕 얼렁따르마 이하 티베트어 음역은 암도어임, 중국어로는 랑따마(朗达玛)가 불교를 핍박(?)하는 정책을 편 사건이다. 그 사건이 왜 일어났으며 실상을 어떤지 살펴보고자 한다.

쳐대쏭짠 중국어로는 츠더쏭짠(赤德松贊)이 죽을 때 둘째 아들이 따르마였는데 그는 본교(티베트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의 티베트 전통 민속종교) 신자였다. 그래서 만 12살 밖에 안 된 첫찌그대쨘 중국어로는 츠주더짠(赤祖德贊)을 왕으로 세운다. 이 때 그가 세운 정책은 지나치리만큼 불교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한 승려에게 7가구를 속민으로 주고, 승려를 나쁜 뜻으로 쳐다보거나 손가락질을 하면 눈을 빼 버리거나 손가락을 잘라 버리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승려의 지위가 사회 최고층으로 승격하였고 나라의 일부분 토지와 목장, 백성을 사원과 승려의 고정자산으로 주었다. 그래서 원래 무소유이어야 하는 승려들이 땅과 목장이 있는 부유한 귀족계급이 되었다. 또한 자신의 머리카락을 땅바닥에 깔고 승려로 하여금 그 위에 앉게 하여 존경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정책은 당시 티베트의 사회계급 모순을 첨예하게 만드는 역기능이 있었다. 봉건착취가 더욱 심화되어 평민들이 왕이나 귀족계급, 승려들에 대한 불만이 쌓여 갔다. 백성들로 하여금 신앙의 표현인 승려들을 공양하는 것을 법으로 규정지음으로 반발을 사게 하였고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켰다. 또한 왕이 승려들에게 면세, 면역의 특권을 주고 승려들이 참정을 함으로 조정에서 권한이 비대해져서 목숨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고 일해 온 대신들의 불만을 사게 된다. 장기간의 이런 사회현상과 권력층 내부의 승려들과 대신들 간의 권력 투쟁 현상이 결국 궁정 정변을 일으키게 한다.

842년 불교를 반대해 왔던 여러 대신들이 철저한 계획 하에 먼저 왕의 맏형을 이렇게 오랜 세월 왕국에 살게 하면 머지않은 장래에 큰 재앙이 국왕과 백성들에게 내릴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맏형을 유배 보내고, 승려로서 재상이 된 자와 왕비가 통간했다고 모함하여 그 승려를 죽이고 왕비는 자살하게 하였고, 왕이 술에 취해 잠든 틈을 타서 목 졸라 살해하였다. 그리고는 본교 신자였던 둘째 형 따르마어덤짠 중국어로는 따마우둥짠(達玛烏东贊)이 귀족들의 지지 하에 집권을 한다.

이런 배경 하에 집권하였으니 이 따르마가 반불(反佛) 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승려들을 강제 환속시켜서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수렵을 시켰다. 또한 초기 티베트 불교의 상징이었던 조캉사원과 쌈이곤빠(桑耶寺)를 진흙으로 봉해 버렸고, 그 위에 승려들이 술을 마시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불상들을 모래무더기에 묻어 버리고 끌어 내릴 수 없는 것은 천으로 묶어 버렸다. 불교경전을 태워 버리거나 물 속에 던져 넣었는데 대부분의 경전은 승려들이 동굴 속에 숨겨 두었다고 한다. 이 때 많은 승려들이 라싸 서쪽지역인 아리(阿里)나 지금의 칭하이성 중심의 암도 지역으로 도망갔다.

공교롭게도 이 때 티베트 지역에 전대미문의 온역과 우박, 지진,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계속 발생하여서 불교를 싫어하는 대신들과 백성들이 원인을 불교에 돌림으로 이런 반불 정책이 먹혀 들어갔다고 본다. 이 사건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지금도 여전히 티베트인들이 불교를 믿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따르마을 비판한다. 그래서 그를 얼렁따르마라고 하는데 그 뜻은 ‘소뿔을 가진 마귀 왕’ 이다. 이렇게 그를 모욕하는 것이다.

민간과 불교계의 감정 섞인 이런 평가와는 달리 그를 개혁가로 보는 시각이 최근 들어 젊은 학자들 사이에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역사 발전의 시각으로 보면 정교일치보다는 정교분리가 더 발전적인 정치체제인 것은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또한 백성들의 부담을 줄였고 국고가 사원으로 들어가는 지출을 줄였고 승려들을 환속시킴으로 노동력이 증가하여 사회생산력을 높였다. 한편 이런 시각이 20세기에 티베트를 지배하기 시작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부 젊은이들이 중국정부의 입장을 스스로 대변하여 친 중국적인 글로 정부의 신임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다.

이 따르마는 845년 한 승려에 의하여 살해당하게 된다. 이 사건 뒤로 왕실과 민족 모두 사분오열(四分五裂)되는 아픔을 맞는다. 한 때 지금의 티베트고원이라 불리는 지역을 포함해 히말라야 산맥 북쪽의 상당부분을 통치했던 티베트족은 그 뒤로 아시아 무대에서 변방으로 멀어지고 만다.

이 따르마에 대해 티베트에서는 그 동안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불교를 훼멸하려고 했으니 마귀라고 부르며 미워했다며 더욱 비판했어야 하는데 언급을 꺼려했다는 것은 그의 반불 정책이 사회발전에 미친 긍정적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지금은 젊은이들과 앉아서 이야기 하면 따르마 사건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들며 나름대로의 시각을 피력하는 대화를 하는 것을 종종 본다. 특히 불교에 약간이라도 거부감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의 경우 따르마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고 싶어하는 눈치이다. 나아가 이 사건에 대한 티베트 외부의 시각이 어떠한지를 탐구하는 자세이다. 이런 것이 불교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티베트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좋은 접촉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티베트족 선교는 학교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에게 집중하게 된다. 이들이 영향력도 있을 것이고 또 티베트어와 중국어, 두 가지 언어를 다 구사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여러 가지로 1세대 선교의 대상이 된다. 따르마 사건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지금의 티베트 젊은 이들의 반불(反佛)분위기에 대한 이해가 불교를 지키는 것만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 속에 파묻혀 있는 티베트 영혼들을 소위 ‘민족종교’ 인 불교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티베트족을 살리는 길은 우주만물의 창조자이며 통치자인 하나님께 나오는 것임을 그들이 깨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은식| 전 중국 티베트 선교사, 현 산돌성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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